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360
360화
비가 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기도 하며, 농사일하는 이들은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그런 속담이다.
그러나 땅이 굳어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가벼운 흙들은 날아가고, 산처럼 비탈이 진 곳의 흙은 쓸려 내려가기도 하니, 땅을 다지지 않으면 그저 쓸모없이 웅덩이나 생기는 법.
즉, 아무 땅이나 굳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흙이 쓸릴 곳은 뒤집어엎어 고르게 만들고, 물이 고일 곳은 배수가 잘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승태는 쓸려 내려갈 부유물 같은 이들을 죄다 뒤집어서 다지는 중이었다.
“지금 그대들이 해야 할 것은 생각이 아니라 그저 따르는 것이오.”
진등의 얼굴은 새파래졌다. 여기 모인 사족(士族)들과 유자(儒者)들을 향한 선전포고 같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로 도망쳐 온 사족들이야 승태가 과거에 흔들고 털어 내어 별다른 힘을 가지지 못했지만, 지방에서 글을 가르치며 학생들을 거느리기는 했다. 그들은 사족뿐만 아니라 민중의 평가를 만들고, 소문을 통해 민심을 끌어내는 작자들이었다.
처음에는 학문을 가르치는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것이 권력화되며 문제점이 나타났다. 어린 학생들은 노회하고 간사한 이런 인간들의 요사한 입에 쉽게 넘어가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승태의 말에 반발하는 인물들이 보이는 것도 당연했고, 서주의 상황을 잘 아는 이들 역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승태는 그들에게 쐐기를 박아 주었다.
“조정은 바뀌지 않소. 아니, 고래로부터 바뀌지 않았다는 게 맞겠지. 사실 그대들이 뛰어난 명성이나 능력이 있다면 굳이 여기서 안주하지도 않았을 것이오. 능자(能者)는 위기와 맞닥뜨리면 어떤 방식으로든 대응했을 테니.”
승태의 말에 순간 좌중이 조용해졌다. 물론 이곳에는 승태와 함께 지금의 위기를 타파하고자 한 이들도 있었지만, 빠르게 고향을 버리고 안전한 하비로 모여든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하비가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자, 진등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보며 그저 약간의 재산을 각출하였을 뿐. 그 이후로는 술자리를 가지며 천하를 논하고 이리저리 비판만 하고 있었다.
비밀리에 한 것도 아니고, 월단평처럼 사람들을 많이 모아 술을 마시며 세와 인물을 평하였으니 이런 행동이 서서의 눈과 귀에 잡히지 않는 게 더 이상했으리라.
이들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어중간한 위치의 유자(儒者)들이 가장 많았다.
“그대들이 술이나 마시며 사세를 논할 때 장수들은 앞서 나가 싸웠으며, 신료들은 나와 같이 전장을 맴돌았소. 공인들은 무기와 방패를 만들고 민초들은 먹을 양식을 내어놓았소. 글줄이나 읽으며 도움이 되지 않는 그대들은 무엇을 하겠소?”
이에 장간이 나섰다. 그가 나서자 사람들이 마치 승기를 얻은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당연히 승태에게도 전잘되어, 그는 앞으로 나선 장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장간이 입을 열자, 마치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믿을 수 있으리라는 착각이 들었다. 얼굴과 어조 등등, 굉장히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후께서 하신 말이 맞사옵니다. 하나 후께서도 저희를 필요로 하시기에 각지에서 글을 가르치도록 하신 것이겠지요. 또한, 고래로 인물을 논하는 것은 인사의 등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민심을 인지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옵니다. 어려운 지금 상황에 중요한 것은 민심을 하나로 모아 적과 싸울 수 있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찌 덕과 의를 아시는 분께서 이런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승태는 자신을 살살 긁으며 마치 이것이 옳다고 말하는 장간을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들에게 시혜를 베풀어 준 것도 감사하게 여겨야 할 판에, 이토록 자신만만하게 대적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진등도 장간이 이런 인물인 것을 알았기에 조심하라 이른 것 같았다. 예전의 승태였으면 좋은 게 좋은 거니 저들을 다른 방식으로 압박하는 선에서 끝냈을 것이다. 그러나 승태의 기분은 이미 나락이었고, 웃으면서 봐줄 여유도 없었다.
아니, 저 유사들이 지껄이던 말 중에 고순더러 몸을 잘못 놀려 이러한 사달을 만든 놈이라는 이야기만 없었다면 손을 잡고 함께 민심을 움직였을 수도 있으리라.
승태는 천천히 장간을 중심으로 의지를 모으는 유사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한 명 한 명의 면면을 자세히 보며 기억해 두었다.
“그대들도 같은 생각인 것 같군.”
승태의 말에 장간의 뒤에 서 있는 몇몇 인물은 움찔했으나, 설마 이렇게 모인 자리에서 무슨 짓을 하겠냐 하는 생각 때문에 도리어 고개를 쳐들고 당당히 승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승태의 표정을 본 노숙은 고개를 숙였다. 과거 승태가 호족을 밀어 버렸을 때의 표정이 딱 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진등은 그때의 모습은 모르지만, 노숙이 보이는 태도에 좋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승태는 자신의 옆에서 무엇인가를 계속 적고 있는 이를 향하여 말했다.
“사관은 사견 없이 명백히 적어라.”
사관(史官)이라는 직을 잘 모르던 장간은 의아해하며 그를 보았다. 사관은 고개를 숙이더니 붓을 들고 무엇인가 표기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본시 민심이란 갈대와 같다. 이는 이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바람의 문제일 뿐이다. 즉, 바람이 병충을 가져오고 불씨를 가져오는 것이 문제일 뿐이지. 바람은 말과 글, 그리고 신념이다. 그리고 그 바람을 통해 병충과 불을 가져오는 자는 거짓된 글을 쓰고 거짓된 말로 혹세무민하는 인물이다. 감히 신의 이름을 부르짖고 기적을 말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높은 자리에 오른 자라면 능히 이를 다스려야 한다.”
승태의 말에 장간을 비롯해 뻔뻔한 태도로 서 있던 이들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고 나서 승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장간은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이는 책을 불태우고 학사를 죽인 시황의 죄악과 같은 것이오! 이렇게 한다면 어느 누가 그대를 따르려 하겠는가! 시황은 책을 태우고 사인을 죽여 결국에는 옳은 말을 하는 이들을 모두 잃어 나라를 무너트렸으니, 작금의 수춘후의 행태 또한 그런… 컥!”
승태는 말을 싸지르는 장간의 복부를 발로 차 버렸다. 그 모습에 놀란 다른 신료들은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분서갱유? 어디서 감히 분서갱유를 말하느냐!”
승태의 호통에 뒤에 서 있는 허정이 커다란 철퇴를 들고 있었다.
“모조리 잡아들이십시오.”
“이놈! 유학자들을 이렇게 대한 이들의 결말은 모두 좋지 않았다. 시황도 그러했고 항우도, 왕망도 그러했다. 네놈도 유자를 건드렸으니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다!”
마구 저주를 내뱉었지만, 승태는 그 모습에 웃음을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유자? 정녕 네놈들이 유자를 대변하더냐?”
승태의 말에 다른 신료 중 유자들이 경기를 일으켰다. 특히, 과거 호족들이 어떻게 처리당했는지 알던 이들이 더더욱 크게 반응하였다. 지금 살아남은 호족들은 승태의 휘하에서 고개를 숙이고 내어줄 것은 내어주는 이들 아닌가.
이들은 한사(寒士)들과 달리 잃을 것이 아직 많았고, 승태는 선을 잘 지키는 이들을 도리어 크게 중용하는 분위기이니 절대 척을 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아니, 도리어 지금 당장 수춘후의 아량에 힘입어 글이나 가르치며 세력을 키운 거만한 한사 세력의 포를 뜨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들 중 청주에서 이주한 왕랑의 수재 중 한 명인 가장 젊은 학자, 왕기가 나섰다.
“아니옵니다. 저들은 그저 혹세무민하는 이들이옵니다. 그들은 언로를 망가트리는 이단일 뿐이니, 주군께옵서 혜량하여 주소서. 양주와 서주의 유학을 익힌 자들은 모두 언로를 바르게 이해하고, 주군께서 행하시려는 것에 언제나 같이하고자 하옵니다.”
왕기의 말에 호족 세력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뿐이던가? 한사 세력 중에서도 승태가 제안한 시험에 통과하여 자리를 차지한 이들은 반기를 든 세력을 마치 벌레 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무시하고 있었다.
특히 그들을 대표하는 제갈근이 나아가 말을 하였다.
“주군, 옳은 말이옵니다. 저들은 학식이 부족하여 주군께서 넓힌 지금의 자리에도 발 하나 못 붙이는 이들입니다. 저런 이들이 어찌 주군의 높은 이상을 이해하겠습니까? 다만, 저들의 죄상을 천하에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대적이 앞에 있으니 그들을 먼저 처리함이 옳을 것으로 생각하옵니다.”
승태는 그들을 쓸어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리 하도록 하지. 혹세무민에 가담한 자들은 모조리 잡아 두도록 하고, 판단은 다음에 하도록 하지.”
“감읍하옵니다.”
진등은 속을 쓸어내리며 예를 표하였다.
“주군, 지금 조비가 기주의 원상을 공격했다는 소식이 있사옵니다. 또한 수춘의 혼란은 부인께서 직접 나서 상황을 정리했으며, 양주 남부는 대공자께서 직접 나서서 난을 일으킨 이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곳 합비는 어려울 수도 있으나, 양주의 다른 장수들이 나서 주었으니 능히 토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제야 승태는 방금 전까지 속에서 끓어오르던 분노가 어느 정도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이제 오롯이 여건만 남았군.”
* * *
장간은 질질 허정의 손에 끌려가다가 이내 특이한 방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 자리에는 서서가 짧은 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잘해 주었습니다.”
장간은 자신의 복부를 쓰다듬으며 서서를 바라보았다.
“힘들었소이다. 주군의 주먹… 다시는 겪고 싶지 않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안에서 이상한 생각을 한 이들이 꽤 많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선생께서도 영천에서 들어온 물건들을 꽤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 말에 장간은 실없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것은 일을 위해 썼을 뿐이오. 저들을 설득하려면 어쩔 수 없지 않겠소이까?”
“그럼 저희가 해 드릴 일은 이제 옥사의 문을 열어드리는 것이겠습니다.”
“나도 순가의 간자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소이다. 그런데 이런 일 한 번 가지고는 그들과 동조하는 이들을 치우기 힘들 터인데, 어찌 할 생각이오?”
“하아, 주군이 그동안 순가와 너무 오래 손을 잡은 게 문제이겠지요. 저희가 더 열심히 일해야 할 것입니다.”
“저희라… 나는 빼 주시오. 영천으로 가서 괜한 짓을 하다가 죽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말이오. 내가 그대들을 돕고 있지만, 선을 그어 둡시다. 나는 살고 싶소.”
“주군께서 영천까지 진군하지 않으실 것 같습니까?”
“내 그대를 돕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선을 지키자는 것이오. 물론 나는 배반자가 되어 도망가겠지만, 가능하면 지나가는 곳에 소식을 전해 주겠소. 그 이상은 무리요.”
서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세객인 장간이 이 정도나 한 것도 최대한의 성과였다. 서서가 아쉬운 표정을 짓자, 장간이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욕심이 과하면 다지려던 땅이 모조리 무너지기도 하는 법이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오.”
“그리하겠습니다. 주군께 전달하겠습니다.”
“주군께 도독과 관련된 일은 죄송하다고 전해 주시오. 내 바라는 바는 아니었소이다.”
서서는 아무 말 없이 서 있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나갔고, 허정은 다시 장간을 질질 끌어 옥에 가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