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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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못생겼다. 눈이 완전 붕어네, 붕어. 그 꼴로 계속 있었던 거야?”
리나가 퉁퉁 부은 리엘라의 얼굴을 보며 ‘이 정도면 감탄스럽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제 얼굴이 엉망일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리나가 난리 치는 것을 보니 리엘라는 더더욱 거울을 보기 두려워졌다. 어쩐지 눈 깜박거리는 것도 힘들더라니.
“그 정도로 심해?”
“응, 완전 심해. 얼마나 운 거야?”
“이틀 정도… 였나?”
이틀이라는 리엘라의 대답에 리나는 혀를 찼다.
어지간한 일로는 이렇게까지 울지 않았을 텐데 꽃 축제에 참가할 수 없다는 사실이 꽤나 충격이긴 했나 보다.
“네아 씨에게 대강의 상황은 전해 들었어. 규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솔직히 그쪽이 단순히 규정을 지키고 싶어서 항의한 게 아닌 건 알겠다.”
부러워하는 사람들과 곱지 않은 시선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걱정하긴 했는데 역시나 일이 터졌다.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거, 그냥 강하게 나가 버려?”
“어떻게?”
“그냥 콱 꽃 축제 취소해 버리겠다고 해. 아니면 대회 부문 없애 버리든가. 진짜 거대 후원자의 횡포가 뭔지 보여 주자.”
“네아랑 똑같은 말 하네….”
들어오기 전에 말이라도 맞춘 걸까. 리엘라는 어쩔 줄 모르며 저를 위로하던 네아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뭐랬지? 이유 없이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미워할 이유를 제대로 만들어 주는 게 좋다고 했던가? 하마터면 고개를 끄덕일 뻔했었다.
리엘라가 피식 웃어 버리자 리나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어쨌든 우는 건 이제 그만하고 축제 갈 생각이나 하자고. 설마 안 가겠다는 건 아니지?”
“당연히 그건 아니지.”
속이 상한 것과 별개로 축제는 축제다. 올해 새로이 출품될 신품종의 식물들과 작년의 수상자들이 1년을 준비해서 전시할 정원도 있었고, 보고 싶은 게 많았다.
“그럼 됐어. 안내서 어디 있니? 아, 여기 있네.”
리엘라가 대답하기도 전에 테이블 위에 놓인 꽃 축제의 안내서를 찾은 리나는 거침없이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이번에 너랑 꼭 같이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단 말이야.”
“내가? 왜?”
예전에도 리나와 함께 가긴 했지만 이렇게 의욕적으로 먼저 가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
행사장에서만 파는 음식들을 사 주겠다고 꼬셔 리나를 끌고 가면 정원이나 식물에는 관심이 없고, 꿀을 파는 업체를 둘러본다든가 요리에 쓰이는 허브나 채소를 공급하는 농장에만 항상 붙어 있었다.
그런데 제가 먼저 이렇게 나서서 안내서를 뒤지고 있다니. 리엘라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리나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리 말하는데, 너 위로하는 건 조금 전으로 끝났어. 이번에 내가 관심을 갖는 이유는 우리 가게 때문이야.”
“가게에? 무슨 일 있어?”
“저번에 편지에 적어 보냈었잖아. 요즘 네 덕분에 많이 벌어서 가게 수리 비용 거의 다 모았다고. 그래서 부모님이랑 어디를 어떻게 수리할 건지 이야기를 해 봤거든. 일단 주방 설비들은 화덕만 그대로 놔두고 전부 최신 설비로 바꾸기로 했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게 분위기 아니겠어?”
“그렇지.”
“이번에 가게 내부 면적을 좀 줄이더라도 정원을 만들기로 했어. 가게 안에도 나무나 꽃 심은 화분들도 많이 놓을 예정이고. 내가 장담하는데 몇 년 내로 온실풍 식당, 카페 이런 거 뜬다. 진짜야. 확신해. 그 전에 우리 가게가 수도의 명물이 되어 유행의 시작을 열 거라고.”
리나는 주먹을 꽉 쥐며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리엘라는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리나의 감이 틀린 적은 거의 없으니까.
“그래서 리엘라 네가 필요해. 우리 가게를 너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자자, 이거 봐. 내가 원하는 분위기 좀 그려 왔거든?”
리나는 가방에서 돌돌 말아 온 종이를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쳤다. 종이 위에는 ‘내가 생각하는 새로운 검은 고양이’라는 글씨와 함께 색연필로 그려진 그림이 있었다. 작은 정원이 있고, 야외 테라스가 있고, 내부는 흰색으로 마감해 깔끔한 카페 느낌의 식당의 그림을 보며 리엘라는 감탄사를 흘렸다.
“이런 건 또 언제 그렸어?”
“일하면서 틈틈이 그렸지. 어쨌든 이런 분위기로 할 건데 어울리는 식물하고 꽃하고 가격 좀 알려 줘! 그리고 꽃 축제 가서 예약하면 더 싸다고 했잖아. 어디가 좋은지도 좀 알려 주고.”
“알았어. 잠깐만. 그보다 여기에는 뭘 둘 생각이야? 그냥 나무만 그려져 있는데, 가게 안에 이렇게 가지가 굵고 이파리가 많은 나무 두기는 힘들 거야. 이런 건 빛이 잘 들어와야 예쁘게 큰다고.”
“알았어. 그럼 다른 거 추천해 줘.”
리엘라는 좀 더 집중해서 그림을 바라보다 테이블 위에 있는 펜을 들었다.
“일단 여기에는 몬스테라를 놓자. 어머님도 좋아하지 않으셨던가?”
“우리 엄마? 엄청 좋아하지. 집에 몬스테라 화분이 몇 개인데.”
“그럼 더 잘됐네. 집에 있는 화분들 이용하면 돈도 아낄 수 있고, 얘는 실내에서 기르는 게 좋은 데다가 넓은 곳에 놔두는 게 더 예쁘니까 딱일 것 같아.”
“난 꽃을 더 많이 놔두고 싶은데.”
“창가에 꽃병을 놔두거나 여기 안쪽의 큰 테이블 위에 큰 꽃병 하나 놓는 정도로 하는 게 어때? 정원 만들 거면 잘 계산해서 사계절 내내 꽃 피게 하면 좋겠는데.”
조금 전까지 침울해 있던 모습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리엘라의 눈이 빛났다. 제 가게의 미래가 걸려 있기에 리나 역시 의욕을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열띤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네아가 웃으면서 차와 과자가 가득 담긴 손수레를 끌고 왔다.
“좀 드시면서 하세요. 멜다 부인께서 리나 씨가 왔다는 걸 아시고 또 새로운 과자를 준비해 주셨어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나중에 가면서 인사 드려야겠다.”
리나는 그렇게 대답하고서는 코코넛 가루를 뭉쳐 구운 다음, 초콜릿을 입힌 과자 하나를 잽싸게 제 입에 넣고, 한 개를 더 집어 리엘라의 입에도 넣어 주었다.
“맛있다!”
“진짜 맛있다!”
잠시 손을 파닥거리면서 입 안에 확 퍼지는 단맛을 느낀 두 사람은 열심히 과자 접시로 손을 뻗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 손은 펜을 잡은 채 눈은 그림을 향했다. 리엘라와 리나가 다시 열정적으로 대화를 시작하자 네아는 웃으며 방을 나왔다.
“좋아, 성공!”
대회 참가 취소를 통보받고 리엘라는 풀 죽은 채 방에 틀어박혀 이틀을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혹시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리나를 찾아갔는데 “그런 일이라면 맡겨 줘요!”라고 자신 있게 말하길래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역시 오랜 친구는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며 걷던 네아가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이놈은 어디 갔어?”
고민하던 제 옆에서 저 못지않게 심각한 얼굴로 서 있었던 하운이었다. 훌쩍이는 리엘라의 소리를 듣고는 세상 무너진 얼굴을 하더니 한참이나 방을 서성이던 하운은 공작저를 나가 어디론가 가 버렸다.
‘어차피 그놈이 어딜 간다고 해 봤자 왕궁이겠지만.’
도대체 왕궁에 가서 뭘 하려는 건지. 리엘라가 풀 죽어 있을 때 옆에서 열심히 예쁜 짓이나 좀 할 것이지. 쯧쯧.
“쓸모가 없어요. 쓸모가.”
이럴 때 없는 놈이 리엘라의 남자 친구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 역시 쫓아낼까? 고민하던 네아는 본채와 조금 떨어져 있는 보석의 방을 보았다.
“…이제 한 달 정도 남은 것 같은데.”
호슨 공작은 하운에게 6개월의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는 너무 긴 것 아닌가 했는데 어느새 몇 개월이 훌쩍 지나 버렸다.
‘이제야 좀 급하다는 걸 인지한 건가?’
샤를로테가 찾아왔던 탓에 두 번째 문을 열 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물론 샤를로테도 샤를로테였지만 두 번째 문에 걸린 조건과 그에 맞는 사람을 모으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덕분에 그 녀석, 좀 사람이 된 것 같긴 했지.’
살면서 남에게 부탁을 하는 하운의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게다가 예전 같으면 호슨 공작 외에 다른 사람들과는 길어 봤자 한두 마디 나누는 것이 전부였던 하운이 비록 문을 열기 위함이긴 해도 사람들과 길게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심지어 마지막 날에는 다 같이 먹고 마시며 밤새 잡담을 나누지 않았던가. 그러면서도 옆에 앉아 있던 리엘라가 신나게 술을 들이켤 때마다 괜찮나, 하는 눈으로 슬쩍슬쩍 바라보던 하운이었다.
‘이것도 다 녀석을 생각해서 하신 거겠지.’
떠나기 전에 하운에 대해 말하면서 인성 교육을 덜 시켰다고 투덜거렸던 호슨 공작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래서 마저 책임을 져야겠다 했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하려나 싶었는데 이런 식으로 하운을 바꿀 줄이야.
“역시 내 주인님이셔.”
평생을 존경해도 모자란 호슨 공작이었다. 손수레를 끌고 가던 네아는 살짝 열린 방 안을 보았다. 호슨 공작이 생전에 가끔 책을 읽던 방이었다. 리엘라가 여기만큼은 그대로 두겠다고 강하게 주장한 덕분에 그 방은 시간이 멈춘 듯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호슨 공작이 살아 있을 때는 하루하루가 조용히 흘러갔었다. 은퇴 이후로 그다지 바깥출입을 하지도 않았었고, 저택 안에서도 대단한 일은 없었다.
‘찾아가지도 못하고.’
호슨 공작이 유언에 적어 놓은 탓에 그녀의 무덤에는 찾아가지도 못했다. 처음에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가 싶었는데, 아무 말이 없었다면 리엘라는 물론이고 저택의 사람들도 매일같이 그곳을 찾았을 것이다. 그만큼 호슨 공작의 그림자는 계속해서 이 저택 안에 머물렀겠지.
무덤을 관리하느라 수고가 많은 묘지기들에게 따로 이것저것을 챙겨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네아는 주방으로 향했다. 멜다 부인의 과자를 신나게 먹었다고 전달하면 멜다 부인이야말로 더욱 즐거워할 것이다. 그사이 새로 고안한 레시피가 몇 개 더 있다 하니 새로운 과자를 구울지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던 네아의 눈에 현관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뭐야, 돌아왔네.”
말고삐를 마부에게 넘겨주고 들어오는 사람은 하운이었다. 네아는 한껏 비아냥거릴 준비를 하고 하운에게 다가갔다.
“야, 어디를 갔다 이제 돌아오….”
“급해. 리엘라는 어디 있지?”
“뭘 잘했다고 오자마자 아가씨를 찾아?”
팔짱을 낀 채 턱을 치켜들고 따지는 네아를 보며 하운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은 채 대답했다.
“리엘라가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