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67
00067 선택은 자유롭게, 결과는 겸허히 =========================
수경원이 불탔다니.
왜?
요화의 말을 듣고 서둘러 서신을 열어보았다.
익숙한 필체다.
“방통이…?”
다행이다. 방통은 무사한건가?
천천히 글을 읽어보니 사고로 인해 수경원의 안채가 모두 불타버렸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다치거나 사망한 사람은 별로 없지만 안채가 전소했다는 것에 난 무거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아…”
“빨리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응.”
이미 졸업을 했다고는 하지만 수경원이 불탔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요화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감녕은 바로 출발할 것처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애초에 가져 온 게 없으니 그냥 가도 되겠지.
“바로 가는거유?”
“아니. 지금은 힘들어. 바로 출발해봤자 불타버린 수경원이 돌아오는 것은 아닐테니까. 그렇지만 넌 먼저 가봐.”
“알겠수다.”
나야 졸업을 했고 서신에 따르면 서복과 방통은 무사했다.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둘인 만큼 안심할 수 있지만 수경원의 안채가 전소되어 혼란에 빠질 수경 상점과 자신의 부하들을 생각하면 감녕도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걸 여비로 써.”
“고맙수다. 남은 것은 돌려줄…”
“아니. 적겠지만 빨리 가서 그걸로 다친 사람들을 위한 약이라도 사서 먹여. 수경원에는 네 부하들도 있잖아.”
“끙. 고맙수다.”
“잠깐만요.”
감녕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사마영이 후다닥 병영으로 뛰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황이 말을 끌고 오자 사마영은 말을 가리켰다.
“빨리 가야 할 것 같은데 이걸 타고 가세요. 명마는 아니지만 준마인 만큼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 감사합니다. 도련님.”
사마영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한 감녕은 빠르게 말에 올라 떠났다.
그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사마영은 근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당신도 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가긴 갈건데 지금 가지는 않을거야.”
“그래도 당신의 사문인데…”
“괜찮아. 내일 날이 밝는데로 떠날게. 치서어사 어르신께 이 늦은시간에 간다고 말씀드리는 것도 예의에 어긋난 일이야. 지금 가봤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사람들의 피해는 크지 않다고 하고 동문들은 무사하다고 하네. 다만… 수경원에 있을 자료들이 아까울 뿐이지.”
“그런가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괜찮으니까.”
걱정하는 사마영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서황이 물끄러미 날 바라보았다.
“왜?”
“괜찮으시다면 제가 동아현까지라도…”
“아냐. 괜찮아. 요화도 있으니까. 야. 근데 왜 네가 왔냐? 아버지는?”
“현장님은 새로 뽑은 호위무사가 지키기로 했습니다. 실력도 대단하더군요.”
이게 무슨 소리야.
요화의 대답에 난 어이가 없었다.
새로 뽑은 호위무사를 뭘 어떻게 믿냐.
요화야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집안과 연이 있으니 믿을 수 있지만 새롭게 들어 온 호위무사를 어떻게 믿고 아버지를 맡기냐.
“현장님께서 몇번 그녀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믿을 수 있다 생각하셨나보더라구요. 그래서 절 보내셨어요.”
“아. 그래?”
아버지의 눈이면 괜찮겠지.
아버지는 나보다 더 사람을 잘 보니 괜찮을거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사마영은 요화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소개를 안시켜줬네.
“뭘? 아. 야. 인사해. 사마가문의 중달이다.”
“엇!? 안녕하십니까! 어렸을 때부터 도련님을 모신 요화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마가문의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요화는 황급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의 인사에 사마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서황은 흐뭇하게 웃었다.
“꽤나 실력이 괜찮은 분 같군요. 혹시 군문에 종사하셨습니까?”
“아하하… 말씀 편히 하십시요. 군문은 아니고 기주목 휘하 장 장군을 사사했습니다.”
“장 장군이라면… 장 준예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이고… 부탁드리니 말씀 편히해주십쇼. 저는 관직도 없는지라.”
“크흠. 그럼 편히 하겠네. 그러고보니 일전 장 장군이 쓸만한 제자를 데리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네. 그게 자네인 듯 하군.”
“하하… 쓸만하다니요.”
“진 도련님은 아주 훌륭하신 분이니 잘 보필하길 바라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수련을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찾아와주게. 대련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을테니… 뭐, 그 자와 붙어도 괜찮겠지만 자네의 몸을 보니 군문의 무가 몸에 익어 있는 것 같은데 그자보다는 내가 더 나을 수 있겠어. 아. 내 소개를 안했군. 난 서황이라고 하는 사마가의 잡졸이네.”
“잡졸이라니. 당신이 있기에 아버님께서 안심하고 계신겁니다. 그리 낮추지 마세요.”
서황이 공손하게 말하자 사마영은 그의 허리를 툭쳤고 그것에 서황은 부끄러운 듯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잡졸이 맞습니다. 감사하게도 치서 어사 어르신께서 잘 봐주신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온 것이니… 아무튼 진 도련님과 모르는 사이도 아니니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게나.”
“알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늦은 시간이니 오늘은 사마가에서 머물도록.”
“감사합니다. 도련님.”
“가자. 내 옆방에 방을 준비하라고 할게.”
“감사합니다. 도련님.”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지만 요화 한 사람 재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사마영이 안으로 들어가자 요화는 지금까지 쉬지도 못하고 달려 온 탓인지 헉헉거리는 말 고삐를 잡고 서황에게 물었다.
“저. 서 장군님. 죄송합니다만 마굿간이 어디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음? 아. 따라오게나. 도련님. 요화는 제가 안으로 안내를 하겠습니다. 들어가서 쉬시지요.”
“고마워.”
서황의 배려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앞서 걷고 있던 사마영과 함께 내 방으로 돌아간 내가 탁자에 앉자 사마영은 날 한참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일까요?”
“글쎄.”
“방화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건 아닐거야.”
내가 있을 때도 수경원과 수경상점을 질시한 놈들이 방화를 하려고 온 적이 몇번 있었다.
그때마다 서복과 방통은 둘이서 그 방화범을 잘도 잡아냈었다.
수경원이 증축되고 경비를 서는 사람이 더 늘어난데다가 감녕의 부하들이 돌아가며 보초까지 서는데 방화를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내부인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사마영의 말대로 내부인이 방화를 일으켰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만큼 방화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너무 의심해야 할 자가 많아진다.
“방통이나 서복도 바보가 아니니까… 만약 방화라면 서신에 적어놨겠지.”
방통이 보낸 서신에는 방화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저 수경원이 불탔다는 이야기만 있었을 뿐이다.
만약 방화였다면 방통과 서복이 그것을 놓쳤을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면 모를까 그런 종류의 일에는 나보다 더욱 빠삭한 것이 방통과 서서다.
만약 걔들이 방화라고 의심했다면 그 순간 사건은 종료될거다.
“난 그 녀석들을 믿어.”
“정말요?”
“너 의외로 질투심이 심하네?”
“에? 지, 질투하는거 아닌데요?”
아까도 여자 얘기 나오니까 질투하드만 뭐.
사마영이 질투를 해주니 얼굴이 간지러워졌다.
내가 흐뭇하게 웃자 사마영은 얼굴을 붉히고 머뭇거리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조심해요.”
“뭘?”
“아이 참!”
“하하하… 알았어.”
“그리고 아까.”
“뭐?”
“새로 온 호위무사? 호위무사를 뽑았던가요?”
“아. 응. 아무래도 호위무사가 필요한 것 같아서. 왜?”
사마영은 심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여자 호위무사라던데요?”
“…..”
그랬나?
그러고보니 그런 것 같다.
“하아.”
“…아니 근데 그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알아요. 그렇지만…”
사마영은 힐끔 날 보고 우울한 듯 도톰한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아아아… 이렇게 되고 싶지 않았는데…”
“왜?”
“자꾸만… 당신과 함께 있을수록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이 넘쳐요. 정말. 어떡할거에요?”
“어쩌겠니. 내 매력이 이토록 넘치는걸.”
처음 봤을 때부터 멱살을 잡고 싶었던 사마의와 반대로 처음 만났을 때부터 호감을 보이던 사마영이다.
이런 걸 보면 궁합이라는 것이 확실히 존재하는 듯 했다.
“그러게요… 그 매력에 넘어 올 날파리들도…”
무섭다!
“후훗. 농담이에요.”
내가 질겁하자 사마영은 웃으며 내 볼을 쓰다듬어주고 천천히 얼굴을 가져갔다.
살포시 감은 눈.
떨리는 몸.
분홍빛 입술.
그것을 보며 나도 눈을 감으려는 찰나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그래도 그 사람보다는 낫네요.”
매우 동감한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마영은 빙긋 웃은 후 빠르게 내 입술을 훔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있고 싶지만 당신도 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것 같네요. 그럼… 내일 만나요.”
“그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사마영과는 다음에 언제든지 같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사마영은 머뭇거리다가 내게 다가와 옷자락을 잡고 가슴에 머리를 톡 기댔다.
“이번에 만났을 때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말하게 되네요.”
“뭘?”
“사랑해요. 진유하. 비고에서 평생을 살아가려던 나에게, 중달 오라버니의 그림자가 되려던 나에게 세상을 볼 각오를 하게 해줘서.”
“…..”
“정말… 당신은 최고의 남자야.”
사마영의 눈가에 눈물이 걸렸다.
금방이라도 기뻐하며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사마영을 난 나도 모르게 꼭 끌어안았다.
“헤헤…”
“후회하지마. 내것이 된 이상 난 절대 놔주지 않을거야.”
“바라던 바에요.”
천천히 내 몸을 밀어내고 사마영은 문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바깥에 시녀와 함께 요화가 서 있자 사마의는 몸을 돌리고 나에게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럼 편히 쉬십시요.”
귀에 익었지만 이제는 어색하다고 느껴질만한 목소리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중달. 편히 쉬어.”
“도련님. 제가 방해를 한 것은 아닌지…”
“아냐. 방해는 무슨. 방은 확인했지?”
“네. 좋은 방이네요. 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은 요화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내게 한통의 서찰을 넘겼다.
“현장님께서 도련님께 전해주라는 밀서입니다.”
“아버지께서?”
“네.”
“확인해봤냐?”
“그럴리가요.”
요화가 굳은 표정으로 대꾸하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서찰의 내용물을 확인해보며 난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깝깝함은 가시지 않는다.
“무슨 내용입니까?”
“산양군의 일이지.”
“산양군이요? 거긴 왜요?”
“그러고보니 넌 모르겠군. 잘하면 아버지께서 산양군의 군승으로 승진하실 수도 있어.”
“엑? 하지만 거긴…”
요화도 알고 있을 정도로 개판인 산양군이다.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난 서찰을 불에 태웠다.
촛불에 의해 태워진 서찰이 검은 연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요화. 양양에 들렀다가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많을거야. 각오는 됐겠지?”
“전에도 말씀드렸지요.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곧장 양양으로 간다.”
“양양으로요? 동아현에 들리지 않고?”
“응. 말은 이곳에서 빌리면 되니까.”
“알겠습니다.”
******
“영아.”
“네.”
사마랑과 함께 비고로 들어 온 사마영을 보며 사마의는 한쪽 벽면을 바라보았다.
사마영이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 그녀의 생활공간이나 다름없는 곳을 지그시 응시하던 사마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쨌든 네 뜻대로 그와 혼인을 하게 되었는데.”
“네.”
서책을 뒤적거리던 사마영을 향해 사마랑도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건 좀 치우지 그러냐?”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그림들이다.
사마영이 매일 매일 그린 진유하의 모습.
수십장은 우습게 보일 정도로 잘 그린 그림에 질린 사마의가 말하자 사마영은 그에게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제 보물이니 건드릴 생각하지 말아요.”
“영아. 이걸 보면 유하도 기겁을 할 것이다. 차라리 치우는게 낫지 않겠냐?”
“…보신 건가요?”
“겉에 적어 놓은 글귀만 들어도 무섭다. 신혼일기가 뭐냐?”
“다행이네요.”
사마랑이 가리킨 책을 휙 빼앗은 사마영은 소중히 그것을 끌어안았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하루도 빠짐없이 써 온 일기다.
진유하와 결혼하게 되면 하고 싶은 일. 그 모든 것을 적어 놓은 책을 꽉 끌어안은 그녀는 아까 전 진유하와의 일을 떠올리며 베시시 웃었다.
“형님. 쟤 제 동생이긴 하지만 가끔씩 무섭네요.”
“너만 그런게 아니란다.”
“도대체가 오라버니들을 이해 못하겠네요. 이렇게 잘 생긴 얼굴인데 매일 보고 싶지 않나요?”
“아니. 야. 혼인하면 매일 볼 사람인데… 당분간 여기서 살아야 하는 내 생각도 좀 해주라. 꿈에 나올까 무섭다고.”
“그럼 길몽이겠네요.”
“…..”
“영아. 뭐가 널 그렇게 만든거냐…”
사마영이 저토록 진유하에게 빠져 있는 이유를 사마랑과 사마의는 아직도 알지 못했다.
“뭐겠나요?”
사마랑과 사마의를 보며 사마영은 베시시 웃었다.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오라버니들이 불쌍해요.”
“와… 사랑이래. 형님. 저 닭살. 우와.”
“동생아. 이 오래비도 좀 메스껍구나.”
“흥.”
사마랑과 사마의가 질색하든 말든 사마영은 관심이 없었다.
사마가의 비고에 있는 비법들 중에서 진유하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익혀야 한다.
산양군으로 그가 가게 되면 당분간 그는 힘들 것이다.
혼례를 미루자는 것도 그 일 때문이겠지.
도적, 그리고 부랑자들이 넘쳐나는 산양군을 정리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를 도와야 한다.
“꼭…”
주먹을 꽉 쥐며 각오를 다지는 사마영을 보고 사마의는 설레설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짜 내 동생이지만 취향 되게 독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