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249
“그렇습니다.”
아무리 신숙주가 몽골어가 가능한 몇 안 되는 소련의 고위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카간의 신하로서, 또 몽골인들의 명목상 전시 사령관으로서 굴러온 에드워즈에게는 접어 줄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에드워즈의 이야기에 신숙주는 빠르게 집중한다.
“아무리 에센 칸이 위대한 정복자라 할지라도 그 아들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주요한 전략 물자를 제공하고 크나큰 경제적 이익을 안겨 주는 조선 및 소련과의 개인적 연결 고리, 그리고 제국의 강역을 한 세대 안에 대부분 회복했다는 기념비적인 업적은 모두 에센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닙니까?”
“또 내가 알기로 옛 몽골 제국 역시 칭기즈 칸 사후에 여러 울루스로 자식들에게 분할 상속되었다 들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소.”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한 지점입니다.”
신숙주가 이야기를 꺼내자 에드워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한다.
“에센 칸은 이 제국을 분할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분할은 분열을, 분열은 제국의 혈관인 육상 교역로들을 가로막는다 여기죠.”
“그렇다 하더라도 200여 년 전 몽골인들이 바보가 아니잖소? 이리 광대한 제국은 그만큼 다스림이 까다로울 것이고, 또한 분봉 방식에 익숙한 귀족들과 나머지 황자들의 불만이 거세지는 않겠소?”
“물론, 그랬습니다.”
‘그랬습니다.’ 신숙주는 에드워즈가 강조하는 서술어의 과거 시제에 주목했다.
“현재 제국의 지배 체제를 보면 놀랍도록 단순하고, 또 훌륭합니다. 유목민들은 죄다 지배 계층으로 끌어들이고, 정주민들에게는 자치권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제국 내 한족들은 적게나마 차를 재배하고, 도자기를 구우며, 비단을 짠다.
또한 루스인들은 완전한 정주민이라 보기에는 애매할지 몰라도 수렵을 통해 수많은 여우와 담비를 사냥해 모피를 생산한다.
그리고 반쯤 정주민화된 아랍인들은 다양한 유리 공예품들을 빚어낸다.
이들은 각 지역에 발묶여 움직이지 못하니,
그들 사이를 연결하는 유목민들이 그들의 상품을 국제 무역망에 연결하고 그 사이에서 이윤을 창출한다.
정주민과 유목민, 생산자와 유통자, 피지배자와 지배자의 분업 관계가 얽혀 서로를 꽁꽁 묶어 놓는다.
루스에 이런저런 생산과 관리를 맡기고서 그 대외 무역과 군사 업무, 징세 정도만 관리하던 모델이 이 체제의 프로토타입이었다.
각 정주민 족속들의 지배 계층은 제구이 세계적 무역망을 통해 가져다주는 이익과, 종교적·문화적 자율성, 그리고 자치권과 중앙 정계로의 발판 마련에 만족한다. 모든 종교를 카라코룸에서 탄압하던 것이, 오히려 종교적 관대성과 중립성을 제공한 것이다.
반대로, 유목민들은 정주민들에 대한 안정적인 지배 위에서 특권 계층으로서의 지위를 누리며 제국에 충성한다.
“파고들어 가면 훨씬 복잡합니다만… 제국의 자치권 부여 방식과 현지 지배 방식들은 경이로울 정도로 세련되었고 또 정교합니다. 저희가 몇 가지 자문을 더하였음에도 이렇게까지 탄력적으로 시스템을 운영해 온 것은 에센 칸 본인의 역량이겠지요.”
그러한 가운데 세계적 무역망을 유지하고 지탱하는 제국, 그리고 다시 그 제국을 유지하고 지탱하는 권위인 에센.
이런 상황이니 그 권력이 나누어지지 않고 온전히 후대에 승계되는 편이 제국의 모두에게 이득이라는 것이다.
“허나 물론 보다 ‘전통적인 방식’을 선호하는 귀족들도 많습니다. 거기에 다른 황자들이 자신들의 생득권을 순순히 포기하려 들지도 않겠지요.
그러니 필요한 것이 정복 전쟁입니다.”
새로운 업적, 새로운 체제의 완성.
그 과실을 차기 카간에게 줘 가면서, 새로운 왕조에 안정성을 싣는다.
“특히 티무르의 강역과 그 근방에 대한 정복 사업에는 범(汎)몽골계 세력들을 다시 하나로 모은다는 상징성도 있으니 말입니다.”
“잠깐.”
에드워즈의 말을 곰곰이 되씹던 신숙주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잡아낸다.
“그렇다는 말은 이 정복에 걸린 것이….”
폴란드, 우크라이나, 캅카스 북부, 호라즘, 파미르 고원, 타림 분지, 만주 서부….
제국 전역이다.
“그렇습니다. 이 정복 사업이 실패한다면 차기 카간으로의 순조로운 승계는 망가지고 다른 황자들과 귀족들이 들고일어나 이 체제를 찢어먹을 겁니다.”
실패는 곧 제국의 분열이다. 에센이 평생을 걸쳐 이뤄 놓은 바의 붕괴다.
에드워즈는 담담히, 무서운 사실을 꺼낸 뒤에 다시 아이락을 신숙주의 잔에 채운다. 갑자기 목이 막혀 오는 듯 신숙주는 그 밍밍한 술을 쭉 들이켠다.
“제기… 늙어서까지 이 고생이라니.”
“몽골의 국제 교역망은 소련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숱한 사치재와 소수의 희귀한 산업재들을 몽골로부터 수입해 오고, 또 내륙 지역의 정치적 안정이 몽골 덕분에 유지되지 않습니까?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든 소련이 개입해야 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이에른―뮌헨의 공작 알브레히트 4세가 신성 로마 제국을 대표하여 카간과의 정전 협정을 맺었다. 그들은 명예롭게 맺어진 평화와 새로운 우애에 대하여 거창한 소리들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실상은 평화란 것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니.
하나의 전선이 닫혔으니, 곧 하나의 전선이 다시 열리리라.
에센과 함께 대륙을 정복한 노장 아락투무르가 대규모 군세를 이끌고 옛 카자크 칸국의 땅으로 움직인다.
백양 왕조와 오스만, 몽골의 지배에 동의하지 않은 티무르의 지방 세력들 역시 무장을 준비한다.
또 저 초원에 한바탕 피바람이 일 모양이었다.
허나 그 뒤로 신숙주가 다시 몇 달 동안 온갖 행사를 돌며 고생하다 조선에 돌아왔을 때, 고국 역시 조용하지는 않았다.
“예부상서, 돌아왔구려!”
“폐하, 이 어찌 된 영문인지….”
묘하게 자신을 반기는 이홍위와 각부의 상서들, 자신을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고관들까지.
“돌아오는 도중이라 미처 전신이 통하지 않았구려? 머지않아 원방에서 특사들이 온다고 하니 그대가 필요하오. 곧 인민 위원들이 소집될 터이니 평의회에 곧바로 참석하시오.”
“어디서 오는 이들이옵니까?”
“아, 그것부터 먼저 설명했어야 했는데 마음이 급했구려. 그대가 준 전보와 이 소식을 결합하면 사태의 중대함이 보통보다 훨씬 더하여 짐이 실수를 하고 말았소.”
이홍위는 뭐가 그리 급한지 손목시계를 잠시 흘긋거리고는, 다시 외국의 사절이 찾아올 경우 사용하는 영빈관 건물을 저 멀리 내다본다.
“노묵특에서 오는 이들이오.”
노묵특(嚕默特).
다른 이름으로는 오스만 제국.
한편 에드워즈는 카라코룸에 머무르며 대사관의 전신기를 통해 권람에게서 소식을 전해 들으니.
“아카토프 동지를… 오스만에 특사로?”
“그들이 요청한 바라고 합니다.”
새로 태어나는 세계 제국과 맞상대할 전사가 그들에게 연락을 청해 왔다.
* * *
툭.
나룻배의 바닥을 밟자, 그 하찮은 소리와 함께 작은 선체가 두둥실 흔들린다.
“사령관 동지, 이제부터는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래.”
크림반도로부터 이 도시까지의 거리는 한 600킬로미터 수준이다. 길지 않은 항해였으나 평범한 목선을 타고 오느라 조금 늦어졌고, 또 불편해졌다.
아카토프는 호위 병력과 함께 나룻배에 오르며 빳빳하게 각을 세운, 그 오랜 세월을 뚫고도 그에게 자긍심을 가져다주는 옛 소련의 군복 상의 단추를 잠근다.
좁은 바다의 윤슬들을 휘저으며 나루배는 점차 육지로 나아가고, 마침내 말로만 듣던 ‘그 위대한 도시’의 영상이 가까워 온다.
삼중성벽, 금각만, 그리고 저 거대한 돔.
한때의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폴리스, 이제는 코스탄티니예.
오스만 제국의 심장부다.
“마, 맙소사! ‘악마장군’이다!”
“항상 부린다는 진(جن, 아랍 전설 속 요정 또는 악마)들은 어디로 간 거지? 낫으로 목을 자르고 망치로 골통을 깨부순다는?”
“멍청한 인간! 특사로 왔는데 사역하는 악마를 쉬이 보여 주겠나?”
“저 사악한 자가 이 땅을 밟다니….”
뭐, 이런저런 성대한 반응들을 즐기며 아카토프는 주위의 인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거나 미소를 지어 보여 주기도 했는데, 놀랍게도 오스만 제국에서는 환영의 의미로 시선을 피하거나 울음을 터뜨린다는 사실만을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열렬한 환영’ 속에서 그는 제국의 정궁인 톱카프 궁전( طوپقپو سرايى)으로 들었고, 이내 알현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툭.
이번에는 손톱으로 의자 팔걸이를 두드리는 소리.
위압감을 주기 위하여 그러는지, 그는 끊임없이 그 신경 쓰이는 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중늙은이가 되어 진작 후방 최고 지휘관으로 물러났고, 이제 곧 퇴역을 앞둔 아카토프로서는 웃기지도 않는다.
그는 도리어 똑바로 고개를 들어 감히 파디샤(황제)의 얼굴을 마주 본다. 그보다 새파랗게 젊은, 이제 중년으로 접어들어 가지만 여전히 잘생긴 튀르크인의 눈동자를.
오스만 제국의 지배자, 메흐메트 2세다.
“재밌구려. 그러니까 그대는 기독교인은 아니라는 말이오?”
“굳이 따지자면 저는 아무것도 믿지 않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우주에 가치 있는 것은 오로지 인간뿐이라 믿지요.”
“허! 성경의 백성조차 아니고, 심지어 불신자라니.”
대단히 신성 모독적인 순간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는 오히려 흥미가 동한다는 듯 고개를 길게 빼고 아카토프를 내다보았다.
“그럼 불신자 대사여, 그대에게 내 묻고 싶은 바들이 많으니 부디 들어 주시오.”
메흐메트 2세의 눈이 빛난다. 아직 쉰을 넘기지 않아 활력 넘치는 정복자의 눈동자는 튀어오르는 불티들을 둥글게 뭉쳐 놓은 것만 같아 아카토프에게는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작금에 위대한 나라들이 서로 전쟁을 하매, 둘 중 하나는 망할 수밖에 없소. 마치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가 페르시아와 전쟁을 할 때, 델포이에서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위대한 제국이 멸망하리라’라는 신탁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오.
크로이소스는 어리석게도 신탁의 의미가 자신이 페르시아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의미인 줄 알고 전장에 나섰다 패배하였소. 멸망하는 건 자신의 제국이었지.”
그리 말한 뒤 메흐메트 2세는 마침내 팔걸이 두드리기를 멈춘다.
“허나 그 일화를 본받아 행동을 조심하려 하여도 내가 리디아 편인지 페르시아 편인지 알 수가 없구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폐하.”
배배 꼬이고 꼬인 수사법에 아카토프는 현기증마저 느꼈다.
크림반도를 ‘실수로’ 정벌해 버려 오스만과의 전면전 직전까지 스치고 지나갔던 그날 이후 수년 동안, 외교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조심스레 행동해 왔던 아카토프였다.
다행스럽게도 학자들은 유럽 진출이 좌절되었으니 오스만의 침로가 바뀌어 이집트와 리비아 등지를 향하리라 예견하였고, 이제 평생 이 나라와 엮일 일 따위 없으리라 생각하고 안심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서, 파디샤를 직접 알현하여 웬 알쏭달쏭한 수수께끼나 듣고 있으려니 짜증이 난다.
“…모르겠소?”
“전혀 모르겠습니다.‘
“이건 상정 밖이로군. 상정 밖이야….”
그렇게 몇 번 중얼대던 메흐메트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럼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겠소.
소련의 장군이여.”
마지막 문장에 아카토프의 몸이 움찔한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폐하.”
“거짓임을 아오. 그러니 무시하고 계속 이야기하겠소.”
소련과 러시아가 일체라는 걸 알고 있다. 어떻게?
…잠시 생각하던 아카토프는 이들이 소련과 몽골이 일궈 놓은 육상·해상 교역로에 동시에 접근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만일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것도 충분히 오랜 기간에 걸쳐 소련이라는 국체에 대해 파고들었다면 아예 눈치채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결국 어디에나 귀와 눈은 열려 있고, 소련에서는 유럽 쪽에 약간의 신경을 썼을 뿐 대중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정보 통제를 시행하는 것도 아니니.
아카토프는 메흐메트의 말에 자신이 순간 긴장한 것을 알았다.
그리고 메흐메트 역시 자신의 말로 아카토프가 긴장한 것을 알았다.
사방의 공기가 팽팽히 당겨진 듯하니, 아카토프는 노쇠한 폐 속으로 깊이 그 낯선 향기 가득한 숨결을 찔러 넣는다.
파디샤는 소련의 대사와 독대하는 이 상황을 여느 때보다 즐기고 있었다.
한창 백양 왕조와의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할 이 귀중한 시간들을 할애할 정도로.
허나 그러면서도, 그는 지금 자신이 아카토프를 불러낸 목적 역시 잊지 않았다.
“저 기독교인들은 그대들이 몽골인들과 별개 세력인지 아닌지도 헷갈려하고, 또한 저 소련과 러시아가 다시 별개 세력인 줄 알지. 나는 그런 깜깜이는 아니오.
또한 그대들이 수백의 총탄을 순식간에 쏘아 내는 악마 같은 총들도 만들어 낸 만큼, 강철선을 바다로 띄워 보낸다는 사실도 알지. 포르투갈을 습격한 게 그대들이니.”
“….”
“그대는 천상 무인이구려. 변명 한마디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다니.”
낭패감에 빠진 아카토프를 내다보며, 메흐메트 2세는 턱수염을 가볍게 쓰다듬는다.
“곧 우리와 몽골 사이의 전쟁이 머지않은 듯하오. 둘 중 하나는 거꾸러지고 나머지는 역사에 남을 제국이 될 것이오. 이집트는 이미 적당히 복속시켰으니 굳이 단기간에 무력으로 제압할 가치를 잃었고, 나는 동방의 새 영토들을 바라오.”
파디샤는 벨벳으로 감싸인 옥좌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를 둘러싼 시종들은 마치 가구처럼 미동도 없다.
“나는 그대들의 그 이름 높은 강철선에 우리의 사절들을 태워 보내고 싶소. 그대의 조국에 닿아 나의 의사를 전달하고픈 마음이 크오.”
“어떤 의사를 말입니까?”
“나는 그대들이 유럽과의 전쟁에서 그랬듯 몽골에 큰 힘을 실어 줄 수 있음을 아오. 또한 그대들이 몽골의 신하가 아니므로 협력을 거부할 수 있음 역시 알고 있소.”
메흐메트 2세는 잠시 고민하며 단어를 고르다, 알맞은 문장을 머릿속에서 조합해 낸 듯 미소를 짓는다.
메흐메트 2세의 눈이 오스만 제국의 상징인 초승달처럼 휘어진다.
“나는 그대의 조국과 화평을 바라오.”
델포이의 신탁 (2)
메흐메트 2세가 아카토프를 독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고되었던 바와 같이 KCS 무성(武成)호는 먼 곳에서 찾아온 특사들을 조선으로 데려온다.
피게이라다포스에서 출발한 그들은 러시아에서 장담했듯 몇 주 지나지 않아 그들은 아프리카의 남단을 목도하였고, 아프리카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수도가 된 잔지바르에 닿았다.
그다음으로는 인도양의 심부에 박힌 거대한 해군 기지 디에고 가르시아와, 남양 무역의 중추로서 작동하는 드막을 지나쳤다.
특사 일행은 모두 각각의 섬과 도시에 닿을 때마다 놀라움에 찬 기도를 드렸고, 또한 누흐(نوح, 노아)조차 건설하지 못할 거대한 선박이 자신들의 발아래서 쏜살같이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여정 내내 잊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오늘날의 파디샤께서는 모든 군주를 위협하는 교활한 악마와 싸우고 계신 듯합니다. 바로 교만 말입니다. 지상의 모든 왕국은 그렇게 교만에 패하고 교만에 스러지는 법입니다.”
“주군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신하의 미덕이 아니오. 인류가 주님께 그러하듯 복종의 아름다움을 보이시오.”
“허나 ‘그들’을 상대로 ‘그런 일’을 준비한다니요? 교만이 폐하의 지혜를 가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 말하며 이브라힘은 능숙하게 손을 놀려 두 가지 수신호를 보낸다. 첫 번째 것은 ‘몽골’을 뜻했고, 두 번째는 ‘전쟁’을 가리켰다.
그가 한 말과 조합하자면 “파디샤가 몽골을 상대로 전쟁을 준비한다”라는 문장이 완성되리라.
“나는 그대의 지혜로움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그대의 지혜는 폐하에 대하여 어떤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까?”
찬다를르 이브라힘 파샤(Çandarlı Ibrahim Pasha)의 지적에 제국의 베지리 아잠(Vezir―i Azam, 오스만 제국의 재상) 카라마니 메흐메트 파샤(Karamanlı Mehmet Paşa)는 결국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이브라힘는 메흐메트의 반응에 그것 보라는 듯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상층 갑판의 휴게실. 선원들은 이곳에서 당구나 탁구를 즐겼고, 한쪽에 술과 차, 담배와 다과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 시끌벅적함과 차분함이 동시에 이어지는 속에서 누구도 오스만어를 알아들을 이는 없었으니. 그들은 이국적인 차림새로 다소 시선을 끌지언정 주위의 귀를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떠들 수 있었다.
물론, 용의주도하게 오스만 궁정의 특유의 수어(手語)를 대화에 섞어 가면서.
그들도 몽골인들, 유럽인들 모두와 교류하는 입장으로서 그 전황에 대해 모를 수가 없었다.
“폐하께서 아무리 이 나라에 중립을 요청한다 하더라도, 또 이들의 선박이 크고 해군이 강력하다 할지라도 결국 전쟁은 말과 사람과 대포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 군대의 위력을 보지 않았습니까?”
“폐하께서도…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 있으시겠지 않습니까.”
그리 대응하면서도 메흐메트 역시 심란한 속을 감추지 못했다.
폐하의 판단을 불신하는 건 이브라힘뿐이 아니었다.
코스탄티니예의 고관들, 아니 시민들부터 노예들까지 모두가 몽골과의 전쟁이라는 소식에 반쯤 공황 상태였다.
아카토프, 악마의 장군이라는 소문이 가득한 그가 코스탄티니예에 방문했을 때 시민들이 보인 경악도 그 때문이었다. 민중들은 그가 몽골과 분리된 세력의 장수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니.
어떤 수를 써서도 이길 수 없는 전쟁에 제국을 던져 넣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이브라힘은 개중 그나마 가장 내색을 덜하는 이였다.
―‘왜 우리가 구태여 저 강성한 몽골과 전쟁을 벌여야 하는가?’
―‘이길 수 있기는 한 전쟁인가? 이는 자살행위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런 의심들이 폐하의 의중을 알지 못하는 이들 사이에서 떠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