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Expenses RAW novel - Chapter 164
제164화
조개와 혼인하기 전, 첫째 부인과 넷째 부인은 그녀에게 집안일을 돌보고 장부를 관리하는 법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석 달 동안 배우며 감을 익혀 두었지만, 뜻밖에도 조개는 그녀가 피곤해질 일이 없도록 조처를 해 놓았다.
정왕부의 서무는 여전히 왕 관사가 맡고 있었고, 격월에 한 번 그녀에게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보고하게 했다. 덕분에 위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가한 시간을 보내 왔던 것이다.
위라는 조개가 이렇게 겸허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 평소에 전혀 떠벌리지 않아 알지 못했는데, 조개의 창고에는 귀한 물건들을 잔뜩 쌓여 있었다.
창고 앞에 선 위라가 물건들을 쭉 훑어보았다. 엉망진창으로 놓인 낡은 서화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거나 하나 집어 들어도 갖가지 보물이었다. 과거 왕조의 하나뿐인 친필들, 현대의 진귀한 보물들. 모든 것들이 감히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것들이라, 위라는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창고 구석에는 거미줄이 늘어진 화통(畵筒)이 놓여 있었다. 위라가 그 안에서 금 테두리가 둘린 그림을 꺼내 펼쳐 보니, 놀랍게도 전대 왕조의 서화의 대가 황이(黃頤)의 납매한아도(臘梅寒鴉圖)였다.
오래전에 소실되어 진품은 물론이거니와 모조품 역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건만, 조개는 이런 그림을 창고에 대충 구르게 둔 것이다. 족자의 낙관을 자세히 살펴 보아도 황이 선생의 인장이 틀림없었다.
이제 그녀의 시선은 화통으로 향했다. 산수 누각이 백자로 조각된 대나무 통이었다. 대나무 통에 족자 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에 임중원(任重遠) 선생뿐이었다.
아쉽게도 그는 평생 화통을 딱 세 개밖에 만들지 않았는데, 그중 하나는 임 선생과 함께 묻혔고, 다른 하나는 황제의 서재에 있었다. 남은 하나가 바로 이 화통이었다. 이토록 진귀한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완전히 잊고는 창고에 처박아 두다니.
조개를 보는 위라의 눈빛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위라가 옆에 있던 팔보각에 다가가 산호충 분재 하나를 들었다.
“이건 뭐예요?”
“태후마마께서 주신 것이다. 산호 중에서도 가장 귀한 붉은 산호지.”
위라가 분재를 내려놓고는 다른 걸 가리켰다.
“그럼 이 침봉은요?”
“이건 어룡 두 마리가 새겨져 있고 붉은색, 흰색이 섞인 마노로 만든 침봉이다. 십 년 전 오융인이 항복하면서 선물한 것이야.”
위라는 금으로 만든 조롱박 위에 쌓인 먼지를 불어 털었다.
“그럼 이건요?”
조개가 조롱박을 한번 본 후 설명했다.
“상아로 조각된 조롱박이야. 어떤 대신이 준 건데, 딱히 내력은 없다.”
“…….”
이렇게 많은 보물이 조개에게 모욕을 당하고 있다니!
위라는 경악을 감추며 창고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켜켜이 먼지 쌓인 보물들이 아까울 따름이었다. 다른 이들은 구하려야 구할 수도 없는 보물이건만, 조개는 배추 쌓아 놓듯이 아무렇게나 쌓아 두지 않았는가. 그녀가 오늘 와 보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빛을 보지 못했을 물건들이었다. 위라는 그를 할퀴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물건을 함부로 관리할 수가 있어요?”
조개가 웃으며 말했다.
“예전엔 관리할 사람이 없었다. 난 방 안에 물건이 많은 걸 싫어하니, 전부 여기에 두었을 뿐이지. 맘에 드는 게 있으면 하인에게 깨끗이 닦아 가져다 두라고 하거라. 놓을 자리도 네 마음에 드는 곳으로 하고.”
마침 위라의 마음에 딱 드는 말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많은 보물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다. 제대로 정리해야 마음이 편할 듯싶었다. 애초에 영 귀비에게 올릴 선물을 고르러 왔지만, 이제 보니 하나같이 귀한 물건들이라 아무것도 내놓고 싶지 않았다.
위라는 창고에 오기 전보다 더 깊은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고르고 골라 연꽃 위에 누운 원앙이 마노로 조각된 서진과 여섯 마리의 용이 조각된 금함 난연(暖硯, 겨울에 먹물이 얼지 않도록 만든 벼루)로 정했다. 그녀가 아쉬운 듯 말했다.
“이거 두 개로 해요. 영 귀비마마께서 그림을 좋아하신다고 하니, 이거 두 개면 비위를 맞추기엔 딱일 거예요.”
조개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감격한 듯 말했다.
“우리 아라가 많이 컸구나. 처세술에도 능하니 말이다.”
위라가 그의 손을 뿌리치며 그를 기막힌 눈길로 쳐다보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영 귀비가 흉터를 없애는 귀한 약을 줬는데 어찌 보답을 하지 않는단 말인가?
* * *
선물을 보낸 후 사나흘이 흐르자, 위라의 목에 남은 잇자국은 점점 흐려졌다. 장 태의 말로는 소기산을 열흘 정도만 더 바르면 말끔히 사라진다고 했다.
조개는 그제야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날이 서서히 추워지고 있었다. 겨울이 오고 있으니, 옷을 두껍게 입으면 위라의 목에 남은 흉터는 저절로 가려질 터였다. 그 사실이 조개의 마음을 겨우 달래 주었다.
최근 위라는 영국공부의 소식을 하나 받았다. 첫째 부인이 위상인의 혼사를 정했는데, 상대는 바로 평원후부의 딸 양옥용이었다.
평원후 부인은 처음엔 내키지 않아 했다고 한다. 위상인의 다리가 낫고 있다고는 하나 완전히 나을지는 미지수가 아니던가. 막상 딸을 시집보냈는데 위상인의 다리가 완전히 낫지 못한다면, 그때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평원후 부인의 고민이 깊어 갈 무렵, 위상인이 직접 평원후부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진심이 담긴 설득 끝에 평원후 부부는 혼인을 허락했다.
양옥용이 위상인에게 시집가는 건 전혀 손해 보는 일이 아니었다. 영국공부는 세습되는 작위였으므로 위상인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의 다리가 완쾌되면, 적장자인 그에게 작위가 돌아갈 것이었다. 그러면 양옥용은 저절로 국공부인이 되니 아가씨일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신분이 될 터였다.
위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양옥용을 생각하며 기뻐했다. 두 사람의 일이 감격스럽기도 했다.
전생에서 양옥용과 위상인의 결말은 얼마나 비참했던가. 이번 생에서 많은 것들이 달라지며, 두 사람이 마침내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위라로서도 너무나 기쁜 일이었다.
양옥용과 위상인의 혼사는 내년 이월로 정해졌다. 시간이 촉박했다. 위상인은 조개보다 생일이 빨랐지만 다리 때문에 혼사를 미뤄왔던 것인데, 이왕 혼사가 정해졌으니 첫째 부인은 서둘러 며느리를 들여 식구를 늘리고 싶어 했다.
날짜를 세어 보니, 위라가 양옥용과 만나지 않은 지도 한참이 지났다. 조개에게 시집간 후, 위라는 아가씨 때처럼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졌고, 단짝 친구와의 왕래도 줄었다. 그래도 위라와 양옥용의 우정은 변함이 없을 터였다.
위상인과 약혼한 양옥용을 이제 ‘새언니’라 불러야 하는데, 양옥용의 방글거리는 얼굴을 생각하니 위라는 입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고 계집애, 지금 얼마나 행복할까.
위라는 미소를 머금고는 주칠을 한 나전 항탁 뒤에 앉아 서신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의 촉촉하고 동그란 눈에 웃음기가 서리고, 보드라운 분홍빛 입술은 귀에 걸렸다. 오랜만에 보이는 즐거운 표정이었다. 옆에서 을 보던 조개가 턱을 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구한테 쓰는데 이리 즐거운 게냐?”
위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다 쓴 다음 봉랍으로 잘 봉하고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말했다.
“옥용이한테요. 요즘 날씨도 좋은데 같이 천불사에 가자고 했어요. 간 김에 소원을 들어주신 보살님께 감사도 드리고요.”
조개가 느긋하게 “오.” 하는 소리를 냈다.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어째서 네가 소원을 빌었다는 걸 몰랐을까? 어디 이 지아비에게 말해 보거라. 보살님은 널 못 도와줄 수도 있지만, 나는 널 도와줄 수 있다.”
위라가 서신을 금루에게 건넨 다음 그의 뒤에 서서 말했다.
“잊으셨어요? 지난번에 첫째 백모님께서 천불사에 가서 소원을 비셨잖아요. 상인 오라버니의 다리가 빨리 나을 수 있게 해 달라고요. 오라버니가 도와주셔서 첫째 백모님이 청망 대사님을 뵐 수 있었던 건데.”
그녀의 말에 조개도 기억을 떠올렸는지 웃음 지었다.
“당연히 기억나지. 내가 거기서 너한테 처음으로 입을 맞추지 않았더냐.”
위라는 그의 점잖지 못한 표정을 외면한 채 말을 이었다.
“옥용이가 상인 오라버니랑 약혼했으니, 이제 위씨 집안을 위해 향도 올리고, 부처님께 절해도 좋잖아요. 게다가 저랑 못 본 지도 오래되었고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얘기도 좀 하고…….”
조개는 이렇다 할 기척이 없었다. 그가 위라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혼인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지아비를 버리고 다른 사람과 놀러 나가? 내가 허락하지 않을 게 걱정되지도 않으냐?”
위라가 뒤에서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희고 부드러운 분홍빛 얼굴이 바짝 붙었다. 그녀가 촉촉하고 큰 눈을 깜박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허락 안 해 주실 건가요?”
영리한 말이었다. 마치 그가 허락하지 않으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과도 같다는 말투였다. 조개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단 말이냐?”
위라는 그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었다. 자신의 환심을 사 보라고 할 게 뻔했다. 그래서 “쪽.” 하고 그의 얼굴에 입을 맞췄다. 소리가 맑고 낭랑했다.
“됐죠?”
조개가 낮게 웃었다.
“성의가 부족하구나.”
위라는 하는 수 없이 그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녀가 그의 입술을 물고 그가 평소에 하던 대로 천천히 빨았다. 그래도 숫기가 없고 부끄럼이 많은 아가씨였던지라 금세 귀까지 달아올랐다. 그러나 조개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새카맣고 깊은 봉안으로 미소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이게 다냐고 묻는 것 같았다.
위라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상황에선 도도함 따윈 집어치우고 성심성의껏 비위를 맞추는 게 상책이었다. 그녀는 그를 사탕이라고 상상하며 입에 물고 천천히 빨았다. 조개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는 걸 느낀 그녀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를 놓아주었다. 동그란 눈에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위라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조개를 바라보았다.
“나가도 될까요?”
이래도 안 된다면 더는 방법이 없었다.
조개가 그녀를 당기며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나에게 좋은 생각이 하나 있다…….”
그는 위라의 발그레한 얼굴을 보며 그녀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댔다. 그러고는 가볍게 그녀의 입술을 쓰다듬었다. 눈빛이 그윽해졌다.
위라가 물으려 했다.
“무슨 생각이요?”
조개는 그녀를 밑으로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