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750
손상향.
손가의 궁요희라 불리는 손견의 적녀.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육손은 경계심을 최대한 높혔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뭘 그렇게 두려워하나요?”
즐겁게 웃으며 그녀가 말하자 육손은 한숨을 내쉬었다.
두렵냐 두렵지 않냐를 물어본다면 솔직히 두렵다.
똥을 피하는 이유가 더러워서라고?
아니다.
똥과 어울리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피하는 것이라 알고 있는 육손은 떨떠름한 시선으로 손상향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두렵지. 손가의 궁요희는 둘째치고… 다른 이명이 있는 분인데.”
“아하하. 그건 저를 질투하는 이들이 낸 소문이라구요.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늘씬한 허리를 슬쩍 내밀며 손상향이 자신있게 말하자 육손은 눈쌀을 찌푸렸다.
“질문에는 답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냥 궁금했을 뿐이에요. 오라버니께 듣기로… 당신이 조카사위가 된다고 들었으니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닌데.”
“어머? 그랬나요?”
손상향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밝게 웃었다.
얼굴만 본다면 누구나 반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다.
얼굴만 본다면 말이지.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는 갑옷이나 긴 장검, 그리고 대궁까지.
아무리 봐도 명가의 여인이 가지고 다닐만한 것은 아니었다.
육손은 손상향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육가가 손가와 함께 한다고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어. 괜한 소리는 말도록.”
“흐음… 그런 것이라면야.”
어깨를 으쓱인 손상향은 허리의 검에 손을 가져갔다.
그녀의 행동에 육손이 눈쌀을 살짝 찌푸리자 손상향은 싱긋 웃었다.
“조카사위가 되지 않을 것이라면… 약간 무례를 저질러도 되겠네요?”
“뭘 하려고?”
“그냥 좀 궁금했어요. 중모 오래비가 그토록 높게 보기에… 뭔가 대단한 무장이나 그런 건 줄 알았는데. 혹시 여류 무사의 도발을 그냥 넘길 정도로 배알이 작은 건 아닐 것이고.”
대놓고 도발이다.
그녀의 행동에 육손은 확신했다.
‘진짜 개망나니군.’
아무리 생각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여기서 이런 식으로 도발을 한다?
육손이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자 손상향은 히죽 웃은 후 검자루를 잡은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육가의 임시 가주께서 문무에 능하다고 들었는데.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어떠신가요? 대무를 한번.”
“같잖…”
가뜩이나 짜증이 치밀어 올라 있던 육손은 이를 갈며 허리의 검에 손을 가져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손가다.
그리고 그런 만큼 이렇게 들어오는 도발을 무시할 이유는 없었다.
손상향을 무감정한 눈으로 보던 육손이 검을 반쯤 뽑아 올렸을 때 그는 의아함을 느꼈다.
‘잠깐.’
손상향의 이런 행동을 가만히 놔둔다?
왜?
이유가 없다.
지금 손가의 입장에서는 육가를 애지중지하며 모셔도 시원찮을 상황이다.
그런데 손가의 개망나니가 자신에게 접근하게 만든다?
그 정도로 손가가 생각이 없나?
육손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손권이 있는 쪽을 보았다.
육적과 이야기를 나누던 손권과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가 황급히 눈을 돌리는 것을 본 육손은 피식 웃었다.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군.’
철컥.
뽑아 올려진 검이 내려간다.
육손이 검을 집어 넣자 손상향은 의아해하며 그에게 물었다.
“뭔가요?”
“아니. 뭐 괜히 싸워서 널 다치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말이지.”
“뭡니까. 저를 이길 수 있다는 건가요?”
“그게 뭐 어렵겠나.”
평소의 자신이라면 콧방귀를 뀌고 넘어갈 만한 하찮은 도발이다.
손상향의 직선적인 행동에 눈치를 채지 못하고 하마터면 그 도발에 넘어갈 뻔 했다.
아마 손상향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좋게 말하면 순진하고 나쁘게 말하면 무식하게 움직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육손은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손상향이 씩씩거리는 것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너도 명가의 여인이라면 무를 숭상하는 것보다 예와 법을 따르는 것이 좋을거다.”
“흥! 한심해! 사내가 되어서 어찌…! 당신 역시 이름만 사내일 뿐 실제로는 겁쟁이에 불과하군요!”
진짜로 실망한 듯 한 손상향이 씩씩대며 몸을 돌렸다.
그녀가 멀어지자 잠시 후 주환이 다가왔다.
“이야~ 이거 상향에게 이렇게 대응하는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군.”
“음?”
“상향은 나에게도 저렇게 덤벼들었었거든. 저 아이는 손 가주님을 존경하고 있기 때문인지 무력이 강한 남자만을 인정하려고 하더라고.”
“흐음…”
“육가의 임시가주인 자네가 문무가 대단하다는 소문을 듣고꽤나 기대했던 모양인데. 적당히 상대해주지 그랬나?”
주환이 웃으며 말하자 육손은 피식 웃었다.
“그래서? 결과는?”
“저 아이가 저리보여도 꽤나 무술 실력이 있는 편이지.”
“졌나?”
“지다니. 날 뭘로 보고. 다만 이기긴 이겼지만… 상당히 귀찮아지더군.”
“음?”
“그 이후로 계속해서 대련과 대무를 요구하는 통에. 상당히 귀찮았어.”
“허어… 그래서 결론은?”
“한 열번 정도 대련을 한 것 같은데. 그러고 나자 물러나더군. 뭐, 아마 그 다음에 들어 온 주태 덕분일지도 모르지.”
“음… 그런가.”
“한 두번 정도 부딪혀보지 그랬나? 적당히 훈련도 되고 좋을텐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알겠어.”
‘능구렁이 같은 자식.’
손상향이 이렇게 나올 줄 알면서도 손권은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그가 생각한 것이 무엇인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뻔했다.
자신이 손상향에게 이기든, 당하든.
결국 손권에게는 이득이 될테니 말이다.
만약 자신이 이긴다면 손상향이 자연스럽게 달라붙어 움직임을 제어할 수를 만들 수 있다.
주환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이런 식으로 나오는 손상향의 행동이라면 크게 나무랄 수 없기 때문에.
하지만 패배한다면?
손상향은 떨어지겠지만 다른 이들이 나설 것이다.
어찌 여자에게 패배하고 가만히 있을 것인가.
특히나 손가를 따르는 한당이나 동습 같은 경우는 자신과도 작게나마 연이 있는 사람들.
그런만큼 그들은 손상향을 이기게 해주겠다며 무술 지도를 할 것이고.
이러나 저러나 손가와 떨어지는 길이 요원해진다.
‘역시 같이 있으면 홧병이 나겠군.’
육손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는 손권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이런 상황을 야기한 육적을 보니 육적 역시도 얼굴에 짙은 후회가 감도는 듯 보였다.
‘역시 사람은 당해야 안다고 하지.’
도덕과 선의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이는 정말 하늘이 정해 준 이들이나 가능한 것이다.
인간이 감히 하늘의 도리에 도전하다니.
육적의 난감해하는 표정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오. 저건 우리 군의 병사들이 아닌가.”
손권에 대한 짜증을 불태우고 있을 때 주환이 말했다.
주둔한 것으로 보이는 군대를 확인한 주환은 육손의 등을 가볍게 친 후 말했다.
“이제 오현에 다 온 것 같군.”
“저들은?”
“에… 보아하니 노 군사의 병사들 같은데?”
“….”
노숙이 이곳에 있단 말인가?
육손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노 가주가 왜 여기에 있지?”
“우리와 같은 이유겠지. 노 군사도 엄 군수와 인연이 꽤 있으니까. 자. 가세.”
“잠시만.”
자신을 잡아 끌려던 주환의 손을 거부한 후 육손은 육적에게 다가갔다.
손권에게 잡혀 있던 육적은 반가운 표정으로 육손을 반겼다.
“형님.”
“손 가주. 잠시만 가주와 함께 있게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하하.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이제 우리는 남도 아닌…”
“아직은 남입니다. 자꾸 이렇게 눈치없이 나오실 겁니까? 둘이 할 이야기가 있으니 끼어들지 좀 마십시요!”
“하. 하하… 알겠습니다.”
일부러 눈치 없는 척 나오는 것이라면.
좀 욕을 먹더라도 정색하여 거부하는 것이 낫다.
그의 싸늘한 말에 손권은 무안해하며 입을 다물었다.
이런 행동은 무례이며, 명가의 사람들이 할 만한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은 해야 한다.
다른 가문의 가주들이 혀를 차는 것을 무시한 육손은 육적을 데리고 인적이 적은 곳으로 향했다.
“손권과 이야기를 나눈 결과는?”
“그는 저희가 손가에 합류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조금 골치아프게 된 것 같습니다.”
육적의 떨떠름한 말에 육손은 그의 머리를 한대 쥐어박았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아파하던 육적이 울상을 짓자 육손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지금 주변의 다른 가문들도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가문의 명예, 그리고 안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구나.”
“…형님. 죄송합니다. 제가 고집을 부려서…”
그나마 육강보다 나은 것은 이런 것인가?
육적은 시무룩히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육손은 한숨을 내쉰 후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했잖느냐. 정치를 하는 이는 대부분 협잡꾼이고 손가는 쉽게 믿어서는 안된다고… 하아…”
“죄송합니다…”
우울해하는 육적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육손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빠져나갈 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방법이 있습니까?”
“없는 것은 아니지. 다만… 상책을 버릴 수 밖에 없겠구나.”
육손은 팔짱을 끼고 오현 쪽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아무튼 너는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있거라. 결코 가문의 일에 대해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 알았지?”
“예. 형님.”
처음부터 육손의 말을 들을 것을.
도덕과 의로 대하려 했지만 손권은 그 틈을 노려 계속해서 육적을 끌어들이려 하였다.
벌써 손가의 여식과 자신의 결혼에 대해 떠드는 것과 양주 일대를 다스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는 손권에게 부담감을 느끼던 육적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형님께는… 그저 죄송할 뿐입니다.”
“알면 됐다. 가자.”
짧은 대화를 마친 후 그들이 오자 손권은 웃으며 반겼다.
“자자. 이제 함께 가시지요.”
“듣자하니 오현에 시중께서 계시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예.”
손권은 씁쓸해하며 볼을 긁적거렸다.
“한의 시중께선 엄 군수와 깊은 연을 맺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이거 참. 공교로운 상황이 되어버렸지요.”
“….”
“마침 잘 되었습니다. 저희 손가 역시 시중께 도움을 받았었는데.”
“그렇습니까.”
“예. 그러고보니 육가 역시도 시중의 출신인 수경원과 연이 있지 않습니까?”
“예. 뭐.”
“좋은 일입니다. 위국의 시중과 연을 맺은 이가 저희에게는 없었는데. 가주께서 위국과 저희 오가 좋은 관계를 맺을 다리가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하하하!”
정확히는 수경원 출신인 방통과 연이 있었다.
손권이 그것을 언급하자 육손은 입을 다물고 있다가 빙긋 웃었다.
“예. 말씀대로 정말 잘 된 일이지요.”
과거에 육가는 오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넓은 초지와 그곳에서 자라고 있는 많은 보리들.
저 여름보리의 수확이 끝날 때 쯤이면 벼를 심겠지?
따뜻한 남쪽이기에 가능한 이모작을 생각하던 육손은 멀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리를 지나는 백성들의 얼굴에는 살이 올라 있었다.
비록 엄백호의 죽음으로 인해 무척이나 슬퍼하는 듯 보이지만 그들의 삶은 과거에 비하면 확실히 낫다고 볼 수 있었다.
‘엄 군수…’
육강의 죽음 이후 오현을 떠날 때 엄백호는 무척이나 아쉬워했었다.
육강이 여강을 빼앗기고 난 이후 등을 돌린 가문들과 다르게 엄가는 끝까지 연을 잃지 않고 있었다.
힘들어하는 육가를 도왔던 엄백호를 떠올리던 육손은 어느새 오현에 있는 관청 앞에 도착하자 실소를 터트렸다.
“꽤 풍족해진 것 같은데…”
백성들의 삶이 많이 나아졌지만 이것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관청의 상태.
자신이 떠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아니 오히려 더욱 낡고 허름해진 듯한 관청을 보며 육손은 작게 웃었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으십니까?”
자신의 옆에 붙어 있는 손권의 질문에 육손은 고개를 저었다.
상갓집에 가는 것이다.
괜히 웃을 이유는 없지.
육손이 몸과 마음을 정리했을 때 관청에서 한 사내가 나왔다.
“….”
노숙이다.
그는 힐끔 자신을 본 후 손권에게 고개를 숙였다.
“주군. 오셨습니까?”
“그래. 그럼 바로…”
“예.”
육손에게는 관심조차 두지 않으며 노숙이 안으로 들어간다.
그를 지켜보던 육손은 손권과 함께 관청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꽤나 많은 가문에서 온 것인지 관청 안은 복잡하기 그지 없었다.
강동 삼군을 다스리는 엄백호가 죽은 것이다.
그에게 도움을 받거나, 혹은 그와 연을 맺고 있던 이들이 대부분 찾아왔다.
개중에는 자신과도 안면이 있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 모두 이제는 연을 맺지 않는 이들이었다.
손권의 등장에 장내가 술렁인다.
하지만 손권은 그들을 신경쓰지 않은 채 상주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
당당히 걷던 손권이 발걸음을 멈췄다.
상주가 있는 건물 앞의 계단에 걸터 앉은 채 사과를 씹어먹고 있는 사내를 발견한 것이다.
꽤나 젊은 사내다.
자신과 비교해서 크게 나이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은 사내.
그리고 그의 뒤에 서 있는 건장한 체구의 사내를 본 육손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손가의 권이라 합니다.”
손권은 그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양주의 목이라고 하지만 관직의 등급에서 따진다면 확실히 상대가 위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사과를 으적으적 씹어먹던 사내는 남은 사과를 옆에 올려 놓은 후 수건으로 손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권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반갑군.”
무덤덤한 어조다.
평범하게 생긴 얼굴과 평범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
“한의 시중. 진유하라고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