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07
향민청이 향촌 사회의 노동 조직과 경제적 분배, 행정, 교육 등등을 모두 도맡아 수령이 협동조합의 조력자 수준인 지경인데. 이걸 원산이 공동 관리?
“절대 아니 될 일입니다.”
김종직이 단호히 부정하자 블레어가 동의의 의미로 끄덕인다.
“그렇다면 농업진흥위원회는?”
“그는 도리어 간단한 문제입니다. 이명민 동지, 아니 공판을 정식적인 위원회의 책임자로 앉혀 놓으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옳겠습니다. 제가 판사(判事)의 직책을 맡은 바 있으니 위원회를 공조 산하로 놓는 것도 가할 듯합니다.”
“허면 농업진흥위원회의 문제는 해결된 듯하나, 이는 근본적인 문제를 뿌리 뽑지 못하오.”
슬슬 논의가 궤도에 접어든 듯하자 이홍위는 몸소 이야기에 끼어든다.
“결국 이 문제는 아국과 귀국의 교류가 자유롭지 못하고, 그 물산의 이동과 사회의 운영이 한 나라처럼 결합하고도 두 나라로서 갈라져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오?”
“그 말이 옳습니다, 조선 국왕 전하.”
“트로츠키 동지, 원산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없었소? 조선 조정과의 협의가 없어 곤란했을 적이 분명 있을 터.”
“흠.”
이홍위의 말대로이기는 하였다.
예를 들어 소련 착호병 소비에트의 공식적인 작전 범위는 조선군과 함께 북변을 수비하는 데까지 확대되었고, 그 외에도 가끔씩 함길도 근방의 치안 유지까지 담당한다.
그런데 정작 함길도 현지의 수령들이나 주민들, 조선군과 마찰이 발생하는 경우가 잦다.
원래 내전 이후 공백 상황이 되었던 함길도를 급히 소련군이 통제하던 상황이 이어지니 이후로 계속 함길도 익속군과의 충돌이 벌어지는 것이다.
만일 소련 정부에 조선 병부에서 파견된 인사가 끼어 있었더라면 보다 이 갈등을 해소하기 쉬웠으리라.
“전하, 이 문제가 발생한 바는 결국 트로츠키 의장 전하와 함께 소련의 여러 인민위원들이 원산 소비에트 공화국으로 귀국하여서가 아니겠습니까?”
그 생각을 이홍위나 트로츠키만이 한 것은 아닌지 박팽년이 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허면, 이전과 같이 각국이 담당자들을 상호 간에 파견하여 업무를 분담케 하고 조국에 보고케 한다면 어찌 두 나라의 행정이 서로 뒤엉키고 부딪히는 바가 있겠습니까?
마치 하늘을 나눠진 사이 좋은 벗처럼 마음이 같으니 그 가는 길 또한 바를 것입니다.”
간단한 발상이다.
원래 있던 사람이 없어져서 생긴 문제다. 그러면 사람을 다시 두면 된다.
그러면 트로츠키의 사임 이전의 상황으로 손쉽게 복원할 수 있으리라.
그게 꼭 이전의 트로츠키, 마이어, 바빌로프일 필요는 없지만. 양국에 그들의 역할에 상응하는 인사를 채워 넣을 테니 말이다.
“나쁘지 않은 발상인 듯하오. 지금만큼의 행정 부담이 이어진다면 큰 무리 없이 시스템이 굴러갈 수 있을 것이오.”
결국 트로츠키의 찬성과 함께 회의는 간단히 정리되었다.
농업진흥위원회는 이명민과 바빌로프 양자의 책임으로, 농업진흥위원회는 조선―원산 양국의 합작 기관이 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더하여 공조, 병조, 산업인민위원, 농업인민위원, 군사인민위원 등의 기관에 각국이 서로의 인사를 보내 감독하게 하니 이전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으리라.
사안이 빚어낸 파격적인 결과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별것 없는 해결책이었다.
원래 비공식적인 임기응변으로 블레어나 트로츠키가 조선 내 관서들에서 보고를 받고 그를 소련으로 연결했듯, 거기서 사람만 바꿔서 일 처리를 이어 간다.
“…그러니까 보고는 두 곳에서 하고, 결재도 두 곳에서 받고, 그런데 예산 심의는 따로따로 하는 겁니까?”
“그렇네. 인력 관련하여 녹봉을 지급하는 문제와 부동산 관리는 조선이 맡고, 그 외의 예산은 원산이 맡을 걸세.”
그 덕에 어마어마하게 지저분한 행정이 완성되기는 했다만.
그래도 아마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던, 무엇도 아니던 (1)
―“성함을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
네모반듯한, 새로 회칠해 하얗고 반질반질한 1층 건물. 창문으로는 멀리 정각마다 기적을 울리는 켈틱 1호가 눈에 띈다.
민원 담당자들의 책상 너머에서 들리는 종이들 사각사각거리는 소리에 가슴이 움츠러들었다 펴진다.
이 작다란 관공서에 얽힌 그의 기억은 결코 작지 않은 것이다.
―“저기, 동지? 혹시 성함을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정부에서 만든 물품 발주 양식을 보면, 장화 수주자 성함을 기재해야 해서요.”
―“…이름이 없소.”
없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말하기가 부끄러운 하찮은 아명이었다.
허나 눈앞의 서글서글한 청년들은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절히 웃으며 답했었다.
―“아, 그런 경우들도 있지요. 7일 말미를 드릴 테니 공식적으로 쓰실 성함을 지어 오시면 됩니다!”
이름이 없다면 지으면 된다는 그 명쾌한 말. 그 대답에 얼마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던가?
며칠 뒤 다소 의기양양한 기분으로 관공서에 돌아와 그 청년에게 자신의 새로운 이름을 들려줬을 때는, 뭔가 걸어 두었던 빗장을 푼 듯 시원한 맛이 있었다.
―“아들의 이름은 유자광이오.”
―“네, 감사합니다. 유… 자… 광…. 그럼 동지의 이름은요?”
―“돈 많이 벌 것 같은 이름으로 지었소.”
―“어이쿠! 이렇게 포부를 밝히시니 궁금하네요. 한번 들어 봐도 될까요?”
이 생애에 그토록 또박또박 말해 본 적이 또 있던가?
집 안에 틀어박혀 살던 부엌데기가, 주인댁의 아들을 낳으면서 마을을 나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
다시 마을을 떠나, 남원을 떠나 이 머나먼 원산까지 등짐 지고 아들과 단둘이 도망쳐 왔을 때.
그 모든 순간마다 나주 최씨의 세상은 달라지고 넓어졌었다.
헌데 고작 이름 석 자 말하던 그 순간이 아기를 낳았을 때나, 정든 고향을 떠났을 때만큼 최씨의 세상을 바꿔 버렸다니?
―“높을 최 자, 쇠 금 자, 옥 옥 자. 그렇게 최금옥(崔金玉)이라 하였소.”
―“아주 예쁜 이름이네요. 반갑습니다, 최금옥 동지!”
그때의 그 관공서다.
“안녕하십니까, 최금옥 동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 ‘다차’인가 하는 것을 건설해서 신고하러 왔소.”
“다챠(Дача, 별장) 말씀이시군요! 가옥 종류는 어떻게 되나요?”
“기와집이오.”
“그러면 면적은…”
그때의 그 도망자가 별장으로 기와집을 척척 올리는 공장장으로 돌아왔다. 그 사실에 새삼 자부심을 갖게 되는 최금옥이었다.
그런 마음에 잠시 여유나 부릴 겸하여 관공서 안을 슬슬 둘러보던 최금옥은, 뭔가 눈에 띄는 벽보를 발견한다.
‘무두질 전용 기구 마침내 상용화!’
“저건, 시일이 깨나 오래 지난 듯한데 어인 일로 계속 붙어 있는 것이오?”
“아, 저 포스터 말씀이신가요? 저게 또 사연이 깁니다.”
조금 전까지 쾌활하던 직원은 갑작스레 울상을 지으며 한숨을 쉬더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저희는 분명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조선인들은 역시 저희와는 시각이 다른가 보네요.”
소련에서 직접 관리하기 애매한 생산 시설들도 있다.
뭐, 제철제강 같은 분야는 규모의 경제도 적용되고 이미 잘 훈련된 숙련공도 있으니 반드시 소련 정부가 직접 관리해야 그렇지 않은 분야들도 있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 지금 저 벽보에 큼지막하게 그려진 무두질 전용 드럼통.
드럼통 속에 약품과 피혁을 넣고 동력기에 연결해 빙글빙글 돌려 가며 섞어 주고, 적당히 시간이 지났을 때 꺼내서 빨아 주면 무두질이 된다!
재래식 방식에 비해서는 압도적으로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게다가 드럼통 하나에 인력도 5명밖에 안 든다!
그리고 마지막, ‘인력도 5명밖에 안 든다’는 점에서, 원산 공화국 정부 차원에서 이를 관리할 이점이 사라진다.
굳이 대규모로 관리할 필요도 없는데 정부가 떠안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하여, 인민위원평의회는 노동조합 옹호론자들의 의견도 반영할 겸 원산 시민권자면 누구든 생산자 조합을 결성해서 이 시설을 불하받을 수 있게 허가하는 야심찬 사업을 벌였는데….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제도를 가지고 갑론을박이 많았습니다. 이런 소소한 생산 수단이라도 이용해서 조선인 자본가가 탄생하면 어떻게 하냐고 말입니다.
뭐, 제 앞에 계시는 분도 자본가이긴 하시지만요!”
“그래서 어찌 되었소?”
“한 명도 신청을 안 했습니다. 저 사업 주장했던 사람들은 죄다 시말서 쓰거나 소비에트 대표직 사퇴 직전이죠.”
‘망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긴 하다만.’
그리 생각하면서도, 순간 최금옥의 눈이 반짝인다.
“그러면 아직도 무두질 도구들이 전부 놀고 있다는 말이오?”
“네, 맞습니다.”
“아직도 놀고 있고?”
“그렇죠?”
“그러면 내가 조합을 만들어 불하받겠소.”
“아! 정말입니까? 그, 그럼 신청서를 드릴 테니 일주일 뒤까지만… 얼마나 불하받으실 겁니까?”
흥분한 공무원 동지, 그에게 최금옥은 약간 거만한 말투로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었다.
“전부.”
“…네?”
“내가 전부 가져다 쓰겠소.”
* * *
“아니… 그래서 전부 가져오신 겁니까?”
“그래. 안 그래도 요사이 가죽 공급이 늘어서 갖신이나 만들어야겠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그, ’구두’라고 하던 것 말이다.”
“구두를 만들자고는 했으나 일을 벌이는 규모가 과다하지 않겠습니까?”
“허나 슬슬 면 장화만 만들기에는 일손들이 놀지 않느냐?”
“저는 조금 불안합니다. 이게 신역(身役) 지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무어가 다르냐니?”
“어머니께서 잘 모르시는 듯하나 조선 땅에서 기술 배우는 이들은 모두….”
“자재를 받고, 가공하고, 다시 넘겨주고, 그 사이에서 임금을 받고.
원산의 다른 공장들과 다를 게 없지 않으냐?”
“그건 그렇지만….”
그렇다. 이 지점에서 조선인들은 꺼려 했다.
‘생산자 조합을 결성해서 기술을 배운다고? 그건 신역이 아닌가?’
기술직을 억압하고 농업 생산력을 극대화하려 한 조선에서, 기술자들을 강제로 데려다 정부에서 필요한 물품 만들기에 동원하던 것과 똑같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심지어 처음으로 신발 공장을 세우자 이야기하던 자광이조차 이리 우물쭈물 망설이니, 이는 조선인들에 생리에 대해 무지했던 원산 공화국 정부의 큰 실책이었다.
“그래, 신발 공장을 만들자 한 사람은 너다. 면포를 모아 오고 목수들을 데려온 것도 너다.
헌데, 저기 바느질하는 아낙들도 네가 모았더냐? 일손들 이끌고, 먹이고, 임금 주고 한 것은 내가 아니더냐?”
“저… 어머니께옵서도 잘 모르시는 일이 많지 않을까 하여 여쭈었습니다. 언문도 잘 모르시던 것이 얼마 전 아니십니까?”
그와는 별개로, 바람결에 지나가듯 나타나는 아들의 무심함에 오늘따라 가슴이 저릿하니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남원의 나주 최씨 아닌, 소련 원산의 최금옥은 무심결에 한번 퉁명스레 말해 보았다.
“그래, 영광 유씨의 도련님께는 내 이름이 아직도 최금옥 아니고 최부억이(崔富億伊) 같으냐?”
“그것이 아니옵고….”
“이제 여유 생기고 글깨나 읽으니 다시 천출인 어미가 부끄럽더냐? 그 천출인 어미가 이 공장을 세우고 공장장 동지 되지 않았더냐?”
“….”
“보거라. 기자재도, 기술도 준다지 않느냐? 무두질할 생가죽도 개마고원에서 철도에 태워다 준다는 데 뭐가 모자라겠느냐?
거기에 발주량 맞춰 생산해다 주고 임금 받으면 될 일 아니더냐? 하는 일이 농업 아닌 공업일 뿐, 저기 조선의 협동조합 농장과 무어가 다르더냐?”
이 일갈에 우물쭈물, 고개만 무거워진 아들이었다. 너무나 예상 밖의 반응에 뭐라 더 붙일 말을 찾지 못하는 듯싶었다.
항상 멀리서만 보던 아들이고, 혹시라도 관로(官路)에 들어 잘되더라도 내 아들 아니라 정실부인 아들 되리라 하여 마음에 두지 않으려 애쓰던 자식인데.
이리 호통을 치니 기이하게도 미안한 마음보단 시원스런 기분만 남았다.
“그래도 알아듣지를 못하겠다면 나는, 무두질 공장을 하고 싶다. 그저 그렇게만 알아듣거라. 이 어미, 아니 공장장 동지 소원이라면 듣겠느냐?
내가 네 책값도 부쳐 주고, 벗들과 어울려 세상 논하는 것도 막지 않을 터이니 이 공장 하나 최금옥 공장장 이름으로 차려 보겠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더는 대꾸할 생각도 못 하고 한동안 유자광은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저 말엽(末葉, 상공업)이라 여겨 삐뚜름하게 보았습니다. 공산 국가에 살면서 아직도 이리 사세를 읽지 못하니 글공부도 모두 무용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저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명일에 신청서 작성할 준비를 바로 해 두겠습니다.”
“…그래. 그래도 공부는 게을리하지 말거라.”
그리, 우여곡절을 거쳐 굴러가게 된 가죽 공장이었다.
일단 첫 번째 과정은 자산 포기.
“가죽 공장이 있는 곳 옆으로 신발 공장을 옮기려는데 허락이 될 것 같소?”
“네! 물론입니다! 아드님이 이미 문의하셨는데 부지도 비어 있어서 괜찮습니다.
다만 아시다시피 공장은 정부 소유로 귀속되며 공장장 동지의 지위는 일단 조합장으로 바뀌는데 괜찮겠습니까? 정부 소유로 귀속된 공장 기자재는 다시 공장장 동지가 설립한 조합으로 소유권이 이전될 겁니다.”
“괜찮소. 이미 알고 있소.”
“감사합니다! 공장 매입의 대가는 조긴(정은, 丁銀. 해삼 모양으로 생긴 일본의 은괴 화폐)으로 치르겠습니다!”
대강 토지나 기자재, 건물은 생산 수단이니 정부 소유가 되지만 보상도 있고, 또 조합 설립 초창기에는 조합장으로서의 지위도 자동으로 인계되어 나쁘지 않았다.
“저는 최금옥 동지한테 투표하겠소! 저분이랑 저분 아들이 신발 삼기로 고성군 근방을 혼자 일으키신 분인데 달리 누굴 뽑겠소?”
“저도 마찬가지 생각이오!”
게다가 그동안 명망이 쌓이다 보니 조합장, 부조합장도 아들과 함께 직위를 연임하게 되니 수입만 줄었을 뿐 이전과 크게 달라진 바는 없었다.
프레스인가 뭔가 가죽을 판판히 펴는 기계는 여전히 정부 소유물이지만, 조합 관할이 된 신발 공장과 가죽 무두질 공장이 한데 모이니 결과적으로 생산 효율과 수입은 오히려 급등했다.
“다챠, 또 건설 신청하러 왔소. 이번에도 기와집이오.”
“세상에나, 아니 자제분이랑 둘이 사시면서 무슨 다챠를 그렇게 많이 지으신답니까?”
“…아들아이가 글공부 못 한 게 한이라지 않소? 그래서 때늦은 것 같다만 실컷 공부라도 하라고 크게 지어 주려 하오. 3층으로. 요금은 당장 조긴으로 지불하면 되겠소?”
“당장요?”
“마침 가지고 있는 은이랑 액수가 얼추 맞길래….”
그렇게 들어온 이 주체할 수 없는 거금.
정부에 구두와 장화를 팔아 번 돈에다, 일전에 있던 공장과 기자재를 유상 판매하여 손에 쥐게 된 보상금까지.
허나 일신의 편안함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99칸 기와집 같은 허무맹랑한 사치를 부릴 생각도, 필요도 없었기에 곧 돈은 곧 숫자고 남아도는 잉여일 뿐이 되었다.
“오늘도 친구들이랑 글공부하러 가느냐? 나는 장 좀 보고 조합 회관 좀 다녀오련다.”
“네, 살펴 다녀오십시오. 오늘내일 공장 감독은 제가 맡아 놓겠습니다.”
고로 할 일 없이 재산을 놀리기는 그러니 조합 회관에서 사람들 모아다 고기 사다 먹이고 그러던 것이 점점 일이 커진다. 그날 이후로 약간 고분고분해진 아들도 조금씩 거든다.
동네 사람들도 먹이고, 고향 친구들에게도 이런저런 재산 좀 부쳐 주고, 근처 보육원에 고기반찬 기부하고.
최금옥은 뒤늦게야 깨닫게 되는데.
재산 축적, 정부와 협력, 기부와 사회 환원 등등.
서역에서는 새롭게 등장하는 명사(名士)가 차근차근 밟아 나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선도적 여성 사업가, 그의 일생을 추적한다!’
―‘자신의 재산을 정부에 넘기고도 조합장 지위를 유지하는 비결! 바로 사회주의적 도의!‘
―‘알고 보니, 고향에서 핍박을 피해 도망친 천민과 그 얼자(孼子) 모자?’
―‘“선산과 원산을 비교했을 때 원산이 500배는 낫소.” 모자가 눈물을 흘리며 말한 이유는? 800만 조선인이 주목하고 1,100만 일본인이 동경하는 원산의 ‘이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