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tycoon RAW novel - Chapter (20)
정부의 요청
미군의 군무원일 때와 KATUSA로 근무할 때와 일을 같지만 달라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신분이었다.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바뀌었다. 그에 맞추어 군복을 입었다. 그에 맞추어 군인으로서 영내 생활을 해야 했다.
장교들은 결혼하고 영외 생활도 할 수 있지만, 부사관 신분인 KATUSA는 사병과 같이 영내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아이언, 밖에 안 나가? 할 일이 많지 않아?”
“군인인데 부대 안에서 있어야죠.”
“네가 여기 있으면 안 되지…… 해 줘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저는 한국군 소속이잖아요. 마음대로 나가면 안 돼요.”
“그런 게 어디에 있어. 원칙보다는 일이 중요하지. 아이언이 할 일이 얼마나 많은 사람인데·……. 내가 한국군에 이야기할게.
영외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이유로 집에서 출퇴근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하지만 그런 것을 고깝게 보는 사람이 있었다.
미군 장교들은 대부분 서로 연관이 있어. 이곳에서 나의 위치를 알았다. 하지만 최근에 온 KATUSA 선배는 그것을 몰랐다.
그도 온 지 좀 되었고 미군 장교들이 나를 대하는 것을 보면 알 때도 되었는데 눈치가 없었다.
‘참…… 어이가 없네. 이렇게 사람이 눈치가 없나?’
어디나 그런 사람이 한둘씩은 있었다. KATUSA라고 예외는 없었다. 군대란 오만 사람이 모이는 곳이었다.
“이강철 하사, 대가리 박아!”
“네, 하사 이강철!”
“제대로 못 하나.”
“네, 하사 이강철!”
“다시 박아!”
중사의 명령에 훗날 원산폭격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지는 얼차려를 받았다. 원산폭격이라는 말은 한국전쟁 이후에 나왔다.
‘대체 이런 것을 어디에서 배운 거야!’
“자네는 왜 대가리를 박는 줄 아는가?”
‘부러워서 그러는 거지. 새꺄.’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대 학생이라는 녀석이 그런 것도 몰라! 이거 순 바보네!”
퍽―
쿵―
그의 발차기에 옆으로 쓰러졌다.
‘한국대 학생이라는 것을 부러워하는 줄은 알겠다. 시X.’
“다시. 대가리 박아! 동작이 느리면 10분 더 늘린다!”
“네, 하사 이강철!”
“다시 묻겠다. 자네는 왜 대가리를 박는 줄 아는가?”
‘또 부러운 것이 있어?’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 군인이 전쟁 시기에 집에서 자고 와! 그게 말이 되나!”
‘그게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이지? 군인이라고 모두 영내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잖아. 다 알면서 왜 그래?’
전방이나 그렇지, 후방에는 간부들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출퇴근했다.
“안 됩니다!”
“안되는 것을 알면서 그렇게 했나. 이거 고문관이네.”
퍽―
쿵―
‘그래, 네가 그것을 부러워하는 줄은 알겠다. 시X.’
“다시 묻겠다. 자네는 왜 대가리를 박는 줄 아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미국이 오냐오냐해 주니 네가 미군이 된 것 같지? 너는 한국군이야. 새꺄!”
퍽―
쿵―
‘그래 미군이 오냐오냐해 주니 열받은 건 알겠다. 그건 네 능력이지. 시X.’
그때 누군가가 얼차려를 받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는 얼차려를 받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래도 눈치 없는 중사는 신경 쓰지 않고 얼차려를계속했다.
‘확실히 눈치 없는 녀석이네. 누가 온 줄도 모르고…….’
그때 분노에 찬 고성이 날아들었다.
“중사, 이게 무슨 짓인가!”
이곳에 찾아온 군수 사령관이 열받는 것을 참고 천천히 그에게 물었다.
“중사, 다시 묻겠다. 지금 뭐 하고 있나.”
“부하를 교육 중이었습니다.”
‘야……. 진짜 눈치 없는 고문관이네. 군수 사령관 앞에서 당당히 저리 말하다니.’
미군도 사병 간에 얼차려가 있었다. 미군의 간부들도 군기를 위해 그것을 일부 묵인해 줬다. 하지만 상대는 군수 사령관이었다.
그는 일반 군 간부가 아니었다. 그런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공식적으로 인권국인 미국에서는 얼차려가 금지였다. 그는 그것을 묵인할 수 없는 처지였다. 거기에다가 얼차려를 주는 상대가 나빴다.
나는 군수 사령관에게도 필요한 사람이었다.
“이게 부하를 교육하는 것이라고! 자네는 이곳에서 일해서는 안 되겠군.”
“네? 무슨 말이십니까?”
“여기에서 나가라는 말이네.”
그에게 군수 사령관이 전출을 명했다.
“안 됩니다. 다른 곳으로 갈 수 없습니다. 저는 한국군 소속입니다. 이곳에서 근무해야 합니다.”
‘이건 눈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미친놈이었네. 군수 사령관에게 저리 말하다니.’
“그래? 그럼 한국군이 자네를 전방으로 전출을 보내면 되겠군.”
“네? 그건 안 됩니다. 저는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자네는 전방이 더 어울릴 것 같아.”
전방이라는 말에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그라도 이제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다.
“사령관님,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자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겠는가?”
“부하에게 가혹 행위를 했습니다.”
그가 확인 사살을 해 버렸다.
“자신의 잘못을 잘 알고 있군. 그럼, 전방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면서 반성하게.”
“안, 안 됩니다. 사령관님!”
사령관이 명령했다.
“이강철 하사, 잠시 나를 따라오게.”
그를 따라 집무실로 갔다.
“아니, 배가 들어온 지가 언제인데…… 왜 이리 늦었어.”
“보셔서 아시겠지만……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잘 봤죠? 나도 힘들었다고요.’
“그럼, 나에게 바로 이야기하지 그랬어.”
“한국군 내부의 문제라 말씀드리기가 어려웠습니다.”
‘부회장의 체면이 있지. 그런 걸 어떻게 보고해.’
“그래도 일에 지장이 있으면 바로 이야기해야지.”
“알겠습니다. 빨리 전달 드리겠습니다.”
바로 초량의 미래 상사 건물로 가서 물건을 들고 왔다. 일본에서 마루한의 손정희 사장이 보내온 물건이었다.
“3점밖에 못 구했습니다. 요새 일본인들도 살기가 나아지면서 시장에 잘 안 나오고 있습니다.”
“아쉽군.”
“대신에 모두 상등품으로 구했습니다. 한번 살펴보십시오.”
“그래? 빨리 보고 싶군. 보여 주게.”
그의 앞에서 직접 정성껏 포장한 상자를 풀었다.
“어떻습니까?”
“음·…… 괜찮은 물건이군.”
“19세기에 만들어진 아리타야끼입니다.”
“음…… 색상이 아름답군. 역시 이 하사야.”
“그런데 제가 그곳에 있는지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자네의 근무지로 가니 앤더슨 중령이 알려 주더군. 이런 건 그의 손에서 알아서 처리하지 말이야.”
“그럼, 저는 근무지로 가겠습니다.”
군수 사령관의 취미가 도자기 수집이었다.
‘도자기는 영국인이나 미국인이 좋아하는 수집품이지.’
그는 일본과 한국에 배치받은 김에 에도 시대에 만들어진 아리타 도자기를 많이 모으고 싶어 했다.
그것을 미래 상선의 배가 일본을 오고 갈 때 처리해 주었다.
그가 구하려고 하던 도자기가 늦게 도착하자. 직접 나를 찾아왔다.
* * *
근무지에서 앤더슨 중령을 만났다.
“어때, 아이언. 잘 처리되었어?”
“잘 처리될 것 같습니다.”
“아니, 할 일이 많은 아이언을 데리고 그 짓을 하다니 말이야. 눈치가 없어, 눈치가.”
‘그러게 말입니다.’
“괜찮습니다.”
“아니, 내가 안 괜찮아. 직접 나서고 싶은 것을 참았어. 그런데 내가 한국군에 이야기하면 모양새가 안 나잖아.”
‘아오. 말만……. 당신이 직접 나서지 그랬어. 그랬으면 내가 고생을 덜 했잖아.’
“이제 일 처리를 하는 데 문제없지?’
“알겠습니다. 이제 일을 빨리 처리하겠습니다.”
중사가 가혹 행위를 한다는 말을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단지 부탁받은 일 처리를 늦추었을 뿐이었다. 그러자 불편한 사람들이 스스로 알아서 움직였다.
며칠 후 중사가 전방으로 배치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미군들과 함께 공산군과 싸워야 할 것이다.
‘나를 미워하지 말라고……. 이건 내가 한 게 아니야. 당신이 자초한 거야.’
사령관이나 앤더슨 중령에게 이 일을 부탁한 적은 없었다. 그가 눈치가 없었다.
조직 내부에서 누가 누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알았어야 했다.
‘이건 정말 중요해.’
* * *
서울을 재수복한 이후에 한국전쟁의 전선이 고착화되었다. 지루한 대치 전선의 시작이었다.
최전방에는 휴전 협정을 앞두고 서로 조금이라도 더 많은 땅을 얻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후방은 조용했다. 임시 정부는 아직 부산에 있었고 많은 사람이 남아서 상황을 주시했다.
서울이 수복되자 빨리 서울로 올라갔던 사람들은 1·4 후퇴로 된통 당했다. 사람들은 아직 부산에 남아 휴전이 되기를 기다렸다.
덕분에 미래 그룹이 부산에서 하는 사업들은 변함없이 잘되었다. 돈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그것이 금은방과 환전소를 통해 금이나 달러로 바뀌었다. 거기에 일본에서 들어오는 엔화도 있었다. 일본에서 화물선을 사들인 이후에도 상당한 외화가 쌓였다.
‘이제 뭘 해야 하나? 할 일이 많아도 고민이군.’
지금 가진 외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네 가지 정도 있었다.
첫 번째는 벌크선을 추가로 구매하는 것이다. 벌크선은 쓰임새가 많았다. 한동안 배가 놀 일은 없었다. 수출입 물동량은 갈수록 늘 것이었다.
‘하지만 돈의 회수 시기가 너무 늦어.’
해운 산업은 투자하는 돈에 비해서 들어오는 수입이 적었다. 장기간에 걸쳐 원금과 이익을 회수해야 했다.
‘우선 급한 불을 껐으니. 다른 일을 해야지. 지금 해운보다 돈 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곧 고성장 시대가 다가올 것이다. 많은 외화를 거기에 묶어 놓기는 아까웠다.
고철과 수산물 말고 다른 수출품을 찾아서 외화를 빠르게 벌어들이는 것이 더 나았다. 그것은 동시에 내수 판매에도 도움이 되었다.
‘적산 불하를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한국에는 일제가 패망하면서 버리고 간 공장이 많았다.
* * *
다른 하나는 삼척의 시멘트 공장을 사는 것이다. 삼척의 시멘트 공장은 1938년 일본 오노다(小野田) 시멘트 회사의 삼척 공장으로 출발하였다.
삼척은 질 좋은 석회석이 풍부한 곳이다. 그곳은 항구가 가까워서 일본으로 수출하기도 편했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시멘트가 생산되어 일본으로 보내졌었다.
1945년 해방 직후 그 공장은 버려지고 생산이 중단되었다. 그 시기에 한국의 건설 수요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삼척은 서울에서 멀었다. 운송비가 만만치 않았다.
나라에 공장을 수리하고 운영할 돈도 없었다. 적산 공장은 섬유나 방직같이 돈이 적게 들고 운영하기 좋은 것이 인기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그 좋은 공장을 방치해 놓다니, 아까워.’
1953년 7월부터 운크라(UNKRA) 원조 계획으로 보수 공사를 하고 다시 시멘트 생산이 재개된다.
그것을 서양 그룹의 창업자인 이형구 회장이 삼척 시멘트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멘트를 생산하게 되었다.
‘차관으로 보수한 것을 거의 공으로 먹었어.’
시멘트 사업이 국내 건설 공사의 붐을 타고 크게 대박이 났다. 그 공장이 서양 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서양 그룹이 1956년 인수하기 전에는 국가가 관리했다.
‘어느 타이밍에 들어가야 할까? 운크라 원조로 공장이 보수되면 많은 이가 노릴 것인데……. 그전에 들어가는 게 좋은데 말이야. 지금은 애매해.’
한국전쟁 중에는 국가조차 관리를 포기했다. 강원도에서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아직 그곳에 돈을 투자하기에는 일렀다.
‘지금 일본이 건설 붐이라 그곳을 인수하고 정비해서 시멘트를 생산하면 대박인데. 아쉽네.’
일본은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석회 광산의 질이 좋지 않았다. 삼척의 석회 광산은 규모도 크고 해안에 인접해 있었다.
그곳에서 시멘트를 생산해서 수요가 많은 일본에 팔기가 좋았다. 굳이 국내의 건설 붐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좀 그렇고, 휴전되는 1953년쯤에나 생각해 보지.’
나머지 두 개는 미래 수산과 관련이 있었다. 그것은 북양의 트롤 어업과 남양의 참치 선망 어업이었다.
근해에서 벗어나 원양으로 진출하는 것도 괜찮은 투자였다.
한국의 원양 어업은 60년대부터이지만, 이런 건 일찍 시작하는 것이 더 좋았다.
‘남들이 다 잡아가기 전에 먼저 잡아야지. 늦으면 남긴 부스러기를 먹어.’
* * *
일본과 미국은 북태평양에서 많은 수산물을 잡았다. 2차 대전 전후로 어선의 규모가 엄청나게 대형화되었다. 그중에는 수천 톤급 어선도 많았다.
원양 어업은 북양 트롤 어업과 남양 참치 어업으로 나뉘었다.
그중 북양 트롤 어선은 찬 바다에서 명태나 대구를 잡았다.
한 척의 배에 거대한 그물을 끌면서 물고기를 쓸어 담았다. 쌍끌이 선단이 더욱 대형화한 형태였다.
그러한 배에는 선내에 잡은 생선을 가공하는 시설도 있었다. 그러한 가공 시설에서 뼈와 내장, 껍질들을 제거하고 살만 필렛(fillet)형태로 가지고 왔다.
그러한 냉동 필렛을 녹이고 튀기면 생선가스가 되었다. 영국의 유명한 피시 앤 칩스가 그것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그러한 수요가 많지. 그것 말고도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어.’
생선 살을 필렛으로 가공하지 않고 반죽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일명 서양의 피시 케이크나 오뎅, 다른 가공품으로 만들 수가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공품을 일본에 수출할 수 있었다.
지금 북태평양에서 공장식 트롤 조업을 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정도였다. 그래서 물고기가 미어터질 정도로 많았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진출하면 재미가 없어. 물고기를 싹쓸이해 버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도 미국을 모방해 북양에서 공장식 트롤 어업을 시작할 것이었다. 그때가 되면 경쟁이 치열해졌다.
‘모든 사업은 선점해야 이익이 커. 북양 트롤 어업이라…….’
원양 어업은 북양의 트롤뿐만 아니라, 남양의 참치 선망도 괜찮았다. 아직 일본은 참치를 연승으로 잡고 있었다.
연승은 낚시로 참치를 잡는 방식이라 많은 사람이 필요하고 그에 비해서 잡는 참치의 숫자가 적었다. 이것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도 참치 선망에 뛰어든다.
그렇게 쓸모없어진 연승 배를 한국이 수입해서 원양 어선 사업이 처음으로 생겨났다. 그 회사들이 나중에 참치 통조림으로 유명한 회사들이었다.
참치 선망 어선은 거대한 그물을 사용했다. 배도 크고 본선에 딸린 부속선도 많았다.
어군을 탐지하기 위해 고속 모터보트뿐만 아니라 헬기도 이용했다.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참치의 양이 엄청났다.
가다랑어나 황다랑어는 통조림으로, 참다랑어는 고급 횟감으로 팔렸다. 이것도 외화를 많이 벌 수 있는 사업이었다.
‘문제는 둘 다 하기에 돈이 많이 들어.’
북양이든 남양이든 지금 시작하면 큰돈을 벌 수 있었다. 문제는 둘 다 선박의 가격이 비쌌다.
수천 톤급 어선이 수만 톤급 벌크선보다도 더 비쌌다. 하지만 그만큼 수익성이 훨씬 높았다. 아직 바다는 어획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아 노다지였다.
‘북양의 트롤 어선이냐, 남양의 참치 선망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런 행복한 고민을 하는데, 예상치 않은 곳에서 미래 그룹으로 연락이 왔다.
“아버지, 무슨 일이십니까?”
“정부에서 미래 그룹을 불렀는데…… 네가 함께 가 주어야겠다.”
이제까지 미래 그룹은 정부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았다. 무슨 일로 부르는지 궁금했다.
‘뭔지는 가 보면 알겠지. 귀찮은 일이 아니면 좋겠는데…….’
정부에서 우리를 부를 때는 그들이 필요할 때였다.
그것은 보통 미래 그룹에 부탁하는 일이었다.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돈도 안 되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래도 정부에서 부르는데 안 갈 수는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