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itional Healer became a surgeon RAW novel - Chapter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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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장관님은 제가 아주 우습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왕주정 의원의 첫마디에 박진상 장관의 얼굴이 굳었다.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 어머니를 치료해 준 신의에게 부탁해서 한한령을 부분적으로나마 철폐해 주라고 하셨다면서요?”
“아! 네. 제가 하는 것보단 아무래도 왕 의원님의 호감을 사고 있는 의사가 말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부탁을 했습니다.”
박진상 장관은 말을 하며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설사 자신이 이민호에게 어려운 부탁을 했다고 해도 왕주정 의원이 이렇게까지 정색할 일은 아닌 것 같았는데, 지금은 마치 사드 문제로 양국의 관계가 악화됐을 때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외교를 참 쉽게 하시네요? 의사는 의사로서 할 일이 있고 외교부 장관은 장관으로서 할 일이 있는 것 아닙니까? 신의에게 국가의 대소사를 결정할 어떤 권한이라도 있습니까?”
“어, 없습니다.”
“그럼 아무런 권한도 없는 사람에게 호감 하나로 외교적 분쟁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 말이 되는 부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박진상 장관은 왕주정 의원의 말을 듣는 동안 얼굴이 붉어졌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권력의 정점에 있다 보니 박만덕 회장 같은 재벌도 윽박지를 수 있었지만, 타국의 권력자에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의원님 말씀대로 말이 안 되네요. 제가 생각이 짧아 의원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쯧, 외교부 장관이라면 소인배처럼 신의를 이용할 생각을 하지 마시고 어떤 카드로 저와 협상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세요.”
“알겠습니다.”
띠리리릭…….
그때 왕주정의 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왕주정은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깜짝 놀란 듯 황급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신의님. 아, 아니요. 얼마든지 통화 가능합니다. 제가 오전에 본국 쪽에 급하게 처리할 일이 좀 있어서 아직 어머니께 문안 인사를 드리지는 못했습니다.”
박진상 장관은 조금 전에 자신과 대화할 때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왕주정과 이민호와 통화하는 중에는 정중함을 넘어 상냥하기까지 한 왕주정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네? 검사 결과요? 네에! 저, 정말입니까? 허허…… 검사 결과가 좋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감사합니다. 이게 모두 신의님의 덕입니다. 네! 네. 네에? 아하! 신의님께서 정치범과 사상범이 한국인일 경우 우리나라에서 처벌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셨다면 당연히 개선해야죠. 물론 한국 정부에서도 어느 정도 처벌을 약속해야겠지만 그 약속만 이행된다면 별문제는 없습니다. 아! 그 부분은 걱정 마십시오. 주석께서도 그 정도의 일은 제 체면을 봐서 아량을 베풀어 주실 겁니다. 네, 네,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박진상 장관은 왕주정 의원이 이민호와 통화하는 것을 듣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화할 때 보좌관이 통역을 해 주지만 그렇다고 중국말을 전혀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왕주정이 이민호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박진상은 옆에 있는 통역 보좌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김 보좌관, 지금 왕 의원께서 정치범과 사상범 중 한국 국적인 사람이 감옥에 있다면 범죄인인도 조약에 따라 우리나라로 송환해서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한 것 맞지?”
중국과 한국은 범죄인인도 조약이 체결되어 있지만, 정치범과 사상범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고 있었다. 때문에 그런류의 범죄자들은 한국으로 송환되지 못한 채 중국 교도소에 오랫동안 수감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네, 이민호 의사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리긴 했지만 그렇게 이야기하고 왕 의원께서 수긍한 것 같습니다.”
박진상 장관은 통화를 끝내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왕주정을 보며 속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이 외교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문제는 한한령에 관련된 것이었고, 이민호에게 부탁했던 것도 그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민호는 자신의 부탁이 아닌 범죄자의 인권과 관련된 부분을 왕주정에게 부탁했고, 왕주정은 그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왕주정이 들어주겠다고 한 부탁은 사실 쉬운 부탁이 아니었다.
중국 공산당의 근간은 공산주의 사상이고, 그런 체계를 거부하는 사상범에겐 단호한 정권이다. 때문에 어찌 보면 한한령보다 더 꺼내기 어려운 문제였다.
“박 장관님.”
왕주정 의원이 부르자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던 박진상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민호와 통화할 때 보이던 정중하며 상냥한 목소리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고 그 자릴 위압적이며 고압적인 목소리가 대신하고 있었다.
“네, 왕 의원님.”
“신의께서 우리나라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한국 국적의 정치범과 사상범들의 송환을 요구하셨으니 그 일은 최대한 빨리 이루어지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아! 가, 감사합니다.”
“그들이 이 나라로 돌아가면 제대로 처벌받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래도 돌려보내는 것은 신의께서 특별히 부탁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
“만약 신의께서 한한령에 관한 부탁을 했더라면 박 장관님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생각해 고민을 했겠지만 그 부분이 아닌지라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한 겁니다. 그러니 혹여 나중에라도 신의를 이용해 외교할 생각은 말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제가 내일은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니 그 전에 협상할 수 있는 카드를 들고 오셔야 할 거예요.”
“네? 내일이요. 아직 여사님께서 쾌차하지 않으셨는데 돌아가시는 겁니까?”
“마음 같아서는 어머니가 쾌차하신 후 모시고 가고 싶지만 여러 산적한 일들이 많아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의원님이 만족할 만한 카드를 준비해 오겠습니다.”
잠시 후 왕주정 의원과 헤어진 박 장관은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한령을 풀기 위해 어떤 카드를 사용해야 할지 물었다.
* * *
“안녕하세요, 과장님.”
이민호가 인사를 하자 서요셉 과장은 약간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면 2주 전에 가슴과 배에 화상을 입었던 손미향 환자의 CEA(배양세포를 이용한 자가이식)수술을 할 예정이었다.
이민호가 찾아온 것은 그 수술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서요셉 과장이 불퉁한 표정을 지은 이유는 이미 이민호에게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는데, 그가 기어이 고집을 부려 왔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민호가 아닌 다른 의사가 이렇게 월권을 했다면 단단히 화를 냈겠지만, 이민호다 보니 그러질 못했다.
“굳이 한 손 거들러 오지 않아도 된다니까.”
“마침 한가해서요.”
“외상외과가 한가하다고? 그 말을 설마 나보고 믿으라는 것은 아니겠지.”
“그냥 믿어 주시면 안 될까요?”
이민호가 어깨를 으쓱이자 서요셉 과장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치료비를 지원해 준 것도 모자라 시간 날 때마다 들러서 드레싱 상태도 확인하고 오늘은 수술까지 참여하겠다니. 도대체 왜 손미향 환자에게만 그리 신경을 쓰는 건가?”
“그냥 이상하게 마음이 가네요. 저도 제가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이민호가 수술에 이렇게 기를 쓰고 참여하려는 이유는, 자신이 참여해야만 이식 성공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서요셉 과장이 불쾌해할 수 있기에 그냥 적당히 둘러댔다.
“혹시 여동생에게 화상을 입힌 오빠가 이민호 선생과 같은 이름이기 때문인가?”
“뭐, 그런 부분이 조금 있기도 하고요.”
“에휴! 만약 이 선생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림도 없었겠지만, 이 선생이니 특별히 허락을 해 주겠네.”
“감사합니다, 과장님.”
“뭐 사실 이 선생이 거들어 주면 나도 편하긴 해. 시간 됐으니 이만 들어가지.”
“네.”
“내가 가슴 쪽 이식을 맡을 테니까 이 선생이 배 쪽 이식을 맡아.”
“과장님, 죄송한데요. 제가 가슴 쪽을 맡으면 안 될까요?”
“뭐?”
순간 서요셉 과장의 인상이 찌푸려지자 이민호는 살짝 너스레를 떨었다.
“과장님의 수술 실력이면 어느 쪽이든 잘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저에게 어려운 쪽을 할 기회를 주십시오.”
“나보다 손이 좋은 이 선생이 굳이 가슴 쪽을 맡겠다고 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미덥지 않다는 뜻인가?”
“어찌 제가 과장님의 실력을 의심하겠습니까? 단지 제가 하는 것이 조금 더 낫겠다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게 그 말이지.”
“그, 그런가요. 하하.”
“후우, 좋아. 어디 얼마나 잘하는지 한번 보자고. 이 선생이 가슴 쪽을 맡아.”
“감사합니다.”
“만약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중간에라도 자리 바꿀 거야.”
“마음에 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서요셉 과장이 수술실로 들어가자 이민호는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쉬며 따라 들어갔다.
‘참 억지 쓰기도 힘드네…….’
이민호는 수술실로 들어가며 매일 자신과 마주치는 환자의 오빠, 손민호를 떠올렸다.
학교 끝나면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이곳 병원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여동생의 병수발을 돕는 아이.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여동생이 잠들어 있으면 아이는 항상 기도를 했다.
이민호의 마음이 이리도 움직이는 것은 화상 치료실에 온 첫날 아이가 하고 있는 기도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몇 년 전에 집을 나간 엄마가 돌아오길 기도했고, 여동생의 몸에 화상 흉터가 남지 않게 깨끗이 낫길 기도했으며 아빠가 술, 담배를 끊고 건강해지길 기도했다.
어찌 된 일인지 그 아이의 기도에 본인이 잘되길 바라는 내용은 없었다.
이민호는 자신이 신이 아니기에 아이의 기도를 모두 들어줄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여동생의 몸에 화상 흉터가 남지 않게는 해 줄 수 있었다. 때문에 오늘 이렇게 서요셉 과장에게 억지 아닌 억지를 쓴 것이다.
잠시 후 수술실에 들어서자, 소아외과 레지던트와 인턴들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들은 이미 손미향 환자의 수술 준비를 끝마쳐 놓은 상태였다.
이민호가 환자의 가슴 쪽에 서고 서요셉 과장이 배 쪽에 서자 어시스트 자리에 서 있던 기연욱과 김호중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선생이 가슴 쪽을 내가 배 쪽을 수술할 거야.”
서요셉 과장이 두 사람에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말을 하자 두 사람뿐만 아니라 마취과 의사와 간호사들도 믿기지 않는단 표정을 지었다.
“커어엄, 송 선생, 환자 마취해 주게.”
“아, 알겠습니다.”
잠시 후 마취과 의사가 환자의 마취가 끝났음을 알리자 서요셉 과장이 이민호를 바라봤다.
“시작하지.”
“네. 손미향 환자의 자가배양세포 이식수술을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간호사가 메스를 건네자 이민호는 드레싱으로 덮어 놨던 식피편을 조심스럽게 절제해 냈다.
본래 공여자의 피부로 만든 식피편은 2주가 지나면 화상이 치유되면서 저절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화상의 깊이가 깊으면 저절로 떨어지지 않고 괴사한 조직과 함께 붙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민호는 그렇게 괴사한 조직과 함께 붙어 있는 식피편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만약 괴사한 조직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부위에 배양세포를 이식하면 세포가 살지 못하고 죽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죽은 부위는 평생 흉터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이식수술을 잘하는 의사도 수술 중 배어나오는 피로 인해 괴사한 조직을 100프로 찾아내 제거하지 못한다. 때문에 세포이식수술이 끝난 후 성공률을 살펴보면 70퍼센트를 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서요셉 과장 정도 되어야 70퍼센트에 육박하고 함은옥 교수가 65퍼센트 정도였다. 그리고 다른 교수들은 그 이하의 성공률을 가지고 있었다.
사각 사각 사각…….
이민호는 마치 사과의 껍질을 깎듯 조심스럽게 식피편과 괴사조직을 찾아 절제하면서 이식편 아래 체액고임증이 발생할 만한 부위들이 있는지 살폈다.
만약 이식한 이후 체액이 고이면 그 부분 또한 이식세포의 괴사로 이어진다. 때문에 꼼꼼하게 살펴 그런 부위들이 있다면 제거를 해 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