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50
“…하는 방식으로 산업을 운영하는 이에게는 보조금을 내리겠다.”
물론 이 또한 ‘매뉴팩처(Manufacture, 수공업 공장)의 발전’과 ‘분업의 효율성’에 관한 구절을 읽은 황제의 독단적인 결정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황제는 서서히, 조심스럽게, 자신이 배운 바를 조금씩 도입해 보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명나라에서 도입될 수 없는 바는 과감히 포기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크게 내질러 보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시도에서 비롯될 변화는 아직 씨앗만이 보일 뿐.
당장 주첨선이 밀어붙인 정책의 결과물은 황실의 궁핍과 떨어진 황제의 권위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 * *
반대로 남조 역시 나름의 변화를 거쳤다.
“끄아아아악! 폐하! 폐하아아악! 부디 목숨만은!”
“닥쳐라! 네놈이 숨겨 놓은 은자 2천 냥은 어디로 갔느냐? 감히 나라 대신 조세를 수취하다니 이 또한 역모가 아니면 뭐란 말이냐!”
“드, 드리겠습니다! 드리겠습니다! 부디 더 이상은….”
호족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 온갖 신체형과 고문들.
“젠장! 다들 들었나? 납세를 거부했다고 복주(福州)가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다는구만!”
“저 밑으로 들어가면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지난번에도 호남(湖南) 쪽 사족들이 숱하게 목이 잘리지 않았나?”
“남경에 앉은 주기진은 천자가 아니라 한낱 도적일세! 다 같이 북경으로 입조하세나!”
당연히 양자택일을 하라면 호시탐탐 자신들의 목과 재산을 노리는 남경보다야, 지위도 보전해 주고 이전보다 세금 부담도 가벼이 해 주겠다는 북경의 황제가 훨씬 나았다.
호족들은 점차 북조가 다스리는 영역에 귀속되기를 점차 바라고, 남조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곳일수록 천순제에 대한 두려움과 반감은 커져만 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국은 굴러갔다.
굴러가야만 했다.
아직 되찾지 못한 수도와 무너진 위신이 있거늘,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천순제의 이러한 탄압은 어쩌면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역시, 저 북경의 주첨선은 지금 신료들에게 봉급 주기조차 빠듯한 살림이라고 하지 않나?”
“게다가 지난 보름날의 제사도 취소했다고 하네. 귀신을 달래고 백성을 위로함이 천자의 의무 아니겠는가? 어찌 그럴 여유도 없으면서 보위에서 버티고만 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네.”
주첨선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던 모든 것들.
제대로 된 권위, 제대로 된 정통성, 제대로 된 군대와 행정력의 회복을 점차로 이뤄 가고 있던 것이다.
천순제 주기진의 치세는 그러하였다.
뒤집힌 천지 음양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고, 날뛰는 도적들을 바로잡으며, 떠도는 농군들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는 통치 방식이었다.
오래된, 검증된 방식이었고 나름 잘 굴러갔다.
“…지금 왜국과 남만 사이의 무역량이 크게 늘었고, 왜이들이 모두 천조(天朝)의 문명을 흠모하여 교역을 간청하니 어찌 나라의 문을 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허하노라. 금일에 이르러 나라에서 정한 해금령이 유명무실해졌으니 차라리 이를 폐함이 나을 터이다.”
또한 그 속에서도 변화는 점차 일어나기 시작한다.
조선, 일본 등의 급팽창한 경제 규모는 자석처럼 주위의 경제 권역들을 끌어당기니, 그 단물에 이끌린 상인들은 밀무역을 행했고 암시장을 열었다.
그를 더 이상 통제할 여력이 부족했던 남조는 아쉬운 대로 그 무역들을 합법적으로 전환한 뒤, 북조와 다르게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얻을 수 있는 이점을 누리고자 노력하였다.
“천축? 뭣 하러 천축을 가는가? 이미 항주에서 웬만한 물건들은 구할 수 있지 않은가?”
중개 무역.
사실상 해금령을 풀어 봤자 크게 재미를 보지 못한 북조와는 달리, 천순제는 해금령을 풀자마자 남국의 선박들이 항구를 가득가득 채우는 광경들을 보게 되었다.
공식적으로 해상 무역이 막히자 반쯤 해적으로 전락했던 광동성의 주민들은 비로소 본업을 찾아 저 멀리 남중국해를 누비기 시작했고, 복건성과 절강성 역시 왜국의 함선들이 들어와 은자를 뿌리고 가니 활황을 맞이하였다.
서서히 자라나는 상인들의 세력.
그들은 북조의 상황을 보았고, 다시 그와 상이하게 굴러가는 남조의 현실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은근한 기대를 품으며 엎드리고 있었으니….
‘어쩌면, 어쩌면 우리 역시 조정의 지원을 받아 클 수 있을지 모른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말이다.
중원 어디에나 변화가 날아들고 있었다.
그리고 변덕스러운 역사의 흐름이 남과 북, 어느 쪽의 손을 들어 줄지는 아직 누구도 알 수 없었다.
* * *
* * *
/ 작가의 말
마르크스는 아시아적 촌락 공동체의 끈질긴 ‘생명력’에 관하여 여러 번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혈족 간 유대와 공동체적인 토지 소유에 기반한 이들 공동체는 자급자족적이고 고립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외부의 충격(전쟁, 식민화, 혁명 등)이 없다면 깨뜨리기 굉장히 어렵다고 말입니다. 이러한 ‘아시아적 생산 양식론’은 후기 마르크스에 이르러 발전적으로 해체되어 가기는 하지만, 자급자족적 경제 공동체의 변화란 외력이 없다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북조는 마르크스가 말한 바와 같이 몽골의 침공으로 경제를 개방당한 뒤, 조선―원산―몽골의 경제 권역에 포섭되어 급격한 변화를 겪어 나가게 됩니다. 그와 함께 주첨선의 개혁이 겹치면서 북조는 순식간에 명 말기의 전―자본주의적인 발전까지 이룩하게 되는데요. 어쩌면 주첨선이 개혁으로 이겨 내기에는 아시아적 생산 양식의 힘이 강력하지 않을까요? 생각해 보면 명 말기의 체제적 변화는 결국 이자성의 난으로 이어지지 않았던가요?
여기까지가 간단한 사회 경제사적 설명이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외전―일본 (1)
연호가 오닌(應仁)에서 분메이(文明)로 바뀌었다.
그러나 일본의 상황은 조금도 문명(文明)에 가까워지지 않았다.
화마와 전쟁이 서로 짝지어 춤을 추면서 사람들의 목숨을 제 아가리로 꾸역꾸역 밀어넣고 있었다.
수년 동안의 전란은 교토를 불태웠고, 통제에서 벗어난 일본 전역에서 산발적인 군사적 충돌들이 일어났다.
지난 10여 년 동안 조선, 원산과의 교역으로 쌓인 막대한 경제적 역량.
각 다이묘가 깔고 앉아 있던 어마어마한 양의 귀금속과 미곡들.
그것들을 창칼로, 말과 수레로, 새로 건설되는 요새와 수만의 군세로 화려하게 분출하고 있었다.
그 10여 년간 쌓아 놓은 힘을, 서로를 죽이기 위하여 모조리 쏘아 내고 있었다.
―“이번에 저 오우치의 씨를 말리지 않는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호소카와를 무너뜨려라! 보이는 적은 닥치는 대로 죽여라!”
―“추, 축성을 서둘러라! 빌어먹을, 교토에서나 싸울 것이지 왜 이 먼 데서까지 싸움을….”
―“우리 잇시키 가문의 잃어버린 영지를 되찾을 때가 왔다! 호소카와와 마쓰다이라를 꺾고 영광을 되찾으리라!”
숱한 장인들이 전시물자 마련을 위해 동원되었고, 전쟁의 와중에도, 아니 전쟁의 와중이기에 더더욱 상인들은 바삐 움직였다.
“젠장! 누가 쌀알마다 금박이라도 씌워서 먹는다 하였나? 그냥 영민들 먹일 것이 필요하다는데!”
“그래서 은자 1백 냥이 없으시겠다? 그러면 굶다가 무사답게 지조를 지켜 돌아가셔야지요. 저같이 미천한 상인이 뭘 어쩌겠습니까?”
“…지불하겠네. 전부 지불하겠다.”
“압니다, 당장 자금이 없으실 거 아닙니까? 어음이나 써 주시면 어련히 받지요.”
포위된 성에 아주 비싼 값으로 미곡을 나르고,
“이 멍청한 것! 동쪽을 치라고 하지 않았나, 동쪽을!”
“그랬소? 대체 누가 말이오? 소인은 그저 이 자리를 지키라는 명만 전달받았소만.”
“자네의 주군이지 누구기는 누군가!”
“호, 그렇소? 그대의 돈주머니는 다른 명을 내리는 것 같은데.”
“뭐, 뭘 내미는… 이게 다 은자인가?”
“이제 그대도 명을 전달받아 다행이구려. 아직도 동쪽을 치라는 명을 받은 것 같소?”
“차, 착오가 있던 모양이군. 일단 진지를 지키고만 있게나.”
장졸들을 매수해서 전투의 향방을 입맛에 맞게 조정한다.
사람의 목숨값을 팔아 수십 배로 재산을 불리는 이들이 숱하게 늘어났다.
한 푼씩, 한 푼씩 악착같이 모으고 회(會)를 조직하여 상인들은 저마다 홀로 영주들의 미움을 받아 고사하는 일이 없도록 서로를 보호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회를 조직하는 구심점이 되는 것은 물론,
“천하노동자합일. 비록 더럽고 피 묻은 돈이나 부디 아름다운 대의를 위하여 써 주시길 바랍니다.”
“천하무산자합일. 이 모든 것이 진보를 위해서일 뿐이니. 역사가 훗날 우리를 평가할 것입니다.”
마극종.
허나 이미 자신의 재부와 정치적 역량을 불사르며 싸움에 임한 다이묘들은 이들의 부상을 막을 수 없었다.
어떤 다이묘들은 이 화려한 불꽃놀이가 끝난 뒤, 모든 자산을 탕진한 자신들에게 돌아갈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렇지만 대응할 방법은 없었다. 잠시간의 잡념이 그들의 목으로 날아오는 칼끝에서 주의를 분산시키고, 곧 심장을 난도질할 단도를 보지 못하게 만들었기에.
미래를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피와 살이 튀는 가운데, 뭇 세인들의 야욕이 얽혀 기묘한 활기가 감돈다.
다이묘가 다이묘를 죽이고, 사무라이가 다이묘를 죽이며, 쫓기던 사무라이를 농민들이 죽인다.
“이봐! 이 멍청이가 갑옷 안에 중국산 무명옷을 입고 있잖아!”
“그러게 내가 눈만 화살로 쏴서 죽이자고 하지 않았나? 자네 덕에 이 귀한 천이 누더기가 됐구먼.”
그리고 말과 옷가지와 무기를 모두 빼앗긴 채 알몸이 된 사무라이의 시체는 어느 들판에서 썩어 간다.
그 썩어 가는 고기와 뼈와 골수는 들개가 먹고, 그 잔해는 곧 비옥한 흙이 되어 무성한 수풀로 자라나리라.
그렇게 비참하면서도 생명력으로 가득했다.
모두가 새로운 시대를 맞아 눈에 불을 켜고 욕심을 좇았다.
그들이 알던 옛적의 조용하던 세계는 끝나 버렸다. 그런 사실은 제아무리 천치조차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그 격변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느냐, 어떤 선택을 하느냐를 가지고 모두가 머리를 싸맸을 뿐.
“여러분! 고기를 드시오!”
여기, 엣추의 어느 젊은 영주처럼.
* * *
지난 전투 이후로 진보 나가노부는 압도되어 있었고, 또한 매료되어 있었다.
다름 아닌 바로 조선과 원산이 보여 주었던 그 압도적인 힘에.
물리력으로는 산과 성곽을 부수며 전진하는 그 총포가 놀라웠으며,
경제력으로는 그렇게 많은 병력을 이끌고 오면서도 ‘현지 징발’ 명목의 약탈이 필요 없었음이 다시 놀라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번뜩이는 소총과 야포만큼이나, 그 모든 병장기를 지탱하는 자금 동원력만큼이나 놀라운 것이 있었으니.
“저들은 참, 키가 크더이다.”
원산인들은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했다. 왜소한 일본인들보다 싸움도 잘했고, 훨씬 강건했다.
저들에게 슬며시 물어보았을 때, 트로츠키는 허허 웃으며 그들의 종자가 조금 달라서라고 하였지만.
그렇다면 종자가 그리 다르지 않을 젊은 조선인들 역시 엣추의 일반 농민들을 가뿐히 내려다보던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만일 종자가 원인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그 연유는 무엇인가?’
엣추를 다스리는 영주인 진보 나가노부는 생각했고, 그 결과 젊었을 적 힌두 민족주의자였던 간디, 그리고 메이지 유신기의 일본이 내렸던 것과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육식이다.’
비합리적이고 봉건적인 구습으로 인하여 일본인들이 채식만을 답습하니 이리 비실비실하고 체구가 작은 것이다.
살아서 펄떡펄떡 움직이던 기운찬 것들, 피와 기름을 뚝뚝 흘리는 것들을 먹지 않으면 사람이 키가 커지지 못하고 근육이 자라나지 못하는 것이리라.
일본인들도 여기 엣추에서부터 고기에 맛을 들이고 체질을 바꿔 간다면 저 원산인들이나 조선인들처럼 강고한 인종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조선인들 역시 육류 소비량이 늘었다고는 하나, 일본인과 큰 차이는 없었으므로 그냥 어릴 적부터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았느냐의 문제가 훨씬 컸을 것이다.
이제 슬슬 원산의 건국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며 성장한 이들이 있을 참이었으니 말이다.
또한 일본인의 채식 위주 식습관을 문제 삼던 나가노부의 밥상에는 생선과, 사냥으로 얻은 사슴에, 멧돼지까지 올라가 있었으니 어찌 보면 기묘한 모순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가 생각하기에 생선은 식물이고, 사슴은 단풍이며, 멧돼지는 산에 사는 물고기니 괜찮은 것이었지만.
중세 일본인의 생명관은… 엄밀한 생물학적 분류와 조금 차이가 있었다고만 해 두자.
어찌 되었건 진보 나가노부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육식과 함께 우락부락해진 엣추의 인민들, 그리고 그들이 군대를 꾸려 행진할 때마다 노동 인민의 위엄에 벌벌 떠는 반동 다이묘들의 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과 원산의 무역 창구로서 엣추에 미곡이 점차 넘쳐 나는 지금, 이 남아도는 식량을 소비하고 육식 문화를 주위에 퍼뜨려 고부가 가치 사업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어떻습니까? 선사님?”
“성급하게 기존의 관습과 전통을 혁파하려 들면 도리어 거부감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하오나 까닭 없이 육식을 꺼림은 결국 봉건 폐습의 잔재 아니겠습니까?”
“까닭이 없지는 않습니다. 지각 있는 것의 고통을 꺼림은 본래 사람의 마음가짐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 때문에 놓치게 되는 이익이 너무도 큽니다!”
그의 논리적 비약을 엿본 렌뇨가 잠시 눈살을 찌푸리나, 더부살이 입장에서 별수 있나? 허락하는 수밖에.
어찌 되었건 그리 추진된 육식 전파 계획.
“다… 구웠습니다.”
“이상하구나. 트로츠키 동지가 선물해 주었던 소고기 구이는 훨씬 연하고 부드러웠는데. 그리고 냄새도 심하구나.”
“어, 빨간 것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익히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핏물이 떨어지는 것이 보기 나빠서 쭉 한번 짜 주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어딘가 밭에 늘어져 있던 소를 데려와 어찌저찌 도살해 먹어 보았으나 역한 누린내가 나서 포기했다.
“저, 저 보고 돼지를 잡으란 말씀이십니까? 하오나 저는 도공입니다. 제게 칼을 쥐여 주셔 봤자 저 산만 한 놈을 제가 어찌 잡겠습니까?”
“그런가? 조선인은 다 마소를 잡을 줄 아는 게 아니란 말인가?”
그 뒤로 근방에 살던 조선인을 데려와 시도하였지만 고기를 먹는 조선인이라고 전부 백정인 것도 아니니 마찬가지로 실패했다.
세 번째로, 가장 많은 자원을 소모하는 방법을 결국 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저 선박 하나 오가는 데 은자가 얼마나 나갔는지 아나?”
“지금이라도 혹시 그 육식 계획을 멈추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이미 민심의 동요가 꽤나 큽니다.”
“방금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이미 은자를 썼으니 물릴 길은 없다.”
조선에서 직접, 소와 양과 닭 등을 들여오고, 마찬가지로 그 사육법과 도축법을 가르쳐 줄 전문적인 업자 역시 초빙해 온다.
해협을 건너 살아 있는 동물들을 옮기고, 그것들을 위한 시설을 특별히 짓고, 그 기술자들을 초빙해 연회도 베풀고….
만일 작금에 일본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엣추가 아니었더라면 심한 적자를 면치 못했으리라.
그리고 조선인 요리사들이 양념을 발라 석쇠로 잘 구워 낸 소고기를 맛보고 나서야,
“…이거로군.”
제대로 된 방법을 찾아냈다.
이제 시급한 것은 이를 일반 백성들에게 보급하고 널리 알리는 것.
“닭을 잡아먹으라 하셨습니까?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시계 같은 걸 함부로 먹으면 부정 탑니다!”
“아무리 주군께서 그리 말씀하신다 한들 저희는 독실한 불자입니다. 어찌 살생하여 얻은 고기를 입에 함부로 대겠습니까?”
이 또한 당연히 쉬운 과정일 리가 없다.
덴무(天武) 덴노가 육식 금지령을 선보한 지가 벌써 800년 가까이 되어 가지 않는가?
이미 일본의 백성들은 물고기나 새고기 외에 살아 있는 것을 입에 대 본 지가 오래이니, 고기를 장려한다 한들 가축의 고기를 먹는 것은 부정한 것이 아니냐며 꺼리기만 할 뿐.
―“고기를 먹기를 꺼리는 자는 반동이다!”
―“육식은 신체의 단련과 정신의 함양을 위하여 지극히 좋은 것이다!”
열심히 프로파간다를 뿌려 봤자 크게 먹히지도 않는다.
“이런 쓰레기 같은 벽보는 불태워들 버립시오!”
“옳소! 부처님께서 보고 계신다!”
오히려, 반감은 커지고 특히 지난 반란 이후 멀리 물러나 있던 여러 불교 종파들이 스멀스멀 돌아오기 시작한다.
육식에 대한 강권에 부담감을 느낀 민초들, 심지어 마극종 인사들까지도 점차 마음이 기울어 가는 것이 보인다.
“이렇게 되어서는 아니 되네! 그따위 미신적 구습 때문에 백성들이 육식을 거부하다니, 당장 내 직접 저들에게 육식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