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itional Healer became a surgeon RAW novel - Chapter 389
(389)
“어, 그래. 그렇다니까. 이 선생 바꿔 줄 테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이 선생하고 해. 이 선생, 정 교순데 받아 봐.”
방원익 과장이 통화하고 있던 전화기를 이민호에게 건넸다.
“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저 이민홉니다.”
―응, 이 선생. 방금 방원익 과장님에게 들었는데, 이 선생이 임순복 환자 간 수술하겠다고 했다면서?
“아, 네. 교수님이 안 하시면 제가 한다고 말했습니다.”
―잘됐네, 사실 내가 자신이 없어서 과장님께 토스한 거였는데 그걸 이 선생이 받아 줬어.
“과장님은 교수님이 제게 토스하려고 머리를 쓴 거라고 하시던데요?”
―응? 아 하하, 뭐 그런 면이 없지는 않지. 내 실력으로는 어렵지만, 이 선생이라면 그래도 환자가 살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 같아서.
“제가 말한 방법대로 하면 교수님 실력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요?”
―하하, 말이라도 고맙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없어. 수술은 환자를 살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이 해야지. 안 그래?
“그, 그렇죠. 저기 교수님, 그런데 이 임순복 환자는 간을 공여해 줄 가족이 없는 겁니까?”
보통 간암으로 간 절제 시 위험성이 높으면 가족 중 한 명이 간을 나눠 주는 경우가 많았다.
―안타깝게도 몇 해 전에 남편과 자식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간을 공여해 줄 가족이 없어.
“아! 어째서 불행은 불행한 사람에게 계속 찾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운이 좋은 사람은 계속 운이 좋고 불행한 사람은 계속 불행하고, 세상 참 불공평해.
“그러네요. 아 참, 교수님. 제가 절제수술은 할 수 있지만, 그 전에 문맥 색전술은 교수님이 해 주셔야 합니다.”
―그 정도는 당연히 내가 해야지.
“복강경으로 좌간의 쐐기 절제수술을 먼저 하고 나중에 확대 우간 절제수술을 할 거라 우엽간 뿐만 아니라 segIV(우간과 좌간의 중간부분)까지 문맥 색전술을 해 주셔야 합니다.”
―문맥 색전술을 해야 할 부분들은 나도 알고 있어. 설마 내가 토스하고 과장님에게 설명을 들었는데 그 정도도 모르겠어?
“아, 네. 그렇지요.”
―뭐 오늘은 내가 퇴근했으니 내일 외상외과로 한 번 찾아갈게. 수술 방법은 그때 자세히 논의해 보자고.
“알겠습니다. 그러면 내일 뵙겠습니다.”
* * *
이은이에게 그림을 가르쳐 주러 온 목기훈 화백은 주성중 화가와 강판채 화가가 이은이에게 그림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주 화가, 강 화가. 두 사람이 여긴 어쩐 일이야?”
“아! 목 화백님.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응, 오래간만이야.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야?”
“아! 그게 이번에 저희 그림도 여기 전시할 수 있게 돼서요.”
“호오! 그래. 잘됐네. 사실 두 사람 다 아직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그림은 나보다 더 잘 그리잖아.”
“아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어찌 저희가 목 화백님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야. 내가 나이를 먹고 그림판에서 활동한 경력이 오래돼서 그렇지, 실력은 두 사람이 훨씬 나아.”
“그렇게 말씀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만 띄워 주십시오.”
“두 사람은 분명 나중엔 이민호 화백처럼 유명해질 거야.”
“그렇게만 되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두 사람이 과한 칭찬에 어색하게 웃는 동안 옆에 있던 주이은이 목기훈 화백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응, 이은이 두 화가 아저씨들에게 그림 배우고 있었어?”
“네. 그리고 이 아저씨 화가 선생님들의 그림은 저기 전시되어 있어요.”
“어디…… 오우! 좋은 자리에 걸려 있네.”
목기훈 화백은 두 화가의 그림이 허문옥 화백과 배길두 화백의 그림 옆에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커피숍의 벽면 중엔 나름 그림이 잘 보이고 손님들의 시선이 많이 가는 명당자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당연 이민호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뒤를 이어 그림이 비싸고 나름의 서열이 높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주성중 화가와 강판채 화가는 여기 그림을 전시한 화가 중 가장 서열이 낮기에 저 안쪽 귀퉁이에 자릴 차지하는 게 통상적인 관례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주 화가와 강 화가.”
“네, 목 화백님.”
“그림을 좋은 자리에 걸어 놓긴 했는데, 나는 별로 개의치 않지만 다른 화가들은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을 것 같아.”
“네? 아! 그런데 그게 저희가…….”
그때 주이은이 끼어들어 말을 했다.
“아저씨, 이 두 화가 선생님의 그림을 저기에 걸어 놓으라고 한 사람이 저예요.”
“응? 네가? 이은아, 두 화가의 그림을 이은이가 걸어 놓고 싶은 곳에 걸어 놓은 것은 좋은데, 그러면 다른 화가들이 싫어할 수 있어.”
“네? 왜 싫어해요?”
“그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딸랑.
그때 문이 열리며 이미희가 과일을 한 아름 안고 들어왔다.
“어머, 목 화백님 오셨어요.”
“네, 사장님. 어디 갔다 오시는 거예요?”
“아, 과일이 떨어져서 급하게 사 왔어요.”
“그런 건 아르바이트생 시키시지.”
“청과 사장님이 제가 가야 좋은 과일을 골라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과일 살 때는 꼭 제가 가요.”
“아, 그래요.”
“고모.”
그때 이은이가 미희를 불렀다.
“응. 왜?”
“여기 두 화가 선생님의 그림을 저기 걸어 놓으면 다른 화가들이 싫어할 거라고 하는데, 왜 싫어해요?”
“응? 누가 그런 소릴 했어?”
“화백 아저씨가요.”
“목 화백님, 이은이에게 그런 말을 하셨어요?”
“아, 네. 그게 이은이에게 한 말이 아니고 여기 두 사람에게 한 말인데 이은이가 듣고 이해를 못 한 겁니다.”
“에휴, 이은아 고모가 쉽게 설명해 줄게. 저 그림들을 그린 화가들은 나이나 유명세에 따라 서열이 정해져 있어. 그래서 서열이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의 자릴 차지하고 있으면 싫어할 수 있는 거야.”
“흐음! 하지만 아빠가 내가 봐서 잘 그린 순서대로 위치를 바꿔도 된다고 했잖아요.”
“그, 그랬지.”
“그럼 제가 잘 그린 순서대로 전시해 놓은 게 잘못된 거예요? 아니면 잘한 거예요?”
“아빠 말대로 했으니까 잘한 거야.”
“하지만 그로 인해 화가 아저씨들이 여기 있는 화가 선생님들을 미워하는 것은 싫은데요.”
“화가 선생님들이 아빠가 이은이에게 전시에 관한 모든 권한을 줬다는 것을 모르니까 미워하는 거야. 하지만 고모가 화가 선생님들에게 잘 설명해 주면 서로 미워하는 일은 없어질 거야.”
“그래요. 그러면 고모가 화가 선생님들에게 설명해 주세요.”
“알았어. 목 화백님 들으셨죠. 이은이의 그림 보는 눈이 오빠와 비슷한 수준이라 오빠가 이은이에게 전시에 관한 모든 권한을 줬어요. 그래서 앞으로 이은이가 전시 위치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고 못 그린 그림은 아예 전시를 못 하게 할 수도 있어요.”
이미희의 말을 들은 목기훈 화백은 놀란 듯 잠시 눈을 끔뻑거리며 이은이를 바라봤다.
“그, 그 정도의 권한을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줬다고요?”
“네. 그리고 주성중 화가님과 강판채 화가님의 그림이 저기 전시될 수 있게 된 것은 이은이의 의견도 있지만, 오빠도 같은 의견이었어요.”
“그, 그렇군요. 아 참, 이번에 소연희 화백과 이종두 화백의 그림은 전시 못 하게 됐다던데…… 그러면 혹시 그것도 이은이의 의견이 반영된 겁니까?”
“네. 이은이와 오빠가 같은 의견을 냈어요.”
“허허, 이거 참. 앞으로 이은이에게 잘 보여야겠군요. 이은아 앞으로 아저씨 그림 잘 봐줘.”
“네. 제 그림 선생님이니까 잘 봐드릴게요.”
목기훈 화백은 이은이가 활짝 웃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아이가 자신을 배려해주지 않았다면 주성중 화가와 강판채 화가의 그림이 자신의 그림 앞에 있었으리라.
* * *
우간 절제수술을 하기 전에 동맥이 아닌 문맥 색전술을 하는 이유는 문맥이 소화기관에서 영양분이 풍부한 정맥혈액을 받아 간으로 운반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문맥을 색전술로 막아 놓으면 문맥과 연결된 간엽들이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게 돼 쪼그라들게 되고 덩달아 암세포도 더 이상 확산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반대로 문맥 색전술을 시행하지 않은 간엽은 풍부한 영양분을 문맥을 통해 받기에 다른 간엽에 비해 비대해지게 되고 간의 역할을 그만큼 많이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이 문맥 가지들은 다 색전술을 해 주셔야 합니다.”
이민호가 여덟 개의 간 문맥 가지 중 우엽부터 시작해 좌엽의 일부에 해당하는 다섯 가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정형채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좌엽 쪽의 이 세 개는 살리고.”
“네.”
“알았어. 그런데 이 선생, 좌엽의 종양 부분을 쐐기절제술로 도려내도 괜찮을까?”
쐐기절제술로 도려내기에는 약간 큰 종양이라 위험도가 높았다.
“괜찮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에휴! 그렇긴 한데, 난 솔직히 영 불안해.”
“저도 불안합니다. 하지만 환자가 수술에 동의했으니 어쨌든 최선을 다해 봐야죠.”
“그렇지. 아 참, 그나저나 환자 만나 보니 어때?”
이민호는 오전에 간암 수술을 할 임순복 환자를 직접 만나 수술 방법을 설명하고 수술 동의서를 받았다.
“수술에 동의하긴 했지만, 환자에게 살고 싶다는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이던데요.”
“이 선생이 봐도 그렇지.”
“네.”
“사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그거야. 수술 후 기적이라고 생각될 만큼 회복이 잘 되는 환자가 있는 반면 분명 수술을 잘했는데도 회복이 더딘 환자가 있잖아. 그리고 그런 결과들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치는 것이 살고자 하는 환자의 의지이기도 하고.”
“수술 방법을 설명하면서 잠깐 일상적인 대화도 나눴는데 남편과 자식을 교통사고로 잃은 후 삶에 대한 의지가 사라진 것 같더라고요.”
“임순복 환자에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 줄 수 있는 묘수 같은 것은 없을까?”
“당장은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그, 그렇지. 나도 그런 재주는 없더라고. 그러면 나는 이만 가 볼게.”
“네.”
이민호는 정형채 교수가 가고 나자 오전에 만났던 임순복 환자를 다시 한 번 떠올려 봤다.
42살 여자 환자인데 머리가 하얀 백발이었고 간암으로 인해 황달을 비롯한 기타 여러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임복순 환자에게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할 수 있을까?”
부르르르…….
그때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딸 이은이였다.
“어! 이은아.”
―아빠, 바쁘세요?
“아니, 지금은 통화가 가능해.”
―아빠, 제가 제게 그림을 가르쳐 주고 있는 화가 아저씨들의 그림을…….
이민호는 딸이 하는 말을 듣고 있다가 번뜩 딸이 그린 그림이 생각났다. 그리고 생각이 이어지면서 딸의 그림을 임순복 환자에게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유라고 딱 꼬집을 수는 없지만, 왠지 그러면 그녀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날 것 같았다.
이민호가 이은이의 그림을 생각하는 동안 이은이의 말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제 결정으로 인해 슬퍼하는 화가 아저씨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으, 응. 그래. 그러면 앞으로 그림 전시하는 것은 아빠가 알아서 결정할게.”
―네. 그러면 이만 끊을게요.
“잠깐만, 이은아. 그런데 아빠가 이은이의 그림을 병원 환자 중 한 명에게 보여 주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
―환자면 아픈 사람이죠?
“응.”
―그런데 아픈 사람에게 왜 제 그림을 보여 주려는 거예요?
“아픈 사람이 이은이의 그림을 보고 힘을 얻었으면 해서.”
―제 그림을 보면 아픈 사람이 힘이 나요?
“날지 안 날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딸의 그림을 보여 주고 싶은 환자가 떠올랐거든.”
전문 화가에 비해 작품성은 떨어지지만 대신 아이가 엄마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그 어떤 작품보다 깊었다.
환자가 그걸 느끼고 심경의 변화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그래요. 그러면 아빠 마음대로 하세요.
“알았어. 고마워, 딸.”
―네, 아빠. 사랑해요.
“아빠도 이은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