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740
병이 위독해서 오늘 내일 한다던 사람이 왜 저리 멀쩡해보이지?
꽤 마른 듯 보이지만 선선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괜찮으십니까?”
“하하하… 시중께서 오신다는 것 덕분인지 병이 다 나은 듯 싶습니다.”
“고작 그런 것만으로도 나으실 것이라면 제가 얼마든지 와드려야지요.”
엄백호는 싱긋 웃은 후 자신의 뒤에 있는 엄여에게 말했다.
“여야. 미안하지만 관청에 가서 이야기를 해주거라. 시중께서 오셨는데 대접이나마 제대로 해드려야 하지 않겠냐.”
“알겠수. 시중 나으리.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요.”
“아니. 굳이 뭐 대접까지는 괜찮습니다. 연회 즐기러 온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그렇지. 간소하게라도…”
“정말 괜찮습니다.”
“그럼 바로 관청으로 가시지요.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을텐데…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안그래도 작년의 추수에 대한 것과 더불어 올해 보리 농사, 그리고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로 만든 어포들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 상의드리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엄백호가 의자에 앉자 엄여는 그가 앉은 의자를 밀었다.
삐걱거리며 바퀴가 돌아간다.
그들이 앞서 가는 것을 보며 난 화타에게 물었다.
“괜찮은 것일까요?”
내 질문에 화타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떨떠름히 답했다.
“글쎄… 저번에 봤을 때도 운신 자체는 가능했었다. 하지만 저렇게 편안한 표정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한번 검진을 해보는 것이 낫겠군요.”
“그래. 일단 가서 제대로 확인해보자꾸나.”
내 명령을 기다리는 태사자와 조식, 등애, 낙통은 나와 시선을 마주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을 오군 내의 병영에 주둔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응. 그리고… 태사자는 바로 오고.”
“예.”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 태사자는 옆에 두는 것이 낫겟지.
그가 다른 이들을 데리고 멀어지는 것을 본 장패는 씩 웃으며 말했다.
“이거 소문보다 꽤나 멀쩡한데? 적어도 십년 정도는 괜찮을 것 같은데?”
“정말 그래준다면 문제 될 것 하나 없이 마냥 감사한 일이겠지만…”
단순히 화타나 이당지가 오진을 한 것일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그럼 강동에 대한 걱정거리 대부분이 사라지는 것인데.
우리를 힐끔힐끔 바라보는 백성들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군에 들어섰을 때 백성들은, 그리고 각 현의 현령들은 우리를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서주의 정예병들에게는 인사를 하는 듯 보였지만 나에게는 지극히 사무적인 인사만 보낼 뿐 이었다.
연주나 서주 일대를 갔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다.
명백하게 나를 남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확실히… 강동에 대한 지배력이 약하군.”
생각하면 할 수록 아쉬운 일이다.
강동에도 어느정도 내 지배력을 확장시켜 놓았어야 했는데.
당장 원소 쪽의 일을 처리하는 것이 바빠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다.
잠시간 서주목을 맡았던 조앙은 거의 서주에 있지 못했고 그 다음 서주목인 하후연도 강동에 손을 뻗기보다는 체제 유지에만 신경을 썼다.
진군이 서주목이 된 이후에 뒤늦게나마 강동 쪽에 영향력을 펼치려 했지만 이제는 거의 남이나 되어버린지라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아쉬워…”
“이미 지나간 일을 그리 아쉬워해봐야 뭐 어쩌겠수.”
내가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장패는 내 어깨를 툭 치며 심드렁히 말했다.
“하긴. 뭐… 어쩔 수 없지.”
내가 강동에 신경을 썼다면 업을 제대로 공략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 하나를 포기한 셈이니까.
그리고 그 당시에는 전력을 다해서 원소를 상대할 수 밖에 없던 상황이다.
서주의 물자를 대부분 연주와 청주로 보낼 수 밖에 없던 상황.
그런 상황에서 강동에 영향력을 넓히는 것은 사치라고 밖에 할 수 없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장패는 히죽 웃었다.
“아무튼 일단 가보자고.”
오군의 관청은 꽤나 허름했다.
여기저기 낡은 부분이 많았고 수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현판은 낡아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았고 심지어 관청을 지키는 병사조차 없었다.
내가 놀라는 모습에 화타는 피식 웃었다.
“그리 놀라우냐?”
“에… 예.”
이러다가 도둑이라도 들면 어쩌려고?
내 표정을 읽은 화타는 차분히 말했다.
“오군은 이렇다. 백성들이 나서서 관청을 지키려 하지.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더구나. 오군에 있던 한 호족이 병사들이 적은 것을 틈타 엄 군수를 노리고 공격해 들어왔었다.”
“예.”
“그때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백성들이 무기를 들고 나서서 그들과 맞섰다고 하더군. 고작해야 오백에서 천여명에 불과한 적에 맞서서 삼천이 넘는 백성들이 나섰어.”
“허어…”
“장비도 허접했지. 창칼로 무장한 적 앞에 몽둥이나 괭이들을 든 이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장관이었다고 한다.”
“왜 그런답니까?”
“엄백호를 따르는 병사의 수는 적거든. 일단 무기나 갑옷을 만들 철을 대부분 농기구를 만들거나 백성들을 위해서 쓴다고 하니…”
“왜 그런 무모한 짓을.”
나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때 안정이 오는 것이다.
그 힘이라고 할 수 있는 군사를 키우지 않고 도대체 뭘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결국 그 호족은 물러났고 다른 호족들에 의해서 멸문당했다 하더구나. 그 이후로 엄 군수를 노리는 호족들은 없게 되었어.”
그야말로 옛날 이야기에서나 나올 법한 일화다.
나와 청이, 그리고 장패가 감탄하자 화타는 피식 웃었다.
“군사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것이 부여되는 것이지. 엄 군수는 싸우지 않아도 적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다.”
“히야…”
선인도 이런 선인이 따로 없구만.
나는 겁나서 그렇게 못하겠는데.
내가 감탄했을 때 엄여가 걸어왔다.
“시중. 집무실에서 군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겠네.”
엄여는 장패와 청이에게도 몇마디 한 후 화타를 보았다.
“어르신. 그… 괜찮으시면 시중과 함께…”
“아. 물론이지. 유하야. 가자.”
“예. 청아. 장 군수와 함께 있어.”
“알겠어요.”
엄여가 장패와 청이를 데리고 간다.
화타는 이미 익숙한 길이었는지 휘적휘적 걸어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진짜 작고 낡았다.
이정도면 거의 동아현의 관청 수준인데?
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화타는 키득거렸다.
“신기하냐?”
“예.”
“사람은 다른 법이지. 너의 방식과 엄 군수의 방식은 다르다. 다만… 한가지 같은 것이라면 너희들은 결국 백성을 위해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렇습니까…”
“자. 여기다.”
허름한 문이 열린다.
그리고 보이는 내부.
나도 딱히 사치는 즐기지 않지만 여기는 진짜 대단하다싶을 정도다.
“어서 오십시요.”
부드럽게 웃으며 엄백호가 우리를 반긴다.
그가 일어나서 오려고 하자 화타는 손을 들어 만류했다.
“괜히 움직이지 말게나. 몸이 좋아졌다고 해서 그렇게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아. 체력이 있을 때 아껴야 하는 법이네.”
화타의 제지에 엄백호는 쓰게 웃은 후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시중. 이렇게 앉아서 반기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보다 어째 몸이 진짜 좋아보이시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오늘 아침에 갑자기 몸이 좋아지더군요.”
씩 웃으며 엄백호는 화타에게 팔을 내밀었다.
그의 맥을 잡은 화타는 눈을 감고 맥을 확인했다.
팔, 목, 그리고 이마까지.
상의를 벗긴 후 심장이 있는 부분에 손을 대고 가만히 기다리던 화타는 망태기에서 침을 꺼내었다.
“좀 아플 걸세.”
“예.”
긴 침을 심장 근처에 꽂는다.
저렇게 꽂아도 되나?
깊숙히 들어간 침을 내버려 둔 후 다른 곳에도 그가 침을 꽂는 것을 지켜보던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금방 쾌차하셨으면 좋겠군요.”
“하하하하… 그랬으면 좋겠지만.”
엄백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제가 할 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
“아니 무슨 그런 말씀을. 엄 군수께서 하셔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난 한숨을 내쉰 후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듣자하니 말릉에 계셨다가 오군으로 요양을 오셨다고 들었는데. 당장 말릉 인근에 출몰하고 있는 도적들을 잡는 일부터 시작해서 회계의 정리. 그리고 이민족들을 끌어들이는 것. 그 외에도 하셔야 할 일은 너무 많습니다.”
“하하하하… 죄송합니다. 제가 이래서 시중께 심려를 끼쳐드렸군요.”
“알면 좀 빨리 병을 털고 일어나주십시요. 내 원하시는 지원은 다 해드릴테니까.”
내 말에 엄백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지 마음 편해지는 미소다.
그의 웃음을 마주하던 나는 화타가 다시 침을 뽑기 시작하자 물었다.
“어째. 좀 나으신 겁니까?”
“아니. 별 차이는 없다. 뭐. 그래도 약을 좀 더 먹고 원기를 보양해주는 것이 낫겠지.”
화타는 망태기에서 검은색 단환 두어개를 꺼내었다.
그것을 본 엄백호는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이런 약을 계속 먹어야 하는 겁니까?”
“애초에 병명조차도 알 수 없어. 다만 자네의 병은 자네의 원기가 계속해서 줄어든다는 것만 알지. 그러니 삼을 기반으로 한 약을 꾸준히 먹어 원기를 보양해야 해. 그래. 밥은 잘 먹고 있나?”
“어떻게든 먹고 있습니다.”
“많이 먹어둬. 쌀 만큼 좋은 보약은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어르신.”
침이 모두 빠졌다.
그제서야 겨우 묵직한 한숨을 내쉰 엄백호는 단환을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쓰군요.”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다? 하하… 장 의원님도 그렇게 말씀하시던데.”
“장 의원이라면… 중경을 말하는 건가?”
“예.”
장 의원?
누구지?
“장 의원은 노가에 있는 의원입니다. 손가에서 보내 주어 제 몸을 진찰하더군요.”
“손가에서? 이거 놀라운 일이군…”
진짜 놀랍다.
손가의 입장에서는 엄백호가 빨리 죽는 것이 이득일텐데.
혹시 이거?
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자 화타는 내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녀석아. 아무리 천하를 두고 다툰다고 하지만 의원은 결코 환자를 두고보지 않는다. 장 의원은 나와도 연이 있는 사람이야. 괜한 생각은 말거라. 그리고 오에서도 강동에 관심을 두고 병사들을 보내 도적 토벌이라든가 주변 정리를 해주고 있다더라.”
“그냥 한번 생각만 해본 겁니다.”
장중경이 엄백호에게 처방을 핑계로 독을 준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런 것은 아닌 듯 보였다.
“장 의원이 보내준 약은 나도 확인해봤다. 내가 만든 약과 크게 다르지 않은 약이더구나. 또한 그와도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그 역시 병명을 알지 못했고.”
“그렇습니까…”
신기하군.
도대체 노숙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장중경이 오는 것을 허락한 것일까?
내가 입을 다물고 생각하자 화타는 정리를 하며 말했다.
“애초에 엄 군수는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을 위해 다들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그런 것이라면야…”
“아무튼. 이정도면 괜찮겠구만.”
“감사합니다. 어르신.”
화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 어깨를 가볍게 잡았다.
“난 옆 방에 가 있을테니 이야기를 끝내면 불러다오.”
“알겠습니다.”
화타가 나가자 난 엄백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옷이 마치 걸쳐져 있는 듯 보인다.
전에 만났을 때는 꽤나 살이 붙어 있었는데.
이제는 빼빼 말라 있는 중년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전에 만났을 때보다 더욱 현기가 느껴졌다.
“이거 참… 오래간만에 뵙는 것인데 이런 모습이나 보여드려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곧 금방 털고 일어나실 것인데요. 그보다 어쩌다가 병에 걸리셨습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밥은 잘 챙겨먹고 있는데… 어쩌다가 이런 것인지. 원.”
어색하게 웃은 엄백호는 천천히 웃음을 가라앉힌 후 물을 한모금 마셨다.
“차 한잔 대접해 드리기 힘들군요.”
“그럼 제가 대접해드리지요.”
내가 차를 준비하는 동안 의자에 앉아있던 엄백호는 천천히 의자의 바퀴를 밀며 말했다.
“이렇게 뵈니 예전 일이 떠오릅니다.”
“예전일이요?”
“예. 저희가 처음 만났을 때… 기억 나십니까?”
사실 잘 나지는 않는다.
단편적인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때…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고작해야 몇마디 한 것에 불과합니다.”
나에게 있는 기억은 왠 중년인이 농사짓는 데와서 자꾸 꼬치꼬치 캐물었다는 정도 뿐.
귀찮아서 대충 농법에 대해 몇가지 가르쳐 준 것이 다였다.
농사라는 것은 땅을 잘 다진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물, 그리고 기후, 일조상태까지.
뿐만 아니라 근처에 숲이 있는지, 아니면 토지를 지탱하는 바닥이 무엇으로 되어 있는지까지.
여러가지 환경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그냥 심경 한번 하고 지렁이 뿌린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부담없이 가르쳐주었고… 그때 주먹밥이 담겨 있던 도시락을 받았었지.
“그 몇마디가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제 얼굴에 너무 금칠을 하시는군요.”
“진심입니다만…”
“그렇게 고마우시면 좀 더 건강해지십시요. 이제 한창 때 아니십니까.”
“그렇지요. 빨리 회복을 해야 할텐데…”
의자의 등받이에 등을 편히 기댄 그는 천장을 곰곰히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 것일까?
“시중께 부탁을 한가지 드려도 되겠습니까?”
엄백호가 나에게 부탁을?
이제와서 관직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것 같고…
“말씀하십시요.”
“만약 제가 잘못된다면…”
“그런 말씀은 마십시요.”
“만약이라고 했잖습니까. 만약.”
“…하아. 예. 뭐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는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시중께서 만나주셨으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길래 이리 진지하게 말씀하십니까?”
“제가 예전에 도움을 받았던 가문의 사람입니다. 그분의 위패에 향을 한번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업무의 바쁨을 핑계로 한번도 찾아뵙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흐음…”
엄백호의 얼굴은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상태를 보면 직접 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난 볼을 긁적거린 후 툭 내뱉었다.
“그냥 바로 가시지요? 잠시라면 강동을 제가 다스려도 될 것 같습니다만.”
“하하하…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싱글벙글 웃은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이거 괜히 말한건가.
난 떨떠름히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누구입니까?”
“과거 여강군을 다스렸던… 육 계녕입니다. 지금 육가는 호숙현에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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