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832
성으로 돌아 온 곽준을 본 학소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에게 다가갔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습니까?”
“흐음… 학 중랑. 잠시 저와 이야기를 나누셨으면 합니다.”
곽준은 학소와 함께 회의실로 향했다.
안에 들어간 채 곽준은 머뭇거렸다.
그가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것을 보며 학소는 부드럽게 웃었다.
“혹, 항복 제안이라도 받으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아마 저의 목을 내어주면 진창성을 더 이상 공격하지 않겠다고 했겠지요?”
“예.”
“그리고 다른 모든 이들을 살려주고.”
“정확합니다. 혹시 듣기라도 하셨습니까?”
쓰게 웃으며 곽준이 묻자 학소는 빙긋 웃었다.
“저라도 그런 계책을 쓸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이엄은 자신의 말을 지킬 것입니다. 진창성에 있는 병사들, 그리고 물자들을 손에 넣음과 동시에 백성들까지 얻을 수 있으니까요. 차륜전이라고 하더라도 저들에게 병사의 손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손실을 저희 병사들로 메울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요. 그리고 전투를 피하며 다른 손실도 줄일 수 있고.”
“…학 중랑. 저는 어찌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하하…”
곽준이 병사들과 백성들을 잘 챙기는 사람임은 알고 있었다.
확실히 전투는 암울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모두가 지쳐가고 있었다.
몇몇 이들 가운데 불만을 보이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 이들에게 곽준의 제안을 말한다면 분명 그들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항복을 하게 될 것이다.
“곽 도위께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하는게 옳을 듯 싶습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전에 진창성의 백성들에게 말한 것이 있었지요.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곽 도위께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만 알면 될 겁니다.”
곽준이 고개를 숙이자 학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을 얼마나 받으셨습니까?”
“한시진을 받았습니다.”
“그럼 적어도 한시진동안은 전투가 없겠군요. 좋은 일입니다. 곽 도위님을 보내기를 잘했군요.”
자리에 앉아 있던 곽준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학 중랑.”
“예?”
“저를 신뢰하십니까?”
“그야 당연히. 제가 곽 도위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신뢰하겠습니까?”
“그럼 학 중랑께서는… 경조윤을 신뢰하십니까?”
곽준의 질문에 학소는 입을 다물었다.
경조윤을 신뢰하냐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
학소가 일년 동안 겪은 경조윤.
글쎄.
그는 어떤 사람일까?
분명 나이에 걸맞지 않게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많은 이들의 존경과 인정을 받는 자.
자신과 동년배인 이들에게 있어서는 존경과 목표가 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과 신뢰는 별개의 의미.
곽준의 질문에 학소는 입술을 우물거렸다.
“신뢰라… 경조윤께서 지원을 오실지 마실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잠시 고민하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신뢰합니다. 경조윤께서는 반드시 진창성을 구원하기 위해 오실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학소의 시선을 마주하며 곽준은 천천히 말했다.
“저의 말을 따라주십시요.”
붉게 타오르던 하늘이 검게 물든다.
떠오르는 달과 별을 보며 술을 홀짝거리던 이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시간이 된 듯 하구만.”
“괜찮겠습니까?”
“괜찮을거요. 어차피 우리도 좀 쉴 시간이 필요했잖소.”
“하지만…”
“고작해야 한시진 뿐이니 걱정…”
진도가 걱정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런 그의 말에 웃으며 대답하려던 이엄은 진창성 안쪽에서 소란이 들리고, 커다란 불빛이 보이자 싸늘히 웃었다.
“것 보시오.”
“속임수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지. 이제 진창성은 한계요. 만약 저들이 사기를 친 것이라면… 원래 계획대로 움직이면 되니까. 어차피 내일이면 투석기와 정란도 조립이 끝나고.”
투석기와 정란의 조립은 이제 막바지나 다름없었다.
근처에 있는 돌들을 찾으러 병사들이 움직인 상황.
만약 저들이 항복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조금 걱정됩니다.”
“뭐가? 진 도위.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소. 곽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니. 그리고… 우리 입장에서도 나쁠 일은 없소. 만약 저들이 항복한다면 병력을 온전히 한 채 좌풍익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니까.”
단순하게 진창성 함락만이 목적이라면 이렇게 기다리고 자시고 전 병력과 전 장비를 쏟아부어 성을 떨어트리는 것이 낫다.
하지만 익주군의 목적은 진창성이 아닌 좌풍익이었다.
진창성을 뚫은 후 이곳을 거점화 하여 좌풍익으로 나아갈 길을 마련.
후발대가 오면 그들과 함께 좌풍익을 차지하고 서량과 합류하여 관동을 손에 넣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병력을 보존하는 일이 중요했다.
“차륜전을 한다고 하더라도 병력의 피해가 아예 없을 수는 없지. 싸우지 않을 수 있다면 싸우지 않는 것이 낫소.”
이엄의 계책은 등지 역시도 찬성한 계책이다.
또한 장임 역시 싸워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진도와 사인은 이엄의 계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상급자들의 명령이었다.
유괴의 죽음과 진창성의 야간습격 이후 군령이 강화되어 그들의 명령을 함부로 어길 수 없었다.
진도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보시오.”
“….”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잖소? 만약 곽준이 적장 학소와 내분을 일으키며 싸워 병력을 줄인다면 오히려 잘된 일 아니겠소?
“…그렇긴 합니다만. 관평이라는 자가 혹 학소의 손을 들게 된다면.”
“그래도 상관없소. 어차피 별 의미는 없을테니까.”
곽준이 학소를 제압하고 진창성을 내어준다면 좋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엄이 빙긋 웃었을 때 성벽 위에 막 전투를 치룬 듯한 피투성이의 사내가 올라왔다.
“이엄!!”
“호오. 성공했나보군.”
성벽에 올라 온 것은 곽준이었다.
축 늘어져 있는 사내, 학소를 질질 끌고 올라 온 그는 검을 뽑아들며 말했다.
“이걸로 내가 진창성의 성주가 되었다.”
“그래? 잘했군. 그럼 이제 성문을…”
“허나!”
허나?
이엄은 눈쌀을 찌푸렸다.
“진창성의 병사들 대부분은 더 이상 싸우기를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백성들은 아니지.”
“걱정말게나. 우리도 싸울 생각은 없으니까.”
이엄은 흥분한 듯 거칠게 말하는 그를 달랬지만 곽준은 여전히 완고했다.
“미안하지만 시간을 더 줬으면 하는데.”
“시간을?”
이미 진창성을 점거했으면서도 시간을 달라니.
이해하지 못한 이엄이 눈쌀을 찌푸리며 응시하자 곽준은 당당히 외쳤다.
“원한다면 진창성의 성주 인장도 증표로 내어주겠다. 하지만 나는 백성들을 설득해야 해. 저들 중 당신들의 공격에 가족을 잃은 이들이 많다. 그들이 가진 원한은 보통이 아닌바! 그들을 설득할 시간을 나에게 줬으면 하는군!”
“잠깐만… 그 말은.”
“당신도 말했다시피 위국의 경조윤은 대단한 사람이다. 이미 좌풍익의 모든 백성들은 그를 신뢰하고 있는 바! 그런만큼 그들이 포기하게 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들은 반드시 진창성에서 반란을 일으키겠지.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안전을 위해서 그들을 죽일 수 밖에 없을 거야. 그렇지 않나?”
틀린 말은 아니다.
진창성을 거점으로 삼아야 하는데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킨다면 제압할 수 밖에 없으니까.
이엄이 눈쌀을 찌푸렸을 때 곽준은 척 검을 겨눴다.
그 검 끝에 걸려 있는 진창성주의 인장.
곽준은 진창성주의 인장을 성 아래로 떨어트렸다.
“약속의 증표다! 나에게 시간을 다오! 저들을 설득하고! 저들이 더 이상 저항하지 않게 할 시간을!”
곽준의 외침을 들은 이엄은 고민했다.
그가 고민하는 것을 보며 진도는 떨떠름히 말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저자는 진창성주 학소가 맞긴 합니다만…”
곽준에게 잡혀 있는 학소는 부상이라도 입었는지 얼굴에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를 성벽 위에 올려 놓은 곽준을 보며 진도는 조심스레 이어나갔다.
“학소가 저렇게 되었다면 그냥 공격하는 것도 나쁜 생각은 아닙니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곽준이 나서서 백성들과 병사들을 설득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능동적으로 아군과 협력한다면 나쁜 일은 아니다.
점령전에 있어서 거점을 가지는 것, 그리고 그곳 주민의 협력을 얻어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시간을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엄청난 이득이 되는 것이기에 이엄으로서는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얼마나 주면 되나!? 한시진!?”
“사흘을 주시오!”
“이런 미친. 두시진을 주지!!”
“설득은 쉬운 일이 아니오! 이틀 반나절을 주시오!”
“이틀!! 이틀이면 충분하지 않나? 수가 많은 것도 아니잖아! 병사들은 이미 포섭한 듯 싶은데!”
“…좋소. 이틀.”
빌어먹을 자식.
사실 이틀 정도를 노리고 있었던 건가?
이엄은 곽준을 노려보다가 짧게 혀를 찼다.
“그 대신! 확실히 설득하라! 만약 저항하는 이가 있다면 두 말 할 것 없이 처형을 할 테니까!”
“알겠소! 나만 믿으시오!”
곽준이 물러나자 진도는 이엄을 보았다.
그의 표정도 영 마땅찮아 보인다.
“잠깐. 장군. 시간을 주면… 만약 좌풍익에서 지원군이 온다면 저희의 피해가 큽니다.”
“올 것이었다면 벌써 왔겠지. 그리고 좌풍익에서도 쉽게 병력을 뺄 수는 없을거야. 위연은 결코 만만한 놈이 아니니까. 그에게 일러두길 치고 빠지는 것을 반복하며 적들을 잡아두라고 했어.”
“그렇습니까?”
“위연의 치고 빠지는 실력은 자네도 알고 있을 터… 쓸데없는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그를 쉽게 잡을 수 없을거야. 그것을 생각한다면 아직 시간적 여유는 충분히 있어.”
“…하아. 알겠습니다.”
“고작 이틀이야. 이틀동안 투석기와 정란의 설치를 마무리 한 후 전투를 준비하세. 만약 저들이 사기를 친다면 바로 공격하면 되니까… 자. 저 인장이나 챙겨오게나.”
“예.”
성벽 아래에 떨어져 있는 진창성 성주의 인장을 가리키자 진도는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가지고 돌아왔다.
“과연 저들이 약속을 지킬지…”
“지키든, 지키지 않든 상관없지. 자. 우리도 병사들에게 고기를 내어주고 푹 쉬게 하세나.”
이틀이 지나고 이엄은 진창성을 보았다.
약속과 다르게 진창성의 성문은 열리지 않고 있었다.
그것을 본 진도는 짧게 혀를 찼다.
“결국 이렇게 되었군요.”
“어쩔 수 없지. 뭐, 잘 쉬지 않았는가. 저들이 약속을 지켰다면 모르겠지만 지키지 않았으니 약탈도 허락해야겠군.”
아무리 차륜전을 했다고 하더라도 병사들의 피로가 쌓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푹 쉬게 하여 병사들의 피로를 푼 이엄은 정란과 충차를 앞세웠다.
“점령전인데도 약탈을 허락하실 생각이십니까?”
“호구처럼 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만약 우리가 진창성을 함락시킨 후 저들을 의로 대한다면 좌풍익의 남은 현들 역시 마찬가지일 걸세. 그런 기회주의자들까지 챙길 이유는 없지.”
틀린 말은 아니다.
진도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엄은 묘하게 밝은 어조로 말했다.
“석재는 다 모았나?”
“예. 충분합니다.”
진창성을 노리는 투석기는 어제 완성되었다.
다섯대의 투석기 옆에 쌓여 있는 돌들을 보며 이엄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런 짓을… 쯧쯧.”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기껏 시간까지 내어주는 자비를 베풀었는데도 잘못된 판단을 한단 말인가.
이엄은 병사들과 함께 진창성 근처로 향했다.
“곽준!!”
성벽 위로 곽준이 모습을 보인다.
그를 바라보며 이엄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약속한 날이 다 되었네. 이제 슬슬 성문을 여는 것이 어떤가?”
“…미안하오. 시간을 좀 더…!!”
“솔직해지게나. 자네도 참 구차하구만. 시간을 그렇게 끌어서 뭘 하려는 것이지? 아직도 그 쓸데없는 지원을 기다리고 있나?”
“그건…”
“이로서 자네의 명예는 떨어졌군. 스스로 한 말 조차 지키지 못하는 자가 되었을 줄은 몰랐네. 최소한 옛날의 자네는 자신의 말과 약속을 천금같이 여기던 자였는데. 이제 자네는 장수라기보다는 거짓을 무기로 삼는 책사나 정치가가 다 되었구만.”
“후. 뭐라 말해도 상관없소.”
이엄의 비난에 곽준은 씩 웃었다.
그의 웃음에 이엄은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에 학소와 싸운 것 조차 아니었겠지?”
눈치챘나.
이엄의 말에 곽준은 손을 들었다.
이틀 간 푹 쉬어 다시 전의를 다진 병사들 사이로 학소가 나온다.
상처를 입은 것은 사실이었는지 그는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이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머리의 상처로 시간을 내어준 것으로 받지. 자. 그래. 푹 쉬었으면 이제 다시 해야겠지?”
“그럽시다.”
“하하하… 그럼.”
이엄은 이를 드러내며 싸늘히 말했다.
“어디 한번 잘 막아보시게나. 그리고 목 간수는 잘 해두고.”
========== 작품 후기 ==========
오늘은 네편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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