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23
“뭐가 말입니까?”
에티앙블이 묻자 오히려 남자 쪽에서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자네들을 구해주러 내가 오지 않았나?”
그렇게 남자가 품에 들고 있던 장도를 빼 들어 휙 던지자, 매원의 등 뒤에 서있던 어느 행인이 어깨를 맞아 비명을 질렀다.
“크악!”
“이···이게 무슨 짓입니까?”
매원의 경악 어린 외침에 남자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당당한 말투로 답했다.
“뛰기나 하게!”
“쳐라!”
“아니, Flûte(젠장). 맙소사!”
행인인 줄 알았던 이들이 갑자기 허리춤에서 칼을 빼 들더니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남자가 앞서서 뛰어가자 매원과 에티앙블도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따라 달렸다.
“이게 뭐랍니까? 젠장!”
“상대가 보기에 자네들은 우리 쪽 사람 같아 보였겠지. 그렇다면 후환은 제거하는 게 나은 법. 내가 없었으면 사대문 바깥으로 나서자마자 목이 달아났을 것이야!”
“맙소사, 앞에도 칼잡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저건 우리 쪽 사람이야! 겁먹지 말고 뛰어나 오게!”
믿음 반 의심 반으로 매원과 에티앙블이 칼을 뽑아든 사람들 쪽으로 뛰어가자, 두 사람이 넘어간 뒤로는 길을 막아서고 괴한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매원의 등 뒤로 칼과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자 식겁하여 뜀박질이 빨라졌다.
“이··· 이런, 당신 미쳤습니까? 도성에서 어떻게 이런 터무니없는 짓을!”
“무슨 소린가? 지금부터 시작인데.”
“저쪽에 한명회와 일파가 있다! 잡아라!”
“사우당 선생이 저기 계신다! 비호해야 한다!”
그렇게 셋이 달려가는 곳마다 칼부림이 일어나고 금속과 금속이 서로를 긁고, 치고, 부대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명 소리와, 고기가 저며지는 소리, 체액이 솟구치는 소리 또한 간간히 들려오자 매원과 에티앙블의 목 뒤 털이 솟아올랐다.
분명 동대문 쪽으로 걸어가던 두 사람이 엉뚱한 방향을 향해 이리저리 질주하고 있었지만, 쫓아오는 칼들이 있다 보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남자를 따라 뛸 수밖에 없었다.
“말··· 말도 안 돼. 당신 대체 뭐야? 당신이 뭔데 이런 짓을 저지르고 있나? 도···도성에서 군사를 일으켜?”
“허, 빨리도 물어보는군. 자네들, 원산에서 왔다고 했나? 그렇다면 알아두면 좋을 걸세.
나는, 한명회일세. 앞으로 보위에 오르실 분을 뫼시고 있으니 잘 기억해두게.”
남자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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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다!
우발적으로 일어난 칼싸움. 그러나 되돌이킬 수는 없다.
누구든 칼을 뽑아 들었다면 난은 시작된 것이고, 난은 평정될 때까지 끝날 수 없다.
결국, 끝이 났을 때는 더 잘 준비된 자가 승리를 거머쥐었을 테다.
그리고 수양은 그 자가 자신이기를 바랐다.
사대부들 사이에서 명망 높은 안평과 세력기반이 부족한 자신,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정공법으로 싸움을 걸었다가는 백이면 백, 패할 수밖에 없다. 기댈 것이라고는 오직 기책뿐.
한명회가 원산에서 온 죄인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닐 곳들을, 다시 지도 위에서 짚어보았다.
남대문 근방 태평관.
돈의문 인근.
그리고 사직을 거쳐 움직인다.
서쪽으로.
영양위의 사저에서 먼 쪽으로.
주상이 계신 곳에서 먼 쪽으로.
일단 칼부림이 났다고 하면 사졸들은 그곳으로 달려들 수밖에 없다.
무리하더라도, 지난 몇 날 동안 한명회의 존재를 안평대군의 세력에 노출시켰다. 일부러 수시로 그가 자신의 집에 들락거리게 하였고, 사냥을 나갈 때나 활쏘기 대회를 열 때 그를 가까이 두고 무언가 의논하는 체하였다.
그렇게 안평대군 측의 눈에 ‘최측근’의 위치가 ‘들통난다’고 하면?
역시 좋은 먹잇감이 되어 주리라.
시어소와 먼 곳으로 그의 병력들이 몰려가 뒤를 막아버리고, 주상의 신변을 확보한다. 그 뒤로 안평을 베어버린다면 모든 것이 끝나 있으리라.
이것이 수양대군과 한명회가 그리는 대전략이었다.
만일, 뜻한 바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어차피 몰살이거늘 무엇을 생각하랴!
그렇게 짐짓 호탕한 마음을 먹었으나, 손끝이 떨려오는 것만은 막을 수가 없었다.
수양은 허리춤에 찬 칼의 자루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지금 저 문을 열고 나가면 장졸들이 기다리고 있다.
자신이 향해야 할 곳은 어디인가?
보좌가 있는 곳!
수양은 문을 박차고 나갔다.
같이 사냥 나가자는 말을 듣고 모인 병사들이 모였다. 물론 사슴 따위를 잡으려 모인 것이 아님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지금 주상의 목숨을 노리며 안평이 군사를 일으켰다. 불궤한 자들이 그의 편에 섰으며, 여기 사직에 일신을 바칠 충량한 마음을 가진 장부들이 내 곁에 섰구나! 내가 대군 흉을 벨 터이니 누가 감히 막아서겠는가!”
환호성이 일시에 터져 나오자, 수양은 말에 올랐다.
평시라면, 도성에서 말을 타는 것조차 조심했을 터이다.
그러나 지금, 수양은 말 위에서 칼까지 뽑아 들었다.
“가자!”
“와아아아아아아!”
이제, 주상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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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쉽게 주상을 내어줄 안평이 아니다.
“지금 순군 중 반 정도는 우리에게 찬동하고 있습니다! 지금 쳐야 합니다!”
이명민이 그렇게 외치자, 안평이 다시 되물었다.
“그렇다면 어디를? 수양의 사저를 쳐야 하는가? 아니면 시어소로 향해야 하는가?”
“이유(李瑈, 수양대군의 본명)를 죽이는 일은 추후로 미루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주상 전하의 신변은 간신에게 결코 빼앗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사직의 중심을 지키고, 그 뒤에야 난을 평정함이 옳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시어소와 가까운 의금부의 제조를 맡은 것이 박종우 등 수양의 일파이니, 주상의 신변을 지킴이 무엇보다도 시급합니다!”
“네 말이 옳다···. 도청의 병력은 준비되었는가? 나머지 병력은 어찌 될 듯 한가?”
“사병들은 이미 한명회의 뒤를 쫓고 있으니 곧 그를 베어 없앨 수 있을 것이며, 일이 마치는 대로 합류할 것입니다.
그러나 시급한 것은 주상 전하의 안위입니다. 도청 휘하의 금군과 포섭된 순군을 그러모아 의금부에서 영양위 사저로 가는 길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쳐야만 하리라! 내 직접 가겠다!”
안평이 자리에서 일어나 벽 한 켠에 걸려 있던 칼을 집어 들었다. 안평이 대문을 통해 마당을 나서자, 이미 칼과 창을 갖추고 있던 하인들이 곳곳에서 나와 그의 뒤를 따랐다. 몇몇은 말을 타고 각지의 병력에게 명령을 하달하려 달려나갔다.
홰마다 불이 붙었고, 창칼들이 그 불에 그을려 붉게 빛나니, 피 묻은 별조각들이 땅에 떨어져 반짝이듯 했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급하게 길을 비키고, 서둘러 집집들의 문이 잠긴다.
그렇게 골목과 골목을, 대로와 대로를 나아가자 한양의 등뼈라고도 할 수 있는 한길이 나온다.
바로 운종가다.
멀리 안평대군의 눈에 수양대군과 그 휘하 수졸들이 다가오는 것이 뵈고, 근처로는, 파발이 닿은 순군과 도청 휘하의 군졸들이 모이는 것이 들어온다.
그렇게 수양과 안평이, 칼을 쥔 서로의 모습을 본다.
“용(瑢, 안평대군의 본명)아! 감히 도성에서 군사를 일으켜 죄없는 백성들을 베려 하고 사직을 뒤흔든다는 말이더냐! 어찌 친조카이신 주상 전하를 베려 하고, 나와 형님 문종대왕, 그리고 아버지 세종대왕과의 의리를 버리느냐!”
“하, 형님이야말로 지금 무엇을 하시는 것입니까! 외적들과 통하여 흉계를 꾸미고 간신과 같은 모리배들과 친하여 지금에 이르러 난을 일으키시니, 이 어찌 형이라 하여 베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다가,
“쳐라!”
“죽여라!”
창칼들이 서로 얽힌다.
///
그렇게 신숙주의 집에 다시들 모인 이들은 많지 않았다. 박팽년, 하위지, 이개, 성삼문. 그게 전부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난리가 난 상황임을 모두들 짐작할 수 있었다.
곳곳에서 금속성이, 비명이, 고함소리가 들려오는데 천치가 아니고서야 어찌 모를 수 있으랴.
난(亂).
그 한 글자가, 이렇게 납덩이처럼 이들의 가슴속에 무겁게 내려앉은 적이 없다.
“그··· 그래서 지난번에 모의한 것처럼 이렇게 모여만 있으면 되는 것인가?”
하위지가 묻자 박팽년이 못내 가슴에 무언가 남는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렇네. 여기 있으면, 우리들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것이야. 주상 전하는 모르겠지만···.”
다시 방 안에 가라앉는 침묵이, 바깥에서 일어나는 소란과 대조되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문밖으로는 여기 모인 각자가 데려온 하인들이 담장과 담장마다, 문과 문마다 보초를 서며 지키고 서 있다.
차라리 도성을 탈출한다면서 허겁지겁 문을 통과하는 것보다야, 이런 안전한 곳에 모여있는 것이 더욱 안전하리라.
···그런데,
“자네는 왜 말이 없나?”
하위지는 정작 집주인인 신숙주가 한동안 말도 없이 서성이는 것을 보며 물었다.
마치 무언가 놓친 게 있는 사람처럼, 저 대문밖에 애첩이라도 놓고 와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처럼.
“옥천, 단천, 언양, 개천··· 옥천, 단천, 언양, 개천··· 옥천···”
그리고 갑자기 지명들을 반복해서 읊조리는 꼴은 마치 미친 듯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우뚝 멈춰서서는,
“어? 어아아아아아? 이런 망할! 육시럴 놈들! 동전 비린내 나는 노친네들이 이 따위 빌어먹을 짓을 저질러?”
“자···자네 무슨 일인가? 갑자기 왜 그러나?”
“김종서 이 개새끼가! 이 망할 능구렁이 같은 호로새끼! 젠장, 망할, 대신들이었어! 대신들이었다고!”
그렇게 머리를 쥐어뜯으며 외쳤을 때는 모두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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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년의 피바람 (4)
“옥천, 강진, 단천, 경성, 언양, 울산, 개천, 영변···”
“자네 갑자기 실성해서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이개의 만류에도 신숙주는 머리를 계속 쥐어뜯으며 외쳤다.
“시···시발, 시발, 시발···십으알···. 대신들이라고! 대신들이라니까!”
“제발 진정 좀 하게!”
“어떻게 진정을 하겠나! 우리 모두 다 모가지가 간당간당하게 생겼는데!”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인가! 가만히만 있으면 안전하다고 한 것은 자네 아닌가?”
“김종서와 대신들이 온다니까!”
“귀양 간 대신들 얘기는 왜 하나! 자네가 보내 놓고서 잊어버린 겐가!”
그렇게 한참동안 신숙주와 나머지들 간의 실랑이가 이어지다가 겨우 진정한 신숙주가 갑자기 책장에서 서책 하나를 꺼내 왔다.
“이···이걸 보게나···.”
“뭔가? 그냥 지리지 아닌가?”
“황보인이··· 어디로 유배를 갔나?”
‘황보인’. 아무리 유배를 갔다 하더라도 영의정의 자리에 올랐던 이를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그 사실을 깨닫고 훈계하려던 박팽년은 신숙주의 절박한 표정을 보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지리지 한쪽 구석으로 향할 뿐이었다.
“옥천이지.”
“그래, 전라도 옥천. 땅끝 중에서도 땅끝이라네! 그래서 우리가 몰랐었지!”
“아니, 그래서 무얼 말하자는 건가?”
“그 옆에 무슨 고을이 있나?”
“해진이 있고··· 그리고 여기가··· 강진인가?”
“그래! 강진이네! 강진이 어떤 곳인지 모르겠나?”
“강진이 뭐가 어쨌··· 자네 설마.”
지리지에 눈을 가져다대던 박팽년은 흠칫 떨고는 신숙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신숙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설마가 맞네.”
“전라도 병영이 있는 곳 아닌가!”
“김종서의 유배지는 어디지?”
“단···천이지.”
이번에 답한 것은 하위지였다.
“맞네, 단천은··· 경성과 가깝지. 함길도 병영이 위치한 곳이야.
허후는 언양으로 갔네. 언양은 울산 병영과 지척이며, 민신이 유배를 간 곳은 개천이고 평안도 영변 병영으로 한달음에 갈 수 있는 거리라네! 그리고 다른 인사들은 어디로 유배를 갔는지 볼까? 조극관은? 정분은?
어디로, 갔는지, 좀, 보란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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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젠장. 대체 어디까지 뛰어가야 하는 겁니까?”
“이제 거의 다 왔네. 거의 다 왔어··· 자, 여길세.”
“그래서요? 이제는 뭐 어쩐답니까?”
“뭐 어쩔 것이 있겠나? 도망치든, 숨든 해야지.”
“뭐라고요!” 에티앙블과 한명회의 말을 듣고만 있던 매원이 경악에 차서 외쳤다.
그들이 멈춰선 곳은 사직의 북쪽. 서쪽의 돈의문과 서북쪽의 창의문 사이 딱 중간 지점.
최소한으로만 활용해야 했던 병력을 이리저리 매복시켜 안평 측의 피해를 최대한 강요했으나, 이제는 슬슬 한계였다.
또, 이상하게 이곳저곳을 들러야 한다며 시간을 지체하던 두 사람 때문에 피해가 더 커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저들을 버리기엔 또 어려웠으니 문제였고.
자칫 안평의 병력이 저 둘을 쫓으려 쪼개졌다가, 수양대군에게 가까워진다면···
젠장. 아무튼 한명회는 스스로가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했다.
일단 시간은 끌었으니 이제 몸만 피하면 되겠으나, 호위해 줄 병력도 이제 마땅치 않다. 상대 병력이 지금 주 전장이 되었을 운종가로 돌아간다면, 수양대군이 포위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고.
어느 쪽이든 문제투성이다.
어쩔 수 없었다. 한명회가 내세운 것도 의외로 허술한 계책이었으니까. 그러나 이 수밖에 없기도 했다. 누가 보아도 열세인 병력으로 수양대군에게 조금의 승산이라도 열어주려면, 이렇게 한명회 자신이 목숨을 걸고 뛰더라도 부족했다.
그러니, 이제는 한계다.
‘이길 수는 있으려나?’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수양대군의 병력이 움직일 위치와 안평대군이 거병할 위치를 생각해보면 시어소의 확보는 어려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