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957
고옹은 나에 대한 적개심이 대단한 듯 보였다.
저런 태도라면 대화가 이어나가기 힘들다.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구만.
난 손을 들었다.
그 신호에 고옹과 그의 부하들이 당황했다.
쫄지 마라.
병사들 움직이라는 것 아니니까.
준비하고 있던 진군이 나온다.
말을 타고 우리가 있는 쪽으로 온 진군은 가볍게 목례했다.
“고가의 가주를 뵙겠소. 서주목 진군이라 하오.”
“반갑습니다. 서주목의 위명과 그 깊은 지식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말투부터가 다르군.
쯧.
어쩔 수 없지.
난 진군의 어깨를 잡았다.
“서주목께서 잘 설득해주셨으면 하오.”
“알겠습니다. 승상복야.”
여기까지가 내가 할 일이다.
교섭은 진군이 담당해야 한다.
난 말에 올라타며 말했다.
“고 가주. 현명한 선택을 하셨으면 좋겠소.”
만약 댁이 항복을 거절하면 여강을 공격해야 하니까.
진군이라면 충분히 고옹을 설득하는 것이 가능할것이라고 생각하며 난 본진으로 돌아갔다.
본진에 돌아오니 다들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황이 기세등등한 어조로 물었다.
“어찌 될 것 같습니까?”
“그러게?”
“…어… 실패하신 겁니까?”
“아, 아니 고옹이 나에 대한 적개심이 심해서. 하하. 이거 나중에 전쟁 끝나도 유학자들이 이걸 가지고 난리치지나 않을까 걱정이군.”
유학자들의 대부인 최염이 내 편이니 큰 걱정은 없겠지만.
나중을 대비해서 나도 대비책을 좀 세워놔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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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집중했다.
차분히 마음을 비운 채 손을 움직였다.
“장이야.”
“멍받고 장입니다.”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난 장기판을 뒤집어 엎었다.
망할.
또 졌다.
장합은 웃으며 내가 엎어버린 장기판을 보았다.
“한판 더 하시겠습니까?”
“안해. 안해.”
더럽고 치사해서 안한다.
아니 하라는 훈련은 안하고 장기만 뒀나.
내가 이를 갈며 몸을 돌리자 장합은 웃었다.
“마와 차 하나씩을 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너 지금 나 동정해? 으아! 아니 왜 난 행복할 수 없는거야… 한판이라도 이기고 싶은데!”
열판을 뒀는데 열판 다 졌다.
아놔.
내 주변에는 뭐 이런 것들만 있어?
나와 장합이 장기를 두는 것을 지켜보던 하후상은 쓰게 웃었다.
“의외로 승상복야께선 이런 놀이에 약하시군요.”
“뭘 또 의외까지나…”
“지금까지 승상복야께서 내시던 전술이나 책략, 정략을 보면 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냐. 이런 건 아무리 해도 늘지 않더라고.”
“아까는 저한테도 지셨습니다. 바둑 진짜 못 두시더라구요.”
“야. 시끄러워.”
이당지가 웃으며 말했다.
저 자식.
화타 뿐만 아니라 서주 태학의 원생들과 바둑만 뒀나.
엄청 잘 뒀다.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승상복야 어르신을 이기지 못하는데 이런 류에서는 정말 약하시더군요. 나중에 내기로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야. 꺼져. 내가 못하는 거로 내기를 할 것 같냐?”
이당지의 머리를 한번 쥐어박았다.
그는 혀를 날름거리며 웃고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군의로 이번 전쟁에 참전한 이당지가 구석에서 다른 이들고 골패놀이를 하기 시작한다.
다들 한가하구만.
이제 곧 전투를 치룰지도 모르는 군대의 모습 같지 않다.
긴장감따위 전혀 없는 분위기 속에서 하후상은 쓰게 웃었다.
“노력이야말로 성장의 근본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주군답지 않군요.”
“아니 이건 해도 늘지 않더라고.”
이상하게 바둑이나 장기는 실력이 늘지 않았다.
방통에게는 매번 지지.
장합에게도 늘 지지.
심지어는 영이나 완이, 희와 둬도 진다.
청이랑 두면 좀 재밌었다.
서로 실력이 비슷하니까 접전이 되니까.
주변을 둘러보았다.
골패놀이를 하는 이들 사이로 혼자 진지한 서황이 다가온다.
“서황! 한판 두자! 바둑 한판?”
참고로 서황과의 전적은 50전 48패.
난 생각하다가 웃었다.
“특별히 이번에는 아홉점만 깔고 하자.”
장기판을 뒤집어 바둑판을 드러내고 흑돌을 아홉개 깔았다.
그리고 흑돌을 잡았다.
“뭐해? 앉지 않고.”
그런 나를 보며 서황은 무거운 한숨을 토해냈다.
“하아… 지금 이렇게 바둑이나 장기만 두고 있어야겠습니까?”
“그럼 오목도 괜찮은데.”
오목은 내가 자신 있는 분야다.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서주목께서 회담을 시작한지 벌써 반나절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결과가 나오지 않잖습니까.”
고옹과 진군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고 시간이 꽤 흘렀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저들은 열변을 토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뭔 할 얘기가 저리 많아서 밥도 안먹고 저런데?
하후상은 물과 음식을 담은 광주리를 든 후 말했다.
“회담 자체는 맡겨 둔 것이고, 여유시간을 진군에게 주었지. 그렇다면 그때까지는 믿고 맡겨야 하는거야. 내가 내 사람에게 믿고 맡기고 나서 시간적으로 압박 주는 경우는 없지 않았나?”
“그렇긴 하지만…”
“만약 교섭이 결렬되면 그때부터 싸우면 되는거야. 여강성 하나 공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잖아? 괜히 긴장감 유지하면서 쉬지도 못하게 하지 말라고. 쉬는 것도 일이다.”
서황의 우려에 난 웃었고 서황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와 장합이 장기를 두는 것을 구경하던 하후상은 음식과 물이 담긴 광주리를 들었다.
“그럼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진군에게 전해. 적당히 하고 말귀 못알아들을 것 같으면 때려치라고. 너무 매달릴 필요는 없어. 교섭은 전쟁을 위한 준비에 불과하니까.”
말이 통하지 않으면 삼박사일동안 해도 안통한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대화는 좋다.
하지만 무조건 대화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때로는 적당히 힘을 써줘야 하는 법이다.
내가 줄 수 있는 시간은 단 사흘.
그 이상 대화로 시간을 잡아먹을 필요는 없었다.
명령을 받은 하후상이 떠나가자 서황은 무기를 꽉 잡았다.
회담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전투가 벌어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저들이 항복한다면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어쩌기는? 일단 고옹은 업으로 보내야지. 그리고 오의 사성가 중 고가가 위국에 충성을 맹세하게 하는 정도고.”
그리고 고가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강남에는 돌려보내지 않는다.
그가 강북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한 후 그쪽에서 일하게 해야 했다.
여강을 점령한 후 강하, 양양을 통해 강남에서 예주를 공격할 기반 자체를 지운다.
그것이 일차 목표다.
“얼추 대화가 끝난 듯 싶습니다만…”
“오? 그래?”
회담이 이루어지는 곳을 응시하던 장합의 말에 나도 그쪽을 보았다.
진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옹에게 손을 내민다.
고옹은 그를 빤히 응시하다 그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여강성 안으로 복귀한다.
“잘 되었나보군요.”
“그러게 말이다.”
서황은 아쉬워했다.
다 때려부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괜한 싸움을 피할 수 있으면 오히려 우리에게 이득인데.
여강을 초토화시킬 생각이 아닌 이상 최대한 안전하게 먹는 것이 최선이다.
지친 표정으로 진군이 복귀하자 난 웃으며 물었다.
“어찌됐나?”
“일단 여강성주인 고옹은 항복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저희 쪽에서 내건 조건을 모두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낸 조건은 고옹이 업으로 복귀하는 것 외에 고가를 움직여 강남에서의 영향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것까지 고옹이 허락하고 하기로 했다면 됐다.
“그들이 내건 조건은?”
“조건이라고 해야하나…”
진군은 머뭇거렸다.
“승상복야께서 직접 제사를 지내줬으면 한다고 합니다.”
“호오?”
고옹은 괴력난신을 싫어하는 유학자다.
그런 자가 제사를 요청해?
내가 의아해하자 진군은 쓰게 웃었다.
“그는 유학자이지만 정치가이기도 합니다. 그런만큼 침울해 있는 여강의 백성들을 돌보고 싶어했고.”
“혼란스러운 백성들을 안정시킬 방법을 찾는 것이군.”
“예.”
진군의 대답에 난 쓴웃음을 지었다.
유학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꽉 막힌 자는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다.
그렇다면 회유하여 훌륭한 노동력으로 써먹을 수 있겠다.
“자네가 보기에 고옹이라는 자는 어떤 사람 같나?”
“학식도 대단하고 식견 역시도 훌륭합니다. 현 대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
“손권에 대한 감정은?”
“이렇다 평가하지는 않았습니다. 세간의 평대로 중립을 지키려는 모습이 보기 좋더군요.”
“그런가… 그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놈이라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말이 중립이지 중립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내가 웃으며 묻자 진군 역시 마주 웃었다.
“알면서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요. 중립 세력이 있어야 독주를 막을 수 있는 겁니다.”
“쩝.”
정치의 중요한 점은 견제다.
사람은 자신의 흠을 잘 보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것을 평가해 줄 사람이 필요하고.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이들은 어떻게든 흠집을 내려 하지만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이들은 순수하게 눈에 보이는 비평을 해준다.
이것은 정략, 그리고 정책에도 큰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중임을 맡길 수 있다는 것이겠군.”
“예. 신뢰의 문제만 해결된다면 충분히.”
진군의 평가라면 믿을 수 있겠지.
난 어깨를 으쓱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여강성에는 언제 들어가야하나?”
“고옹이 직접 백성들과 병사들, 그리고 여강의 호족들을 설득한다고 했습니다. 이틀간 시간을 달라고 하더군요.”
“흐음… 이게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닙니까.”
하긴 그러네.
지금 상황에서 오가 움직이기는 쉽지 않았다.
차라리 그들이 군사를 이끌고 나와준다면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다.
오의 사기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사기는 꺽이지 않았다.
그런만큼 붙으면 승리를 자신할 수 있었다.
“저번 전투로 오의 주요 제장들이 죽었다고 하니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
장합과 태사자, 그리고 장료에 의해서 꽤 많은 이들이 죽었다.
군이라는 것은 한명의 강한 장수나 한명의 책사만으로 치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중간중간에 그들의 통제에 따라 움직여 줄 수 있는 강한 무관들이 필요한데 그들이 당한 것이다.
당장 중, 고급 지휘관들을 양성할 수 없다면 오가 요격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 일단 기다려보자.”
어쨌든 시간을 주기로 했으니까.
성 밖에 진을 치고 느긋하게 기다렸다.
야숙을 하는 것은 익숙했다.
거점도 잘 만들어 놓은데다가 식량도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가 밖에서 얌전히 대기했을 때 성문이 열렸다.
성벽에는 항복을 뜻하는 백기가 꽂혔다.
그것을 확인하고 말에 올랐다.
“서황. 너는 여기서 대기하고 있도록.”
“예.”
이 많은 병력을 끌고 들어가기는 힘들다.
장합과 흑귀대, 그리고 하후상과 관평, 진군과 진태만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성을 공격할 수 있도록 군은 성 바로 앞에서 대기했다.
공성병기들이 자리를 잡는다.
그것을 본 성벽 위의 병사들이 두려움에 질렸지만 공격은 없었다.
그저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지켜볼 뿐.
여강의 성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니 백성들이 나와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증오, 그리고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그럴만도 했다.
여강에서 출정한 병사들이 합비에서 떼죽음을 당했으니까.
아무리 내가 천신장이라 불리고, 천신의 뜻을 받든다고 떠들었다고 해도.
그리고 합비가 공격을 당한 것라고 해도.
저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남편과 자식을 죽인 이이니 쉽게 곱게 볼 수는 없겠지.
“흠…”
“왜 그러십니까?”
“이렇게 적개심 넘치는 눈빛은 오래간만이라서. 가슴이 두근거리는구만.”
요 근래 선망, 그리고 동경의 시선만 받다가 이런 시선을 받으니 짜릿하다.
내 말에 서황은 눈쌀을 찌푸렸다.
“감히.”
“워. 그러지 말라고. 저들의 마음을 이해하니까.”
아무리 내가 천신장으로 알려졌다고 한들 당연히 나를 증오하는 마음은 있겠지.
그것을 부정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강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백성들의 복잡한 시선을 받으며 여강성의 관청 앞에 도착하자 고옹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의 인사를 받은 후 안으로 들어간다.
내가 상석에 앉자 고옹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을 다잡으려는 거겠지?
“위국의 승상복야께 고가의 가주가 인사드립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와 편달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뭐. 나 역시 앞으로 그대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할 것 같군. 업에서 생활하며 폐하와 위왕 전하께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
비록 항복을 하고, 나에 대한 태도가 공대로 바뀌었지만 꼬장꼬장함이 변하지는 않은 듯 보였다.
여강의 백성들을 위해서 항복은 하지만 자신의 뜻은 부러트리지 않겠다는건가?
고옹과 고옹의 부하들이 나에게 인사를 한 후 성주의 인수증과 군수의 인수패를 가져다주었다.
그것을 받아 챙긴 후 물었다.
“그럼 성의 상태부터 좀 알아보고 싶구만. 함께 시찰이라도 가겠나?”
“따르겠습니다.”
여강성 시내를 천천히 돌았다.
진군이 진태와 함께 여강의 세수 및 치안 상황 등 문서로 확인해야 할 것을 확인하는 동안 여강의 상태를 좀 알아둬야 했다.
“내가 알기로 여강에는 몇몇 명가가가 있는 걸로 아는데…”
“이미 노가는 건업으로 이전했습니다.”
“딱히 노가를 말한 건 아니다만. 그런가. 아쉽네.”
노가를 다 때려부수고 노숙을 좀 도발할까 했는데.
내가 아쉬워하자 고옹은 싸늘히 말했다.
“신벌이라도 내리시려 하셨습니까?”
“자네는 내가 천신장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모양이군.”
“유학자로서 그러한 괴력난신을 믿고 따를 수 있겠습니까. 제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은 믿지 못합니다.”
“이미 수만이 신역에 접근했다가 죽었는데도?”
“그거야…”
그 부분은 어떻게 할 수 없겠지.
고옹은 말끝을 흐렸고 난 웃었다.
“뭐. 믿든 믿지 않든 그건 자기가 할 일이지만서도. 그것에 대해서 딱히 뭐라고 할 생각은 없으니 편하게 생각하게나.”
“…알겠습니다.”
머뭇거리던 그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때 백성 하나가 나에게 외쳤다.
“천신장님! 천신장님!!”
위국의 영역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일까?
확실히 왜소하고 꼬질꼬질한 모습이 심했다.
그는 내 앞에 엎드리며 외쳤다.
“제발 저희들에게 복을 주시고 저희들을 살려주십시요…!”
“무슨 소리지?”
고옹이 나서자 그는 힘없이 말했다.
“저희 마을에 전염병이 돌고 있습니다… 부디 그들을 구원해주십사…”
전염병?
그 말에 난 인상을 썼다.
“하. 젠장.”
이게 내 팔잔가?
난 어째 매번 가는 곳마다 이렇게 일이 터지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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