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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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보는 손책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아보였다.
나이를 더 먹기는 했지만 몸은 여전히 다부졌고 또한 그 패기 역시 그대로 남아 있었다.
거슬리는 것은 한쪽 팔이 없다는 것.
그 외에는 큰 변화가 없다.
아니.
한가지 변화가 있군.
그것도 아주 큰 변화가.
눈에 현기가 돈다.
“꽤 변했군.”
그것만으로도 사람이 달라보인다.
내 기억으로 예전의 손책은 그저 패기넘치는 이였는데 말야.
“젊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답지 않군.”
“…제가 나타난 것이 반갑지 않으신 모양이군요.”
당연한 것 아닌가.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그런데 이제와서 전쟁을 멈춰달라니.
난 손책을 향해 싸늘히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오래간만에 봤는데 좀 더 현명해지고, 염치가 없어졌어. 딱히 좋지는 않네.”
“전쟁을 막기 위해서 염치 따위 필요하겠습니까?”
“그 손책이 무릎까지 꿇고 말이야…
“뭔들 못하겠습니까.”
“헛소리 말고 돌아가서 싸울 준비나해.”
“저와의 약속은…”
“너 지금 약속이라고 했냐?”
그 한마디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손책과의 약속.
손책이 강동을 다스리게 되고, 훗날 조조가 왕국을 만들게 된다면.
그때 손책이 내 산하로 들어온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조조를 설득해 손가를 밀어줬었다.
손가를 이용해 강남을 안정화하고 유표와 익주를 견제, 그동안 강북을 차지하려고 했었다.
“나와의 약속을 어긴게 누구지?”
“…손가입니다.”
나와 적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손가는 깨버렸다.
다행히 이 일이 발생하기 전에 곽영과 조비를 비롯한 내 반대 일파를 싸그리 숙청했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오의 적대적 행위는 곧 내 위기로 흘러갔을 것이다.
내가 밀어 준 손가가 위국의 뒤통수를 친거다.
잘만 엮었다면 나까지 위국의 배신자로 들어갈 뻔 했다.
“너희들이 내 뒤통수를 친 것 때문에 나는 꽤나 위험할 뻔 했다. 그건 아냐?”
“그건…”
“승상복야. 여기서부터는 제가 말씀…”
“닥쳐. 너도 잘한 거 없으니까.”
주유가 끼어들려고 하자 난 퉁명스레 말했다.
저놈도 나에게 할 말따위는 없을거다.
완이와의 결혼식때 그가 찾아왔던 것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니까.
주유는 입을 다물었고 난 이를 갈았다.
“그동안 교주에 있었다면서?”
“그렇습니다.”
“교주에서 뭘 하고 지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쪽에서도 이래저래 일이 많았나보더군? 첩보에 의하면 꽤나 이름을 떨친다고 들었는데.”
“천하에 이름을 떨치시는 승상복야만 하겠습니까.”
입만 살았다.
하후패가 의자를 가져오자 의자에 앉은 채 말했다.
“거기 그냥 찌그러져 있지 왜 기어올라왔냐?”
왜 이제와서 나타났냐.
차라리 좀 일찍 오지.
아니면 나타나질 말든가.
오가 합비를 처음 공격했을 때 그가 나타났다면 나는 그를 내세웠을 것이다.
그리고 오의 맹주 자리에서 손권을 끌어내리고 손책을 밀어줘 다시 한번 전의 계획대로 움직였을거다.
그럼 이런 전쟁은 없었겠지.
내가 싸늘한 어조로 말하자 손책은 고개를 숙였다.
“그저 제 실수일 뿐입니다. 권이가 잘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그렇군. 실수라…”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렇겠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을거다.
손책과 주유가 입을 다물고 있자 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래. 뭐 어쨌든 오래간만에 봐서 반가웠다. 이제 돌아가라. 그리고 성문을 닫든, 아니면 뭘 하든 건업에 가 있어.”
“전쟁을 멈추실 생각이 없으신 겁니까?”
“없어. 아니, 이제는 멈출 수 없다.”
이미 시작된 전쟁이다.
전화의 불꽃이 만들어낸 피해는 너무나도 컸다.
2차 합비 공방전에서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거기에 강남은 이미 분열했다.
추가로 지온곡, 수룡주에서 대규모 전투가 발생했다.
이미 시작된 전쟁의 불은 마지막 단계에 와 있었다.
그것은 이제 내가 막는다고 막아질 만한 크기는 아니었다.
난 그 불을 이끄는 자다.
하지만 그 불을 끄는 것은 내가 아니다.
이제 불은 모든 것을 태우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거다.
“내가 여기서 멈춘다고 해봤자 너희들이 납득하겠냐? 아니. 절대 납득하지 못할걸? 그리고 우리도 납득을 못해.”
비록 승전이기는 했지만 우리의 피해도 없다고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 입장을 빼놔도 그렇다.
“지금 죽은 이들이 얼마나 되는 줄 아나? 자그마치 오만이 넘는다. 손가의 가솔들이나 오의 인물들은 빼더라도 말이다.”
“…그건.”
“그들의 가족들이, 그들의 친지들이. 위국에 대한 칼을 들이대지 않을 것이라 자신하나?”
“…자신할 수 없습니다.”
“그래. 그럴거다.”
여강에 들어갔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만약 고옹이 나서서 백성들을 돌보고 설득하지 않았다면 그곳의 백성들은 나를 미치도록 증오했을 것이다.
내가 천신장이든 말든 말이다.
“지온곡과 수룡주에서의 수전만 봐도 그렇다. 그곳에서 죽은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아나?”
“하아…”
손책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전쟁을 치뤄봤던 무관으로써 이제는 어느 한쪽이 끝장나기 전까지는 전쟁이 멈추지 않을 것을 알 것이다.
“이제 전쟁은 멈출 수 없어. 나나, 아니면 손권이나. 둘 중 하나가 끝장나기 전에는 결코 멈출 수 없다.”
손책의 얼굴이 어두워졌지만 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를 내려다보며 이를 갈았다.
“더 할 말은?”
“원하시는 것이 그것 뿐입니까?”
“뭐?”
“권이의 목숨. 그것 뿐입니까?”
손책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그 시선을 마주하며 웃었다.
그놈 모가지 하나로 끝나겠냐고?
그러겠냐?
“아니. 만약 이번 전쟁이 벌어지기 전이었다면 손권의 목만으로 끝났겠지. 하지만 너무 늦었어.”
하지만 이제는 힘들다.
전쟁을 하며 나에게 칼을 빼든 이들이 있으니까.
그 호족들, 그 명가들.
그리고 이번 전쟁에 참여한 손가 휘하의 장수들까지.
모조리 처리해야 한다.
“이 전쟁은 이제 내 개인적인 감정의 차원을 떠났다.”
전쟁이 일어났다.
그런데도 아무런 대가 없이 죄를 지은 이들을 용서해 줄 수는 없었다.
특히나 신역에까지 들어왔던 이들을 용서해주는 것은 크게 위험한 일이었다.
기껏 만들어 놓은 조앙의 권위를 건드리는 일이니말이다.
천신의 이름으로 천신장인 내가 선포한 신역이다.
그 신역에 들어왔는데 살아남는 이가 생긴다면 그것을 빌미로 조앙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이가 생긴다.
내가 미쳤냐?
그걸 그냥 놔두게.
“이번 전쟁의 총 지휘관은 나지만 그렇다 하여 이 전쟁이 내 전쟁이라는 것은 아니야. 위국의 전쟁이지.”
“승상복야라면 가능하시잖습니까!!”
“가능하다고 해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만.”
만약 이번 전쟁에 교가가 가담했다면 나는 교가를 위해서라도 어느정도 위험을 감수했을거다.
나는 소의를 따르는 사람.
천하 백성들보다는 위국의 사람들.
위국의 사람들보다는 내 가족들을 지킨다.
그렇다면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내 가족을 위해서 움직였을거다.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닌데 내가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하물며 지금 내 적인 이들을 위해서는 말이다.
“승상복야…”
손책의 절망감 섞인 어조에 난 한숨을 쉬고 물었다.
“그럼 내가 묻자. 내가 어디까지 양보해줘야 하겠나?”
날 응시하던 손책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주유. 너도 알고 있겠지?”
“…압니다.”
난 지금까지 오에 많은 것을 양보해주었다.
과거 단 한번 만난 손책과의 연 때문에 말이다.
“나는 지킬 수 있는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그렇기에 너와의, 그리고 너희들과의 약속을 최대한 지켜나갔다.”
손책과 주유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을 노려보며 난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너에게 관직을 준 이유는 알거다. 강남을 차지하고 그곳을 다스리며 유표를 견제하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너희가 유표의 견제를 제대로 했다고 생각하나?”
“…그건.”
유표는 우리를 공격했다.
원소와 서로 견제를 하며,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허도에서 반란이 일어났었다.
그리고 유표는 우리를 공격했지.
그때 정욱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가 사형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마 허도를 공격당했을거다.
그리고 이어지는 원소의 공격에 패배했을지도 몰랐다.
“난 너희에게 많은 것을 해주었지만 너는 실패했지. 하지만 난 그것도 용서해주었다.”
“…그렇…지요.”
“더 말해줄까? 손권이 네 뒤를 이은 이후 강남 여기저기에 있는 호족들을 탐욕스럽게 끌어안을 때도 이해해주었다.”
“…그렇지요…”
“그에게 양주목의 벼슬을 내려주었고, 또 그가 활동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말 안끝났어!!”
항변하려던 손책이 입을 다문다.
그를 향해 싸늘히 웃었다.
“그래도 넘어간 이유는 너에 대한 실날같은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손권이 법을 어기지는 않았기 때문이지. 최소한 그는 독단적인 군사행동을 통해 천하를 흔들리게 하지 않았으니까.”
위국의 법에 따르면 허가받지 않은 군사행동을 하는 이들은 역적으로 규정된다.
그래도 손권은 도적토벌을 이유로 군사를 움직였고 훌륭히 도적을 토벌하며 영역을 넓혔다.
그리고 그 공적을 중앙에 알렸다.
그렇기에 그가 양주의 다른 군을 손에 넣어 오의 영역을 넓힌 것도 용인해 준 것이었다.
“하지만 도가 지나쳤다.”
도적이 도망쳐 합비에 들어갔으니 합비를 공격한다?
누가 그것을 믿겠나.
하다못해 협조요청 조차도 아니었다.
일방적인 통보였고 그 통보를 따르지 않자 덤벼들었다.
“일차 합비 전투만 생각해도 양주목의 직위를 해제하고 손권이 책임을 지는 정도로 넘어가려 했었지.”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손책을 불러와서 그를 앞세우고 손가 내부에서 싸우게 하는 수를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처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어. 오히려 자기가 잘났다는듯, 합비전에서의 패배를 복수하겠다는 듯 오히려 더 많은 군사를 끌고 올라왔지.”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는 법을 어겼어. 이것은 단순히 위국의 법 뿐만 아니라 이 천하를 이루는 한의 법을 어긴 것이다. 봐라. 오와 황건적이 다를게 뭐냐?”
황건은 한에 대항하여 백성들을 선동하고 한을 공격했다.
오는 한을 수호하는 위국에 대항하여 백성들을 징집해 합비를 공격했다.
내 말에 손책은 큰 한숨을 쉬었다.
“역적…이라는 겁니까?”
“그래. 아직 역적으로 규정하지 않았지만.”
그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조앙은 구석을 받았고 자신의 적을 역적으로 규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리 하지 않은 이유는 조앙이 왕위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 왕이 된 이가 구석을 이용해 함부로 적을 역적으로 규정지으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합당한 조치라 하더라도 세간에서는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망나니라는 소리 밖에 듣지 못한다.
그렇기에 내가 움직여서 오를 박살내 놓은 후 천천히 그들에 대한 죄를 만들려 한 것이다.
“정규군인 위에게 칼을 들이댄 것만으로도 역적으로 취급된다는 것 쯤은 알겠지?”
난 허리의 검을 뽑아 손책에게 겨눴다.
“난 지금 엄청나게 많은 것을 양보해주고 있다. 손책. 너 뿐만이 아니라 손가 전체!! 그리고 손가와 관여된 모든 가문!! 그들의 구족을 멸할 수 있는데도 참아주고 있어!!”
손책이 고개를 숙였다.
그를 노려보며 난 이를 갈았다.
“그런데 여기서 더 뭘 양보해줘야 하나? 손상향이 교주에 갔지?”
“…그렇습니다.”
“손상향과 내 아내인 청이와의 문제. 솔직히 생각한다면 손상향의 목을 날려버리고 손가의 작위를 강등시켜도 모자랄 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양보해주었다. 그녀를 유배보내고, 손가를 건드리지 않았어.”
“그 부분에는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왜 그랬는 줄 아나? 거기까지는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으니까다.”
“이번 문제도 승상복야의 손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아니. 합비를 친 순간부터. 손가가 주제파악 못하고 까분 순간부터 이 모든 문제는 내 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왜 그걸 모르나!”
내가 화를 내자 손책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 분노에 대응하여 마찬가지로 화를 내기보다는 어떻게든 내 분노를 가라앉히려는 듯 보인다.
진짜 성장했군.
옛날이었다면 여기서 손책도 열받아서 협상을 거절했을텐데.
쩝.
그럼 이제 공격 방향을 바꿔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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