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870
회의실에 앉아 있는 이들의 면모를 조앙은 천천히 흝어보았다.
사마의, 그리고 조창.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다른 곳에 눈길이 닿았을 때 조앙은 깊은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양주목. 일이 이렇게 흘러가게 될 줄은 몰랐소. 미안하오.”
“괜찮습니다… 전장군께서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
희미하게 웃으며 마등은 천천히 손을 올렸다.
그의 오른손에는 나 있는 깊은 상처.
이제는 검을 쥘 수도 없게 된 손이다.
붓 한자루나 겨우 들 수 있을 정도인 상처를 보며 조앙은 떨떠름히 말했다.
“이번 일만 끝나면 서주에 있는 신의, 화타에게 치료를 받게 해주겠소.”
“전장군께 감사드립니다…”
마등이 고개를 숙인다.
한때 양주를 통솔하던 주목이라는 사람답지 않은 모습이다.
무척이나 지치고, 무척이나 힘들어보이는 그를 계속 보기 힘들다.
조앙은 마등의 옆에 서 있는 마초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오래간만에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하려니 참.”
“괜찮습니다.”
“차기 양주목은 자네가 되어줘야겠는데. 괜찮겠나?”
“저로는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뭐,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지원을 해주지. 아. 그리고… 자네 가족들의 이야기는 유감이네.”
마철과 마휴가 서량 대회의의 공작에 의해서 죽었다는 것은 마초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뿐만 아니라 다른 마가의 사람들 역시 변을 피하지 못했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동생들의 시체를 본 마초다.
마초가 고개를 숙이자 조앙은 애써 웃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만한 일은… 자네의 사촌인 마대는 살아 있다는 것이지.”
“그렇습니까?”
“음. 지금 상용에 있지. 상용에서 정서장군과 함께 한중을 견제하고 있다는 소식이 왔네.”
정말 다행이라면 다행인 이야기다.
마대라면 꽤나 똘똘한 녀석인 만큼 지금 당장은 내버려둬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던 마초는 사마의에게 눈을 돌렸다.
심드렁한 얼굴로 차만 홀짝이는 그를 향해 마초는 고개를 숙였다.
“이번 일에 대해서. 저는 그저 좌풍익께 감사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마가의 차기 가주로서 공식적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초가 자신에게 감사를 표현하자 마등 역시 고개를 숙였다.
그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마가는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해 마가에서도 아주 중요한 인물인 방덕 역시도 죽었을 것이다.
“덕이 녀석이 비록 제 뜻을 찾아 떠났지만… 마가는 사마가에 씻을 수 없을 정도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그 은혜는 조가에 충성하는 것으로 갚아주십시요.”
사마의의 대답에 조앙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사마가가 아닌 조가에 충성을 하라?
그것에 무슨 의미일까?
조앙이 의외라는 눈으로 바라보자 사마의는 무덤덤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은혜니 뭐니 하는 사사로운 일따위가 아닙니다.”
“그럼?”
“서량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이지요.”
사무적으로 대답하며 사마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를 주관하는 조앙에게 살짝 목례하여 양해를 구한 그는 지도를 가리켰다.
“지금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번째. 양주목께서 나서서 서량 대회의를 규탄하는 것. 그리고 두번째는 전장군께서 그들을 역적으로 지정하는 것.”
“그 두가지 전부 해야 할 일이기는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
“아직도 싸우는 것을 거절하시는 겁니까?”
“굳이 싸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 사람아. 맨날 쌈박질만 하면서 어찌 살려고 하는건가.”
너스레를 떨며 조앙이 말하자 사마의는 눈쌀을 찌푸렸다.
“싸우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시기가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시기를 지났고.”
한수가 움직여 마등을 친 순간부터 서량은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넘은 것이다.
위국의 지원을 받는 마등을 건드렸다는 것은 위국을 건드렸다는 것과 같았다.
“서량 대회의의 행동은 위국의 권위를, 더 나아가 한의 권위를 건드린 반란 행위입니다. 이것을 그냥 두고 넘어갔다간 서량 뿐만 아니라 유주, 병주에서도 반란이 일어나겠지요.”
‘사실은 절대 일어나지 않겠지만.’
병주에는 가후가 있고 유주에는 조홍, 그리고 서복이 있었다.
그곳에서 반란이 일어나봤자 그들 모두 제압할 힘이 충분히 있었다.
또한 가후라면 유주의 안정화와 더불어 삭주에 대한 영향력을 위해서 유주에서 저수와 유화를 부를 것이 분명.
그리 된다면 그쪽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흐으음…”
하지만 뒷사정을 모르는 조앙과 마등은 그저 심각해할 뿐 이었다.
그들을 보며 사마의는 천천히 말했다.
“그러므로 양주목과 전장군께서는 준비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무슨 준비를 말하는 건가?”
“당연한 것 아닙니까? 연설입니다. 연설문은 제가 적어드릴터이니 두분께서는 연습만 조금 해주십시요.”
“이거 날 너무 쉽게 보는군. 나에게도 문재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
사마의가 연설문을 전부 만들겠다는 것에 조앙은 웃으며 물었다.
탓한다기보다는 농에 가까운 말이다.
그것을 잠자코 듣던 사마의는 짜증을 내려다가 꾹 참았다.
만약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싸늘히 대답하든, 아니면 짜증을 내든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조앙을 밀기로 했다면 상관인 그를 받아주는 것도 부하의 일이다.
장춘화와 자신의 아들, 사마소를 떠올린 사마의는 피식 웃었다.
“전장군께 문재가 있다는 것 쯤은 압니다만. 사람 신경 건드리는 글은 제가 더 잘 쓰지요. 장군께서는 다른 것은 생각치 마시고 말하는 것에 있어서 아직 세력을 결정하지 않은 서량의 많은 이들을 포섭할 준비만 해주십시요.”
“흐음… 뭐 그러지.”
까칠한 대답이 돌아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마의의 유한 대답이 돌아온다.
조앙은 조금 놀란 눈으로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번 전쟁의 전략에 대한 것은 내일까지 정리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러게나.”
간단한 회의가 끝나고 사마의는 죽간에 빠르게 글을 적었다.
낙양에서부터 준비하던 일이다.
머릿 속에 무엇을 말해야 할지 정리는 끝난 상황.
일필휘지로 빠르게 적어 죽간의 빈 자리를 채워나가던 사마의가 세번째 죽간을 들었을 때 문이 열렸다.
“이보게. 중달.”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들어 온 것은 다름아닌 조앙이었다.
그가 들어오자 사마의는 붓을 내려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를 내지 않는군.”
“예?”
“예전에 장안에 있을 때, 자네는 내가 일을 방해하면 화를 내지 않았던가.”
“하하… 저도 예전과 같은 아이가 아니잖습니까.”
“그렇지.”
작게 고개를 끄덕인 조앙은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침묵이 이어진다.
조앙은 볼을 긁적거린 후 쓰게 웃었다.
“이야기는 들었네. 자네가 결혼을 하고 사내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그렇습니까… 그러고보니 전장군께서도…”
“그래.”
다시 어색한 침묵.
조앙은 떨떠름히 말했다.
“미안하네.”
“…예?”
뜬금없는 사과다.
조앙의 말에 사마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솔직히 처음부터 자네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 이상하게 자네가 무척이나 거슬리더군.”
“…뭐 그러실 수도 있겠지요. 사람이 마냥 좋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이해합니다.”
“그것 때문에 괜히 자네에게 시비를 걸거나 짜증을 냈던 것, 그리고 무시를 했던 것. 정식으로 사과하겠네.”
조앙의 사과에 사마의는 놀랬다.
사과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조앙 정도의 위치에 올라가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높은 위치에 있는 이가 아랫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다는 것은 그 그릇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마의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조앙은 허리까지 숙이고 있었다.
“이것으로 내가 했던 일들에 대한 사과과 될지는 모르겠군.”
“…전장군. 일어나 주십시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사마의는 겨우 마음을 다잡고 입맛을 다셨다.
조앙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사마의는 한숨을 내쉬었다.
“군주가 될 사람이 그리 쉽게 고개를 숙여서는 안되는 법입니다.”
“알고 있어. 하지만 그 위엄과 권위도 결국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지. 사람이란 적어도 잘못된 자신의 행동을 사과할 줄 알아야 해. 그것은 아주 중요한거야.”
“…그럼 그걸 왜 이제 하십니까?”
“기회가 없었다… 는 핑계겠지. 그저 망설였을 뿐이야. 사실은.”
조앙은 볼을 긁적거렸다.
“아직도 자네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으니 말이야.”
푼수처럼 미소짓는 조앙을 향해 사마의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저 인간은 속이 깊은 건지, 아니면 속이 아예 없는 건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네가 나쁜 사람이라거나, 조가나 위국에 악영향을 끼칠 사람은 아니겠지.”
“뭐… 일단은 그렇지요.”
“그러니… 앞으로 잘해보세. 개인의 호오는 둘째치고서라도 자네와는 잘 지내고 싶으니까. 어쨌든 진가를 통하기는 했지만 한다리 건너면 우리는 가족 아닌가.”
경조윤 진유하의 처를 생각한다면 조앙의 말이 맞았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조앙도, 그리고 사마의도 서로 친하게 지낼 생각따위는 거의 하지 않았을 테니까.
조앙의 미소를 보며 사마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제와서 서로 살갑게 대하는 것은 무리겠지요. 하지만… 대화를 나눌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뭐…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이제부터라도 다시 친해지면 된다.
조앙은 뜨거워진 볼을 긁적거리며 문을 잡았다.
“아. 그리고.”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장안에 있는 자네 처와 자네의 아들을 위한 선물을 보내 놓았네. 부디 기뻐해줬으면 좋겠군. 비록 예전이라고 하지만 난 자네의 상관이었으니 말이야. 부하에게 경사가 났는데… 그냥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조앙이 웃으며 말하자 사마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준비한 것은 없습니다만.”
“그럼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해도 되겠나?”
“필요하시다면…”
“한수의 목. 그의 목을 가져다주게.”
아까 전까지 푼수처럼 웃던 조앙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조앙의 얼굴에 싸늘함이 감돌자 사마의는 그의 얼굴을 마주하며 말했다.
“아이의 탄생 선물로는 조금 살벌하지 않습니까?”
“그 살벌함을 바탕으로 내 자식이, 그리고 자네의 자식이 커갈 수 있는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면 오히려 가장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지 않은가?”
사마의는 쓰게 웃었다.
“그 선물. 반드시 가져다 드리지요.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이번 전쟁.”
“….”
“저에게 주실 수 있으십니까?”
모든 군권을 자신에게 넘겨달라는 사마의의 말에 조앙은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이것은 사마의의 시험이나 다름없는 말이다.
자신을 신뢰할 수 있냐는 질문.
지금 조나현에 있는 병력만 오만이 넘는다.
그리고 가정성에 있는 위군까지 친다면 거의 팔만 가까이.
그 군을 다스릴 수 있게 해달라는 사마의의 말에 한차례 웃음을 터트린 조앙은 이를 드러내며 싸늘히 말했다.
“이 전쟁. 자네에게 주지.”
“그렇다면 저는 승리를, 그리고 한수의 목을 바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