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82
솔직히 말하자면 여전히 소련에서 온 일행들은 대사 숙소에 모인 채 불안하게, 또한 경비의 말에 미심쩍은 기분을 느끼며 각기 모여 수군거렸다.
지금처럼 외부와의 연결이 차단당한 이상,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막말로 저 병사의 말대로 기다렸다가 다음 날 나와 보니 그 반역자 브라간자 공작이 왕위에 앉아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발을 동동 구르던 이징옥과 이아구를 로밀리가 달래는 형국이 지속되었다.
“카마라다 징옥 이! 카마라다 아구 이! 카마라다 로밀리! 제가 왔습니다!”
“세자 전하?”
주앙이 직접 나타나기 전까지는.
온몸이 피투성이다.
그러나 활짝 웃는 얼굴을 보건대 자신의 피가 아니다.
대충 오른손에 든 칼에는 누군가의 옷가지가, 왼손에 든 철퇴에는 누군가의 뇌수가….
“구에에엑… 구윽….”
“로밀리 동지 괜찮습니까? 전해 놓은 대로 병사들이 여러분을 잘 보호했나 보군요. 안심입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저하?”
“반역자들에게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중입니다.”
즉, 성문을 틀어막아 놓고 모조리 살육하고 있다는 뜻이다. 철퇴에 흐르는 끈적한 체액이 그를 증명했다.
“헌데, 문제가 생겨서 말입니다. 여러분께 여쭙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가장 큰 쥐새끼가 달아났습니다. 브라간자 공작 말입니다. 방금 동쪽 성문을 자기 호위 병력으로 기어코 뚫어 냈다는군요. 지금 잡아 내지 못하면 반드시 내전이 일어날 겁니다.”
“그러면 좇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병력이 없습니다.”
이아구의 말에 주앙은 고개를 젓는다.
“저희로서는 더 이상 할애할 병력이 없습니다.
명목상 리스본의 수호와 대사 여러분의 의전을 위해 급히 모은 병력인지라 지금 귀족들을 죽이고, 그 호위들을 상대하고, 수도의 치안을 유지하는 데 모두 소모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에 오신 이유는….“
로밀리는 질문을 꺼내다가 멈췄다. 물어보는 것 자체가 바보짓이다.
현재 리스본에서 가장 잘 무장된 수백 명의 병력. 아케부스가 겨우 도입되었을 뿐인 유럽에 홀로 소총을 구비한 신식 군대.
그런 군대의 지휘관이 이곳에 있는데.
주앙은 고개를 끄덕인다.
“…가능하겠습니까? 왕가로서는 이후에 상당한 이권을 소련에 보장하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로밀리로서는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1473년. 카스티야의 왕위 분쟁이 바로 다음 해, 마찬가지로 부르고뉴가 몰락하는 시발점이 되는 전쟁이 다음 해다. 아직 레콩키스타는 마무리되지 않았고, 그러면 지금의 결정이….
“이징옥 동지, 일단 사세를 지켜보고….”
“내 직접 가겠습니다. 가서 역적을 처단하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카마라다! 그대와 그대의 조국에 주님의 축복이 있기를!”
“당장 병력의 반은 이 왕성에 머무르고 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할 것입니다. 바로 저하를 따라가겠습니다.”
“이징옥 동지, 지금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로밀리 동지.”
이징옥이 잠시 얼굴을 굳히다가 로밀리에게 표정을 굳힌다.
결기가 가득한 얼굴은, 마치 하나의 방향을 향해 이미 날아가기로 마음먹은 화살과 같았다.
무엇도 그를 돌려놓을 수 없으리란 사실을, 로밀리는 삽시간에 깨닫는다.
“이번에는, 내 손으로 역적을 잡아야겠네.”
“….”
“당장 소집하려 하면 못해도 일다경입니다. 세자 저하, 적들에게 마필은 있습니까?”
“말을 타고 달아나려던 것을 활을 쏘아 고꾸라뜨렸습니다. 지금 페르난두의 나이와 부상을 고려한다면 퇴각 속도가 그리 빠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수십의 무장한 병력들을 데리고 있으니….”
“그렇다면 되었습니다.
로밀리 동지? 이아구 동지? 다녀오겠소.”
그렇게 뭐라 이야기를 붙일 틈도 없이 이징옥은 떠난다.
저 멀리 창밖으로 상조르주 성을 벗어나는 수백의 기병들이 보일 뿐.
그들은 리스본을 떠난다.
* * *
“지금, 상황은?”
“용병 쉰 명, 기사 열세 명이 남아있습니다. 추적은 대강 따돌렸으나 언제 탐지당할지 모릅니다. 지금 위치는 아마 사카벵(Sacavém)으로 보입니다.”
“아직도? 젠장, 배편이라도 구해서 타구스강을 건널 수만 있다면….”
물론 웬만한 쪽배로 건너기에는 타구스강의 너비가 한두 레구아는 넘기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커다란 배로 건넜다가는 단숨에 들켜 버리니.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허락된 여유는 없었다.
“저기, 반역자다!”
“아폰수 5세 전하께서 체포 명령장을 발부하셨다! 지금 페르난두의 목을 베면 금화로 목욕이라도 할 수 있다! 잡아라!”
“석궁병들 있나?”
“열 명이 있습니다!”
“당장 장전해서 저 새끼들을 쏴라!”
그들을 향하여 달려오는 무리는 약 서른. 석궁병들은 급히 발로 시위를 건 뒤 장전을 시작한다.
―피슉. 피슉. 피슉.
그렇게 밤공기를 가르는 가로선이 몇 개 그어지더니….
“크억!”
“부대장께서 낙마하셨다!”
그 끝에서 목숨 몇 개가 거두어진다.
“수습할 놈 셋만 남고 나머지는 계속 달려라! 놓쳐서는 안 된다!”
“적들이 계속 달려옵니다!”
“기병들은 떨궜으니 되었다! 저들을 상대할 몇몇만 남고 나머지는 퇴각한다!”
“예!”
그들은 도시의 불빛을 등지고 끊임없이 북상한다.
멀리 갈 필요는 없다. 이대로 북상해서 오우렝(Ourém)까지만 가면 페르난두의 영지이니 충분히 버틸 수 있다. 제발… 제발….
“난적들은 무릎을 꿇고 투항하라!”
빌어먹을.
“수도에 있던 소련 병사들입니다! 모두 기병으로 말을 타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당장 화살로 견제하라!”
“장전! 사정권에 들어오면 발….”
―탕! 탕! 탕! 탕!
하나둘씩, 공작의 병사들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쓰러진다.
어둠 속에서 확인되는 것은 그저 천둥 소리와 폐에서 바람이 빠지고 사람이 무너지는 짧은 소리뿐.
“각하, 어서 다리를 건너 피신하셔야….”
―탕.
“커… 허… 흐허….”
“이런, 망할! 주안 이 망할 애송이가 감히 이교도와 손을 잡고 귀족들을 탄압하다니?”
바로 곁에 서 있던 기사가 쓰러지자 페르난두는 경악과 공포, 그리고 분노로 외친다. 몸을 굽히고 빠르게 늙은 다리로 빠르게 달려 나간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각하! 오십시오!”
그래, 아직 희망은 있다.
정탐을 위해 내보낸 병사들이 지금 저 사카벵 다리(Ponte de Sacavém)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저 다리를 통과한 뒤에 어떻게든 병사들을 버티게 한 뒤 혼자서라도 추적을 따돌리면…!
―탕.
“크헉….”
뜨거운 섬광이 골수를 스치고 가는 듯한 격통이 느껴진다. 고통에 그대로 엎어지니, 오른쪽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각하!”
―탕! 탕! 탕!
다리 건너에서 부축하러 오던 기사들 역시 하나둘씩 쓰러진다. 안 돼. 제발. 저 다리만, 다리만 건너면….
오로지 눈앞의 목표물만 집념으로 바라보던 브라간자 공작은 어느새 말발굽 소리가 완연히 가까워졌음 역시 알지 못했다.
그가 기다시피 하여 사카벵의 다리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공작.”
“…하하, 왕자 저하.”
이징옥과 주앙의 말이 그의 곁에 서 있었다.
낯선 민족의 병사들이 그를 향하여 총을 겨누고, 노인은 그 앞에 무력하게 피 흘리며 서 있다.
“이 다리가 로마 시대에 지어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
고대인들의 섬세함과 꼼꼼함이 이 다리를 천 년 넘게 이어지도록 만들었으니, 앞으로 천 년을 더 가기를 바랄 뿐일세.”
왕자의 입가에는 차가운 조소가 묻어나왔다.
“그래야 이걸 보면서, ‘저기서 왕가에 반기를 든 어리석은 공작 페르난두가 죽었다’라고 모두가 기억할 테니.”
말에서 왕자는 내린다. 그리고 안장에 매어 두었던 철퇴를 꺼낸다.
“잘 가게.”
콰직.
수십 년 동안 포르투갈을 지배해 왔을 영혼의 거처가, 과자처럼 손쉽게 부서졌다.
피와 뇌수가 사방에 퍼지고, 그 뜨겁고 물컹거리는 덩어리가 바닥에 퍼진다. 그걸 한참 동안 관조하던 왕자는 긴장이 풀린 듯 한숨을 쉰다.
“…카마라다 이, 제게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무엇입니까, 왕자 저하?”
“이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다리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보고 싶군요.
흠… 폰테 데 봉 밤부는 어떻습니까?”
“의미는 모르겠으나 그 울림이 좋습니다.”
“좋아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 의미를 알았더라면, 이징옥이 절대 그런 말은 못 했을 텐데.
그러나 이 때문에 로밀리가 이징옥의 눈총을 받게 되는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Ponte de bom bambu’.
좋은 대나무의 다리.
‘선죽교(善竹橋)’.
신세계로부터 (5)
“…그래서, 제 말을 듣고 이런 대학살을 벌이셨다는 말입니까?”
“하하하, 그저 오래 결심한 일을 행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란지 마사크리(Grande Massacre, 대학살)’라뇨!
카마라다 이께서도 말씀하셨듯, 반역자를 죽인 건 충성이고 아버지를 앓아눕게 한 놈들을 처리했으니 효도가 아니겠습니까?”
왕세자는 황당해하는 로밀리를 앞에 두고 태연하게 담배를 태운다.
그렇게 몇 가지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이 더 오가다 보니, 곧 이야기를 끝낸 이징옥과 이아구과 다른 통역, 그리고 아폰수 5세가 나온다.
아폰수 5세는 그야말로 앓던 이가 우르르 빠진 듯한 평화로운 얼굴이다.
“나의 친애하는 아들아.”
“전하.”
“딱딱하게 굴지 말거라. 어젯밤에 아주 큰일을 해 주었으니, 네가 자랑스럽다.
세뇨르 징옥 이에게도 다시금 감사를 표하오. 그대의 용기 있는 결단 덕분에 포르투갈은 내전을 면했소.”
단 하룻밤 만에, 포르투갈 귀족 사회의 머리가 달아났다.
그것도 수십… 아니, 수백, 수천 개씩.
아직도 거리에서는 청소부들이 핏자국을 지우고, 누구도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는 뒷골목에서는 갈라진 배에서 삐져나온 내장을 두고 까마귀들끼리 다투고 있다.
“어찌 되었든 포르투갈은 평화를 맞이하였소.”
그럼에도 아폰수 5세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급조한 계획이었음에도 불구, 왕세자 주앙의 숙청 작업은 매우 철두철미했다. 각 귀족의 거처마다 내부에 첩자와 자객을 심어 놓았고, 거기에 2차 포위망을 형성할 병력까지 준비해 놓았으니.
가장 중요한 표적이던 브라간자 공작 페르난두는 잠깐 놓쳤으나 우여곡절 끝에 잡아내었고, 다른 모든 귀족은 브라간자 공작처럼 도망치거나 저항할 틈도 없이 비명횡사했다.
만일 그중 한 사람이라도 놓쳤다면, 개중에 거물이라도 끼어 있었더라면 곧바로 지방에서 세력을 규합한 귀족들에 의해 내전이 일어났으리라.
그러나 살아남은 것은 이제 아폰수의 총신이던 소수의 왕당파 귀족들뿐.
…물론 역사에 따라 저들도 주앙 2세가 왕위에 오르면 목이 무사하지 못하겠지만.
“적들은 지금 혼란에 빠졌으니 섣불리 움직이지 못합니다. 저들을 규합할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도, 구심점도 없으니 저들에게 남은 것은 몰락뿐입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주앙이 그렇게 덧붙인다.
사람 대가리를 여럿 터뜨려 놓고 마치 훌륭한 점심을 즐겼다는 듯한 얼굴이니 동양적 명군상에 익숙하던 로밀리로서는 얼굴이 새파래진다.
저런 자가… 나중에 ‘완전왕’이라고 불린다니.
그야말로 복잡괴기한 유럽에 최적화된 성군이다.
이아구와 이징옥을 데리고 대사들의 숙소로 돌아오고 나서야 로밀리는 협상의 전과를 제대로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상조르주 성의 한 방, 남향의 창문을 여니 옅은 초록빛이 섞인 듯한 싱그러운 하늘이 근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대사들의 숙소 내부로는 포르투갈인들이 부정하려 해도 사라센의 영향을 짙게 받은 이런저런 가구와 은집기가 햇빛을 튕겼다.
개중 이아구가 은주전자에 들어있던 음료를 따라 벌컥벌컥 마시고는 시원스레 말했다.
“상의했던 대로 피게이라다포스(Figueira da Foz)를 영구 조차하기로 했습니다.”
역시, 이번 협상의 성과가 꽤나 쏠쏠했던 것 같다.
“드디어! 이제 소련에 유럽 진출의 교두보가 생겼습니다!”
“단, 그곳에 주둔하는 육군의 수는 제한하겠다 하는군.”
“상관없습니다, 이징옥 동지. 저희가 언제든 포르투갈과 유럽을 사정권 내로 두고 있다는 그 사실이 중요한 거니까요.”
본래 그 땅은 코임브라의 주교령이었겠으나 주교 양반의 목이 날아갔을 테니 이제 왕실 직할령이 되었고 다시, 이제는 소련령이 되었다.
“이제 이곳이 유럽의 홍콩이 될 겁니다. 지금은 작은 어항이지만, 앞으로는 유럽 세계를 뒤흔드는 심장부가 될지 모릅니다.”
“그, 홍콩이란 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그 뜻은 알겠네. 언제든 유럽의 목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 이제 이 사실을 본국으로 알리죠. 연락선을 띄워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