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749
“백언. 좀 괜찮은가? 오현에는 오래간만에 오는 것이지?”
육가를 떠난지 이틀 째 되는 날.
오현의 인근에 도착했을 때 육손의 곁으로 오의사성 중 주가의 가주인 주환이 웃으며 다가왔다.
다른 오의 사성들인 장윤이나 고옹과 다르게 주환과는 나이대가 비슷해 몇차례 교류를 한 적이 있었다.
그의 말에 육손은 힐끔 시선을 보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오래간만이지. 숙조부님이 돌아가시고 육가가 휘청거릴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이를 갈며 호숙현으로 갔었는데. 그때와는 너무나도 다르구만. 이렇게 많은 이들과 함께 오현에 돌아 올 줄은 몰랐어.”
날 선 반응이다.
육손의 싸늘하다 싶은 반응에 주환은 쓰게 웃었다.
“거 그렇게 나오지 좀 말게. 왜 자꾸 그러는건가? 자네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자꾸 그러니까 다른 이들이 자네에게 접근을 못하는 것 아닌가.”
“태생이 그래서 말이지.”
투덜거리는 듯한 그에게 주환은 어깨를 으쓱인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꽤나 많은 가문의 가주들이나 후계자들이 있다.
육가가 여정에 합류한 이후 꽤 많은 가문들이 다가왔지만 육손은 냉정하게 그들을 쳐내었다.
그것에 질릴만도 하건만.
주환만큼은 육손에게 웃으며 다가왔다.
“손가를 너무 미워하지 말게나.”
“미워하지 않아.”
‘짜증난다고 생각할 뿐이지.’
손권이 육적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며 육손은 툭 내뱉었다.
육적과 단 둘이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계속해서 손권이 끼어든다.
아까 잠깐 육적에게 다가갔을 때도 손권은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는데도 그냥 눈치가 없는 것처럼 달라붙는 손권 때문에 어찌나 열불이 터지던지.
‘정말이지 귀찮은 놈이군.’
육손이 입맛을 다셨을 때 반백의 노인이 웃으며 다가왔다.
“백언. 이 사람. 그동안 왜 연락도 하지 않고 지냈나.”
“공부하느라 바빴습니다.”
서주에서도 유명한 대학자였고, 이제는 오의 지장이라 불리는 장굉이다.
그가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자 육손은 떨떠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장 어르신께서 손가에 종속되실 줄은 몰랐습니다만.”
“종속이라니. 이 사람아. 어찌 말을 그리 하나?”
“그럼 뭐라고 합니까?”
“그저 뜻이 맞았다고 하는 것이 낫겠지.”
“흐음…”
장굉, 그리고 장소.
둘 모두 서주 출신으로 어느날 갑자기 강동으로 내려와 손가의 객장이 된 이들이다.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인 손가의 종속을 왜 허락한 것인지.
장굉이라면 자신도 한때 존경하던 인물이었기에 육손은 궁금해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리 보는가?”
“어르신 정도 되는 분이 왜 손가에 계신지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뭐 딱히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네. 그냥 뜻이 맞았을 뿐이야. 뜻이.”
씩 웃은 장굉은 여유롭게 웃었지만, 육손은 분명히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자. 그러지 말고 자네는 이리 오게나.”
“허나…”
육손은 힐끔 육적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육적의 표정은 딱딱한 웃음으로 굳어 있었다.
그 이유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옆에서 재잘재잘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는 남자.
손권 때문이다.
그냥 대놓고 무시하면 좋겠구만.
명가의 가주라는 이름은 육적이 어떻게든 손권의 이야기에 반응하게 만들고 있었다.
‘저 상황은 피하고 싶었는데…’
육손은 짜증 섞인 눈으로 주환과 장굉을 보았다.
둘 모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이들에게 나를 잡아 놓으라고 한 것이겠지.’
장윤이나 고옹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었다.
그저 인사나 몇번 주고 받은 정도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주환과 장굉은 과거에도 몇차례 서찰을 주고받으며 친분을 다졌던 이들이다.
그런만큼 육손을 잡아 놓기 위한 명분은 충분히 있었다.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주 많아.”
“뭡니까?”
“이걸 보게.”
자꾸만 육적을 신경쓰는 육손을 데리고 온 주환은 품에서 꺼낸 한장의 지도를 보여주었다.
그것을 본 육손은 심각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강동의 군사지도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상당히 상세하게 그려져 있는 지도를 육손이 바라보자 주환은 천천히 말했다.
“엄 군수가 강동 삼군을 다스리는 것은 아주 대단한 일이지. 하지만 그는 오로지 덕 만으로 다른 이들을 다스리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인지 몰라도 그에게 저항하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닐세. 개나 돼지를 덕만으로 다스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음…”
“반림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이놈은 엄 군수도 어찌 해결하지 못했다고 하더군. 반림 역시 엄 군수를 건드리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점거하고 있는 탓에 몇몇 좋은 곳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회계군에 거점을 두고 있는 산적인 반림이었다.
육손의 대답에 주환은 지휘봉을 들어 한 지점을 쿡 찍었다.
“이곳에 바로 반림이 있다네.”
“그건 어떻게 알았지?”
“뭐 나 역시 오군에 적을 두고 있으니까. 비록 지금은 장사에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본가와 계속해서 연락을 하고 있어. 그런만큼 강동 삼군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엄 군수가 다스리기 시작한 이후부터 반림은 힘을 쓰지 못했을 텐데. 자고로 도적이란 생산하지 않고 빼앗는 자. 하지만 엄 군수를 건드리지 못하니 그 세는 약해질것이야. 그렇다면 굳이 건드리지 않아도 알아서 자멸할텐데…”
아무리 막나가는 산적인 반림이라지만 그는 엄백호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서주의 조조군 때문이었다.
엄백호를 잘못 건드리면 서주에서 바로 공격이 들어온다는 것.
엄백호가 통치하는 강동 삼군에 들어오는 물자, 그리고 종자들과 가끔씩 보이는 병사들은 서주의 것들이었다.
산적인 반림의 입장에서 그 물자가 미치도록 탐이 나겠지만 건드린 순간 서주의 막강한 정예병들이 내려 올 것이다.
과거 회계를 다스리던 왕랑의 골치를 꽤나 썩힐 정도로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반림이었지만 그 왕랑은 서주에 있던 조조군이 내려오자마자 홀라당 항복하고 곧장 연주로 가버렸다.
왕랑과 조조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조조에게 미안할 정도다.
한번 얼씬거렸다가 대판 깨지고 꽁지가 빠져라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반림은 근거지를 회계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옮기고 살았다.
그 이후로 강동 삼군에 대해서 조조군에 일임을 받은 엄백호를 차마 건드리지 못하고 숨어서 살고 있었던 반림을 떠올린 육손이 떨떠름히 묻자 주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엄 군수가 계신 것만으로도 반림은 함부로 나설 수 없었지. 아니, 반림 뿐만이 아니야. 불만이 있는 이들은 꽤나 있지만… 그들이 함부로 나설 수 없었어.”
“백호가 덕으로 강동 일대를 다스리고, 산적 생활을 하는 이들을 끌어들여 그들에게 농사를 짓게 하였지만… 이제는 그것이 힘들지도 모르네.”
바닷가 인근에 있는 논과 밭은 쉽게 소출을 올리기 어렵다.
그들이 여유가 있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서주에서 받아오는 물자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엄백호가 죽었으니 과연 조조군이 계속 강동에 신경을 쓸 지는 의문이었다.
“듣기로는 엄 군수의 통치 이후로 강동 일대의 소출이 크게 늘었다고 들었습니다만.”
“물론 그렇긴 하지.”
새로운 농법의 도입이 성공하여 강동의 수확량은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아마 몇년 안에 강동 일대도 서주와 비슷하게 꽤나 많은 곡식을 얻을 수 있을 터.
엄 군수의 성격상 반림과 싸우기보다는 반림과 그 부하를 계도시키려고 할 터.
충분한 식량과 물자만 있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주환의 말대로 엄 군수는 이제 없다.
그렇다면 반림에 대한 처우에 대해서 생각하기는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이제 오의 사성이 모두 모였으니. 그간 미뤄 둔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아닌가. 엄 군수의 통치에도 여전히 남아 문제를 일으키는 도적이나 산월족은 많네. 그들을 어찌 상대할 것인지 함께 생각해보게나.”
아직까지는 손가의 밑으로 들어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주환이나 장굉이나 이미 육가가 합류한다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바깥에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왔다고는 하지만 마냥 논 것만은 아니었다.
육손은 홀로 책을 보며 공부를 했다.
그런만큼 이런 일에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은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다.
당장 반림을 어떻게 대하고, 또 지도를 보며 그 지형을 이용하여 그를 어떻게 쳐야 할 지에 대한 생각은 수십가지나 떠올랐다.
허나 괜히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책략이나 전략에 대해 몇마디 했다간 그것의 발안자로 발목이 잡힐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기대감을 품고 자신을 바라보는 주환의 시선을 무시하며 육손은 지도를 덮었다.
“뭐 어쨌든. 다른 소식은 없습니까?”
“다른 소식?”
“호숙현에 있으며 바깥의 소식을 거의 듣지 못해서… 최근 강동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알고 싶습니다.”
“흐음…”
주환은 육손의 말에 작게 신음했다.
자신이 아는 육손이라면 분명히 책략과 전략을 생각해냈을 터.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무덤덤히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돌렸다.
허나 그것을 강제할 수는 없다.
어쨌든 지금 육가는 손가의 가신이 아니니까.
육손의 질문에 장굉은 신음했고 주환은 웃으며 말했다.
“지금 오군에 시중께서 와 계시다고 하더군.”
“시중?”
“그래. 한의 시중이 와병중인 엄 군수를 위문하러 왔는데… 그가 있을 때 엄 군수가 돌아가셨다고 하더군.”
한의 시중이 누구였지?
육손은 입맛을 다시다가 떨떠름히 물었다.
“왕충이 엄 군수와 연이 있었습니까?”
“아. 자네는 모르겠구만. 왕충은 유장과 협력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폐하를 시해하려다가 잡혀 참수당했네. 지금 한의 시중은 위왕의 사위인 진유하야.”
주환의 말에 육손은 힐끔 장굉을 보았다.
장굉은 그저 씁쓸한 웃음을 지을 뿐 이었다.
‘뭔가… 아. 그렇군. 그래서였어…’
사마휘는 수경원을 운영하며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지만 그는 정무나 정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양양에 틀어박혀 제자들을 기르고, 천하를 유람하는 것을 즐겼다.
그 무욕함을 존경하는 이들도 분명 많았지만 싫어하는 이들도 당연히 많았다.
청류파의 일원이지만 현명하며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으면서도 사마휘는 당고의 금때 이렇다 할 의견 표출도 하지 않은 채 그냥 관직에서 물러나버렸다.
그것 때문에 사마휘를 고결한 척은 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서지 않는 용기 없는 필부라며 욕하는 이들이 있었다.
장소와 장굉 역시 그것 때문에 사마휘를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분명 진유하는… 방 형님과 마찬가지로 수경원의 제자. 그렇다면…’
육손은 피식 웃으며 장굉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장굉은 여유롭게 웃으며 마주했다.
“하. 장 어르신.”
“왜 그런가?”
“정치가가 다 되셨군요.”
“하하하하. 뭘 그런 걸 가지고.”
능글맞은 그의 웃음에 육손은 짧게 혀를 찼다.
확실히 방심하지 못할 사람들이다.
육손이 입을 다물자 주환은 웃다가 그의 뒤를 보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다음에 보지.”
“응?”
갑자기?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달라붙었던 주환이 장굉과 함께 떨어지자 육손은 의아해하면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쨌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여행길에 들어서 계속해서 자신에게 인사를 하고, 또 말을 걸어오는 이들이 많아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어찌할지 정리하지 못한 상황.
그런만큼 육손에게는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그들이 떨어지자 육손은 한숨을 내쉰 후 눈을 감았다.
그때.
좋은 향기가 풍겨왔다.
“어?”
“오래간만에 뵙는군요. 예전 아버님의 장례식때 잠깐 봤었던 것 같은데.”
손권이 육가의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만났던 여장수다.
태양빛에 탄 것 때문인지 약간 갈색의 피부를 가진 여인.
한자루 고급진 활을 들고 있는 여인이 다가오자 육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지?”
“상향.”
그녀는 고양이처럼 히죽 웃은 후 말을 이었다.
“손가의 궁요희(弓曜姬)라고 불리지요.”
궁요희라.
육손은 쓰게 웃으며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말로는 손가의 개망나니라고 불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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