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44
* * *
“황제의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곧 터번을 걸치고 수염을 깔끔하게 정리한 남성이 이징옥에게 고개 숙이고, 손안에 쥔 서찰을 넘긴다.
사로잡은 해적 중 한 사람이 자바어를 한문으로 번역하니 곧 뱀처럼 구불구불해 보이던 문자가 읽을 수 있는 글이 된다.
장식적인 미사여구를 빼면 서신의 내용은 간단했다.
‘제국에서 해적질은 불법이다.’
“좋소! 조와국(爪哇國, 자바(Java)국, 즉 자바섬에 수도가 있는 마자파힛 제국을 일컫는 말)의 황제 역시 별말이 없어 보이오?”
이징옥이 즐거이 이야기하니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하기사, 외국 군대가 “너희 나라는 해적 지원이 허용되나?”라고 물어보면 누가 그걸 합법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징옥은 몰랐지만 지금 내전 중인 제국은 황제만 둘인 상황이다. ‘황자’라고는 해도 그중 한 사람의 아들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 이징옥이 받은 서찰의 주인은….
―“그 빌어먹을 반역자의 아들놈을 대신 처리해 준다니?”
―“절호의 기회입니다! 당장 지지를 표하는 서신을 보내야만 합니다!”
…뭐 그렇다.
그러나 이징옥에게 그런 ‘사소한’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아구와 조선군, 소련군에게도 그러했다.
무본억말(務本抑末)이 아니라 무말억본(務末抑本)을 행하는 나라라니 이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헌묘조(獻廟朝, 태종의 치세)에 이미 조와국이 온갖 진귀하고 신기한 재물들을 가지고 들어와서 교역을 청했으나 물리친 바가 있다.
그때 조선 전역이 떠들썩하였고 8살이던 이징옥 또한 그 소식을 전해 들었었다.
과연 헌묘(태종)의 판단이 옳으셨다. 사치에 눈이 멀어 이리 예를 모르는 야만국과 교역을 틀 수는 없는 법이다.
나라가 근본이 아닌 그 끝을 좇으니 간사한 자들은 저마다 배를 타고 나가 양민들을 수탈하려는 사특한 마음을 품게 되지 않는가?
‘내 이를 반드시 고쳐 놓겠다.’
그리하여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대고 불속에서 고통받는 듯하는 이 땅의 백성들을 구제하고 나라를 온전하게 돌이켜 놓겠다.
‘만일 말업이 본업을 누르고 그 때문에 도적이 창궐한다면,’
이징옥은 굳게 주먹을 쥔다.
‘마땅히 본업을 되살려야 할 터.’
그렇다면 본업, 그러니까 천하의 큰 근본인 농업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겠는가!
조선의 무인 이징옥은 무슨 결론을 내었을까!
“해적들은 모두 죽이고, 그 지원하는 놈들도 모두 죽인다.”
무본억말(물리).
실로 명쾌한 해답, 마치 알렉산드로스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 듯 간단한 해결책.
곧바로 소총으로 무장한 수천의 병력이, 자바섬 중부 드막 술탄국에 상륙한다.
“이, 이게 무슨 짓인가! 나는 이 나라의 술탄이다! 이 빌어먹을 야만인 불신자들이 나를 죽이려고!”
“통역하라. 무왕(武王)께서는 필부 주(紂)를 주살했지 임금을 시해한 것이 아니라고.
해적들을 도운 자가 어찌 일국의 왕이라 할 수 있겠으며, 황제가 금한 바를 침범한 이를 어찌 신하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다, 다가오지 마라! 다가오지 말라고 하지….”
―탕.
손가락보다도 작은 금속이 곧 술탄의 목을 꿰뚫었고, 그렇게 잔적(殘賊)한 필부는 죽고 말았다.
“조선 천세!”
“천세! 천천세!”
“도적들의 본거지를 소탕하고 궁전 일대를 소개하라!”
“우와아아아아!”
이제 소련군 장교들은 반쯤 포기한 채 침략군… 이 아니라 해적 정벌군을 이끌어 도시 곳곳을 장악해 나갔다.
온갖 건물들이 불타고, 곳간의 문이 부수어지며, 저항하는 이들은 총알 하나로 조용해지니 이징옥이 보기에 몹시 상쾌하더라.
그렇게 도시 하나가 망하니 그 인근이 무법 지대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 이징옥은 곧 이곳을 항만으로 개조하고 지금껏 사로잡은 포로들을 보내 농장을 지으라고 명하였다.
“이아구 동지, 보시오! 이제야 백성들에게 항산(恒産)을 베풀어 항심(恒心)을 품게 하고 있지 않소?”
“어, 음, 사실 여기까지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해 봐야 우리 선박 근처로 오는 이들만 제압하고 끝낼 줄 알았는데….”
“유자로서 어찌 걸주(桀紂)에게 침탈당하는 백성의 처지를 외면할 수 있었겠소? 이 모든 것이 순리에 따른 것이오. 곧 이곳에도 전도되었던 본말(本末)이 되돌아오고 해적이 점차 줄지 않겠소?”
물론 그럴 일은 없었다. 이미 망해 가는 제국 곳곳에서 통제되지 않는 해적들이 마구잡이로 들끓었으니까.
그러나 해적 소식이 들릴 때마다 이징옥은 친히 군사를 이끌고 원정하여 적들을 부수고 포로들은 드막과 여타 원산령 무인도에다가 처박아 두었다.
어찌 되었건 해적이 줄기는 하였다. 해적의 ‘해’ 자만 들려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군세들이 생겼으니 이제 그들의 활동은 상업처럼 보다 은밀하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원방을 정벌하고 수하들에게 전공을 챙겨 줄 수 있겠다 기뻐하던 이징옥은 기나긴 장계를 써서 조선과 원산에 보냈으니….
“…지금, 남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트로츠키 동지, 여기를 보면 지금 이징옥 동지가 건설한 고무나무 농장이….”
“맙소사.”
그 반응이 참으로 볼만하였다.
* * *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맹 인민위원평의회와 제2외무인민위원회에 올립니다.
아군은 인도양과 태평양에 걸쳐 기승을 부리던 해적들을 격퇴하고 근방의 해역을 안정화하였습니다. 이 지역에서의 문명 진보와 역사의 전진에 기여했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세계를 향해 뻗어 나감은 사회주의 혁명가들에게 주어진 명백한 운명입니다.”
‘명백한 운명’.
“그러니 우리는 마땅히 사회주의자로서의 짐을 져야 합니다. 단순한 침공과 약탈, 파괴, 방화가 아닌 문명화를 진행하기 위한 성공적인 재교육과 근대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자원들은 군사 분야에 치중되어 있으니 추가 지원을 요망합니다. 각 품목별로 필요한 물량을 하단에 기록해 두었으니….“
‘백인의 짐’.
“맙소사….”
트로츠키는 얼굴을 손으로 감싼다.
내가… 무슨 괴물들을 인도양에 풀어놓은 거지?
“후회해 봤자 소용없다네.”
“분명 해적 소탕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나? 어쩌다가 무슨 토착 왕국 대침공으로 방향성이 바뀐 건가?”
“글쎄, 호전광 이징옥 동지와 이아구 동지를 짝으로 함께 보내던 그때부터?”
“그래도 결과가 이렇게 되리라고는… 애초에 우리가 임명한 인사가 아니지 않나? 모두 조선 측에서의 인사 제안이었으니.”
“그리고 여전히 조선의 관제에 속하기도 하지. 우리가 해임할 수도 없네.”
트로츠키가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상태에서 스피리도노바는 나머지 파일을 정리해 다른 인민 위원들에게 넘긴다.
“자료를 보면 알겠지만 인근의 소왕국 하나를 정벌한 뒤 개척자들을 보내 플랜테이션… 농장을 건설하고 있소.”
원산인들이 보기에는 이렇다.
인근 왕국을 정복하고,
현지인들을 곳곳에서 납치해 와서 노동력을 보충한 뒤
그곳으로 구호 식량을 보급한 뒤 특용 작물들을 키운다.
…뭐지?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게 소련이 아니라 대영제국인가?
인민위원평의회의 공기는 경악감과 공포감으로 완전히 얼어붙었다.
“어… 젠장.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르겠군.”
“기대할 건 한 가지 가능성뿐입니다. 조선 조정에서 이징옥 동지를 영전시키고 다른 인사를 꽂아 넣는 것이죠.”
“신숙주 동지와 조선 국왕 전하를 믿어 보는 수밖에.”
“…제발.”
조선 조정은 또 나름의 이유로 시끌벅적하였다.
―“작금에 남양(南洋)의 야인들을 여럿 분탕하였습니다. 섬들마다 목책을 두른 마을이 몇 있었으며, 또한 몇 곳은 꽤나 그 진지의 규모가 성대하여 볼만하였으니 그들의 강성함 역시 능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산에서 만들어 낸 대포들을 몇 번 쏴 갈기니 민가들이 불타고, 소총이 불을 뿜으니 다시 야인들이 피를 토하며 스러졌습니다.
토지가 몹시 비옥하였는데도 농사를 짓는 대신 도적질로 연명하니 심히 괘씸하였고, 이에 집집마다 그 벽을 허물고 지붕을 태우도록 명하였으니 완전히 그 터가 비었습니다.
도적의 무리들은 울부짖으며 사방으로 도망쳤습니다.
참으로 장쾌하였습니다.”
“전하! 이징옥이 원방에서 군병으로 위엄을 드러내고 천하를 평안케 하니 그 공로가 몹시 크옵니다!”
“그렇사옵니다! 마땅히 그에게 전공에 걸맞은 상을 내려야 하옵니다!”
흥분으로.
이홍위는 신료들의 반응을 죽 둘러보았다. 다들 이징옥의 호쾌한 종횡무진에 감탄하고 기뻐하는 기색이 완연하였다.
‘…당연히 소련 쪽에서의 반응은 다를 터인데.’
이홍위가 볼 때 저 이아구와 이징옥의 서찰들은 원산의 트라우마 덩어리다.
현지인들의 왕국을 압도적인 무력으로 때려 부수고, 그 땅을 점거하여, 농장을 건설했다니.
물론 이징옥이 실제로 행하는 바와 원산 정부 측에서 생각하는 바는 완전히 다를 것이지만.
이징옥 같이 올곧은 자가 일신의 치부나 전공을 위하여 인도네시아에서 로마 귀족처럼 대농장을 꾸리고 노예 노동자를 굴리지는 않을 터이다.
해 봐야 땅뙈기 좀 나눠 주고 주민들에게 젓가락 집는 법과 천자문 정도 가르치려 드는 게 전부이리라.
…하지만, 이아구가 어떻게든 사회주의적으로 정당화를 해 보겠다고 쳐 놓은 양념이 너무 매콤하고, 또 이징옥이 “나 잘했죠?”라는 듯 세세히 적어 둔 전공은 원산인들이 보기에 그냥 침략 전쟁이다.
“전하! 원산에서 경복궁 직통 전보가 날아왔습니다!”
“전하라.”
“이징옥을 부디 경직(京職)으로 영전시키고 새로 장수를 뽑아 인도양으로 보내자고 청하였습니다.”
“아니 되옵니다, 전하! 이미 원방의 사정에 통달하고 큰 공을 세운 장수를 어찌 다른 곳으로 보낸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언젠가는 경직으로 불러야 하겠으나 이미 이징옥이 현지 민심을 살피고 교화하는 막중한 소임을 맡은바, 당장 그의 자리를 다른 이에게 대신하라 하기는 어렵사옵니다!”
…역시나.
지금 이 조정에서 원산 정부의 의중을 파악할 이가 이홍위 말고도 누가 있을까?
우선 블레어….
“옳사옵니다, 전하! 반드시 이징옥을 유임시켜야만 하옵니다!”
…네가 그러면 안 되지 않나?
이미 원산으로 가 본 지가 한참은 지난 블레어는 다른 조선의 신료들과 똘똘 뭉쳐 영전만큼은 결코 안 된다고 반대를 외치고 있다.
그렇다면, 그나마 원산인들의 심정을 이해할 것은 그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바 있는 박팽년과 그 일파들인데.
“영상의 말이 참으로 사리에 닿는 것입니다. 패장(敗將)을 불러들이는 일은 들었어도 승장(勝將)의 직을 거둬들임을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옵니다!”
…저들은 자기들 세력화용 프로파간다로 써먹기 아주 좋은 상황을 굳이 바꾸려 들 리가 없다.
나중에 ‘조선 민족의 대영웅, 이징옥!’ 같은 위인전이나 써내지 않으면 다행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지금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기 시작하는….
“전하, 하오나 미신(微臣)은 원산과의 교우 관계에 혹시 누가 될까 저어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교우 관계에 누가 된다? 예판은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가?”
옳거니.
역시 신숙주다.
“저 원산인들이 온 미래에서는 본디 15세기부터 점차 유럽의 상인들이 누리를 침탈하고 특히 저 인도네시아를 ‘향신료 제도’라 부르며 정복하고 약탈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작금에 저들의 눈에는 이징옥의 행보가 그와 같이 보일 터이니 이에 대하여 아조의 중재가 필요하옵니다.”
“중재라?”
좋다. 신숙주의 입에서 이홍위가 바라는 그대로의 말이 술술 나온다.
성삼문와 하위지의 표정이 조금 떨떠름해지고, 아직 해외 문제에 관해 명확한 방향성을 내놓은 바 없는 인민주의자 진영의 김종직은 가만히 사태를 관망할 뿐이다.
“본래 조와국은 상업이 흥하는 나라로 이징옥이 보기에는 분명 본말이 전도되어 혼란한 꼴이었을 것임에 분명하옵니다.
그러니 이징옥이 그 백성들더러 농사를 시킨다 한들 이익을 좇아서가 아니라 현지의 안정을 위한 것일 터입니다.”
“허면 그러면 해당 사항에 대해 원산에 전달을 해야만 한다?”
“그렇사옵니다.”
신숙주는 자신의 말에 별다른 반박들이 들어오지 않음을 확인하고 말을 잇는다.
“물론 이징옥을 해임하거나 영전함은 부당한 일이오나, 이 사태에 대하여 원산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다면 오해의 골이 점차 깊어질 뿐입니다.
그러니 양국의 선린을 위해서라도 원산에 직접 나아가 의장 동지를 설득하고 원산의 민심을 안정시킬 이가 필요합니다.
헌데, 마침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통달하고 원산인들의 심성을 빠르게 파악하며 트로츠키 의장 동지가 신임하여 호제(呼弟)하기를 꺼리지 않는 이가 한 사람뿐이오니 부디 전하께서는….”
“알겠다. 예판은 원산과의 중재 작업에 착수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그래, 10년도 훌쩍 넘었으니 이제 슬슬 비워 뒀던 정승 자리를 다시 채울 때가 되기야 했다.
그러니 지금 저 신숙주도 혀에 기름칠이라도 한 듯 자신의 공적을 과시하면서 지금 공훈 하나라도 더 쌓아 놓으려고 별안간 난리를 치는 것 아니겠는가?
다른 대신들의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조회가 끝난 뒤, 대사의 자격을 띤 신숙주가 경원선을 타고 곧장 켈틱 1호의 소련 정부 청사를 향해 빠르게 움직인다.
아마 예판이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다. 외교라면 그의 특기라 할 만한 분야이기도 하고,
그런데도 이홍위는 이불을 뒤척이며 어딘지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했다.
풀리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
산을 옮기기 (1)
“이번 제1 보병 소비에트에서 나온 안건은 이것이오.”
누군가 동유럽 억양이 강한 조선어로 말하며 한 문건을 내밀자, 모두가 고개를 내밀어 탁자 위를 살핀다.
‘제1 보병 소비에트 대표,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의 소환 및 불신임에 관한 안’
그 짤막한 한 줄에 자리한 모두가 신음과 한숨 소리를 내며 머리를 부여잡는다.
“…결국 여기까지 와야 했던 문제입니까, 코발치크 동지?”
“물론입니다. 트로츠키 동지의 소환 안에 관해서는 지금 원산의 모든 눈이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 원산의 인구는 약 30만이다. 그중에서 투표권을 가진 16세(조선과의 제도적 호환을 위해 성인의 기준이 하향 조정 되었다.) 이상의 인구는 약 20만여 명.
그중 천 명 조금 안 되는 규모의 시위대가 상시 광장들과 거리에 모여 있다. 참정권자의 0.5%가 현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에 가세했다는 뜻이다.
“결국, 트로츠키 동지는 해명을 내놓아야 하고, 또 우리는 적절한 대답을 들어야만 합니다.”
이번 회의의 주관 역을 맡은 코발치크가 단언하고, 그제야 소비에트 정기 회의에 모인 인원들은 이 피할 수 없는, 골치 아픈 문제를 직시하기 시작한다.
제1 보병 소비에트 대표직을 내려놓게 된다고 한들, 트로츠키 동지가 갑자기 정부 수반이 아니게 되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소비에트 대회에서의 의석과 병사들의 지지를 잃는다는 변수는 거의 20년 가까이 이어져 온 트로츠키의 정권에 무슨 타격을 가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원산 공화국이라는 한 도시 국가의 지도자로서 그를 선출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를 15세기 아시아 혁명의, 세계 혁명의 지도자로서 선출한 것입니다.
만일 그가 제국주의적 확장을 방관했다는 혐의를 받는다면 그는 마땅히 사임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단지 소환 안의 통과만으로도, 십여 년간 자기 선거구인 소비에트에서 단 한 번의 소환 안도 받아 본 적 없는, 선거구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온 트로츠키의 정치적 명성을 깨게 된다.
과연 이번 ‘이징옥의 식민지 건설 문제’가 트로츠키 정권을 무너뜨릴 뜻밖의 사건이 될 것인가?
그 중압감에 트로츠키를 지지하는 이들이든 아니든, 수백 명의 소비에트 구성원들이 모여 한마디 한마디를 평소와 사뭇 다른 긴장 속에서 꺼내야만 했다.
“이번 호 ‘주간 원산’의 표제를 보십시오! ‘달걀 세례를 맞은 트로츠키’! 그에 대한 전 인민의 신임이 깨져 가고 있습니다!
조선 조정이 이징옥을 등용하고, 그에 대비하여 신숙주 동지와 공모하여 이아구 동지를 공조관으로 임명했으나 그 결과물이 해외 식민지의 건설이라면 크나큰 실책입니다!”
“하지만 트로츠키 동지와 원산 및 소련 정부는 해당 직위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지 않습니다! 조선 조정에 따져야 할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