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577
00577 넘어가는 것은 좋지만 =========================
영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아니.
그녀의 말이 맞다.
왕이 하나를 위해서 하후가와 조가를 적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물론 내가 하후상의 정혼을 깨는 것 자체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 역시 조가의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으음…”
“단순하게 후처, 혹은 첩으로 삼는 것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그 이상은 힘들어요.”
“저, 저도 그… 하후 공자님이라면 괜찮습니다만… 후처라도 감사할 따름이죠.”
왕이는 몸을 베베 꼬며 말했다.
자신 역시도 신분의 벽을 알고 있는 것이다.
“여보.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내가 마음을 먹으면 그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밀어붙여서 성공해내는 것을 아는 영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말렸다.
“아아… 쩝. 알았어. 하지만 하후상은 어쨌든 내 사람이야. 내 부하이기도 하고. 그의 정혼녀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조민이라는 아이에요. 성정이 선하고 마음이 약하지만 그래도 상이를 아주 좋아하는 아이입니다.”
청이의 말에 난 인상을 구겼다.
성질이라도 못되처먹었다면 그걸 빌미로 파혼을 시켜버릴까 했는데 그런 것도 아니라면 명분의 측면에서도 밀려버린다.
“조부님과 한번 이야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원양 숙부님과도…”
현재 조가에서 가장 큰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조숭이었다.
조숭은 나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으니 그에게 부탁을 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내가 고민하자 영이는 쓰게 웃었다.
“당신이 당신의 사람을 잘 챙기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나도 심각하게 무리할 생각은 없어. 하하. 이거 내가 즐거운 식사 시간에 괜한 소리를 했네. 자. 먹자고~”
“네에~”
식사가 끝나고 청이와 영이, 왕이가 정리를 하는 동안 밖으로 나갔다.
속이 좀 복잡하다.
나는 내 사람은 어떻게든 내가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면 어지간한 것은 다 해주고 싶다.
왜?
그들이 나에게 목숨을 맡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만큼 베풀어야 한다.
충성은 단순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주는 것이 있어야 오는 것이 있는 법.
아무리 장수라고 하더라도 그 논리는 변하지 않는다.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오금희를 시작했다.
천천히 오금희의 동작을 하는 동안 훈련을 마친 이들이 돌아왔다.
녹초가 되어 있는 하후상과 관평이 내 옆에 있는 긴 의자에 쓰러지듯 앉자 장합과 감녕이 걸어왔다.
“쯧. 약해빠진 것들. 고작 그거 훈련 한 거 가지고.”
“그래서야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냐. 관평. 특히 너는 더 그래. 너에게 잡혀 있는 틀을 깨기 위해서는 좀 더 해야한단 말이다.”
“…죄송합니다.”
재능이 넘치고 기초가 탄탄한 하후상과 다르게 관평은 최악의 경우 여기서 더 발전할 수 없다는 판단까지 내려진 상태였다.
그렇기에 관평을 더 혹사시키고 있던 그들은 내가 오금희를 마치자 웃으며 말했다.
“장군님. 그럼 저희는 이만 정북부로 돌아가겠습니다.”
“응. 그래. 아. 야. 하후상. 넌 남아.”
“예? 예.”
감녕과 장합, 관평이 나가자 난 그에게 물통을 던져주었다.
그것을 받아 힘겹게 마신 하후상은 맥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왜 남으라고 하신 겁니까?”
“야. 까놓고 얘기할게. 왕이를 정실로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 같은데?”
조금 미안하다.
그렇게 자신있게 말했는데 이렇게 물러나야 하다니.
내가 떨떠름해하며 말하자 하후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그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바라지도 않았구요. 물론 장군님께서 말씀하신다면 제 정혼이 파기될 수 있겠지만… 그건 장군님께 너무 손해가 큽니다.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제 욕심을 챙길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냐. 그럼 다행이고. 그럼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왕이를 후처, 혹은 첩으로 받아들이게 해주는 정도에 불과하네.”
“그정도라면 매우 만족스러운 일입니다만… 하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제 정혼자는 조가의 사람입니다. 저는 장군님과는 경우가 좀 다른지라… 함부로 후처나 첩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내가 영이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청이와 결혼을 했다면 나머지 부인들과 쉽게 결혼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내가 진동장군이니 정북장군이니 해도 처가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하지만 청이와 결혼을 한 것은 영이의 다음이었고, 그 때문에 조가에서도 내가 견희나 완이를 받아들인 것에 뭐라고 하지 못했다.
하후상의 말대로 나와 하후상은 경우가 다르다.
방계라고 하지만 무려 이 나라 최고의 자리에 있는 조가의 사람.
조조가 괜찮다고 하더라도 주변에서 난리를 칠 것이 분명했다.
“알어.”
자칫 잘못하면 조가나 하후가와 대판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은 누가,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지.
하후상도 그것을 해결할 수 없어서 시무룩해 하고 있었던 것이고.
“첩이라도 괜찮… 아니 그 전에 왕 소저는…? 왕 소저가 저를 싫어한다면 강제로 그렇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전장에서 그렇게 미친듯이 날뛰던 놈이 한 여인에게 미움 받을까봐 저렇게 무서워하다니.
역시 사랑의 멋짐은 대단하군.
“걔는 좋아 죽던데?”
“저, 정말입니까? 헤헤헤…”
하후상의 얼굴이 붉어졌다.
되게 좋아하네.
그를 말없이 바라보던 나는 땀으로 범벅인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낸 후 말했다.
“내일부터 움직일 거니까 넌 얌전히 넌 일이나 하고 있어. 그리고 왕이 데려다주고 복귀해라.”
“예!!”
환하게 웃는 그를 내버려 둔 채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 돌아가서 생각을 이어나갔다.
일단 해야 할 일은 조숭과 조조를 만나서 허락을 받는 것, 그리고 조민의 가문에 가서 그 아비에게 허락을 받는 것.
마지막으로 하후가에 가서 허락을 받는 것.
할 일이 참 더럽게 많네.
신분의 벽을 깰 방법이 없다면 돌아가기라도 해야하는데 돌아가는 것도 만만치 않다.
“이거 정말 백년 정도는 노역형을 줘도 시원찮겠군.”
그래도 내 사람이니 해줘야지.
앞으로 개처럼 굴려먹어야 할텐데 말야.
아침이 되자마자 조가로 향했다.
마침 조조는 아침식사를 끝내고 등청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조숭을 만나기 전에 조조에게 말해두는 것이 예의겠지.
청이를 내원에서 기다리게 한 후 조조의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왔다는 이야기는 들은 것인지 조조는 관복을 정갈히 차려입은 채 날 반겼다.
“어서오게나. 사위.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아침부터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하하하하!! 이거 자네가 부탁이라고 하면 매번 무섭더군. 그래. 뭘 부탁하려고 이렇게 찾아 온 건가?”
“하후상의 일 때문입니다.”
“상이? 그 녀석이 왜?”
“제가 알기로 상이에게 정혼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게 어쨌다고?”
조조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고 난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내가 망설이는 것을 보던 그는 피식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왜? 파혼이라도 시키고 싶은 건가?”
“아. 거기까지는 아닙니다. 그냥… 뭐라고 해야하나. 상이 녀석이 마음을 준 여인이 있다고 말하더군요. 파혼은 아니더라도… 후처나 첩을 받아들이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흐으음… 나야 뭐 별로 상관은 없다만… 그걸 자네가 굳이 나서서 할 필요가 있나?”
“제 사람이니까요.”
“쯧. 자기 사람은 정말이지 지독하게 챙기는구만.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이렇다 말해주기가 어렵군.”
“그래서 장인어른을 찾은 겁니다. 이 문제를 어찌 하는 것이 좋을지 상의드리려고.”
“결혼의 문제는 개인의 마음도 중요하지만 가문의 뜻도 중요하지. 그리고 그 가문의 뜻은 가주에게 결정되는 것이야. 내가 알기로 상이와 정혼을 한 아이의 아비는 조성민. 나에게 있어서는 사촌이라고 할 수 있지.”
“저도 들었습니다. 훌륭한 학자 분이시라고…”
“내 조부님께서는 탁류파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분이셨지만 청류파의 문인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셨지. 그 청류파 문인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은 것이 바로 성민이야.”
“그건 들어 알고 있습니다.”
“첩을 들인다는 것이 허물이 된다는 것은 아니야. 당장 훌륭한 성현 중에도 처첩을 여럿 거느리신 분들도 있지. 다만 문제는 아직 하후상이 결혼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네. 가문간의 문제는 자네나 내가, 그리고 아버님께서 나서서 막아주신다고 하더라도 결국 도리의 문제에서 걸려버린다네.”
“그렇군요…”
“자네도 조가의 사람인 만큼, 촌수로 따진다면 성민의 조카사위 정도 되겠군. 위치도, 그리고 명분도 자네가 밀려. 단 한가지 앞서는 것은 관직 정도인데… 관직으로 밀고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조조는 순수하게 충고를 해주었다.
“그러니 자네가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하후상과 조민의 결혼이네.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첩이나 후처 이야기는 꺼내서도 안돼.”
“하지만 첩을 먼저 들인 후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건 지극히 이례적이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일때나 가능한 것이야. 그리고 상대 가문이 무척이나 약한 가문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내 가문을 제외한다면 하후가나 조가는 큰 차이가 없어. 자칫 잘못했다간 하후가가 조가를 무시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지.”
“그렇군요.”
조조의 말이 맞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어떻게 해야할지 길이 보였습니다.”
“그런가?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 어찌 할 생각인가?”
“장인어른의 말씀대로 일단 결혼부터 시키는게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게 옳아. 파격이라는 것은 격을 깬다는 것이지. 그리 되었을 때 남는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게.”
상황이 따르는 한 전통과 도리는 지키는 것이 좋다.
황제를 개무시하고 있는 나라고 할지라도 사회 규범까지 깨가면서 상황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파격의 결과가 나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위험이 된다면 굳이 건드릴 필요는 없다.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뭘 이런 걸로. 자네가 나에게 이렇게 상담을 한다는 것을 알면… 하하. 상이 녀석도 자네를 무척 따르겠군. 자네에게 조언 하나를 하자면… 일단 아버님을 만나보고 허락 정도는 받아두게. 현재 아버님은 조가 전체를 아울러 가장 큰 어른이시니까. 도움이 될걸세.”
“예.”
괜히 결혼을 인륜지대사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청이와 결혼을 급하게 한 것은 임신공격을 당했기 때문이지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아 결혼을 했을 것이다.
아무리 정혼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길일을 잡고, 또 손님을 부르는 일까지 한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으음…”
조숭이야 날 굉장히 좋게 보고 있었고, 또 율이를 낳은 것 때문에 더 좋아했다.
그런 내가 청하니 웃으며 내 힘이 되어주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후가의 가주인 하후돈과 조민의 아버지인 조성민을 만나는 건데.
성민의 장원 앞에 도착했을 때 고민했다.
뭔 말로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청이의 질문에 난 어깨를 으쓱였다.
조숭과 조조에게 성민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들었다.
전형적이고 고지식한 문인이라고 한다.
“조 숙부님이 어떻게 나올지가 궁금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