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900
정북부에서 온 이백의 흑귀대원들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들 덩치고 크고 살벌한 인상을 가졌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이들의 식사량이다.
“많이 먹을 수 있지?”
“아. 물론 당연한 말씀을.”
“좋아. 오늘 거기 기둥뿌리 뽑는다.”
연회를 여는 이들은 참가자들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미덕이다.
제공된 음식을 전부 먹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유학에 따르면 식을 탐하는 것은 군자가 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배부르게 먹기를 원한다.
그럼 이 덕목에 대해서 어떻게 해소한다?
간단하다.
음식을 좀 더 하면 되는거다.
그렇기에 연회를 베풀게 되면 한 사람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음식을 한다.
남은 음식은 거지들이나 하인들에게 베품으로서 여유를 보인다.
그게 지금의 예의였다.
지금 모인 흑귀대는 일반 성인남성의 두배는 먹는다.
거기에 지금의 법도와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는 적어도 삼인분 이상은 내놔야 할 것이다.
그리 되면 이백명만 데리고 가도 육백인분의 음식을 대접해야 한다.
이게 그냥 연회도 아니고 사예교위가 여는 연회다.
결코 허접한 식단을 준비하지 않았을 터.
식사를 위해 준비한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다른 병사들도 아니고 흑귀대인만큼 저들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하겠지요.”
요화는 진가 앞에 모여 있는 흑귀대를 보며 씩 웃었다.
흑귀대는 비록 진가의 사병이기는 하지만 많은 수가 사족이다.
공을 세워 신분을 상승한 이들인 만큼 어중간한 호위병 취급을 받으면 그 역시도 모욕으로 취급된다.
당연히 남은 음식이나 다른 이들에 데려 온 호위가 먹을 만한 음식따위를 줄 수는 없었다.
요화의 말에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직도 순 승상은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고 계신가?”
“아까 전에 가셨습니다.”
“그래? 무슨 일인지는 모르고?”
“예. 하지만 그… 표정이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 걸 보니 뭔가 일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만.”
“그럼 됐다. 가자.”
갔다와서 물어보지 뭐.
초청장에 적혀 있는 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쯤 한참 즐겁게 놀고 있겠지?
말에 오른 내가 선두에 서고 흑귀대가 뒤따른다.
혹시 모르는 만큼 무기를 차고 갑옷까지 챙기라고 했었다.
어쩌면 오늘 모든 것이 끝날지도 모르니까.
우리가 이동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긴장한다.
이백이나 되는 이들이 무장한 채 움직이는 것이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몇번 있었다고 들었는데…”
허도에 이렇게 병사들을 이끌고 움직인다는 것.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의 움직임을 발견한 몇몇 병사들이 당황하며 달려왔다.
혹시 난이라도 일으키려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당신들은 뭐요! 어째서 무기를 소지하고…!”
그들이 다가오자 난 경조윤의 패를 들어올렸다.
“승상복야 진유하다.”
“헉! 승상복야!”
“사예교위의 초청을 받고 찾아가는 길이다.”
“초청을 받고 가시는데 왜 이렇게나 많은 병력을 데리고 가십니까?”
경비대의 조장이 나서며 물었다.
그의 질문에 난 뒤를 돌아보았다.
흑귀대원들의 표정은 다들 꽤 좋아보였다.
속 없는 놈들.
잘하면 오늘 끝장을 볼 수도 있는데 저렇게 속편하다니.
어째 나만 이렇게 끙끙대고 있는 것 같다.
“좋은 음식에 좋은 술을 제공해준다고 하는데 내 부하들을 데리고 가 먹이는 것이… 잘못된 건가?”
왠지 모를 억욱함에 말투가 자연스레 거칠어졌다.
내 어조에 당황한 경비조장은 허둥거리며 손사레를 쳤다.
“그,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게…”
“뭣하면 자네들도 붙지 그런가? 내 경비대장께는 직접 일러둘 터이니.”
“마…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근무중인지라…”
사예교위가 직접 베푸는 연회라면 좋은 음식들과 술이 나올 것이다.
그들은 부럽다는 시선으로 흑귀대를 보았고 난 웃으며 말했다.
“항상 고생이 많군. 괜찮다면 경비대에 말해 승상복야 진유하가 정북부의 흑귀대를 이끌고 사예교위를 찾았다고 전해주겠나? 자네들 규정에 의하면 이정도 수의 병사들이 허도에서 돌아다니는 것은 허가와 동행이 필요한 일이니까.”
“예? 하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예전 허도에서 난 반란 이후 이렇게 많은 병력이 그냥 움직일 수는 없었다.
황제와 위왕을 보호하기 위해 경비대와 호위대들은 군사들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했다.
당연히 그리 되면 움직임에 제한이 가기는 하지만 그건 오히려 내가 바라는 바다.
“규정이 그런 것 아닌가. 아무리 직위가 높다 하더라도 규정을 함부로 어길 생각은 없네. 자자. 어서 가서 말씀드리게나.”
“그럼 목적지는…”
“사예교위의 장원이지. 그곳에 갔다가 연회가 끝나면 복귀할 생각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곧장 경비대를 그곳으로 보내겠습니다만… 그 이번 일로 뭔가… 저희가 좀…”
규정은 지키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하지만 윗줄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규정따위는 개나 주라며 마음대로 어기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몇번 시달렸던 탓인지 경비조장은 머뭇거리며 말했고 난 한숨을 쉬었다.
“거 사람 참.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나? 괜찮으니 어서 가서 말하게. 어디보자… 흑귀대가 이백이니 경비대는 한 오백 정도는 와야겠군.”
“바로 알리겠습니다! 사예교위의 장원으로 경비대가 갈 것이니… 부디 노여움을 삼가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마음이 바뀔 새라 경비대는 후다닥 달려간다.
그들을 지켜보던 요화가 물었다.
“왜 저들을…?”
“일단은 적진에 들어가는거야. 보험 정도는 들어놔야지.”
흑귀대를 이백이나 데리고 가지만 전투가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나는 지금 틈을 거하게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곽영이 과연 어떤 움직임을 보일까?
나 혼자 간다면 순식간에 죽겠지만 흑귀대가 이백이나 있으면 문제가 생겨도 버틸 수 있다.
그리고 그 버티는 시간동안 경비대가 온다면 어렵지 않게 벗어날 수도 있고.
그들을 보험으로 만들어 놓은 나는 한결 편해진 걸음으로 연회장으로 향했다.
해가 지며 만들어낸 노을이 끝내준다.
하늘이 피처럼 붉은 것을 보며 난 이를 드러내었다.
“이거 참.”
“왜 그러십니까?”
“아니… 뭘 준비했는지 궁금해서. 저 하늘처럼 피분수가 터질지 않을까 두렵군.”
“그 피분수가 터지게 된다면 그놈들의 목에서 터지는 것이겠지요.”
요화는 허리에 찬 검을 툭 건드렸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모두 다 죽여버리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뻔히 보인다.
“어허. 축하하기 위한 곳에 가는 건데 그런 표정은 뭐냐? 살기 풀어. 살기.”
“아하하하…”
곧 여유있는 얼굴로 웃는다.
그를 향해 마주 웃어 준 나는 천천히 걸었다.
경비대가 올 시간을 생각하며 걷던 우리가 사예교위의 장원에 도착한 것은 해가 거의 지려고 할 때였다.
어두워지자 등불을 내놓은 장원의 하인들은 몰려드는 우리를 보고 기겁했다.
“으아악! 습격이다!”
습격은 무슨.
그가 들어가자 잠시 후 장원에서 우르르 병사들이 나왔다.
무기를 들고 있던 그들은 우리의 수를 보고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뉘시오!? 이곳이 사예교위님의 장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오?!”
“알고 있으니까 소리 지르지 마라.”
서슬퍼런 기세로 외치는 그에게 초청장을 보여주었다.
내가 준 초청장을 보던 그는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경조윤께서…?”
“이제 승상복야다.”
오늘 승상복야의 임명장을 받았으니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
그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 뒤를 가리켰다.
“승상복야. 저들은 뭡니까?”
“내 부하들. 나름대로 자환 녀석과도 친분이 있는 이들이라 축하해주기 위해서 온건데? 문제라도 있나? 얘들아! 선물 들어라!”
“예!”
흑귀대원들은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들어 올렸다.
계란 세개, 은덩이 하나, 사금파리 한조각. 그외에 잡동사니들.
그것들을 보며 곽영의 호위는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저것 따위를 선물이라고 가져온 것입니까?”
“허어. 축하할 일에 재물을 논하는 것은 오랑캐의 도리인데. 명망높은 사예교위께서 이런 것을 나무랄 것 같은가?”
“…아니 그래도 그렇지. 저따위 선물을…”
그는 똥씹은 표정으로 날 보았고 그 표정에 요화가 가소롭다는 듯 이를 드러내며 싸늘히 웃었다.
“시건방진 새끼. 감히 승상복야께 그따위 표정은 뭐냐. 네놈이 사예교위라도 되는 줄 아느냐? 하찮은 네놈의 목숨따위 승상복야의 앞에서는 파리목숨이나 다름없거늘. 복야. 말씀만 하시면 저놈의 목을…”
“어허. 뭣도 모르는 애송이가 까부는 것 아니냐. 내버려둬라.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짖어대는 개새끼에게 이정도 아량도 못 보여줘서야 어찌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하겠나.”
“역시 승상복야십니다!”
복장을 보아하니 사예주의 교위쯤 되는 것 같은데.
그럼 어느정도 머리는 굴러갈 것이고.
이제 위국의 주인은 조앙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조비에게 붙어 있는 곽영.
내가 그를 개새끼에 빗댔다는 것을 그가 못 알아들을리 없었다.
그는 분노로 부들부들 떨다가 이를 꽉 악물어 분노를 참아내었다.
아깝다.
칼 뽑지.
“…죄송합니다.”
황급히 일그러져 있던 표정을 되돌린 그가 안으로 들어갔다.
난 요화의 어깨를 잡았다.
“잘했어.”
“별 말씀을. 그나저나 빈손으로 오는 것보다 오히려 낫군요. 역시 주군. 사람 성질 긁는 법에 대해서는 잘 아신다니까요.”
“빈손으로 오면 마음만이라도 받겠다는 소리로 대처할 수 있지만 저런 선물이라면 그냥 대놓고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잡동사니를 선물로 준비라하 명했던 나는 텅 빈 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전부가 들어가기는 힘들겠네.”
담장 너머에서 음악 소리와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안에도 꽤나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아직까지 조앙과 조비 사이에서 간보는 인간들이 이정도로 남아 있을 줄이야.
역시 이 시대에 충신은 우리 정도 밖에 없군.
난 어깨를 으쓱이며 이죽거렸다.
“잘하면 여기서 적, 아군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도 있겠는데?”
“간 쓸개 다 빼놓고 다니는 놈들이라면 데리고 다닐 가치가 없지요.”
히죽 웃은 요화는 검자루에서 천천히 손을 떼었다.
그가 들어간지 일다경이 지났다.
슬슬 뭔가 반응이 나올때가 되었는데도 안쪽에서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이거 계속 기다리게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상관없어.”
그리 된다면 오히려 곽영의 손해니까.
승상복야 쯤 된다면 사예교위보다 윗줄의 관직이다.
옛날에는 사예교위의 직책이 승상부주에 버금갈 정도로 높았지만 한의 수도가 허도로 천도된 이후로 사예교위의 위상은 예전과 다르게 낮아졌다.
그런만큼 승상복야인 나보다는 밑줄의 관직이라고 할 수 있다.
곽영이 여기서 날 오래 기다리게 하는 무례를 저지른다면 꼬투리를 잡을 수 있다.
차라리 날 기다리게 해라.
하지만 내 기대와 다르게 사예교위는 금방 바깥으로 나왔다.
“허어… 승상복야께서 이리 찾아 주시다니.”
뭘 그리 놀란 척을 하실까.
그는 애써 웃은 후 내 뒤에 있는 흑귀대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왔군요.”
“하하. 다들 자환과 인연이 있는 녀석들입니다. 축하해주고 싶다고 하는데 어찌 그냥 올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전에 유주 별가종사가 저에게 훈련을 받았습니다.”
“어찌보면 제자라고 할 수 있는데. 당연히 축하해줘야지요.”
조비는 내가 만들었던 신병훈련소와 지휘관 양성소를 졸업했다.
그때의 교관들이 흑귀대였던 만큼 당연히 연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흑귀대들이 떠들어대자 곽영은 눈쌀을 살짝 찌푸린 후 말했다.
“자리가 좁은데… 전부 들여보내기는 힘들 것 같군요.”
“괜찮습니다. 너희들은 여기서 먹어도 되겠지?”
“아. 뭐 괜찮수다.”
“전장에서는 맨 바닥에서 먹기도 했는데.”
“승상복야는 걱정마시고 들어가슈. 우리는 여기서 사예교위께서 대접해주시는 것을 먹으면서 기다릴테니.”
곽영은 그들의 철없는 말에 더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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