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
형주사군의 태수들이 모인 연회는 서로의 의중을 알아보기 위한 자리이기에 서로가 흥겹게 술을 마시는 와중에도 눈치를 보았다.
환계는 술은 치워 둔 채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잠시 사방을 훑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조범이 환계를 잡았다.
“어디를 가시는가?”
환계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사방을 가리켰다. 조범은 빤히 주위를 둘러보다 이내 손뼉을 쳤다.
“옳거니! 소피가 보고 싶은데 어디인 줄 모르나 보군. 내 알려 줌세.”
환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조범을 바라보다가 이내 머리를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그때, 김선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 각 지역의 태수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빈자리를 보며 물었다.
“환 장사(長沙, 장사 태수를 줄여 지역의 이름을 붙임)는 어디로 간 것이오?”
“잠시 소피를 보러 간 것 같소. 어차피 그 역시도 대세로 결정된 일에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니, 걱정할 것 없소이다.”
김선은 조범의 말을 잠시 곱씹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 환계 혼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어차피 무릉성의 모든 관문이 통제되고 있으니, 빠져나가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었다.
“그럼 이제 결정합시다.”
김선의 말에 모두가 우물쭈물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유도가 먼저 말을 꺼내며 나섰다.
“비록 작금에 유기가 양번을 차지하고 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정당한 후계에게 그 자리가 돌아올 것이오. 채가와 괴가가 여구와 기현에서 적을 막아내니, 분명 이는 귀정(歸正)의 첫걸음이 될 것이오. 나 유도는 채가에 힘을 실어 줄 것을 요청하오.”
김선은 자신 있게 주장하는 유도를 슬쩍 바라보고는 다른 이들을 보았다. 조범 또한 답변은 하지 않았지만, 그 의견에 심히 따르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이 없었다. 아마도 이미 말을 맞추어 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 되자 김신은 환계의 의견은 듣지 않아도 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셋이서 서로 작당을 했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피를 덜 보고 싶은 김선은 안타까운 마음에 입을 열었다.
“두 분께서는 의향을 바꿀 생각이 없으십니까?”
그 말에 유도와 조범이 흠칫 놀랐다. 그러나 자신들은 셋이고, 김선은 혼자이니,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김 무릉, 우리들은 이미 채가와 함께하기로 결정하였소이다. 솔직히 생각해 보시오. 병상에 누운 유 형주를 유폐하는 것이 아들 된 입장에서 할 짓이오? 한데 그런 자를 어찌 지지할 수 있겠소?”
김선이 안타까운 마음에 뭐라 설득하기 위해 나서려는 순간, 황충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유도는 인상을 찌푸리며 황충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이놈!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들어오느냐! 높으신 분들이 지금 형주의 미래를 결정하고 있는데, 감히!”
한바탕 호기롭게 꾸짖은 유도는 김선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마치 수하 교육을 어찌했기에 이런 무례를 저지르냐는 힐난이 담겨 있었다.
김선은 그 시선을 무시하고 황충을 보며 말했다.
“내 이들을 설득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이들이 유기를 따를 수 없다는 것이지, 유 사군을 따른다는 것은 아니지 않소.”
그러나 황충은 검을 뽑아 들고서는 천천히 태수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의 속마음은 이미 다 들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억지로 따르라 한들 겉으로만 그런 척하며 딴생각을 품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조범이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황충에게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누구인데 그리도 오만하게 말을 한단 말이네!”
그때, 뒤에서 한 병사가 달려오자 황충이 손을 들어 올려 조범의 말을 막았다. 그러자 병사가 황충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을 전하였다.
황충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김 무릉께서는 그대들을 살리기 위해 많은 애를 쓰는 것 같소. 그러나 이미 강을 건너 버려 설득하는 것은 글러 버린 것 같소이다.”
황충의 체념한 듯한 말투에 김선이 급히 일어나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환계가 군을 이끌고 성내에서 탈출하려 했소이다.”
그 말에 조범과 유도가 급히 일어나 눈을 크게 뜨고 김선을 바라보았다. 대답을 요구하는 눈빛에 김선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아… 환계, 그 사람 눈치가 너무 빨라 문제였구나.”
조범은 아까 환계가 사방을 가리키던 것을 떠올리며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어렴풋이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필시 잘 훈련된 병사들일 것이 분명했다.
“김선! 네놈이 우리를 함정에 빠트린 것이냐! 같이 뜻을 모으자고 해놓고, 우리를 죽이려 한 것이냔 말이다!”
김선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혀를 차며 답했다.
“쯧쯧, 미련한지고. 내 더는 한조가 무너지는 꼴을 눈 뜨고 보지 못할 것 같아 무능한 놈들을 모두 치워버리고 영웅을 형주의 지도자로 앉히려 했소!”
김선의 말에 조범과 유도는 분노를 표하였다.
“설마 그게 유비라는 말이냐?”
“당연하지. 유 형주가 병석에 누어 버린 지금, 형주를 지킬 수 있는 인물이 누구라 생각하오? 오직 유 사군만이 적은 병력을 이끌고도 고순을 막아내었소. 그뿐이오? 유기의 옆에는 강하를 지키는 황조가 있으니, 유 사군을 형주목으로 선위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옳게 돌아갈 것이오.”
그 말에 조범은 황충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얼굴이 이제 떠오르는군. 자네, 황조의 밑에서 장사를 지내던 인물인 것으로 아는데, 맞는가?”
황충이 말없이 바라보자, 조범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유비와 황조가 손을 잡은 것 같군. 우리 목숨은 누구에게 달려 있는 것인가? 자네인가, 아니면 김 무릉인가?”
황충이 이번에도 답변하지 못하자, 조범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김선을 바라보았다.
“원기(元機), 이 사람아. 자네가 한조를 지켜내고자 하는 의지는 잘 알고 있네만, 이런 독한 이들 사이에서 버텨 낼 수 있겠는가? 우리가 유 형주의 부름으로 태수가 될 수 있던 이유를 아직도 이해 못 하나 보군그래.”
“자네가 무엇을 안다고!!”
조범에게 이미 끝났다는 듯 술잔을 내던지며 말했다.
“우리가 능력이 없어서이네. 애당초 딱 하나의 현 정도만 관리가 가능한 깜냥을 가졌을 뿐이니. 그래서 이족(異族)들이 우글거리는 남형주를 유 형주가 맡긴 것이란 말이네.”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조범은 아직도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하는 김선을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의 가치가 이것으로 끝이라는 것이네.”
말을 마친 조범은 고개를 돌려 황충을 보며 물었다.
“아니 그런가, 황 장사(長史)? 아닌가. 다른 직책이 있던가? 알려 주면 그리 불러 주지.”
황충은 입을 떼지 않았고 조범은 혀를 차면서 자신이 던진 술잔을 바라보았다.
“이런, 내가 실수했군. 술잔을 저리 던지면 마지막 한 잔 술을 마시지도 못할 테니 말이야.”
조범이 담담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과 달리, 유도는 사방을 둘러보다가 황충에게 달려들어 발을 붙잡으며 말했다.
“나, 나를 살려 주기만 하면 누구든 따를 것이니, 제발 도와주게. 조 태수의 말마따나 나를 죽인다고 하여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그야말로 태수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비굴한 태도였다. 하지만 이미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알고 있는 조범은 유도에게 잔인한 현실을 일깨워 주었다.
“무엇이 달라지긴, 자리가 생기지 않는가. 태수 자리가 무려 세 개나 생기면, 유 사군을 돕는 이들에게 자리 하나씩 만들어 줄 수 있지. 아, 어쩌면 자네는 살아남을 수도 있겠군.”
조범의 희망적인 이야기에 유도는 체면 따윈 잊어버린 듯 황충의 앞에서 바닥에 머리를 찧으려 했다.
그러다 문득 황충과 눈이 마주쳤는데,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더욱더 애걸복걸하듯 매달렸다.
“그래, 나를 살려 주게. 내 유 사군이 돈을 원하면 주고, 병사를 달라 하여도 다 내주겠네. 그래, 혹시 볼모가 필요하다면 내 아들도 보내지. 그러니 제발 목숨만 살려 주게.”
그러나 황충의 눈동자가 흔들린 것은 유도를 죽이는 것에 망설여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뛰어난 조범의 식견에 놀란 것이었다.
능력이 애매한 이들을 형남 사군의 태수 자리에 올린 것이라 여겼는데, 그런 생각과 달리 환계나 조범은 꽤 뛰어나 보였기 때문이다.
그사이, 조범이 황충에게 다가가 말했다.
“공심(工心, 마음을 다루다)의 끝은 계(計)를 쌓지 않는 법이네. 자네의 주인이 유비인지, 황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계를 쌓아 암행을 이루었으니, 누가 진실로 그를 따르겠는가. 또한, 이렇게 형주를 얻었으니, 다음에도 마찬가지의 수를 또 떠올릴 것이네. 명심하게. 쉬이 얻는 것은 쉬이 나가리라는 것을 말이네.”
조범은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고 자리에 앉아 버렸고, 김선이나 유도는 그러한 조범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때, 밖에서 병사 한 명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
“환 장사가 탈출했습니다! 환계에게 은혜를 입은 인물이 문을 몰래 열어주었다고 합니다.”
황충은 인상을 팍 찌푸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장사로 가는 모든 길목을 차단한다. 또한 장사로 가서 형주 사군 태수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인수(印綬)를 받아 오라. 환계의 병사들은 어찌 되었는가?”
“모두 옥쇄하여 사살하였습니다. 성 밖의 병력 또한 모두 처리하였습니다.”
“다른 병사들은?”
“어찌할지 몰라 하며 어영부여 헤매고 있습니다.”
황충은 유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병사들을 안심시키시지요. 유 사군께서는 같은 유씨들이 싸우는 것을 더는 원치 않으십니다.”
황충의 따스한 말에 유도는 눈물을 닦고 일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알았네! 내 군사들을 진정시키고 옴세!”
그런 후, 조범을 스윽 바라보고는 황충에게 물었다.
“조 태수의 병력은 어찌할 것인가?”
“우선 투항을 권고할 것입니다.”
“그런가? 내 동향 사람이 아장으로 있으니, 그에게 내가 말해 봄세. 걱정하지를 말게. 내 조 태수의 병사들이 항복할 수 있게 해 주겠네.”
황충이 웃음을 보이자 유도가 뛰듯이 방을 나섰고, 그 모습을 지켜본 조범이 입을 열었다.
“이제야 내 목을 가져가려는가?”
“유 사군의 밑에 들어오는 것은 어떠시옵니까?”
“사군 태수들의 면면을 다 보아놓고서 그런 말을 하는가. 내 비록 눈치는 빨라도 계를 쌓고 실행시키는 능력과 군을 이끄는 능력 따위는 없네. 거기다 궁지에 몰린 항장이니, 어디에 써먹을까. 기껏 해 봐야 죽을 자리로 서신이나 전달하겠지. 차라리 내 깔끔히 죽겠네. 아, 김 무릉. 자네가 이 일을 꾸몄으니, 내 가족은 대신 돌봐 주게. 이제 할 말은 다 했으니, 죽이게.”
말을 마친 조범이 바닥에 머리를 내놓자 황충의 옆에 있던 무인이 칼를 건네었다. 황충은 잠시 안타까운 표정을 짓다 이내 단호하게 월도를 내려쳤다.
팍!
이내 조범의 목이 잘려 머리가 바닥에 굴렀다.
그와 동시에 형남 사군이 유비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