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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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가자. 우리가.”
흩날려 떨어지는 복숭아 꽃잎 속에서 사내는 이를 드러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세상을, 천하를 바꾸는 것이다.”
관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창을 통해 빛이 들어온다.
오래간만에 꾸는 꿈에 그는 몸을 일으키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손님. 기침하셨수까?”
문이 열리며 중년 남성이 들어왔다.
주변을 둘러본다.
여긴 어디지?
멍한 머리를 크게 가로저으며 정신을 차린 관우는 싱글벙글 웃고 있는 사내를 보았다.
“아침식사 가져왔어라.”
순박한 인상의 중년 사내가 들고 온 상에는 고봉밥이 담겨 있었다.
물론 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와 콩이 절반이나 섞여 있다.
하지만 찬은 훌륭했다.
기름으로 고소하게 무쳐진 나물과 순무채, 냇가에서 잡아 온 은어구이 두마리.
하룻밤 신세를 지는 불청객에게 줄 만한 식사는 아니었다.
옛날이었다면 이런 아침 식사따위 대접받을 수 없었겠지.
관우는 자신의 수염을 가볍게 쓰다듬은 후 고개를 숙였다.
“하룻밤의 신세를 진 것으로도 실례가 되었는데 이렇게 식사까지 대접받다니. 춘삼이라고 했던가? 반드시 사례하겠네.”
“아닙니다. 나으리.”
히죽 웃은 사내, 이 집의 주인인 춘삼은 느긋하게 기지개를 편 후 말했다.
“그럼 저희는 밭에 나가야 하는디.”
“나도 금방 먹고 나가겠네.”
“에이~ 귀한 분 같으신디 푹 쉬시지요.”
관우의 말에 춘삼은 손사레를 친 후 머뭇거렸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사례를 바라는 건가?
하룻밤 신세를 진 것에 대한 보답으로 돈 정도는 지불할 수 있었다.
관우가 전낭을 꺼내려고 하자 춘삼은 손을 휘저었다.
“아뇨. 아뇨. 돈은 필요 없서라.”
“하지만 하룻밤 신세를 지고 이렇게 식사까지 대접받았는데 어찌 그냥 갈 수 있겠소.”
척 봐도 그리 부유해보이는 집안은 아닌 듯 싶은데.
어젯밤 마을 귀퉁이의 사당에서 하룻밤을 지새우려던 관우를 데리고 온 것이 바로 춘삼이었다.
아무리 큰 덩치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밤 이슬은 무섭다.
고뿔에 걸리기라도 하면 드러누워야 하는데 도와 줄 사람도 없으면 어떻게 버티려는 것인가.
사양하는 관우를 억지로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 춘삼은 훈훈하게 화로까지 지펴주었다.
아쉬움없이 안방을 내어주고 자신과 아내, 아이는 작은 방에 들어가 잠을 잔 사람이다.
그런 이에게 보답하지 않으면 어찌하겠는가.
관우가 전낭에서 은전을 꺼내 쥐어주려 하자 사내는 혼비백산하며 뒤로 물러났다.
“아녀라! 아녀라! 돈 같은 걸 원해서 모신 것이 아니요!”
“그럼 농사일이라도 도와주겠소.”
“괜찮슴다. 관청에서 병사들이 나와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
그가 훈훈하게 웃으며 말하자 관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진유하와 결별을 선언하고, 자신의 아들을 버리고 떠났지만 아직까지는 조조의 세력권 내였다.
연주 태산군.
산양군과 서주와 인접한 곳으로 한때는 사람들이 살아가기 힘든 곳이라 불렸지만 진유하와 그의 부하들로 인해서 많은 것이 바뀐 곳이다.
태산군의 북부에 있는 항구를 통해 기주로 향하고, 그 기주에서 다시 유주로 간다.
그곳에서.
형님과 만나고 결의를 했던 그곳에서.
과연 다시 마음을 잡을 수 있을까?
관우는 자신의 옆에 놓여진 언월도를 내려다보았다.
탁군에서 유비가 아는 대장장이의 힘을 빌려 얻은 무기.
꽤나 많은 철이 들어간 무기인 그것을 꽉 잡은 그가 한숨을 내쉬었을 때 춘삼은 느긋하게 말했다.
“유 군수님 이후로 관청에서 많이 지원들을 해주고 있어라. 거기에 서주에서도 지원이 오고… 과거 서주목이셨던 진 장군님이… 소를 키우고 농사를 짓는 것을 적극 권장하셔서 도움이 많이 되고 있어라.”
“그렇소?”
태산군에서 진유하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서주에 있을 때도 그랬다.
극단들은 앞다투어 조조와 진유하에 대한 연극을 했고 그들로 인해서 많은 이들이 편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들.
거기에 그들의 영향을 받은 각 군의 군수들은 보급받은 철로 철제 농기구를 만들어 빌려주고, 또 농사를 지을 때 관병들을 보내 도와주는 것을 당연시 생각하고 있었다.
옛날과는 다르다.
관리들의 부패가 극에 달했을 때.
그 부패를 참지 못해 백성들이 무기를 들고 일어났을 때.
그때와는 다르다.
“손님? 왜 그러시구랴?”
춘삼의 말에 관우는 상념에서 벗어났다.
그가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자 춘삼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입술을 달짝거리며 머뭇거렸다.
“아니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시오? 나에게 뭔가 원하는 것이라도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춘삼은 머뭇거리며 뒤통수를 긁적거리다가 히죽 웃었다.
“죄송하지만 글을 좀 읽어 주실 수 있으시우?”
“글을?”
아침식사를 끝내고 춘삼과 함께 밭으로 향한 관우는 밭의 입구에 걸려 있는 나무판을 보았다.
꽤나 커다란 나무판이다.
그것을 보며 춘삼은 벌개진 얼굴로 말했다.
“그기… 며칠전에 관에서 설치하고 갔는데 저희들이 다들 까막눈인지라. 뭔 소린지 궁금해서… 으헤헤.”
농법에 대해서는 관에서 직접 나와 가르쳐주었지만 이런 것은 글을 읽을 줄 아는 명가나 호족들이 나서서 가르쳐주어야 한다.
하지만 과거 태산군의 군수가 벌인 악행 때문에 이곳의 대부분 호족들과 명가들은 힘을 잃거나 귀양을 가고, 아니면 처형을 당해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이들이 드물었다.
가끔씩 관리들이 나서서 글을 읽어주기는 하지만 관리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
또한 이렇게 돌아다니며 글을 읽어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당연히 빠지는 곳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성들은 불만을 가질 수 없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관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큰 전답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어떻게 소작을 짓겠는가.
관병들을 적극적으로 둔전에 활용하는 것은 서주에 있을 때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조조군이 다스리는 전역에 퍼져 있는 것이었다.
한때 자신 역시 둔전병들을 이끌고 다니며 개간을 했던 것을 떠올린 관우는 한숨을 내쉬며 커다란 판을 보았다.
“관에서 명령한다. 첫번째. 농사를 짓는 이들은 오줌을 한 곳에 싸서 모아두도록 하라. 두번째. 지렁이를 죽이지 말고 너무 많다 싶으면 모아 바치도록 하라. 세번째. 밭을 절반으로 나눠 한쪽은 반드시 콩을 재배하도록 하라.”
“음음. 그렇구만. 전에 현승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네잉.”
“현승이 직접 나와서 말해준 것인가?”
“그렇구만요. 봄이 되기 전에 현승께서 저것을 집중적으로 말씀해주셨어라. 서주와 산양군에서 가르치는 농사짓는 방법을 따르는 것이니 풍작을 원하면 반드시 이대로 하라고 하셨어라.”
“그렇군…”
이것은 관우도 알고 있는 농법이다.
서주에서 진유하는 강제나 다름없는 명령을 하여 농법의 변화를 이끌었고 그것은 풍작을 만들어내었다.
철제 농기구.
소를 적극적으로 키우는 것.
거기에 지렁이를 쓰는 것.
그 외에도 많은 부분들.
서주에서 봤던 농법들이 적혀 있는 것을 보며 관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이! 춘삼이!!”
“곽군이 왔는가!?”
밭의 입구에서 소를 끌고 오는 이들이 보였다.
춘삼과 같은 농부로 보인다.
그들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춘삼이!! 소를 빌렸구만!”
“오오! 장 현령님이 소를 빌려주시든가!? 전에 갔을 때는 남는 소가 없다면서!”
“서주에서 소를 지원받았다고 하시더구만!”
“그런가!”
소가 끌고 있는 수레들에는 우경을 위한 관의 농기구들도 잔뜩 쌓여 있었다.
그것을 보며 관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과거 서주에 있을 때 진유하와 방통, 그리고 진군이 몇날 며칠간 머리를 굴려가며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만든 농기구들이다.
사람의 힘보다 소의 힘이 강한 것은 당연하다.
더 쉽게, 그리고 더 빠르게 밭을 갈 수 있다.
둔전병들을 이끌 때 밭을 깊게 파면 팔 수록 농사를 짓기 편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던 관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밭의 농부들도 기뻐하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꽤 많은 소다.
한마리씩만 나눠도 자신들의 밭에 충분히 배정될 수 있다는 것에 다들 기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기뻐하는 모습에 관우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진유하의 정책이 조조의 세력 전체에 퍼져가고.
그럼으로써 백성들의 삶은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아! 손님. 고맙습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곽군이! 이 글은 전에 현승님이 말씀해주셨던 거더구만!”
“그런거였어? 에잉! 우리도 빨리 글을 배워야 할텐데 말여!”
소를 이끌고 왔던 곽군이 크게 웃으며 대답하자 춘삼은 볼을긁적거린 후 관우에게 말했다.
“이거 참. 우리 모두 까막눈이라서 그런지. 글을 읽고 쓸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사는 것은 나아졌지만 불편함은 남아 있다.
관우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마저도 이것은 불가능한가보구나.’
글은 가진 자의 것이다.
지식은 위에 있는 자의 것이다.
백성들의 삶은 나아졌고 세상은 바뀌어가고 있지만 완전히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관우는 춘삼의 말에 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뭐. 그것도 조만간입니다.”
“무슨 소리요?”
“군수님께서 이제 근처에 서당을 만든다고 하셨으니까 그렇지!”
곽군은 싱글벙글 웃으며 춘삼에게 소의 고삐를 쥐어 준 후 관우를 위 아래로 흝어보았다.
“보아하니 좀 배우신 분 같은데. 딱히 일이 없으시면 훈장을 지원해보시겠수?”
“훈장…?”
“군수님께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자, 경전을 공부한 자들을 모으고 계시다오.”
“그들을 모아서 어찌하려고?”
“백성들에게 가르치려고 하지.”
“….!”
관우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의아해하며 관우를 마주했다.
“뭐 놀랄 일이라고. 군수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이거요.학이시습지면 불역여호아!”
“배우고 또 배우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오? 아시우?”
검댕과 땀으로 더러워진 얼굴로 그는 싱글벙글 웃었다.
“뭐, 우리가 배워서 나랏님들의 일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배우면 적어도 나랏님들의 힘이 되어줄 수는 있는 것 아니겠수? 그리고 엄한 놈들의 꼬드김에 넘어가지도 않을 것이고.”
그의 말에 관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춘삼은 껄껄 웃으며 외쳤다.
“농부는 농부답게 밭을 갈아야 하지만. 우리 나으리들 같은 분들이 힘들면 우리라도 나서야지! 옛날을 생각해보라고! 그 천하의 썅놈들과 지금 우리 나으리같은 분들을 비교해보면 당연히 우리 나으리같은 분들을 도와야지! 동물도 제 은혜를 갚는데 우리는 사람 아니오. 사람. 당연히 은혜를 갚아야지!”
곽군의 외침에 다른 이들 모두 동의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렴!”
“당연히 그래야지!”
그들이 조조를, 진유하를, 지금의 정권을 긍정하는 모습이 보일 때마다 관우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갔다.
하지만 곽군도, 그리고 사람들도 그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의 배경에 사공이 있으시니! 하하하! 태평성대가 계속 되었으면 좋겠네! 아. 이거 참. 나는 이만 가보겠네. 다른 곳에도 소를 줘야 하니 말야.”
춘삼에게 인사를 한 그는 소를 몰고 다른 밭으로 갔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기쁨이 탄성을 듣던 춘삼은 싱글벙글 웃다가 관우에게 물었다.
“손님? 왜 그러시우?”
“…아니오.”
“어디 아프시기라도 한 것 아니오?”
“…아니라고 했을텐데. 아무튼 신세졌소. 이만 떠나겠소.”
“아. 뭐. 이것도 연이니 다음에 또 들러주시구려! 정 뭐하면 태산군의 스승님이 되어주셔도 되고!!”
관우는 휙 몸을 돌려 바쁜 걸음으로 걸었다.
그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춘삼은 고개만 갸웃거릴 뿐 이었다.
춘삼의 집으로 돌아 온 관우는 자신의 짐을 챙겼다.
그가 밖으로 나왔을 때 춘삼의 아들은 땅바닥에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있었다.
“손님! 가시는건가요!?”
“그래. 그런데 뭘 하고 있는 것이냐?”
“에… 글자 쓰는 것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다.
그것을 보며 관우가 쓰게 웃었을 때 춘삼의 아들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현승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공부를 열심히하면 나중에 천신장님을 도울 수 있다고!”
“…..”
천신장.
진유하를 말하는 거다.
아이들조차도 그를 존경하며 따르는 모습에 관우는 이를 악물었다.
과거에도 그랬던가?
저렇게 즐겁게 웃으며 관리를 꿈꾸는 아이가 있었던가?
관우는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오며 생각했다.
‘형님.’
세상을 바꾸자고 말했었다.
천하를 바꾸자고 말했었다.
하지만.
‘이미 세상은 바뀌어져가고 있습니다. 형님이 계시지 않은 곳에서 벌써 세상은 바귀어져가고 있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제가 어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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