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874
금성군이 보이는 진채의 중심.
조창은 거친 걸음으로 지휘부의 막사에 들어갔다.
그가 들어오자 문흠과 이야기를 나누던 사마의는 무덤덤히 물었다.
“정찰은 끝났나?”
“끝났습니다.”
정찰보고서를 탁자에 올려 놓는다.
그 손길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흠… 아직은 별 일이 없나보군.”
하지만 사마의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마치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그 행동에 조창이 이를 드러내자 사마의는 조창에게 힐끔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가서 쉬게.”
“흥.”
작게 콧방귀를 뀌고 그가 나간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문흠은 이를 갈았다.
“건방진 자식.”
“내버려둬.”
“좌풍익. 저자를 그냥 두실 생각이십니까? 조나현에서 출병할 때부터 계속 좌풍익께 무례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야…”
“그는 전하의 아들이면서 왕자나 다름없는 몸이지. 그를 처형하기라도 하자는 건가? 아니면 상관에 대한 모독죄를 줄까? 많은 이들을 모아놓고 채찍질을 하며 모욕을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빈정거리는 어조도 아니다.
사마의는 무척이나 진지하게 말했고 문흠은 그것에 더욱 열이 올랐다.
“하지만 저래서야 군의 기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닙니까!”
충심이 담겨 있는 문흠의 외침에도 사마의는 그저 빙긋 웃을 뿐 이었다.
그것이 답답해진 문흠이 한숨을 내쉬고 나갔을 때 연이어 마초와 마등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지금은 대기하라고 했을텐데.”
“언제까지 이곳에 계실 생각이십니까?”
이곳에 진영을 꾸린지 벌써 칠일이나 지났다.
근처를 순회하기만 할 뿐 금성군에 들어가지 않는 것에 마초 역시 불만스러운 듯 보였다.
그리고 마등도 마찬가지.
둘의 시선에 사마의는 탁자를 툭 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그 때라는 것이…”
“어차피 머지 않아 움직여야 할 때가 올 것이니 그때까지는 얌전히 기다리도록. 때가 되면 제발 쉬게 해달라고 애원해도 쉬지 못하게 할테니까.”
“…하아. 알겠습니다.”
마초와 마등이 나간다.
적을 코 앞에 두고 유유자적 쉬고 있는 것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사기는 충분히 높은 상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의는 군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마냥 기다리거나, 혹은 적은 수의 병사들만 내보내 적들의 동향을 살피기만 할 뿐.
자리에서 나온 사마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가롭게 쉬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언제 있을지 모르는 전투를 대비해 장비를 정비하는 이들도 많았다.
몇몇 병사들이 소규모 진형을 꾸려 전투의 연습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그들을 지나쳤을 때 사마의는 문흠과 조창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슨 일이지?”
금방이라도 서로 멱살을 잡을 법한 분위기에 놀란 사마의가 나섰다.
그가 다가오자 조창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좌풍익!”
“왜.”
“계속 이렇게 있으실 생각입니까?”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게 하는군. 기다리라고 했을텐데. 그리고 좀 쉬고. 정찰을 다녀오느라 피곤했을텐데 왜 굳이 나서는 건가?”
“쉴 만큼 쉬었습니다!”
“그래서?”
“나가 싸우고 싶습니다!”
전의를 다지는 그에게 사마의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 문흠은 사마의를 노려보는 조창의 무례함에 분노했다.
“잘난 척 하지 마라. 애송아. 너따위보다 더 많은 전장을 경험하신 분이다.”
“하. 그런 분께서 이렇게 거북이처럼 얌전히 찌그러져 있나?”
“몸이 근질거리나보지? 그 근질거리는 몸을 어떻게 좀 쓰다듬어줄까? 응?”
“하… 바라던 바다. 네놈. 처음봤을 때부터 거슬렸거든.”
문흠이 검을 반쯤 뽑자 조창 역시 자신의 태도(太刀)를 잡았다.
“말리지 않으시는 겁니까?”
조창과 문흠이 금방이라도 싸울 것처럼 무기를 잡자 병사들이 몰려든다.
다들 심심해하던 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누군가는 걱정하고, 또 누군가는 서로의 대장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든다.
자연스레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그것을 발견한 마초가 다가와 묻자 사마의는 고개를 저었다.
“내버려둬. 혈기가 넘쳐 흐르는데 좀 빼줘야지.”
“문 도위도, 그리고 조 병조도 강한 이들입니다. 괜히 서로 전력을 다해 싸웠다가 부상이라도 발생한다면 어떡합니까? 그랬다간 전투에 참여하지 못할텐데.”
걱정스러워하는 마초의 말에 문흠과 조창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기세에 맡겨 무기를 잡기는 했는데 상대가 보통이 아님을 알고 있는 것이다.
기세대로 싸우면 둘 중 하나는 크게 다친다.
그리고 남은 이도 그리 멀쩡한 상태는 아니겠지.
“그걸 모를 정도로 병신은 아니겠지. 그리고 둘 다 다쳐도 상관없어.”
“왜 그러십니까?”
“선봉과 주공을 너에게 맡기면 될테니까. 어차피 너도 원하는 것 아닌가?”
“그야 그렇습니다만…”
“대기하라는 명령도 지키지 못하고 몸관리도 못하는 놈들에게 선봉과 주공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길 수는 없지.”
사마의의 신랄한 말에 문흠과 조창은 슬그머니 잡고 있던 무기를 놓았다.
그리고 마초는 더 이상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팔짱을 낀 채 둘이 싸우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자신들이 싸워봤자 마초만 어부지리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들이 전의를 낮춘다.
과열된 분위기가 빠르게 식자 모여 있던 이들이 천천히 물러났다.
그들의 모습에 사마의는 어깨를 으쓱이며 씩 웃었다.
“뭐해? 안하나? 구경꾼들이 이렇게 많은데?”
“…흥. 기억해두겠다.”
“너무 무서워서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군.”
문흠을 노려보던 조창이 태도를 놓고 몸을 돌려 걸어가자 마초는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적에 대한 증오가 큰 것은 마초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직까지 사마의는 대기만을 명령할 뿐 어떻게 싸울 것인지 ,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은 선봉 뿐만 아니라 주공(主功) 역시 결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창은 공을 세우고, 또 그 공을 자신의 형인 조앙에게 온전히 주기 위해서 선봉과 주공을 맡고 싶어한다.
문흠은 자신이 동경하는 사마의를 위해서 선봉과 주공을 맡고 싶어한다.
마초는 자신들을 배신한 한수와 북궁가, 그리고 서량 대회의에 참가한 이들을 자신의 손으로 처단하고 싶어 선봉과 주공을 원한다.
셋 모두 원하는 것이 있었지만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사마의의 몫이었다.
조금만 틈을 보이거나, 상대보다 모자란 상황이 만들어지면 전투에서 배제될 것이 분명했다.
결정되기 전까지는 같은 편이지만 경쟁상대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기에 결국은 몸을 사리는 길을 택했다.
모여 있던 이들이 모두 흩어지자 사마의는 피식 웃었다.
‘일이 점점 재밌게 흘러가는군.’
“좌풍익.”
“음?”
한가해진 공터를 확인한 후 사마의가 다시 자신의 막사로 돌아가려고 할 때 그의 뒤로 갑옷을 입은 장교가 다가왓다.
“전령이 찾아왔습니다.”
“전령이라… 가보지.”
장교와 함께 진영 바깥으로 간 사마의는 익숙한 옷차림을 한 병사를 발견했다.
장안군의 병사다.
장안에 있어야 할 병사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마의는 전혀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좌풍익을 뵙습니다.”
“그래.”
“여기…”
그가 넘겨 준 작은 밀서를 확인한다.
밀서의 암호문을 빠르게 해독한 사마의는 그 밀서를 태운 후 말했다.
“예정대로 움직이라고 전해라.”
“예!”
그가 다시 떠나자 사마의를 호위하기 위해 온 병사는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책략 중 하나다.”
한가지 수는 준비가 되었다.
그럼 이제 움직이는 일만 남았는데.
사마의는 적들이 아직까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빨리 끝내고 돌아가고 싶다만…”
장안의 병사를 보니 아내와 아들이 보고 싶다.
사마의가 씁쓸한 얼굴로 진영에 돌아와 의자에 앉아 아쉬움을 달래고 있을 때 막사의 문이 열리며 마초가 급히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경계를 나간 병사의 보고입니다. 금성군에서 이만여의 병력이 출진했다고 합니다.”
“호오… 이만이라.”
지금 오만이 있는데 고작 이만?
사마의는 잠시 생각하다가 씩 웃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수군.”
“그럼…?”
“전투를 준비한다. 다들 부르도록.”
적이 오고 있고, 또 그에 따른 전투를 준비한다는 명령이 내려지자 마초와 문흠, 조창은 완전 무장한 채 막사로 들어왔다.
갑옷을 껴입고 무기까지 챙겨 든 그들이 들어오자 사마의는 떨떠름히 말했다.
“뭘 벌써 이렇게 준비하고 온거지?”
“장수된 이로서 언제든지 출정할 자세가 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
“명령만 내려주십시요.”
“반드시 적을 분쇄하겠습니다.”
열의에 가득 찬 세 장수의 모습에 사마의는 식은땀을 흘렸다.
다들 선봉과 주공을 맡고 싶어하는 이들이다.
그런만큼 사마의는 그 부담감에 어이없을 수 밖에 없었다.
“사람 죽이는 것이 뭐 좋은 일이라고… 후. 그럼 선봉과 주공을 결정하겠다.”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킨다.
그리고 그들을 응시하며 사마의는 여유롭게 말했다.
“병조종사가 선봉을 맡도록.”
“어?”
조창은 의외의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봉장이라는 것이 물론 쉬운 자리는 아니다.
하지만 무관에게 있어서는 영예와 같은 것이다.
선봉이 패배한다면 군의 사기는 급속도로 내려간다.
그만큼 선봉의 자리는 중요했다.
그것을 사마의가 이렇게 쉽게 맡길 줄이야.
조창 뿐만 아니라 문흠과 마초 역시 그의 결정에 당황했다.
“선봉장의 자리를… 저에게 맡기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뭐야. 부담스럽나? 그럼 포기해라.”
선봉장의 자리를 빼앗긴 문흠이 이죽거리자 조창은 고개를 저었다.
“적의 수는 이만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그렇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데려가야 할 병력이 이천 정도는 아니겠지요?”
“그럴리가. 금성군은 적의 본거지. 즉 치중을 이동시키기 위한 병사도 없을 테니 적어도 팔천 이상은 데리고 나가야 할거다. 물론 강병들을 주는 것인만큼… 적보다 수는 적겠지만 문제는 없겠지? 그리고 지원부대 역시 문흠이 맡아 줄 것이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비록 선봉장을 맡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문흠이 기뻐하자 조창은 당황했다.
“그럼 회의는 이대로 종료한다. 병조종사는 남도록.”
회의라고 하기도 민망한 짧은 이야기가 끝났다.
마초와 문흠이 전투의 준비를 위해 나가자 조창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왜?”
“저는 당신이 저를 내보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만.”
“강한 장수가 있다면 쓰는 것이 옳지. 보검은 장식을 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야.”
“…진심이십니까?”
“물론.”
사마의는 금성군의 지도를 보며 말했다.
“적이 나오는 경로는 총 셋이다. 그 셋 중 가장 넓은 길을 이용할 것으로 생각되니 이곳을 중심에서 적을 요격하도록.”
“그것이 다입니까?”
“따로 책략이나 전략은 필요 없어. 아니, 있어서는 안되지.”
사마의는 조창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사사로운 개인의 감정은 빼고 묻겠다.”
“말씀하십시요.”
“이번 전투에서, 조가의 사람으로서. 위왕 조 맹덕의 자식으로서 조가의 힘을 보여 줄 수 있나?”
시험하는 듯한 그의 시선에 조창은 웃었다.
“제가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번 전쟁에서 세우게 될 모든 공은 네가 아닌, 너의 형인 전장군을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나?”
“…그건.”
순간 조창이 멈칫한다.
그것을 잡은 사마의는 무감정한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포기해라. 선봉으로 한번 전투를 하고 난 이후… 원한다면 너에게는 본진의 방어만을 맡길테니까. 이번 전투의 공적은 인정해주지. 그리고 그 이후에는 공적 따위는 없다. 안정적이고, 피해가 없고, 싸우지 않으며 전쟁에 참여하게 되겠지만.”
“그렇다면… 이번 전쟁에서 제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작은 영예 뿐. 조가의 남자로서 조가의 적을 무찌르는 수호자라는 이름 뿐. 그 외에 네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관직이 올라가지도 않을 것이다. 군공을 세웠다 하여 영지가 하사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좋다면…”
사마의의 말에 조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호오…”
“내가 원하는 것은 조가의 앞을 막는 자를 치는 것, 조가의 적을 치는 것. 진 형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조가를 위해 일하는 것 뿐.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꽤나 우직한 모습이다.
관직을 올리기 위해 이번 전쟁에 참여한 조창의 답변에 사마의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됐다. 이번 전투에서는 네가 해야 할 일은 적을 짓밟는 것 뿐.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
“책사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뭔가 전략이나 책략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네가 가져 올 승리가 곧 이번 전쟁의 책략 중 첫번째 단추다.”
조창은 작게 웃었다.
“하겠습니다. 당신의 책략… 제가 완성시켜드리지요.”
“좋군. 그럼 나가보도록.”
자리에서 일어난 조창은 나가려다가 발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몸을 돌렸다.
“나는 당신이 싫소.”
존대가 아닌 하오체.
병조종사가 아닌 위왕의 아들로서 조창은 사마의에게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데다가 처음 봤을 때부터 당신의 그 삭막함, 모두를 자신의 패로 생각하는 듯한 모습. 내 상관인 병주목과 너무나도 닮아 있어서 싫소.”
그의 상관인 병주목.
가후를 말하는 것이다.
조창의 싸늘한 발언에 사마의는 콧방귀를 뀌며 무덤덤히 대꾸했다.
“나 역시 네가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무식하고, 또 우직하게 앞만 보는 자. 거기에 할 수 있는 것은 쌈박질 뿐이지만 전하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나댈 수 있는 거.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사마의와 조창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잠시간의 침묵이 만들어졌을 때 사마의는 눈에 힘을 풀었다.
“하지만… 함께 일할 수는 있겠지?”
상관인 병주목은 한없이 재수없고, 또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내린 모든 명령과 책략, 전략은 완벽했다.
그 덕분에 힘들기는 했지만 단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던 조창이다.
그와 닮았다?
그와 닮아서 재수없고 거슬린다?
하지만 그것이 그와 함께 일하지 못하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조창은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사마의에게 마주 웃었다.
“그야 당연히.”
사사로운 감정따위.
이만큼 큰 전쟁의 앞에서는 아무 짝에 쓸모없는 불순물에 불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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