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21
원담의 갑작스러운 업성 점령은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물론 원담이 기주 호족들을 품어 안은 것은 익히 알고 있는 바이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하후돈과 지지부진한 전투를 이어 가는 도중에 업성을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심배와 봉기가 어리숙한 인물도 아니고, 유부인의 장인 또한 한실의 종친으로 기주에서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하후돈이 백마에 주둔하고 있는 사이에 업성이 함락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순가 회의에 모인 이들 모두가 급작스러운 소식에 부산스러워졌고, 순욱은 상황 파악을 위해 바로 등청 준비를 하였다. 승태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순욱에게 예를 표하며 말했다.
“수춘의 속관들과 저 또한 등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사공.”
“그리하게. 상황이 급하게 되었군.”
승태도 원담이 업성을 점령했다는 말에 약간 충격을 받았기에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승태가 빠른 걸음으로 마차로 향하자, 옆에 있던 조운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혹여 큰일이라도 났습니까?”
“큰일 났지요. 원담이 업성을 먹었으니, 큰일 난 것이지요.”
승태는 일단 허도의 저택이 아닌, 진궁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진궁은 기다렸다는 듯 바로 관복을 정제하고 집 밖으로 나와 승태를 맞이하였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그럼 바로 등청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와 함께 움직이시지요.”
진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차에 올랐다. 그러고는 대강의 상황을 승태에게 말해 주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업성이 원담에게 넘어갔는지 아십니까?”
“원담의 곁에 전풍이 있으니, 아마도 기주계 호족들이 내부에서 난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큽니다. 북방으로 도망가지 않고 남쪽의 우군에 투항한 것은, 이미 기주 일대의 포섭이 끝났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번에요? 그게 가능합니까? 그럼 우리도 눈치를 챘을 것 같은데요?”
진궁은 잠시 인상을 찌푸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저희나 조정에서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라면, 아예 그러한 일이 없었을 수도 있지요.”
“예? 그게 무슨?”
“패공이 죽은 지금, 조정은 어차피 하북으로 대군을 보내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조정의 압박은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 원담은 다릅니다. 원가 내부에서 명분도 충분하거니와, 하북을 잘 아는 전풍과 저수 같은 인물이 그를 돕고 있으니, 더욱 큰 위협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인물이 업을 차지한다면······.”
“순식간에 저울의 추가 기울어져 버리겠군요.”
“그래서 원담은 딱히 다른 지역을 점하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원담이 아니라 전풍과 저수겠군요.”
전풍과 저수.
두 사람은 정사에서도 굉장히 높게 평가되는 인물들이다. 장합과 고람을 얻은 후, 전풍과 저수가 옥에 있다는 말만 듣고 그저 죽었을 것이라 여겼는데, 갑자기 이런 곳에서 튀어나온 줄이야. 승태의 큰 실수가 아닐 수 없었다.
‘원가가 다시 하나로 뭉쳐지면 지금의 균형은 무너지고 만다.’
승태는 조조가 죽고 나서 어떠한 인물도 권력을 독차지하는 상황이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지금처럼 하후가와 패국의 조가가 손을 잡고, 순가가 자신과 손을 잡으며 애매한 눈치 싸움을 하는, 딱 그런 애매한 상황이 승태에게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랬기에 승태도 하후가나 패국의 조가 쪽으로 돌아서지 않고 그저 순가가 부족한 군세의 일원이 되어 돕는 정도로만 일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알기에 조부의 원로들도 아무 말 없이 승태를 그냥 바라보고, 도리어 만나려 하는 인물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금 원가가 일어나려 한다면, 조부에서도 하후가와 함께 누군가 앞장서서 정국을 이끌어 갈 인물을 만들고자 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내가 된다 하더라도 영 좋은 일은 아니지.’
승태는 자신이 조조처럼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재목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저번의 순가에서 들은 암살 이야기도 그렇고,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 봐야 허술함이 채워질 것 같지는 않았다.
‘최림, 그 깐깐한 양반도 독은 못 잡아내는 것 같던데, 순가의 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인식 자체가 다른 것인가?’
승태는 저택에 들러 옷만 환복하고 나서 다시 걸음을 재촉했고, 사공부 역시 갑작스러운 원상의 투항에 당황한 티가 날 정도로 어수선하였다.
갑작스럽게 모인 이유를 확인하는 이들과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하는 이들이 서로 확인하고자 부산을 떠느라 시장바닥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사공부에 들어선 승태의 뒤에는 조정의 몇 인물과 조운, 진궁과 같은 속관들이 서 있었다.
우선 원상의 투항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전령이 전해 준 죽간을 살핀 순욱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원담이 원상과 같이 여양에서 하후 장군의 군을 막고 있을 때, 업성 내부에서 난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심배는 그 자리에서 업성을 지키다가 죽음을 맞이했고, 봉기가 일부 병력과 함께 원상을 보필해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하오.”
순욱의 말이 끝나자 최염이 나서서 물었다.
“사공께서는 이들을 어찌 처리할 생각이십니까?”
“나는 이들을 받아들여 하북 원가의 잔당을 치는 데 선봉을 맡길 참이오. 그들이 아군에서 고위직을 맡는다면, 아마 내부에서도 갈등이 생길 것이오.”
순욱의 말에 좌중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정론 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승태는 진궁에게서 무언가 이야기를 듣더니,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그들을 하동에 주둔케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동에 원상의 수하인 곽원이 있으니······.”
그때, 사공부로 전령이 들이닥쳤다. 머리 위에 붉은 깃을 올린 것으로 보아 급전인 것 같았다.
사공부의 속관이 빠르게 뛰어나가 죽간을 건네받아 살핀 후, 순욱 앞에 엎드려 말했다.
“고간이 평양을 넘어 낙양으로 진군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뒤로 또 다른 전령들이 달려왔다. 속관이 다시 일어나려 하자 순욱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전령들은 당장 죽간을 풀어 전언을 말하라!”
“청주의 군대가 지금 낭야를 향해 진군 중입니다.”
“원담의 군세가 여양을 향하여 진군 중입니다.”
놀란 순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원담이 업성을 얻고 나서 기주의 안정을 위해서 노력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원담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원담의 군대가 낭야를 향한다는 말에 승태 역시 뜨끔하였으나, 옆에 있던 진궁이 고개를 저었다.
“흔들리지 마십쇼. 서주에는 인재가 많습니다.”
작게 속삭이는 진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승태는 나아가 순욱에게 말했다.
“사공, 제가 수춘과 하비의 군을 이끌고 하비를 침범한 군세를 처리하겠습니다. 고간을 상대로는 낙양에 주둔 중인 장 장군을 보내 하동의 곽원을 도우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순욱은 승태를 바라보며 물었다.
“장 장군으로 충분하겠는가?”
“장 장군과 집금오가 서북의 사람이므로 지절을 집금오에게 맡겨 도독으로 하동에 보낸다면 능히 고간을 막아 낼 것입니다.”
“이외의 문제는 마등과 한수겠군.”
안 그래도 조조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종요를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원담이 하북의 패권을 잡고 남하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떠한 일을 저지를지 모를 상황이었다.
“한수와 마등의 사이는 가깝다고 하나, 잘만 편을 가른다면 능히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잠시 순욱은 무엇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원담은 하후 장군이 상대할 것이고, 서쪽은 가 집금오에게 맡기겠네. 삼군으로 편성하여 원담을 상대하겠네.”
***
조정에서 원담을 상대하기 위해 급하게 움직이는 동안 업성을 차지한 원담은 군을 이끌며 바로 어양으로 나아갔다.
그사이, 원담의 옆에서 전풍은 무엇인가를 계속 적고 있었다.
“전 선생, 그것은 무엇이오? 이제 하북의 패권도 잡았는데, 조금 쉬어도 되지 않겠소?”
전풍은 인상을 찌푸리며 원담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하북은 그저 급작스러운 권력의 변화에 놀라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쉰다니,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전풍의 으름장에 원담은 어깨를 으쓱이면서 답했다.
“그래서 내 선생을 모시고 가장 높이 권한을 내주지 않았소. 덕분에 동생에게서 기주를 돌려받아 하북 원가와 하남 원가를 통합하였고.”
“완전한 통합도 아니지 않습니까. 유주와 병주에 자율권을 내줄 수밖에 없지 않았습니까.”
“그것이야 뭐, 부공께서도 원하는 바 아니었소? 나야 정치적인 일은 잘 모르니 그대에게 맡겨 둔 것이지. 그리고 업성을 빼앗는 데 곽도를 이용한 것은 의외였소.”
“무엇이 말입니까?”
“곽도는 그래도 나를 위해 병사와 사람들을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전 선생은 곽도가 배반할 것을 알고 있지 않았소. 나는 순우 장군과 같이 하남계가 나를 지지하는 줄 알았소.”
전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부공께서 곽도를 이용하여 가지치기하려 하였으니,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것이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남계와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곽도는 대장군의 숨은 비수였습니다. 그런데 그 비수를 쥔 사람이 없어졌으니 대신 할 사람이 필요한데······.”
전풍은 원담이 답변을 기다렸으나, 원담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 그냥 전풍만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전풍은 한숨을 내쉬자, 원담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말씀하시지요.”
“비수를 쥘 사람이 없으니, 비수가 자신 마음대로 날아다닌 것입니다. 곽도가 그리 무능하지도 않으니, 모든 것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씨 가문은 어째서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까? 곽도와 같은 이들 아닙니까?”
“어차피 당사자인 신평도 죽고, 신씨 가문을 불태우는 일은 허유가 조조에게 넘어가게 만드는 일을 만드는 셈입니다. 아직 불안한 지배력인데, 굳이 그런 무리한 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풍의 말에 원담은 자신의 허벅지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전풍은 죽간 하나를 묶은 뒤에 목적지를 적어 전령에게 건네었다.
“전 선생, 그럼 지금 어양에 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유주와 병주에 자율권을 주면서까지 내려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니 말입니다.”
“순욱이 더는 조정을 장악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조가와 하후가의 군을 모조리 밖으로 내보내기 위함이지요.”
전풍의 말에 원담은 웃음을 보이며 물었다.
“다음 단계가 있는 것이오?”
“아직은 준비하는 단계일 뿐입니다.”
“그래도 들려주시지요. 원가의 적통이 된 내가 앞으로의 계획을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지 않소.”
그러나 전풍은 원담의 말에 선을 그었다.
“불가합니다.”
전풍에 칼 같은 대답에 원담의 속은 부글거렸으나,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전 선생을 구해 드리고 이렇게 부탁하는데도 안 되겠소?”
전풍은 원담을 쓰윽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공자의 습성상 술이 들어가면 그 내용이 퍼져 나갈 것이 빤히 보이는데, 어찌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후에 일이 무산되거나 이루어지면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원담은 입술을 부들거리며 웃음을 지었고, 더는 전풍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