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06
“지, 지금이라도 장부를 정리하겠습니다! …안 되잖아? 안 돼! 으아아아아악!”
뭔가 일어나 버렸다.
* * *
“…조선 국왕 전하, 오랜만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약간 뻘쭘했다.
상당히 아름답게 마무리했다고 생각한다. 국왕의 스승, 위대한 섭정, 최우방국의 지도자 등등 따낸 명예들도 많다.
꼭 공산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부분들이 유학자들의 감성까지 건드렸고, 이대로만 가면 트로츠키의 이름은 성인의 반열로 들었을 터였는데.
“동지를 다시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소!”
이홍위의 해맑은 표정과 별개로 상당한 쪽팔림을 감내하는 트로츠키였다.
이 근정전을 다시 밟았을 때 트로츠키는 외부인이었다. 더 이상 저 보좌의 지척은 트로츠키의 자리가 아니었다.
조선 국왕을 알현하는 손님의 자리에서 바라보니 경복궁의 구조도, 꿇어앉은 대신들의 모습도, 이홍위의 용안도 모두 새삼 새롭게 보인다.
“작금에 원산과 조선이 협동하여 진행하는 토목 사업 또한 크게 차질을 빚고 있사옵니다.
원산 소비에트 공화국 의장 전하께서 이 문제에 대한 시책을 마련하는 데 있어 그 혜안을 발휘하여 주시길 삼가 바라옵나이다.”
그리고 이명민의 은근한 재촉도 결이 다르게 느껴지니 그가 하급자였을 때와는 업무를 독촉받는 기분이 남다르다.
국가 간의 행정 문제라 생각하니 심장이 쫄깃해지고 간담이 서늘하다.
“허면, 상황 파악을 해야 하겠으니 향민청과 농업진흥위원회, 공조, 농업인민위원회의 책임자들을 모두 모아 주십시오.”
그렇게 열린 긴급회의에서 드러난 문제는 간단했다.
“…그리하여, 향민청과 농업진흥위원회의 학자들은 간접적으로만 얽혀 있습니다.
각지의 농업공장들은 원래 농업진흥위원회로 보고를 올리면 그게 트로츠키 동지를 통해서 조선 조정이나 소련과 연결이 자연스럽게 되었습니다.
헌데 이게 트로츠키 동지가 사임한 뒤 농업진흥위원회 조직이 체계적이지를 않다 보니 문제가 불거진 듯합니다.”
허공으로 붕 떠 버린 책임 소재, 관서 간의 애매한 상호 연계, 그리고 소련과 조선 간의 관계 설정 문제.
“이를 해결하려면 일단 향민청을 조선과 소련의 공동 관리하에 놓음은 어떠하겠습니까?”
“향민청은 안 됩니다. 향민청이 각지의 향민계와 향민소를 관리하고, 이들이 내전 이후로 지방의 행정 업무를 도맡아 하는데 이를 외국에 맡기는 것은….”
하위지의 말에 블레어가 고개를 젓는다.
지금 향민계 산하 협동조합들이 조선 중기의 향약(鄕約)보다도 더욱 강력한 기능을 수생하고 있는 와중이다.
향민청이 향촌 사회의 노동 조직과 경제적 분배, 행정, 교육 등등을 모두 도맡아 수령이 협동조합의 조력자 수준인 지경인데. 이걸 원산이 공동 관리?
“절대 아니 될 일입니다.”
김종직이 단호히 부정하자 블레어가 동의의 의미로 끄덕인다.
“그렇다면 농업진흥위원회는?”
“그는 도리어 간단한 문제입니다. 이명민 동지, 아니 공판을 정식적인 위원회의 책임자로 앉혀 놓으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옳겠습니다. 제가 판사(判事)의 직책을 맡은 바 있으니 위원회를 공조 산하로 놓는 것도 가할 듯합니다.”
“허면 농업진흥위원회의 문제는 해결된 듯하나, 이는 근본적인 문제를 뿌리 뽑지 못하오.”
슬슬 논의가 궤도에 접어든 듯하자 이홍위는 몸소 이야기에 끼어든다.
“결국 이 문제는 아국과 귀국의 교류가 자유롭지 못하고, 그 물산의 이동과 사회의 운영이 한 나라처럼 결합하고도 두 나라로서 갈라져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오?”
“그 말이 옳습니다, 조선 국왕 전하.”
“트로츠키 동지, 원산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없었소? 조선 조정과의 협의가 없어 곤란했을 적이 분명 있을 터.”
“흠.”
이홍위의 말대로이기는 하였다.
예를 들어 소련 착호병 소비에트의 공식적인 작전 범위는 조선군과 함께 북변을 수비하는 데까지 확대되었고, 그 외에도 가끔씩 함길도 근방의 치안 유지까지 담당한다.
그런데 정작 함길도 현지의 수령들이나 주민들, 조선군과 마찰이 발생하는 경우가 잦다.
원래 내전 이후 공백 상황이 되었던 함길도를 급히 소련군이 통제하던 상황이 이어지니 이후로 계속 함길도 익속군과의 충돌이 벌어지는 것이다.
만일 소련 정부에 조선 병부에서 파견된 인사가 끼어 있었더라면 보다 이 갈등을 해소하기 쉬웠으리라.
“전하, 이 문제가 발생한 바는 결국 트로츠키 의장 전하와 함께 소련의 여러 인민위원들이 원산 소비에트 공화국으로 귀국하여서가 아니겠습니까?”
그 생각을 이홍위나 트로츠키만이 한 것은 아닌지 박팽년이 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허면, 이전과 같이 각국이 담당자들을 상호 간에 파견하여 업무를 분담케 하고 조국에 보고케 한다면 어찌 두 나라의 행정이 서로 뒤엉키고 부딪히는 바가 있겠습니까?
마치 하늘을 나눠진 사이 좋은 벗처럼 마음이 같으니 그 가는 길 또한 바를 것입니다.”
간단한 발상이다.
원래 있던 사람이 없어져서 생긴 문제다. 그러면 사람을 다시 두면 된다.
그러면 트로츠키의 사임 이전의 상황으로 손쉽게 복원할 수 있으리라.
그게 꼭 이전의 트로츠키, 마이어, 바빌로프일 필요는 없지만. 양국에 그들의 역할에 상응하는 인사를 채워 넣을 테니 말이다.
“나쁘지 않은 발상인 듯하오. 지금만큼의 행정 부담이 이어진다면 큰 무리 없이 시스템이 굴러갈 수 있을 것이오.”
결국 트로츠키의 찬성과 함께 회의는 간단히 정리되었다.
농업진흥위원회는 이명민과 바빌로프 양자의 책임으로, 농업진흥위원회는 조선―원산 양국의 합작 기관이 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더하여 공조, 병조, 산업인민위원, 농업인민위원, 군사인민위원 등의 기관에 각국이 서로의 인사를 보내 감독하게 하니 이전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으리라.
사안이 빚어낸 파격적인 결과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별것 없는 해결책이었다.
원래 비공식적인 임기응변으로 블레어나 트로츠키가 조선 내 관서들에서 보고를 받고 그를 소련으로 연결했듯, 거기서 사람만 바꿔서 일 처리를 이어 간다.
“…그러니까 보고는 두 곳에서 하고, 결재도 두 곳에서 받고, 그런데 예산 심의는 따로따로 하는 겁니까?”
“그렇네. 인력 관련하여 녹봉을 지급하는 문제와 부동산 관리는 조선이 맡고, 그 외의 예산은 원산이 맡을 걸세.”
그 덕에 어마어마하게 지저분한 행정이 완성되기는 했다만.
그래도 아마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임시방편
“트로츠키 섭정 전하, 지금껏 아조를 위하여 수고하셨소.”
“조선 국왕 전하, 전하와 같이 훌륭한 지도자가 국가를 이끄니 조선은 언제까지나 번영할 것입니다.”
소련에게 1462년이 10주년을 맞이하는 경사스러운 해였다면, 조선에는 참으로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민신이 일신의 명예를 버려 가며 조선의 대외적 위기를 수습했고, 대신파는 민족주의적 노선을 천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홍위가 완연한 성년에 접어든 지도 벌써 수년은 지났다.
스물한 살. 이제 조선을 기준으로 하든 소련을 기준으로 하든 미숙한 아이라고 볼 수 있는 시절은 끝난 것이다.
당연히, 섭정 또한 사직할 수밖에.
사실 섭정 기간은 더 일찍 끝내야 했으나, 조정의 안정을 위해 트로츠키가 한양에 머무르며 공산주의자 파벌들을 붙들고 있어야 했다.
친소파, 대신파, 인민주의자 세 파벌의 균형을 조정하고 정국을 평정하는 데는 그의 역할이 절실했기에.
허나 조정의 트로이카 체제가 어느 정도 궤도로 올라섰으니 이제 트로츠키가 개입할 바는 없으리라. 멀쩡히 장성한 군주를 두고 섭정을 계속한다면 이상한 말만 나올 터.
결국 트로츠키가 아름답게 사임하는 편이 나았다.
“트로츠키 동지, 동지는 나의 가장 훌륭한 스승이며 다시없을 은인이오. 비록 우리 함께 나이 들어 나는 자라고 동지는 늙었으나 이 인연이 언제까지나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오.”
“조선 국왕 전하, 부디 강녕히 건강을 유지하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저 동해안에 전하의 오랜 벗이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 주시길.
만일 기별할 일이 있으시다면 전신이나 블레어를 통해 연락 주십시오.”
문무백관이 배웅하는 앞에 이홍위와 눈물 어린 석별의 인사도 나누고.
“아아, 해동 땅에 주문공(周文公)과 같이 아름다운 선례를 남기니 트로츠키 의장 전하께서는 참으로 성인(聖人)이라!”
“역도 수양을 베고도 보좌를 탐하는 마음은 추호만큼도 없으시어, 이국의 수장이 오직 아조의 종사를 위해서만 헌신하셨다! 이 어찌 의롭지 아니한가?”
“그분께서 떠나셨으니 입술 없는 이가 시리듯 하구나!”
잊지 않고 프로파간다도 뿌렸다.
아! 옛부터 낭중지추(囊中之錐)라 하였거늘 트로츠키는 그 일신의 올바름과 미덕의 깊음과 지혜의 드넓음으로 인하여 이 머나먼 극동에서도 현자라 불리우누나!
아무튼 그렇게 오랜만에 원산으로 돌아와 이것저것 일을 처리하려 하는데.
“끄응, 역시 기분이 좀 그렇구만.”
“뭔가 아쉬운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내가 그래도 인구 1,000만에 가까운 나라의 섭정이었는데, 여기로 돌아오니 마을 이장 같지 않겠나?”
“그래도 인구 10만이라니 마을치고는 엄청나게 크지 않습니까? 인구가 이 10분의 1 수준이던 때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자, 자, 기운 내시고 일하셔야죠.
여기, 조선과 일본으로부터 원산 소비에트 공화국으로의 이민 신청서입니다. 전부 결재 부탁드린다고 외무인민위원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런 일들을 직접 처리한다고? 난 국가 원수 아니었나?”
그의 투정 섞인 말에 다시금 에티앙블은 어깨를 으쓱인다.
“트로츠키 동지, 이 나라에는 관료라는 게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얼마 전까지 국민이 1만 명이던 나라라 복잡할 것도 그리 없습니다.
그래도 그 덕에 지금까지 국가 원수에 장관급 인사가 세 명이나 외국에 나가서 원격 통치를 했는데도 나라가 유지되었으니까요. 나라가 작고 사람이 적으니 문제도 적었지 않습니까?”
에티앙블이 그의 투정을 모두 받아 주니 그제야 트로츠키는 미적미적, 건네받은 서류들을 결재한다. 이외에도 갖가지 사소한 잡무마다 건건이 서명을 날인해야 했다.
그러다가 마주친 것이 문제의 그 문서.
“이건 뭔가? 왜 한문이 섞여 있지?”
“아, 조선 농업진흥위원회에서 온 모양인데요? 관성적으로 늘 하던 대로 트로츠키 동지한테도 보낸 모양인데, 그 친구들이 제대로 안내를 못 받은 거 아니겠습니까?”
“조선 측 관서니까 조선 조정에만 보고서를 보내야 하지 않겠나? 나는 이제 조선 섭정이 아니니 말일세.”
“크흠,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트로츠키의 말에 에티앙블은 다급히 농업진흥위원회로 답신을 보냈다.
―“귀 관서는 조선 조정과 조선국 국왕의 관할하에 놓여 있음. 소련에는 특별한 교류 요청이 없는 한 보고를 올리지 말 것.”
“그렇다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글쎄, 당장은 모르겠군. 일단 해당 보고서는 의정부 쪽으로 발송해 놓도록 하게.”
그리고 정작 조선 측에서 다시 농업진흥위원회의 보고서를 받아 들었을 때의 반응은 이러하였다.
“농업진흥위원회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들은 대다수가 소련의 인민이며, 몇몇 인원들이 조선의 녹을 받을 뿐, 소련의 지원을 받지 아니하는가? 어째서 이들은 우리 조정에 이리 보고서를 보내오는가?”
“그 말이 옳사옵니다. 소련의 농법과 농학에 대한 지식은 아조보다는 소련의 농업인민위원이 더 해박할 것이 자명한 사실입니다. 보고서는 그만 돌려보내소서.”
이홍위가 묻자 신숙주가 답한다. 다시금 이들의 문답에 따라 농업진흥위원회로 답신이 돌아오니 내용은 이랬다.
―“그대들은 소련의 인민이니 다만 소련 정부의 뜻에 순종할지어다. 큰일이 있지 않은 한 보고는 소련 정부에만 올리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사업 예산은 소련에서 타 먹는데 녹봉은 조선에서 받고, 소련인이 대부분인데 청사는 조선에 있고, 소련식 농기구를 조선식 논밭에다 뿌리는데?
우리는 그럼 둘 다 관할이 아닌 건가? 어디 관할인 걸로 생각해야 하나?”
“그럼 우선 조선 조정 측에 문제를 제기하고 정식으로 뭔가 이야기를 해야….”
“난 반댈세. 소련인이 조선 정부에 뭐 따지다가 무슨 외교 문제라도 일어나면? 일단 당장은 큰 문제가 없으니 조용히 있는 게 상책일 듯하네.”
이렇게 갑작스레 준독립 기관이 되어 버린 농업진흥위원회.
“어? 지금 평양 인근의 농업공장 소비에트에서 보고가 올라왔는데 이건 어느 선으로 보고하죠?”
“그거? 그냥 우리 선에서 처리하면 되겠지. 무슨 내용인데?”
“농기구 몇 개가 고장이 나서 좀 처리할 게 있다고 하던데요? 그리고 정미기가 좀 고장 났으니 수리 기사 보내 달라네요.”
“마침 고창 쪽에서도 수리 기사 보내 달라던데, 수리 기사 요청 문건만 모아 놓고 기다려 봐. 나중에 예거 동지가 처리해 준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예거 동지가 마침 몸살감기에 걸려 일주일을 앓고 나자, 모두가 해당 문서에 대해 잊어버렸다.
“하아, 장부 정리는 안 해 보던 일이라 힘들구만. 뭐가 이리 항목이 많은지.”
“자네 수학과 아닌가?”
“장부 정리는 연구 보조일 때밖에 안 해 봤는데. 뭐, 아무튼 나간 예산은 다 손실로 넣고 들어온 예산으로 대강 상계 치면 맞겠지!”
바빌로프가 고르고 고른 인재들이 속한 농업진흥위원회.
그곳에는 걸출하고 학식 높은 농학자나 기계 공학자, 금속 공학자, 화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 포진했으나 불행히도 행정 관료는 그 해당 사항에 없었다.
“예산 심의 같은 잡다한 절차 없이 실무진이 직접 굴리니까 일이 이렇게 잘 돌아가지 않나? 공무원을 거칠 필요가 없으니 일할 맛이 나네!”
“예산이 약간 부족하다는데 어떻게 할까?”
“어차피 소련 정부는 지금 계속 흑자 상태일 테니 2할만 더 땡겨 달라고 하면 괜찮지 않겠나?”
그리고 이 자신감 넘치는 이들은 ‘책상에 앉아 펜대 굴리면서 방해만 하는 공무원들’로부터 해방된 데 대한 무한한 기쁨을 느꼈다.
그럴 만하다. 원래 과학자의 연구 예산이란 왕족, 괴짜 백만장자, 수상할 정도로 권한이 많은 트로츠키 같은 이들이 결정하니까. 그런데 자금을 자기 뜻대로 동원한다니 기쁘지 않을 수가.
자신감 있는 비전문가, 모호한 책임 소재, 관리자의 부재.
재앙이 자라나기 딱 좋은 조건이다.
“…조선 농업 지원 예산이 왜 두 배로 늘어나 있지?”
“뭐, 농기구라도 새로 개발했나 보죠?”
소련은 그저 예산 지원이나 해 주는 위치니 신경을 껐고.
“뭔가 요사이 협동조합에서 백성들의 불만이 많은 듯하던데 사정을 아는 이 있는가?”
“소신이 생각컨대, 그는 농업진흥위원회가 새로이 사업을 시작해서가 아닌가 하옵니다.”
“…하기사, 정책이 바뀌면 불만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조선은 그저 부지나 내주고 지원받는 입장이니 저들의 자율을 존중했다.
그렇게 단 몇 달이 지났을 뿐인데
“의장 동지! 당장 일본 상인들 측에서 쌀들이 도정이 제대로 안 되어 있다며 난리입니다!”
“전하, 지금 한양에 들어와야 할 미곡의 3할이 비어 있습니다!”
“작금에 평안도 일대에서 정미기들이 일제히 가동을 멈춰 급히 아낙들이 키질로 시간을 보낸다 하옵니다! 농업공장들이 마비되고 있사옵니다!”
“지, 지금이라도 장부를 정리하겠습니다! …안 되잖아? 안 돼! 으아아아아악!”
뭔가 일어나 버렸다.
* * *
“…조선 국왕 전하, 오랜만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약간 뻘쭘했다.
상당히 아름답게 마무리했다고 생각한다. 국왕의 스승, 위대한 섭정, 최우방국의 지도자 등등 따낸 명예들도 많다.
꼭 공산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부분들이 유학자들의 감성까지 건드렸고, 이대로만 가면 트로츠키의 이름은 성인의 반열로 들었을 터였는데.
“동지를 다시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소!”
이홍위의 해맑은 표정과 별개로 상당한 쪽팔림을 감내하는 트로츠키였다.
이 근정전을 다시 밟았을 때 트로츠키는 외부인이었다. 더 이상 저 보좌의 지척은 트로츠키의 자리가 아니었다.
조선 국왕을 알현하는 손님의 자리에서 바라보니 경복궁의 구조도, 꿇어앉은 대신들의 모습도, 이홍위의 용안도 모두 새삼 새롭게 보인다.
“작금에 원산과 조선이 협동하여 진행하는 토목 사업 또한 크게 차질을 빚고 있사옵니다.
원산 소비에트 공화국 의장 전하께서 이 문제에 대한 시책을 마련하는 데 있어 그 혜안을 발휘하여 주시길 삼가 바라옵나이다.”
그리고 이명민의 은근한 재촉도 결이 다르게 느껴지니 그가 하급자였을 때와는 업무를 독촉받는 기분이 남다르다.
국가 간의 행정 문제라 생각하니 심장이 쫄깃해지고 간담이 서늘하다.
“허면, 상황 파악을 해야 하겠으니 향민청과 농업진흥위원회, 공조, 농업인민위원회의 책임자들을 모두 모아 주십시오.”
그렇게 열린 긴급회의에서 드러난 문제는 간단했다.
“…그리하여, 향민청과 농업진흥위원회의 학자들은 간접적으로만 얽혀 있습니다.
각지의 농업공장들은 원래 농업진흥위원회로 보고를 올리면 그게 트로츠키 동지를 통해서 조선 조정이나 소련과 연결이 자연스럽게 되었습니다.
헌데 이게 트로츠키 동지가 사임한 뒤 농업진흥위원회 조직이 체계적이지를 않다 보니 문제가 불거진 듯합니다.”
허공으로 붕 떠 버린 책임 소재, 관서 간의 애매한 상호 연계, 그리고 소련과 조선 간의 관계 설정 문제.
“이를 해결하려면 일단 향민청을 조선과 소련의 공동 관리하에 놓음은 어떠하겠습니까?”
“향민청은 안 됩니다. 향민청이 각지의 향민계와 향민소를 관리하고, 이들이 내전 이후로 지방의 행정 업무를 도맡아 하는데 이를 외국에 맡기는 것은….”
하위지의 말에 블레어가 고개를 젓는다.
지금 향민계 산하 협동조합들이 조선 중기의 향약(鄕約)보다도 더욱 강력한 기능을 수생하고 있는 와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