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825
밤이 되자 진창성의 뒷편, 적에게 가려져 있는 곳의 쪽문을 통해 관평과 곽준은 천천히 나왔다.
그들의 뒤로 이백여명의 의협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아… 이거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왜. 왕위. 무섭냐?”
궁시렁거리던 왕위를 향해 위열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평소부터 사이가 그리 좋지 않던 왕위였다.
가문도 그리 좋지 않은 주제에 힘 좀 세다며 주변에서 어깨를 거들먹거리고 다니던 것이 거슬렸다.
그의 떨떠름한 표정을 보며 위열이 비웃자 왕위는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응. 느그 할애비…”
“그만. 아군끼리의 쓸데없는 다툼은 관두도록.”
관평의 싸늘한 말에 위열과 왕위가 입을 다물었다.
세력 다툼 때문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은 알고 있지만 임무 도중에도 저렇게 싸우려고 하다니.
관평의 무시무시한 시선에 그들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흑귀대는 서로를 가족이라 생각한다. 동료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없으면 흑귀대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없다.”
“….”
어렸을 때부터 흑귀대원들과 함께 전장에서 경험을 쌓아 온 관평이다.
관우가 떠난 이후에도 진동부와 정북부에 머무르며 그들과 친분을 쌓았던 관평이기에 그는 흑귀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동료를 위해서, 상급자를 위해서, 부대를 위해서, 그리고 주군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용기도, 우애도 가질 수 없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포기해라.”
“에이~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우리가 얼마나 친한데.”
서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며 위열과 왕위가 말하자 곽준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관 도위. 괜찮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저정도 혈기야 귀여운 정도지요.”
곽준을 수행하는 것은 백여명의 정예병이다.
하지만 관평을 수행하는 것은 백여명의 의협들이다.
개인의 무력을 따진다면 정예병이나 의협들이나 별 차이가 없겠지만 문제는 규율이었다.
명령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저들을 데리고 이런 임무를 해야 하다니.
곽준은 살짝 입술을 깨물고 생각을 하다가 검은색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다.
“오늘은 달도 뜨지 않는 밤. 충분히 주의한다면 문제 없이 임무를 성공 할 수 있을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적들이 방비를 하느냐 안하느냐인데… 과연 학 중랑의 말씀대로 될지는…”
곽준은 불안감에 휩쌓인 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를 향해 관평은 고개를 저었다.
“명령이라면 그 명령대로 수행할 뿐입니다.”
“그렇지요… 자. 그럼 갑시다.”
그렇게 온 몸을 검은 천으로 둘러 최대한 어둠 속에 몸을 숨긴 후 그들은 적진을 향해 우회했다.
이곳의 지리에 밝은 위열과 왕위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적진 근처까지 근접한 관평은 곽준에게 말했다.
“작전대로 저희가 먼저 움직이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어떻게든 되겠지요.”
대수롭지 않게 그가 말하자 곽준은 쓰게 웃었다.
정말이지 관평의 간담을 한번 보고 싶을 정도다.
적군은 삼만이나 된다.
그 삼만이나 되는 병력을 흔드는 임무를 진짜로 맡길 줄이야.
아무리 관평이 혼자서 삼만번 베면 적을 물리칠 수 있다고 말했기로소니 이런 임무를 시킬 줄은 몰랐던 곽준은 쓴 입맛을 다셨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뒤는 맡기겠습니다.”
곽준이 병사들과 뒤로 빠지자 관평은 장비를 확인했다.
자신의 대검에 뭍어 있는 검댕, 그리고 전에 진유하에게 새로 받은 갑옷까지.
철저하게 장비를 점검하던 관평은 힐끔 뒤를 보았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호기롭게 이야기를 나누던 위열과 왕위의 표정이 굳어 있다.
그들이 굳어 있는 것을을 본 관평은 검은색 가죽 가방에서 대나무통 하나를 꺼내어 한모금 마셨다.
“자.”
“이게 뭡니까?”
“산양군의 죽엽청이다. 열통이 있으니까 한모금씩 마시면 어떻게든 나눠마실 수 있을거다.”
“…설마 이거 사별주?”
“글쎄.”
위열과 왕위는 서로를 보았다.
그들은 머뭇거리며 대나무 통을 잡았다.
하지만 쉽게 마시지는 못한다.
그런 그들을 보며 관평은 무덤덤히 말했다.
“마셔.”
“허어… 하지만 관씨. 이건 좀.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 같은데.”
“못 마시겠나?”
관평의 싸늘한 시선에 움찔한 왕위는 위열을 보았다.
위열 역시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 보인다.
“할 수 없겠다면 여기서 물러나라.”
“그 물러나라는 것이 세상에서 물러나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
관평은 대답하는 대신 대검을 꽉 잡았다.
“젠장.”
위열은 고민을 하다가 술을 한모금 마셨다.
아주 좋은 술이다.
좌풍익에서 의협질을 하며 기녀들을 끼고 많은 술을 마셔봤지만 이런 술은 처음이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진한 대나무 향에 그가 감탄했을 때 왕위 역시 술을 한모금 마시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 우리도 좀 맛 봅시다.”
위열과 왕위를 따르던 부하들이 한모금씩 죽엽청을 마신다.
열통의 죽엽청은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좋은데…?”
“흑귀대의 특권 중 하나가 이거다.”
“음?”
“산양군에서 나는 죽엽청을 마음대로 맛볼 수 있는 것. 그리고… 서주에서 나는 화신주를 한달에 한번 정도는 마실 수 있다는 것.”
“화신주?”
“황실의 신주로나 쓰이는 최고급 술이지. 술에 불을 붙이면 불이 붙을 정도로 맑고 깨끗한… 죽엽청은 비싸기는 하지만 마시고자 하면 마실 수 있지. 하지만 화신주는 다르다. 아무나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격이 있는 이들만이 마실 수 있지. 흑귀대가 된다는 것은… 그 자격을 손에 넣는다는 것이다.”
“….”
관평은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작 한모금 마신 것이 아쉬웠는지 입맛을 다시는 그들을 향해 관평은 천천히 말했다.
“술을 마셨으면 술값을 해야겠지?”
“…하아. 젠장. 조부님께서도 십상시에게 덤벼들때 이런 생각이셨으려나…”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자고.”
위열과 왕위가 무기를 챙겨들고 일어났다.
기회를 잡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백정, 그리고 역적의 가문, 도적, 농민, 몰락한 사족.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비슷한 가문이었다.
결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없는 가문.
그런 이들이 사족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일이 쉽겠는가?
“목표는 적들이 임시 마굿간이다. 어차피 말도둑질 정도는 다들 한번씩 해봤을 것 아닌가.”
이정도 무리한 일은 해야겠지.
모두가 각오를 다졌을 때 왕위가 어이없어하며 투덜거렸다.
“이거 살다살다 군대의 말을 도둑질해보는 것은 처음이군.”
“좋은 경험이 되겠네.”
관평은 피식 웃으며 대검을 잡고 일어났다.
언덕 밑으로 경계를 서고 있는 적들이 보인다.
어딘지 모르게 불만스러워보이는 인상의 그들을 확인한 관평은 차분히 말했다.
“간다.”
“젠장… 다른 놈들은 술에 고기에…”
“인간사 운명에 모든 것을 맡긴다더니… 하필이면 오늘 근무를 서야할 건 또 뭐람.”
내일 총 공세를 펼쳐야 한다는 이유로 전 병력에게 술과 고기가 지급되었다.
전장에서 고기와 술을 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적을 앞에 두고 이런 식으로 여유를 가진다는 것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무를 아예 서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아…”
오늘 근무를 서게 된다면 내일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지만 그만큼 경계근무를 해야 하는 시간은 더욱 길어진다.
“하… 씨발.”
“그만 좀 궁시렁거려라. 거 새끼 진짜 말많네.”
“아니 생각해보라고. 도대체 뭐 해주는게 있다고 군역에 노역에 세금에. 우리도 그냥 확 난이나 일으켜볼까?”
“아서라. 전에 건위군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가 주모자와 그 삼대가 싸그리 처형당한거 모르냐? 괜히 깝치다가 뒈지지 말자고. 우리같은 작은 인간들은 작게 살아야 해.”
“작게 살다 뒈지든 크게 살다 뒈지든.”
“거 새끼 진짜 말 많네.”
“아니 생각해봐. 안 빡치냐? 누구는 놀고, 누구는 자고, 누구는 근무서고, 누구는…?”
“제발 쫑알거리지 말고 좀 닥쳐. 너 그러다가 순찰 오시는 기 부장님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냐? 또 얼차려 받고 싶어서 그러냐? 너랑 엮였다가 피본거 생각하면… 아오 진짜. 내가 다시는 너랑 같이 근무 안 들어 온다.”
동료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괜히 이러다가 상급자에게 걸리면 자신만 피를 본다.
그리 생각한 그는 벌컥 화를 내고 반대편 무성한 수풀 쪽을 보았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반대쪽만을 보던 사내는 자신의 말에 아무런 답변도 없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속은 더럽게 좁아 터져가지고.’
하지만 이걸 풀어주지 않고 내버려두면 자신과는 말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괜히 문제 만들고 싶지 않았던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야. 그나저나 이거 계속 이렇게 있어야 하나…? 아니 상식적으로 봤을 때 누가 공격해 들어오겠어? 아군이 삼만이 넘는데. 저기 진창성에 있는 적병은 삼천 정도 뿐이라면서?”
하지만 답변을 들려오지 않는다.
“새끼. 삐졌냐? 어휴. 진짜. 미안하다. 미안해.”
여전히 답변이 없다.
그것에 그는 이를 갈며 몸을 돌렸다.
“거 씨팔. 내가 무릎이라도 꿇어야겠…?”
고개를 돌리며 화가 난 듯한 동료의 마음을 풀어주려던 그는 자신의 눈 앞에 서 있는 흑의인을 보며 화들짝 놀랬다.
“습…!”
순간 그의 입이 막힌다.
빠르게 그의 입을 손으로 막은 사내는 천천히 말했다.
“쉿. 아무 말도 하지마.”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목에 사내, 흑의로 몸을 숨긴 왕위는 망설임없이 날카로운 단검을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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