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741
“육 계녕…?”
그 이름을 들은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유하도 알고 있는 이름이다.
강동 오의사성이라 불리는 네개의 가문 중 하나인 육가에 대해서는 나도 안다.
하지만 가문이 몰락한 이후 모습을 감췄다고 하여 전멸했다고 들었는데.
내가 말없이 바라보자 엄백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육가가 아직 유지되고 있습니까?”
“아… 예. 모르셨습니까?”
그야 몰랐지.
지금까지 강남은 노숙만 신경쓰고 강동쪽은 거의 신경을 못 쓰고 있었으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엄백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거 제가 큰 실수를 한 듯 싶군요. 가장 먼저 소개를 시켜드렸어야 했는데…”
“육가라면… 혹시 육손을 아십니까?”
“예. 잘 알지요. 몇번 만난 적도 있으니까. 그보다 신기하군요. 육가에 대해서는 육손보다는 육강의 아들인 육적을 더욱 높게 평가하는데.”
“하하…”
육적회귤의 이야기 때문인가.
그것은 알고 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효자보다는 능력있는 사람을 좋아했으니까.
아무튼 생각 바깥 쪽에 있던 인물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만약 아직까지 주인이 없는 이라면 데려가는 것이 낫겠지.
난 엄백호를 향해 천천히 물었다.
“육가와 친분이 있으신 것이라면 잘 되었군요. 그들을 저희 쪽으로 데려가고 싶습니다만…”
“하하하… 그래주실 수 있으십니까? 소개장을 써드리지요.”
엄백호는 여유롭게 웃으며 붓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붓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하아… 아직까지는 글씨를 쓰는 것 조차 힘든 듯 싶습니다.”
“제가 적지요.”
“감사합니다.”
엄백호 대신 붓을 잡았다.
놓여져 있는 죽간에 그가 부르는 대로 글자를 적은 뒤 내려 놓았다.
내가 쓴 죽간을 천천히 읽은 엄백호는 작게 감탄했다.
“명필이십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허나 이건 비백서 아닙니까?”
“흉내만 내는 정도입니다. 흉내만.”
“그래도… 참 대단하십니다.”
“별 것 아닌 잔재주입니다. 저는 오히려 엄 군수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걸요.”
“제가 뭐라고…”
“들었습니다. 백성들이 스스로 나서서 엄 군수를 지키려고 했다면서요?”
“그저 못난 관리 하나를 지키고자 한 것에 불과하지요. 별 것 아닙니다.”
아니.
이정도면 대단한거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산다고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 본다면 말이다.
엄백호는 부끄러워하며 작게 웃었고 난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병문안을 와서 엄 군수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을 보니 제 운이 아주 없지만은 않은 것 같군요.”
“무슨 그런 과한 말씀을…”
“아무튼 이제 좀 쉬시지요. 군에 관한 문제는 일단 제가 한번 흝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시중.”
그가 공손히 대답하자 나는 바깥으로 나갔다.
어느새 방문 앞까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엄여는 어색하게 웃은 후 안으로 들어갔다.
엄백호가 앉은 의자를 밀고 나오며 엄여는 조심스레 말했다.
“저… 시중 나으리. 죄송하지만… 그 제가 시중 나으리를 보필해야 하는데…”
“아아. 괜찮네. 내 알아서 보지. 집무실에 있는 문건들이 전부인가? 혹시 다른 것이 있다면 늦게라도 괜찮으니 가져다 주게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원래대로라면 시중인 내가 왔으니 엄백호는 환자라 쉬더라도 엄백호를 돕는 엄여가 나를 보좌하며 근처를 소개하거나, 혹은 세수 같은 업무에 관한 것을 나에게 보고해야 했다.
그것을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사죄를 청하는 엄여에게 웃어보이며 난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시녀에게 청이와 낙통, 장패, 등애, 조식을 집무실로 오라고 전해주겠나?”
“알겠습니다.”
그가 가고 나는 집무실로 들어갔다.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는 집무실에서 죽간 몇개를 꺼내어 확인했다.
오군과 회계, 그리고 말릉에서의 농사와 어업에 대한 기록이 정리되어 있는 죽간을 천천히 읽어보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수입 자체는 문제가 없군. 다만… 상업의 발전이 힘들겠어.”
특산품을 만들어 팔아 다른 물품을 받는 것이 쉬워보이지 않는다.
건업 일대에 마땅한 특산품이 없고, 또 특색도 없는 만큼 그저 자급자족하는 정도가 우선이겠지.
“어떻게 발전시키는게 나으려나…”
머리를 굴려봤지만 제대로 키우기가 애매했다.
아니, 키우는 것은 둘째치고 이곳의 백성들이 잘 따를까가 의문이다.
“방통의 말대로 넘기는 것이 나으려나.”
지금 상황에서 보자면 서주와 인접한 강동 일대는 우리가 차지한다고 해서 크게 이득이 될 만한 것은 없는 듯 보였다.
방어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 서주와 합비 일대와 다르게 강동 일대는 방어를 위한 시설이 거의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
도적이 발생한다면 군이 아닌 각 힘있는 호족들이 나서서 그들을 물리치거나, 아니면 엄백호에게 동조하는 이민족들이 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의 기록을 살피던 나는 죽간을 내려 놓으며 쓰게 웃었다
“오군 내에서 자체적으로 도적이 생긴느 경우는 별로 없군… 대부분 외부의 침입이라…”
말릉 일대라면 모를까, 오와 회계 일대에는 도적들이 크게 생기지 않은 듯 보였다.
거기에 호족들도 마찬가지.
엄백호를 공격하는 대신 그들은 엄백호를 존경하여 오히려 물자를 보내줘 그가 강동을 잘 다스리게 했다.
“여기저기 눈치를 본 것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화타가 말했던 것처럼 기록에 따르면 한번 호족 하나가 나대다가 전멸당한 이후 다른 호족들이 나선 적은 없었다.
그 이유는 화타가 말한 것처럼 다른 이들이 엄백호를 존중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서주의 지원 때문이겠지.”
엄백호는 나에게 인정받아 강동 일대를 다스리는 업무를 맡았다.
내가 군사를 파견하여 엄백호와 함께 유요를 쓰러트렸던 것이 주요한 듯 보였다.
아무리 내가 엄백호가 있는 강동에 군사를 주둔시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와 동조했다.
그 말은 엄백호를 잘못 건드리면 서주의 정예병들이 내려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강동 일대에서 이름이 있고, 힘이 있다고 해봤자 서주에서 한번 움직이면 그대로 몰살당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엄백호가 있음으로써 서주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그 콩고물을 얻어먹을 수 있으니 호족들도 굳이 엄백호를 치지 않은 것이다.
“진이나 방벽이라도 갖춰져 대항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성 몇개만 있을 뿐이니. 지키기도 힘들겠군.”
아무리 생각해도 강동은 얻어봐야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손해만 생긴다.
오가 없다면 모르겠지만 오라는 거대한 세력이 있는 이상 강동을 차지해도 진이나 성 같은 방어 시설을 구축하기 전에 크게 한번 공격당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안먹는게 낫겠네.
난 천천히 죽간을 읽으며 그간 강동에 있었던 일들을 확인했다.
“조금 모자른데…”
원래 엄백호가 다스리던 임지는 말릉이다.
요양을 위해 오군으로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만큼 제대로 된 문서들은 말릉에 있겠지.
지금이라도 말릉으로 가는 것이 나으려나?
내가 고민을 하는 사이 문이 열리며 청이와 나머지 사람들이 들어왔다.
“부르셨어요?”
“응. 쉬어야 하는데 일을 시키는 것 같아서 미안하구만. 청아. 장 군수와 함께 오군 일대를 돌며 문제가 있을 만한 부분을 좀 정리해봐.”
“치안유지입니까?”
“응. 엄 군수가 잘 다스리기는 했지만 소규모로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는 있을거야. 그 부분에 대한 처리를 부탁할게.”
“예.”
“그리고 너희는 나랑 문서 작업 좀 하자. 세수와 백성들에게 나눠지는 지원금. 그 외에 다른 정책들까지. 이래저래 확인을 좀 해야 하니까.”
“명을 따르겠습니다.”
———
*****
“역시 일 잘하기로 소문난 시중답구만.”
“무슨 소리냐?”
진유하와 만나고 나서 하룻밤을 푹 잠들었다가 깬 엄백호는 엄여가 건네 준 죽을 천천히 먹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동안 형님이 해결 못한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하시더라고.”
아무리 엄백호가 잘 다스린다고 하지만 그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혼자 강동에 있는 세개의 군을 다스리는 것이다.
아무리 그 규모가 넓지 않다고 하더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일단 미뤄 둔 문제들을 진유하는 빠르게 처리하고 있었다.
“확실히 대단한 사람이야.”
“하하하… 그렇지.”
“잠도 제대로 자지 않는 것 같던데?”
“내가 부덕하고 모자라서 시중께 폐를 끼치는구나…”
엄백호가 씁쓸히 말하자 엄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형님이 이렇게 약해빠져서 이러는 것 아니요. 빨리 몸이나 추스리시오.”
“하하하… 그래. 그나저나 이 죽은 무척이나 맛있는데. 어떻게 만든 것이냐?”
“아. 그거? 시중의 부인께서 해주신거요.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죽은 잘 만든다고 하시더구만.”
“이거 시중 내외께 그저 죄송스러울 뿐이구나. 어서 식사를 마치고 아침 문안 인사를 올리러 가야겠다.”
“그건 힘들거요.”
“응?”
“아침부터 일찍 오현 일대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러 가셨으니까. 장가와 위가 사이에 발생한 치수 문제를 조율하시겠다면서 나가셨수.”
“허어…”
장가와 위가 모두 엄백호를 돕는 지방 호족이었다.
그들 모두 사람이 선하지만 그래도 가문의 이득 때문에 서로 척을 질 수 밖에 없었다.
엄백호가 나서서 중재를 해보았지만 치수의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
잘못했다간 한해 농사를 모두 망칠 수도 있었기에 엄백호도 신중하게 접근할 수 밖에 없어 미뤄 둔 문제였다.
오군에 있어서 가장 골치아픈 문제를 해결해주러 가주다니.
엄백호는 쓰게 웃었다.
“하하하… 그럼 언제쯤 돌아오신다고 하셨나?”
“글쎄? 늦어도 저녁 식사 전에는 오신다고 하셨수.”
“그래… 그럼 화타 어르신이라도.”
“화타 어르신은 오현의 병자들을 치료하러 가셨수. 지금 치소에 남은 것은 조식과 등애, 낙통이라는 어린 아해들 뿐이요.”
“조식이라면…”
“위왕의 아드님이시지. 하지만… 뭐랄까.”
엄여는 볼을 긁적거리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높으신 분이라기보다는 그냥 유능한 사람처럼만 보여서 말야. 아. 일은 진짜 잘하던데? 셋 모두 서주의 태학 출신이라고 하더구만.”
“그렇군.”
확실히 이럴 때는 재능의 차이를 깨달을 수 밖에 없다.
엄백호는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재능따위는 없다는 것을.
그저 엄가라는 호족 출신으로서 운이 좋아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하하… 이거 내가 없어도 일이 잘 풀리는 것 같구만.”
“그래도 형님이 없으면 많은 이들이 걱정한다고.”
“그래…”
오군의 문제가 하나 둘 씩 해결된다는 것에 마음이 놓이지만 한편으로는 허전했다.
자신이 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편안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어딘지 모르게 서운해진 그는 반쯤 남은 그릇을 내려 놓았다.
“뭐요? 더 먹지 않고?”
“이제 배가 부르다.”
“안돼. 화타 어르신께서 오늘은 죽 한그릇을 전부 먹이라고 했수. 이 죽은 맛도 좋지만 약재가 들어간 죽이니 보양에도 좋다고 하오. 약이라 생각하고 다 드쇼.”
“배가 부르다만.”
“이깟 죽 한사발도 제대로 먹지 않아놓고 뭔 소리요? 입 벌려! 죽 들어간다~!”
나무수저에 듬뿍 담긴 하얀 죽이 입가로 다가오자 엄백호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벌렸다.
엄여가 먹여주는 죽을 한입씩 꾸역꾸역 먹어 간신히 전부 해치워버린 엄백호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배가 너무 부른데?”
“그럼 산책이라도 가겠수?”
“괜찮냐?”
“화타 어르신이 맑은 공기를 쐬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하셨수.”
바깥에 나가는 것은 엄백호로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자신에게 재능은 없다.
그렇기에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백성을 보고, 그들의 삶을 알아야 한다.
그의 표정이 밝아지자 엄여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좋수?”
“어제는 다 보지 못했으니까.”
“시중께서도 칭찬하실 정도요. 오현에 개간된 밭들에 작물들이 꽤 잘 자라는 것이 올해는 풍작이 있을 것 같다고 하더군. 그리고 형님을 서주로 이동시켜 요양을 준비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하셨수. 강동 쪽에 다른 이를 파견해주신다네.”
“그거 정말 다행스러운 이야기구나.”
엄백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 후 침상의 벽에 등을 기댔다.
“정말 다행스러운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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