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250
저들은 파디샤 폐하께 몽골의 내실에 대하여 전해 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대는 알고 있는가?”
그는 여전히 반쯤은 확신에, 반쯤은 흥분에 들떠 있던 폐하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저들은 강성하나 약하네. 지금이 기회일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폐하께서는 그날 불신으로 가득하던 메흐메트의 마음을 열어젖히셨다.
―“지금 저 짐승은 지난 수십 년간 집어먹은 거대한 영토를 소화시키는 참일세. 앞으로 이어질 전쟁이 끝나고 새 카간의 지위가 확고해진다면 저 짐승은 완연한 세계의 왕이 될 텐데. 아직 미숙할 때 목을 쳐야 하지 않겠나?”
폐하의 말은 어느 정도 옳았다. 20여 년 동안 정복전을 지속해 오던 나라에 성장통이 없을 수가 없다. 만일 현재 카간의 치적 쌓기로 진행되는 전쟁에 적당히 훼방을 놓는다면 몽골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길 수 있으리라.
허나 그분에 대하여 승리를 거둘 열쇠로, 이 나라를 지목하셨을 때는 의아하였다.
몽골 제국군이 사용하는 질 높은 강철을 소련에서 생산한다? 입수한 몽골군의 도검을 가지고 궁정에서도 시험해 보았지만, 그 질의 우위는 대단할지언정 그것만으로 전황이 결정될 순 없다. 오스만 역시 뛰어난 야금술을 누리고 있지 않던가?
경제적 지원? 그거야 중요하기는 하겠지만, 옛 지도들에서 살펴본 저들의 영토는 그리 크지 않았다. 오면서 저들이 개척한 기착지 몇 곳을 살피기는 하였으나 그 역시 인구와 면적이 대단치는 않았다. 이런 소국에서 몽골이라는 대제국을 먹여 살린다니 과장이 크다.
아무리 많은 이권을 약속하더라도, 몽골의 최우방이라는 이들에게서 중립의 확답을 받아 낼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그 확답을 받아 낸다 하더라도 의미가 있기는 할지….
이브라힘을 비롯하여 파디샤의 의중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소곤거렸고, 메흐메트과 동료들 역시 따로 모여 걱정들을 풀어놓았다.
파디샤께서는 어쩔 작정이신가?
오늘의 이 항해는 과연 의미가 있기는 한 것인가? 이렇게 고관들을 파견할 정도로?
그렇게 생각하며 그들은 조선에 닿았다.
‘열차’라고 안내받은 운송 수단에 오를 때도, 두 집단은 각기 갈라져서 오른편과 왼편에 나누어 앉았다.
“기대가 되지 않으십니까?”
“…뭐가 말인가?”
“저는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발전된 대포 기술을 이곳에서 구경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저들이 충분히 이방인에게 친절하다면, 가까이에서 이뤄지는 발포 정도야 보여 줄 수 있겠지요.”
창밖으로 무섭도록 빠르게 지나쳐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맞은편 좌석의 대포 기술자 무니르 알리(Munir Ali)가 말한다. 메흐메트는 약간 의아하여 되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발전되었다니, 그 무슨 소리인가?”
“아, 이런. 전해 듣지 못하셨나 보군요.”
급히 무니르 알리는 다른 사람이 들을세라 수어로 이야기를 이어 간다.
―“몽골군이 사용하던 총포들이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 모르십니까?”
―“그래, 알지 못하네.”
―“바로 이곳입니다.”
“…뭐라고?”
“그 말대로입니다. 아! 저기, 이 나라의 수도가 보이는군요!”
순간 넋을 잃은 듯한 무니르 알리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며, 메흐메트 역시 창밖을 돌아본다. 다른 사신들 역시 창유리에 얼굴을 딱 붙이고는 터번이 벗겨질 정도로 고개를 높이 들어 저 드높은 마천루들을 올려다본다.
그 아래로는 금과 은으로 도색한 저층의 저택들이 즐비하다. 살아서 본 것 중 가장 거대한 인파가 길게 넓게 도로 사이를 오간다.
그제야 메흐메트는 깨닫는다.
‘파디샤께서 옳으셨다.’
* * *
“동방 위대한 티오손(Tioson) 제국의 현명하신 황제 폐하께 이리 간청하옵니다.”
오스만국의 승상이라는 특사는, 화려한 복식과 향낭으로 치장한 채 인경궁의 정전 앞에서 정중히 무릎 꿇고서 말한다.
“우리 숭고한 오스만국(دَوْلَتِ عَلِیَّهِ عُثمَانِیَّه)은 오직 화평만을 바라오니, 이 나라에 요구하는 바 역시 단 한 가지뿐입니다.”
낯선 옷, 낯선 언어, 낯선 향기를 뿜는 이들을 이홍위의 곁에서 내려다보며 신숙주는 입술을 앙다문다.
“이어질 전쟁에서, 중립을 지켜 주소서. 만방에 그 위명이 익히 알려진 무시무시한 총과 대포의 포신이 그저 차가운 휴식 속에 잠들어 있도록 하소서.”
‘유럽과의 전쟁에서 활약했던 것처럼 하지 말아 주시고.’
특사의 말에는 이런 뒷구절이 침묵으로 함축되어 있었다.
사절들을 물린 뒤, 벌써 몇 번째로 급히 소집되었는지 모를 인민 위원들이 다시금 소련 정부 청사로 모여들었다.
인식되었다.
명 남조의 황제가 은밀히 조선 내부로 연락을 찔러 왔을 때와 같이, 벌써 두 번째로 소련은 외부 세력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들 역시 재량껏 소련의 내막을 파악해 보고는 제각기 판단을 내린다는 간단한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참으로 귀중하고, 또 때늦은 깨달음이었다.
“오스만이 중립을 청하였소.”
트로츠키는 한마디로 사태를 정의 내렸다.
들어주지 못할 요구는 아니다. 누가 구태여 많은 자원과 생목숨을 들여 남의 나라 전쟁에다 갖다 바치고들 싶겠는가? 이번에도 몽골이 파병을 요청해 온다면, 소련은 얼마든지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든가, 아에 거절해 버릴 권리가 있었다.
문제는 그런 행위들이 소련의 국익에 도움이 되냐는 것.
“몽골 제국은 단순한 중개상이나 상등품의 꼭두각시가 아닙니다. 몽골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이룬 거대한 제국입니다. 그런 제국이 오스만마저 집어삼킨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위협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반대로, 몽골이 오스만과의 패권 경쟁에서 밀려 새 카간이 흔들리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어떻겠소? 오스만 역시 유럽과 아시아 양쪽으로 세력을 크게 넓힌 뒤 흔들리는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몽골의 도전에 응할 게 아니오?
여기서 몽골이 지면 어떻게 되오? 제국의 분열과 함께 세계 육상 무역은 무너지지 않겠소? 소련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공들여 형성시킨 범세계적 경제권이 순식간에 어그러질 것이오!”
몽골은 중요한 동맹이자 온갖 자원의 수급처다. 그들 덕분에 대륙의 상황은 신경 쓸 필요 없이 안정해진다.
한편으로, 몽골은 소련을 위협할 만한 위력을 지닌 유일한 세력이다. 그들의 야망이 언제 소련을 향할지 누구도 모르리라.
몽골에 대한 그 두 가지 상반된, 그러나 어느 정도 타당한 분석이 부딪힌다.
어느 하나 틀린 말이 없는 만큼 소련으로서는 고민의 기로 위에 놓인다.
“트로츠키 동지, 오스만과 몽골이 적당한 소강상태에 빠져 합의한다면 어쩌겠습니까? 백양 왕조를 완충 지대로 두거나 아니면 둘 모두 해당 지역에 대한 정복욕을 어느 정도 꺾고서 합의한다면….”
“두 제국 다 멸망하겠지.”
“어째섭니까?”
인민 위원들의 물음에 트로츠키는 스피리도노바에게 눈을 돌린다. 소련의 외교 총책으로서 그는 설명을 대신 이어 간다.
“몽골은 당연히 양보하거나 물러설 수 없소. 새로운 카간의 위신과 위업을 위해서라도 가장 완전하고 찬란한 승리, 정복이 이뤄져야 하오.
반대로 오스만 역시 마찬가지요. 그동안 여러 대륙에 걸쳐 확장되었던 제국의 강역을 어느 정도 굳게 다지고 메흐메트 2세 역시 자신의 후대를 생각할 나이가 되어 가니.
만일 이 상태에서 패배하거나 양보한다면 그 진영은 내부적으로 붕괴할 거요.”
즉 얄팍한 꼼수도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몽골 또는 오스만 중 둘 중 하나가 망해야 한다.
거기에 아마 몽골이란 동맹국이 이 전쟁에 소련의 참전를 바랄 텐데. 거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아무리 몽골에 위협을 느낀다 하더라도 몽골의 붕괴까지 바라는 이들은 없다. 이번 전쟁에서.
의외로 거기에 대한 해답은 일찍 주어지니.
―“카라코룸의… 에드워즈가 보냅니다…. 현 카간의 심중은….”
* * *
“러시아 공화국의 도움은 유럽인들을 상대하는 데 아주 유용했소. 그 무수한 총알들이 폴란드의 기병들을 무너뜨렸고, 스위스 용병대의 단단한 보병진을 우그러뜨렸소.”
현 카간과 전 카간이 나란히 서서 활시위를 매기는 가운데, 에드워즈는 그 옆에 서서 그 둘의 화살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쉭.
먼저, 에센의 화살이 풀어놓은 사슴의 왼쪽 다리를 꿰었다. 사냥꾼들의 여흥을 위해 목에는 색색의 천을, 뿔에는 황금 종을 매단 불쌍한 짐승은 괴성을 내며 쓰러진다.
일격에 죽지 않아 고통스러운지 끼익거리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옛날의 에드워즈였더라면 가슴이 아파 고개를 돌렸을 광경이나, 지난 세월 동안 저 사슴보다 하찮게 죽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그렇기에 현 카간 호루크다슨의 다음 화살이 사슴의 심장을 꿰뚫자 에드워즈는 무덤덤하게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
“카간께서 사슴을 잡으셨다!”
옆의 시종이 외치자 다들 축하의 이야기들을 보낸다. 그 자질구레한 소음들을 무시한 채 두 사람은 활을 내려놓고 에드워즈를 바라본다.
“…소련과의 우애가 아니었더라면 지난 전쟁은 더욱 험난하고 과실 또한 형편없었을 것이오. 에초에 방어전이었던 전쟁에서 몽골은 막대한 초지와 농지를 손에 넣었고 러시아의 훌륭한 영토 경영으로 막대한 세입을 누리고 있소. 그 모든 방면에서 감사의 말을 전하겠소.
나의 시대가 와서도 소련과의 우애는 변함이 없을 것이오. 다만….”
다만?
호루크다슨 칸의 말에 에드워즈는 긴장하였다. 몽골이 없다면 소련이 멸망하는가?
아니다.
그러나 소련의 세계 경영 전략이 이리저리 뒤틀리고 지난 십수 년의 외교적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가?
그건 맞다.
혹여나 몽골과 소련의 관계에 심대한 변동이라도 암시될까 싶어 에드워즈는 두 귀를 쫑긋 세운다.
새로운 카간은 이야기를 이었다.
“모두가 유럽과의 전쟁에서 소련의 공로를 배제할 수 없음을 알고 있소.”
순간, 에드워즈는 왜 카간이 이전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지 의아해하였다. 카간은 이미 입을 다물었으니, 무례를 무릅쓰고 되물어 볼까 생각도 했지만.
‘이 전쟁은 승계를 위한 전쟁이다.’
이내 에드워즈도 속뜻을 깨닫는다.
승계를 위하여, 제국의 권위를 일신하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정복 전쟁이다.
지난 전쟁은 소련에 그 성과를 크게 의존하였고, 그 사실을 제국의 모두가 알고 있다면.
이번 전쟁에서 모든 업적은 새 카간의 것으로 돌려져야 한다.
“하오나, 이번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이 참전해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들 역시 성세를 누리는 제국이니….”
“그들의 사절이 연회장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지. 그들과 전쟁을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리 중요한 일이라 생각지 않소.”
몽골의 새 카간은 자신만만하다.
“나의 군재에 대한 세간의 불안감이 클지 몰라도 승리는 장수 하나가 이루는 게 아니오. 사람이 실수로 모기를 놓칠 수는 있으나 결국 손가락 하나로도 짓눌러 죽일 수 있으니. 압도적인 힘은 모든 것을 누르오.”
모기. 백양 왕조든 오스만이든 그에게는 한낱 수레바퀴 앞을 가로막는 사마귀처럼 하찮을 뿐.
에드워즈는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 대사관에서 전신을 쏘아 보낸다.
“전달해 주십시오. 현 카간의 심중은 이렇습니다.”
그리고 수신지인 한양과 원산의 지도부도 빠르게 그 정보를 정책에 반영한다.
“…몽골은 소련의 개입을 바라지 않소.”
“그렇다면, 우리가 취해야 할 큰 틀은 정해진 것으로 알겠네.”
이홍위는 영빈관에 머무르던 오스만의 사절들을 소환한다. 그리고 약속한다.
기관총과 야포가 페르시아 땅을 불태울 일은 없을 것이다.
델포이의 신탁 (3)
―‘진행자(이하 ‘진’): 이번 사태를 맞이하여 우리 제작진에서는 관련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3주간 간담회를 진행하였고, 벌써 마지막 주차가 찾아왔습니다. 오늘 특히 저희 라디오 방송국이 창간 1주년을 맞이한 만큼 이번 기회에 독자분들께 작금의 몽골―오스만 갈등에 관하여 보다 수준 높은 정보들을 제공하려 합니다.
이번에 저희 ‘원산의 소리’ 제작진의 요청에 모여 주신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우선 원산 공산당의 여러 청년 조직에서 지도 및 자문을 맡고 계신 마리 블레어 동지께 의견을 묻도록 하겠습니다. 동지께서 보시기에 이번 갈등에서 주로 주목해야 할 지점, 또는 개인적으로 지적하고픈 지점은 무엇입니까?’
―‘마리 블레어(이하 ‘블’): 제가 보기에는 이 사태를 관측할 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이름에 사로잡히면 안 됩니다. 기자들이, 또는 관련자들이 순간적인 발상에서 또는 편의에 따라 붙인 명칭들에 현혹되다간 사태의 본질을 놓치기 마련입니다.’
―‘진: ‘이름에 사로잡힌다’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블: 간단합니다. 예를 들어 방금 이 사태를 일컬어 ‘몽골―오스만 갈등’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진: 맞습니다.‘
―‘블: 이번 사태를 단순히 몽골과 오스만 두 세력 간의 갈등으로 압축해서 보는 관점은 편리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에게서 이 사태를 둘러싼 중요한 분쟁지 중 한 곳을 놓치게 만듭니다. 바로 중원입니다.’
―‘진: 중원이라면?’
―‘블: 말 그대로입니다. 몽골의 새 카간이 즉위함과 동시에 몽골 제국은 중원을 둘러싼 종전의 외교적 전략을 크게 수정하였습니다. 명 북조와 남조의 사신이 연회에서 나란히 앉아 동일한 수준의 의전을 받았습니다.
이는 있을 수 없는 바입니다. 하나는 몽골의 형제국이자 사실상 속국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 형제국의 입장에서 국가조차 아닌 반역 집단이며 몽골의 입장에서도 잠재적 적국이기 때문입니다.’
―‘진: 그것이 몽골과 오스만 사이의 전운과 연관이 있다는 의미입니까?’
―‘블: 물론입니다. 몽골 제국이 다시금 이렇게 공세적인 행보를 걷는 이유는 바로 새 카간의 업적 정당성을 쌓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국은 두 가지 입장을 취한 게 아닌가 합니다. 한편에서는 티무르 잔당과 백양 왕조, 그리고 오스만을 치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원의 상황을 정리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중원의 갈등 봉합을 막던 것은 결국 몽골입니다. 북조는 몽골의 견제 때문에 남조를 칠 독자적인 군사력이 없었습니다. 거꾸로 남조는 몽골의 비호를 받는 북조를 칠 수 없었습니다. 이 교착 상황이 끝나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중원의 상황을 결딴내려는 의지가 보여집니다.
아무튼, 우리는 몽골의 의도를 세심히 살피고 조정해야 합니다. 몽골의 붕괴나 쇠퇴는 소련에게는 크나큰 외교적·경제적 실패로 다가올 겁니다.’
‘진: 마리 블레어 동지의 의견 잘 들었습니다. 다음 패널은 조선 공산당의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 * *
‘…이번 사태에 대하여 꾸준히 독자 제현께 설명하였지만, 이 자리에서 나는 다시금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장차로 벌어질 분쟁에서 본질은 누가 영토를 얼마나 얻었고 얼마나 전공을 세웠느냐가 아니다. 이 분쟁은 두 제국의 기틀을 다지는 전쟁이다.
일단 몽골이 이번 사태에서 오스만과의 갈등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으며, 그에 비하여 오스만이 몽골의 거동에 강경한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 보자. 두 세력의 충돌은 어떻게 보면 필연적이다.
명의 태조(太祖) 홍무황제(洪武皇帝)가 개국 이래 그다지도 많은 피를 흘린 바는 모두 새 왕조를 건실히 하기 위함이었고, 전조(前朝)의 왕태조(王太祖, 왕건) 역시 숱한 부인을 두어 호족들을 달래었으니 그 모두 같은 목적을 위함이었던 것이다.
물론 메흐메트 2세가 에센 칸이나, 홍무황제, 왕태조와 같은 나라의 시조는 아니다. 허나 그 역시 몽골의 에센처럼 그의 대에 숱한 영토들을 늘렸고, 에센과 같이 소련이 구축한 국제적 무역망의 덕택에 제국이 큰 부를 쌓지 않았던가?
만일 오스만이 앞으로의 위기에서 살아남는다손 친다면 모두가 그리 이야기할 것이다. 오스만국의 역사는 메흐메트 2세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이다.
물론 이것이 초인적인 군주 혼자만의 신화적인 업적에서 비롯된 바라기보다는 소련과 몽골이 불러온 국제적 변화, 그리고 그 자신의 능력과 주위 상황이 어우러지며 나타난 결과이겠다. 그러나 현 파디샤의 업적이 아니라 할 수도 없다.
그렇듯 옛것이 크게 쇄신되고 새것이 물밀 듯 들어오며 어제의 용태를 오늘에 와서 다시 찾아볼 수 없으니 메흐메트 2세 역시 시조는 아니라도 능히 중시조라 할 만한 인물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
또한 그 역시 이제 슬슬 후사를 생각해야 할 나이대가 가까워 오고 실지로 본래의 역사에서 그가 죽은 햇수가 머지않았으니 제국의 체제와 후계 구도를 정비할 때가 되지 않았던가?
그리 생각한다면 역시 독자 제현의 머릿속에서도 어떤 지도가 그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에센은 제국의 강역을 크게 넓혔다. 그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메흐메트 2세 역시 오스만국의 영향권을 몇 배로 확장시켰다.
에센은 제국을 일신케 하여 앞으로의 만세를 도모하고자 한다. 메흐메트 2세 또한 근래에 장자를 정치적으로 밀어주는 기색을 보이며 장자 상속의 원칙을 다지는 듯하다.
두 강성한 대국들이 내부를 새롭게 다지기 위하여 외부로 동시에 눈을 돌리니 이러한 결과는 어찌 보면 필연이라 할 수 있을 터다.
당연히 둘 중 소련이 더욱 우선시하고 중요히 여겨야 할 국가는 몽골이다. 그들이 소련의 세계 지배 전략에서 담당하는 바를 생각한다면 몽골의 붕괴는 재앙이다.
그동안 쌓아 놓은 물류 네트워크, 유라시아 내륙 지역의 안정화와 점진적 자본주의화 등등 20여 년 동안 쌓아 올려간 많은 위업이 무화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면 우리는 몽골의 의중만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검무도, 전쟁도, 두 세력이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오스만국을 살펴야 한다. 저들이 몽골과 얼마나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보아야 한다.
두 제국이 지금 우화(羽化)하려고 한다. 그러나, 둘 중 하나는 다른 하나에게 그 머릴 뜯어먹히고 말리라.
김굉필, 향민보 객원 기자.
1481년….’
* * *
―‘그때 강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만주를 대표하여 자리에 참석한, 또 강연자 중 유일하게 현직 소련 각료였던 이시애 군사인민위원이었다. 그는 대중들에게 익숙할 제복 차림에서 벗어나 철릭 위에 트렌치코트를 걸친 기묘한 차림새였다. 그는 단상으로 올라가자마자 이야기를 시작했다.
“결국 앞선 두 동지의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정리하는 바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좀 거창한 용어를 써 가면서 이 간담회의 내용을 갈무리하고자 하오. 내 보기에 이 싸움은 새로운 세계 체제의 정립을 결정할 것이오. 그는….’
―착.
거기까지 읽은 뒤, 트로츠키는 신문을 덮었다.
그가 읽은 여덟 번째 주간지였다.
근 한 달 동안 모두가 한 가지 주제만을 다뤄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치워 낸 주간지들 옆에 놓인 이 보고서도 그렇고.
―‘몽골―오스만 분쟁과 유라시아 대륙의 지정학적 판세 향방에 관한 보고서’
일단 제목이 길고 지루하다. 척 봐서는 내용도 잘 감이 안 잡히고 뭔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 자료를 요청할 때마다 “어이, 거기 ‘몽골―오스만 분쟁과 유라시아 대륙의 지정학적 판세 향방에 관한 보고서’ 좀 가져다주겠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대부분의 각료, 그리고 그 밑의 선출직·비선출직 공무원들은 작성자들의 이름을 따서 간단하게 불렀다.
―‘에드워즈―아욱토리타스 보고서’
딱 좋은 이름이다. 이 문서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더더욱이.
앞으로 세계사 교과서에 항상 나올 이름이 될 테니 외우기 쉽고 짧아야 하지 않겠는가?
트로츠키는 몇 번이고 들여다보았던 낱장들을 다시금 넘긴다.
―‘몽골의 선대, 그리고 현 카간은 앞으로의 정복 전쟁을 압도적인 승리로 이끌기 위하여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몽골 제국에 있어 이 분쟁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언급이 되고,
―‘장기간 동안 소련과 몽골의 정치 경제적 상황을 관측한 결과는 이렇다. 몽골 제국은 유지되어야 한다. 이들의 존재는 구세계 전역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어 내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한편, 다른 결괏값 역시 도출된다. 몽골은 견제되어야 한다. 그러한 규모의 세계 제국은 지속적인 통제하에 놓이기에는 너무도 거대하고 강력하다.’
또, 몽골 제국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