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544
00544 거래를 위한 재료 =========================
노숙이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빠르게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생각하던 제갈량은 입꼬리를 비틀며 물었다.
“…날 아나?”
“암. 알지.”
수많은 자료가 빼곡한 방을 둘러보던 사내.
노가의 가주이며 오의 제 2인자인 노숙은 허리의 검을 뽑은 후 망설임없이 그에게 겨눴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미쳐 날뛰는 정신 나간 꼬맹이 하나 몰라서야 오의 2인자라고 불리겠나?”
어디서 걸린 것일까.
지금까지 자신들의 움직임을 알아챈 이는 없었다.
제갈량은 잠시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그런가. 그럼…”
노가의 가주이며 강남에서 점점 이름을 알려가고 있는 자.
노숙.
언젠가는 자신의 계획에 참여시키려 했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계획이 틀어졌다면 그에 맞추어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흡!”
제갈량은 어깨를 으쓱인 후 빈틈을 노려 그에게 소매에 숨겨 둔 단검을 날렸다.
하지만 노숙은 간단히 그의 공격을 막아낸 후 검면으로 제갈량의 머리를 후려쳤고 그 일격에 제갈량은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데려가.”
“저 여자는 어떻게 할까요?”
심드렁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황월영을 마주하던 노숙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까 말한대로 해.”
“아까 말씀하신대로라면…”
“도적이 쳐들어와서 황가의 모든 이들을 몰살시켰다.”
“…알겠습니다.”
노숙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인 병사가 무기를 들었다.
그런 그들을 무덤덤히 바라보던 황월영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이야~ 역시 노가답네. 명가의 가주다워. 이렇게 사기를 치면서 이득을 챙기나? 역겹기 그지 없네.”
“별 말씀을. 명가라면 당연히 이래야지. 얼마든지 더러운 일은 쉽게 할 수 있다고.”
경멸과 증오가 섞여 있는 황월영의 눈을 마주하던 노숙은 빙긋 미소지었다.
침상에 누워 늘씬한 허벅지를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매혹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노숙은 한점의 성욕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웃고 있지만 눈은 경멸이라… 하하. 역시 소리비도는 기본 장착이네.”
“진정한 명가의 후손이라면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이지.”
여유롭게 웃은 노숙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그들의 살기어린 모습에도 황월영은 저항 한번 하지 않았다.
“컥!!”
그녀의 몸에 창과 검이 꽂힌다.
그것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황월영은 노숙을 노려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쿨럭… 크… 네놈도… 얼마 가지… 못할거다.”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나도 내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있고, 그 계획대로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고 있는데 말이지.”
“저주…받아라. 귀신이 되어서…”
“하. 귀신이라.”
어깨를 으쓱인 노숙은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저주하는 황월영에게 다가갔다.
빛을 잃어가는 그녀의 눈을 마주하며 노숙은 씩 웃었다.
“지금까지 내가 쳐죽인 놈들이 꽤 많은데 말이지.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귀신이 나타나질 않더라고. 그리고 귀신이 되어서 나에게 복수를 한다면…”
황월영의 눈에서 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노숙은 뽑아든 검을 황월영의 목에 꽂아 넣었다.
확인사살까지 제대로 한 그는 검을 뽑아낸 후 이불로 피를 닦아내고 검집에 넣었다.
“내가 귀신이 되었을 때 그 뒷감당 정도는 각오하는게 좋을거야.”
이미 황가의 가솔들은 병사들에 의해서 하나 둘 씩 죽어가고 있었다.
그들을 무심히 지나치며 장원의 구석에 있는 사당에 도착한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성현에게 제를 올리는 사당 치고는 좀 이상하게 생겼는데.
떨떠름해하며 안으로 들어간 노숙은 그곳에 있는 위패들을 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진짜 미친 놈이군. 뭔 위패를 이렇게… 어?”
위패에 적혀 있는 이름들.
그 이름들 중에는 자신이 아는 이름도 있었다.
노숙은 천천히 위패들을 살폈다.
분명히 아는 자들이다.
어떤 이는 과거 높은 관직에 있었고 또 어떤 이는 명가의 사람으로 잘 살아가던 이였다.
그런 그들의 이름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노숙은 입가에 그려져 있던 웃음을 지우고 천천히 위패의 이름들을 살폈다.
“…이거 설마.”
천천히 주변을 살피던 그는 따로 놓여져 있는 두 위패를 발견했다.
조조.
그리고 진유하.
그것을 보며 그간 보이던 천하의 잘못된 모습들을 떠올리던 노숙은 빠르게 뛰어 제갈량의 방으로 향했다.
“이제 나가셔야 합니다.”
“잠깐만.”
그의 방에 가득 채워져 있던 죽간과 문서들.
그것들 중 일부를 꺼내 천천히 읽던 노숙은 결국 참지 못하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핫!! 이거… 걸작이군. 이거 내 생각보다 더 미친 놈이었네. 뭔가 깊은 뜻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그저 개인적인 원한으로 이러는 것이었나? 하하하!!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주제에 그를 치겠다라… 굉장하네. 좋아. 이거면 거래를 위한 재료로 충분하겠는데…”
“거래를 위한 재료요?”
“그래. 원래대로라면… 그냥 강하를 얻은 후 상황을 지켜보려고 했지만 말이지.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군.”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건지.
병사들은 노숙을 보았지만 그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냥 따르는 수 밖에.
“자료들 잘 챙겨라. 그리고 그 제갈량이라는 놈. 절대로 죽게 놔두지 말고.”
“알겠습니다.”
원래 기분 대로라면 여기서 목을 따버리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런 놈이었다면.
결코 그냥 죽여서는 곤란하지.
“이놈을 죽이고 싶어할 놈은 따로 있을테니까…”
그저 자신은 농락당한 것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제갈량에게 공격받은 사람은 따로 있다.
그렇다면 이용해야지.
원한과 분노를 푸는 일은 좋지만 이만큼의 이득이 있다면 자신에게 있어서도 크게 얻어낼 것이 많았다.
“생각치도 못한 이득을 얻게 되었군…”
들고 있던 죽간을 병사에게 올려 준 후 노숙은 천천히 장원의 마당으로 나갔다.
아직 죽지 않은 황가의 식솔들이 끌려나왔다.
여기저기 큰 상처가 난 그들이 신음하는 것을 보던 노숙은 가장 나이가 많은 이를 보자 피식 웃었다.
“…이보게. 노 가주. 왜 이러시는 거요. 우리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병사들에게 끌려 나온 황승언이 자신을 간절히 바라본다.
“딱히 잘못은 없는데. 굳이 말하자면… 뭐. 엄한 놈을 받아들인 것이 죄지.”
그가 자신을 응시하자 노숙은 어깨를 으쓱인 후 검을 휘둘렀다.
단 일격.
일격만으로 황승언의 목을 잘라낸 그는 살아 남은 이들의 확인사살까지 명령하고 나서야 황가의 밖으로 나갔다.
“이제 어디로 가야합니까?”
“글쎄… 일단 우리의 원래 목표를 치뤄야겠지?”
병사들이 몰려온다.
그들을 보면서도 노숙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아군이니까.
선두에서 병사를 이끌고 있는 잘생긴 사내와 마주하자 노숙은 씩 웃었다.
“어서오십시요. 주 도독.”
“…하아. 그래서. 강하는 접수를 했다고 치더라도… 나머지는 어쩔 생각이지?”
“어쩔 생각이고 자시고… 이곳을 발판으로 움직여야겠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밖에 없지 않은가.”
“골치아프게 됐군.”
“뭐 이래저래 수를 쓰기는 해야 하니까 말이지.”
시상에서 온 주유의 군세가 무사히 강하 안으로 들어왔다.
비록 수는 강하에 있는 병사들에 비하면 적지만 이정도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느긋하게 강하군의 관청으로 향한 노숙은 아직 죽지 않은 채 묶여만 있는 황조를 마주했다.
노숙의 등장에 황조는 이를 갈았다.
“노 군사…!! 이게 무슨 짓이요!!”
“무슨 짓이냐니?”
“왜 이런 짓을 하는거요! 황가가! 형주의 명가들과 호족들이 두렵지 않은거요!?”
“딱히 두려워 할 필요가 있나.”
호족과 명가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오다.
그런 상황에서 오의 군사가 합류한 명가를 친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뭉쳐져 있는 오가 완전히 분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안심하고 있었던 황조로서는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되었다.
황조가 이를 갈며 자신을 향해 노기를 터트리자 노숙은 즐겁게 웃었다.
“내가 왜 그들을 두려워해야하는지 모르겠군.”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아서… 결국은 팽하려는 거였나!? 하하!! 다른 명가들이 이 사실을 알면 그냥 넘어갈 것 같은가!?”
“물론 그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
검을 뽑은 노숙은 천천히 검날을 살폈다.
꽤나 좋은 검이다.
황조의 피를 담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검.
그 검을 검집에 밀어 넣은 노숙은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데려와.”
“…반준!? 반준! 네가 왜!?”
“큭…”
끌려나온 반준이 무릎을 꿇자 황조는 그와 노숙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반준이 배신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황조의 눈에 의문이 담기는 것을 보던 노숙은 반준의 앞에 검을 던졌다.
“반 군승.”
“…무슨 짓을 시키려는 것이요.”
“뭐 별거 아니고. 당신에게 기회를 주려는 거요.”
“기…회?”
“그래. 기회. 반 군승… 아니. 반 군수.”
노숙의 말에 반준은 이를 갈았다.
지금 자신에게 황조를 배신하라 말하는 것인가.
그의 눈에 독기가 서렸지만 노숙은 그저 무덤덤할 뿐 이었다.
“만약 황 군수가 스스로 인장을 내놓고, 또 제대로 우리와 연합을 하기 위해 노력해주었다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겠지. 하지만… 댁은 알 것 아니요.”
반준은 눈을 감았다.
역시 알고 있었구나.
황조가 그저 여기저기 손을 뻗으며 간을 보기 위하고 있었다는 것을.
반준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하자 노숙은 양 팔을 벌렸다.
“당신도 알거요. 황조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는.”
반준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칼날 위에서 그렇게 주의 없이 걸어대더니.
결국은 이렇게 되어 버리는 것인가.
그는 황조를 보며 이를 갈았다.
“내가 댁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은 단 한가지.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겠지?”
“하지 않는다면…? 황 군수는 그래도 저의 주군이오.”
“물론 그렇지. 하지만 멍청하고 사람에 대한 신뢰를 주지 않는 자를 주군으로 따르다간 결국 나락으로 떨어질 뿐인데. 그러고 싶다면 나로서는 말리고 싶구만.”
“하. 우습구려. 그래. 내가 황 군수를 죽이고, 강하군의 군수라도 되어주길 바라는 거요?”
“음. 뭐 그래주면 가장 좋고.”
“내가 따를 것 같소?”
“뭔가 착각을 하고 있군. 가장 좋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오?”
장난스럽게 말하는 노숙을 향해 반준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가장 좋다.
그렇다는 것은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
노숙에게 있어서 차선책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던 반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다 죽일 생각이오? 그리고 도적이 공격해 강하의 명가를 휩쓸었다는 이야기를 떠들 생각이오?”
“안전을 위해서는 그게 낫겠지. 하지만 반 군승. 나는 말이지. 황조 따위보다는 당신이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오.”
“…나를 내세움으로써 하구항에 주둔하고 있는 수병들과 몽충선들을 무력화시키려는 속셈은 아니고?”
강하군에 소속되어 있는 수병들은 지금 대부분 하구항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들이 움직인다면 시상에서의 공격은 대부분 막아낼 수 있다.
그것만 생각한 것이 황조의 패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
여강에서는 공격이 없을 것이라고?
웃기는 소리를 잘도 떠들었구나.
하나밖에 보지 못한 황조를 힐끔 노려 본 반준은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참으로 비열하구려.”
“어차피 하구항 따위. 강하를 우리가 차지한다면 나머지는 크게 문제될 것도 없는 곳인데. 쓸데없는 싸움을 피하고 싶을 뿐이라오.”
반준의 판단은 정확했다.
만약 반준이 끝까지 저항한다면 하구항에 있는 강하군의 수병들은 미쳐 날뛰며 시상을 향해 돌격할 것이다.
물론 시상의 병력과 군선으로 그들을 막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쓸데없는 피해를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반준을 꼬드기는 것만으로도 쓸데없는 전투를 피할 수 있다면 충분히 그리 하는 것이 옳았다.
“생각해보시오. 나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랬겠소? 어디보자… 이런 것도 있더군.”
“…..”
반준은 황조를 향해 이를 갈았다.
아까 낮에 본 문서다.
교주의 주목으로 임명하겠다는 유장의 문서.
그렇게 위험하다고 했는데 빨리 태워버리든 할 것이지.
나중에 유장의 세가 강해지면 그들에게 빌붙을 생각으로 저 문서를 소중히 간직한 황조의 생각에 반준은 분통이 터져나왔다.
만약 노숙이 저것을 공표한다면 그나마 이들의 움직임을 잡아 줄 명가들조차 함부로 손을 댈 수 없게 되어버린다.
당연한 것 아닌가.
대놓고 안에서 첩자 노릇을 한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문서인데.
다른 명가들은 바보이고, 또 중요하지 않아서 다른 곳에 손을 잡고 있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오라는 하나의 연합에 참가했으면서도 다른 곳에 줄을 대고 있다는 것은 얼마든지 배신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저런 것을 마치 생명줄인양 소중히 간직하고 있더니.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구나.
쓸데없는 욕심이 일을 크게 키워버렸다.
“반 군승. 우리 함께 합시다. 우리 주군께선 당신이 함께해주기를 바라고 있다오. 얼마나 좋소? 이깟 작은 군의 군승에 만족할 정도로 당신의 그릇이 작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오.”
“내가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거요?”
“응. 댁은 배신하지 않을거요. 왜?”
노숙은 부드럽게 웃으며 반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신은 정치가이니까. 어떤 것이 이득이 되는지 알고 있을테니까…”
그의 달콤한 제안에 반준은 눈을 질끈 감으며 바닥에 놓여진 검을 잡았다.
아직까지 합류한다는 말을 하지 않은 반준이 검자루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노숙은 내밀어진 손을 치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걸음 더 그에게 다가갔다.
주태와 여몽의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만약 반준이 노숙을 공격이라도 한다면?
그들의 걱정을 무시한 채 노숙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을 위한 많은 것이 준비되었다오.”
“…다른 건 다 제쳐둡시다.”
그래.
일단 준비했니 뭐니는 다 제쳐두자.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를 노숙은 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조조를 어떻게 상대하려고? 내가 나서봤자 결국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요. 이제 조조는 곧 양양을 얻을 것이고, 그리 된다면 주변의 정리를 시작할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