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tycoon RAW novel - Chapter (7)
새 출발
서두른 덕분에 서울에서의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전쟁이 터지기 전에 부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슬아슬했다.
6월 23일에 부산에서 짐을 풀었다. 급하게 재산을 처분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서울에 많은 지인이 있어서 가능했다. 아버지는 그들의 처지를 걱정했으나 비밀을 지키셨다. 그래도 부동산과 동산을 그들에게 저렴하게 넘겼다. 그래서 빨리 처분할 수 있었다.
“아버지, 그분들에게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대부분은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피난 오지 못합니다. 어차피 그분들에게는 그 돈들은 없는 돈이 될 것입니다.”
“그렇겠지?”
“네. 대신에 그분들이 무사히 부산에 오시면 그때 아버지께서 도와주는 것이 더 낫습니다.”
아버지도 그 말을 받아들였다. 직원이나 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을뿐더러 지금 도움을 주는 것보다 그들이 부산에서 고생할 때 도움을 주는 것이 훨씬 효과가 좋았다.
‘그들을 도와주려고 해도 방법이 없어. 아버지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사람들은 엄두가 안 나.’
전쟁이 터지면 많은 이들이 자신의 재산을 서울에 두고 부산으로 피난 온다. 그것은 이 시기의 재벌이라고 불릴 정도의 큰 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급하게 맨몸으로 빠져나온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나마 전국적으로 사업하는 사람들은 나았다. 부산이나 대구에 자산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 통에도 그것을 기반으로 큰돈을 벌었다. 전쟁이나 위기는 동시에 큰 기회이기도 했다.
‘전쟁만큼 큰돈을 벌 기회도 드물지. 전쟁은 돈 먹는 하마야.’
일본이 한국전쟁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한국도 베트남전쟁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산업화를 이루어 내었다. 전쟁에는 많은 돈이 오고 갔다.
흐름만 잘 타면 돈이 10배 또는 100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 흐름을 잘 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미래를 안다는 것은 매우 큰 이점이었다.
‘문제는 사업의 규모가 커지면 그 흐름을 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의해 그 흐름이 바뀐다는 거야. 그때는 상황에 맞추어 요령껏 해야지.’
* * *
한국전쟁은 재벌의 역사에서 중요했다. 재벌의 본격적인 시작은 이 시기부터라고 보아도 되었다. 대부분은 역사의 많은 부침을 겪으며 사라져 버리지만 몇몇은 한국 최고의 재벌로 살아남는다.
‘최상위권 재벌이 이 시기에 기반을 잡았어. 최고의 재벌이 되려면 이 시기를 놓칠 수가 없지.’
어느 재벌은 일본에 고철 판매로…… 다른 재벌은 동동구리무로·…… 누구는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귀속 재산 매수로……. 다들 그렇게 재벌이 되었다.
“아버지, 저희가 제대로 부산에 자리를 잡아야 지인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 이렇게 왔으니, 그들이 올 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겠다.”
아버지와 함께 각오를 다졌다.
* * *
그런데 부산에 내려오니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그냥 전 직원들을 몇 명이라도 데리고 올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이고……. 충성심 챙기다가 내가 먼저 죽겠네.’
세상은 생각과 실제는 조금씩 달랐다. 저번에 부산에 왔을 때 너무 많은 일을 벌였다. 다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아버지와 단둘이 그 일들을 처리하려 하니 죽을 맛이었다.
우선 계약한 빌딩과 상가, 땅, 주택들의 잔금을 치르고 이곳을 인수했다. 그 일들을 처리하는 사이에 전쟁이 터졌다.
조금만 늦었어도 그들 중에 마음이 바뀌는 사람들이 나올 뻔했다. 전쟁 소식에 내놓은 매물을 거두어들이는 사람도 있었다.
“정말 네 말 그대로 전쟁이 터졌구나. 이거 참, 감정이 뭐라 할 수 없이 미묘하구나. 모두 살아서 이곳으로 잘 와야 할 것인데…….”
전쟁을 피해서 부산에 내려올 수 있었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난 것을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옛 직원이나 아버지의 지인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누나도 저번에는 잘 내려왔지만, 이번에는 확신할 수 없었다. 변수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었다.
“아버지, 이제 사람도 뽑고 일을 서둘러야겠습니다. 잘되어야 친구분들도 챙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 서두르자.”
“먼저 회사의 이름부터 짓죠. 그래야 사람을 뽑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름은 왜 그러냐. 오랫동안 가문에서 사용하던 한성이라는 이름을 버리려고?”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정미소와 쌀가게는 한성 정미소였다. 한성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았다는 의미였다.
이번에 새로 시작할 사업은 서울에만 국한된 사업은 아니었다. 거기에 여기는 부산이었다. 그 이름 대신 새로운 이름을 짓는 것이 더 나았다.
“한성도 나쁘지 않지만, 좀 오래된 느낌이 납니다. 새로 시작하는 사업이니 새 회사명이 낫지 않겠습니까?”
“네가 생각하는 것이 있는 모양이구나.”
아버지의 말이 맞았다. 이미 이름을 정해 놓았다.
“미래 상사(商社)입니다.”
“나쁘지 않은데 상사는 무역하는 회사가 아니냐? 너는 무역을 할 생각이냐.”
“네, 아버지. 자원이 적은 한국에서는 무역이 아니면 먹고살기 힘듭니다.”
“하지만 이 나라에는 무역할 만한 자원이 없지 않으냐.”
‘자원이 있어요, 아버지……. 지금 사방에 널린 게 자원이에요.’
“이제부터 그것을 찾아야지요. 이곳에서도 찾아보면 수출할 것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수출이라…….”
“사람도 자원입니다. 그들로 무언가를 만들어 팔면 됩니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는 사람도 자원이었다. 노동력과 지식, 기술, 문화도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었다. 상품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포장하여 파는지도 중요했다. 물건을 파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니지. 주위에 다른 자원도 있어.’
천연자원과 사람도 자원이지만, 다른 자원이 정말 사방에 널려 있었다.
* * *
초량에서 매입한 2층 빌딩에 미래 상사라는 간판을 만들어 붙였다. 그 옆에 크게 사람을 구한다는 구인 공고도 붙였다.
그러한 구인 공고를 보고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구하러 모여들었다. 벌써 피난민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 말고도 부산에서 할 일이 없어 놀고먹는 사람이 많았다.
‘문제는 그중에서 그리 괜찮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네. 어느 시기나 이것은 문제야.’
구직하는 처지에서는 노는 사람이 많아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었다. 구인하는 회사에서는 노는 사람은 많은데 쓸만한 사람이 적었다.
이 시기는 한국에 일자리가 없어 태반이 백수였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경험과 기술이 없었다.
“면접을 봤는데 썩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구나.”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은 많은데, 그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괜찮은 사람은 이미 다른 곳에 취업해 있거나 서울에 있었다. 아버지는 면접 보러 온 사람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중에서 당장 쓸만한 사람을 다섯 명 정도만 고르세요. 괜찮은 사람은 이제 많이 몰려올 것입니다.”
“알겠다. 그런데 다섯 명으로 충분하겠느냐? 우리가 여기에서 벌이는 일이 많은데.”
여기에서 벌이는 일이 많았다. 금은방과 환전소, 상점과 주택 관리, 국수 공장, 어묵 공장이 있었다.
“다섯이면 충분합니다. 나머지는 그들이 뽑게 하십시오. 저희가 이 지역 사람들을 잘 모르지 않습니까?”
“그들이 괜찮은 사람들을 뽑을 수 있겠느냐. 자신이 아는 사람을 뽑겠지.”
지연과 학연, 혈연이 심각했다. 아버지의 우려도 타당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저희는 이곳에 기반이 없지 않습니까? 우선은 이 지역의 사람을 써야지요. 그게 편합니다.”
“그들이 문제가 있는 사람이면 어떡하느냐?”
“그런 사람이면 피난민들이 몰려들 때 교체하면 됩니다. 한동안 쓸만한 사람이 없어서 고생할 일은 없습니다.”
이곳으로 거의 전국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부산의 인구가 100만을 넘어선다. 그때는 능력 있고 학벌 좋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골라 쓸 수 있게 된다. 지금은 당장 필요한 사람부터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아버지, 정미소에서 일하던 사람이 오면 쓰시겠다면서요. 친구분이나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우선 여기에서 먼저 자리부터 잡으시죠.”
“그래, 자리를 먼저 잡는 것이 우선이지.”
이곳에 자리를 잡는 것이 우선이었다. 빨리 자리를 잡아야 호기가 왔을 때 기회를 잡을 수가 있었다. 지금부터는 속도 싸움이었다.
‘지금부터는 1분 1초가 아까워.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성장 속도가 달라져.’
* * *
아버지가 면접을 본 사람 중 그나마 마음에 든 사람 다섯을 뽑았다.
“이춘재 씨, 예전에 금은방을 해 본 경험이 있다고요?”
“네, 맞습니다.”
“그럼, 지급부터 광복동에 있는 상가들을 모두 금은방으로 꾸미세요.”
“네? 여섯 개 상가 모두 말입니까?”
여섯 개나 되는 큰 상가를 모두 금은방으로 만들라는 말에 이춘재가 놀랐다. 그는 하나 정도 예상하였을 것이다. 그에게 굳이 이유를 말해 줄 필요는 없었다.
“다시 말하겠습니다. 이춘재 씨, 그곳을 모두 금은방으로 꾸미세요. 거기에 환전소도 세울 것입니다. 그것에 맞게 사람도 뽑으세요.”
“그 일을 제가 모두 다 하라는 말입니까?”
‘그럼 내가 하리…… 나도 할 일이 많아.’
“왜, 해낼 자신이 없습니까? 다른 사람을 뽑아서 그 사람에게 맡길까요?”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며칠 전에 전쟁이 터졌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가면 갈수록 일자리를 구하기는 더 힘들어질 것이다. 할 수 없어도 그가 해내야 한다.
‘다 마찬가지 상황이야.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해내야지. 이 시기에 모든 것을 갖추어 놓고 시작할 수 없는 법이야.’
힘들기는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어영부영하면 피난민들이 몰려들기 전에 사람도 못 구하고 상점의 개점도 못 한다. 서로 시행착오를 겪어 가면서 어떻게든지 해내야 했다.
이춘재에게 지시하고 다른 네 사람에게도 해야 할 일을 이야기했다.
“이병철 씨는 국수 공장을 맡으시고 최종건 씨는 오뎅 공장을 맡으세요. 곧 일본에서 기계들이 곧 들어올 것입니다. 그것에 맞추어 생산을 준비하세요.”
“저는 국수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오뎅은 만들어 본 적이 없는데요.”
이번에 뽑은 이병철과 최종건 둘 다 국수 공장 출신이었다. 이병철에게는 국수 공장을 맡기고 최종건에게는 오뎅 공장을 맡겼다.
“국수 공장이나 오뎅 공장이나 둘 다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 사람이 먹는 것입니다. 제가 요구하는 것은 특별한 게 아닙니다. 사람이 먹을 수 있게만 만들어 주세요.”
‘굶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하는 시대야. 사람이 먹을 수 있게만 만들어도 잘만 팔려.’
조만간에 사람이 못 먹을 만한 것도 돈을 주고 팔게 된다.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도 다시 끓여 꿀꿀이죽으로 판다.
그것을 먹기 위해 부산 바닥에 긴 줄이 늘어섰다. 그것도 못 먹어 굶는 사람도 많았다. 정말 사람이 먹을 수만 있게 만들면 되었다.
“최종건 씨, 한번 해 보세요. 음식물에 담배꽁초나 쓰레기만 넣지 마세요. 그것만 지켜도 충분합니다.”
* * *
금은방과 국수 공장, 오뎅 공장을 맡길 사람을 뽑았다. 이제는 그곳들을 관리할 사람을 정해야 했다.
“김춘삼 씨, 부산에서 힘쓰는 사람을 안다고 했죠.”
“하모예. 지가 이 동네 동생들을 쪼까 압니다.”
“남포동의 가게들과 부평동에 만들 가게들을 관리해 주세요. 부민동의 빈 주택도 도둑이 안 들게 관리해 주시고요.”
“고건 지에게 맡겨 주이소. 지가 단도리 잘하겠스예.”
김춘삼은 건달은 아니지만 남포동 일대에 아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 중에는 건달들도 있었다. 남포동과 부평동은 곧 피난민들로 북새통이 된다. 전국의 오만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그곳으로 몰려나온다.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뭐든지 할 것이야. 정글처럼 서로 잡아먹기 위해 난리가 나겠지.’
특히 부평 깡통 시장은 미군에서 빼돌린 물건을 파는 곳이다. 온갖 인간 군상이 다 모이는 곳이었다. 그런 곳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김춘삼과 같은 사람이 필요했다.
부민동의 고급 주택도 마찬가지였다. 빈집을 관리를 안 하면 피난민들이 마음대로 들어와서 살게 된다.
피난민 중에는 앞날이 없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 사람들을 집에서 쫓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곳에 못 들어오게 막아야 했다. 공권력이 바닥인 상황에서는 자력 구제를 할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광복동의 금은방이나 다른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돈이 된다는 것이 알려지면 온갖 날파리들이 꼬인다.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도 부산에 기반을 둔 사람을 고용할 필요가 있었다.
“제대로 못 하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맡게 될 것입니다. 동네 동생들이라고 봐주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더.”
이 시기에는 김춘삼과 같은 사람도 많았다. 얼마든지 대체할 사람이 있었다. 제대로 사람들을 단속해야 할 것이었다.
‘뭐야, 이런 룸펜 같은 사람은……. 어쩔 수 없지. 당장 무역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을 구할 수 없으니.’
마지막은 상사답게 무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려 했지만 그런 사람이 없었다. 대신에 일본에서 유학하고 부산에서 노는 사람을 구했다.
영어와 일본어를 모두 하지만 이 시대의 사람치고는 일본어가 능숙하지 못했다. 일본어를 잘하고 일본을 잘 아는 사람을 고용했다.
그는 일본어에 능통하고 영어도 할 줄 알았다. 그 정도만 해도 고급 인력이었다.
“이창동 씨, 미래 상사는 일본과 무역도 하게 될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사장님을 도와 전반적인 일을 봐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부사장님. 일을 빨리 배워서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이창동 씨는 일본의 와세다 대학을 나왔지만, 일종의 룸펜(Lumpen)이었다. 룸펜은 많이 배웠음에도 그 지식을 쓸 데가 없는 슬픈 지식인을 일컫는 말이었다. 해방된 조국에는 일자리가 많이 없었다. 전국에 그러한 룸펜이 많았다.
“모두 지금 하는 일이 새로울 것입니다. 처음이라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임해 주십시오. 당장은 다소 못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한 달 후에도 그대로라면 그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바뀔 것입니다.”
한 달 후에는 경험이 있고 능력이 있는 이들이 부산으로 많이 올 것이다. 그때도 지금 같으면 새로운 이들로 대체하면 된다. 이들에게 맡긴 일은 노력하면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미래 상사도 부산에서 새롭게 시작했다. 미래 상사도 한 달 안에 부산에서 자리를 잡아야 했다. 그것을 위해서는 모두가 열심히 일해야 했다.
한 달 후에는 능력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회사들도 부산으로 내려온다. 그들과 경쟁해야 했다.
나도 빨리 자리 잡지 못하면 경쟁자에게 밀려나게 될 것이었다. 새로 뽑은 다섯 명과 처지가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미래 상사가 부산에서 새 출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