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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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눈에 금세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눈이 커서 그런지 눈가에 맺힌 눈물이 출렁일 정도였다. 곧이어 바닥으로 뚝뚝 눈물이 떨어지자 뒤에서 안타까움을 담은 혀를 차는 소리들이 들렸다. 그것은 리엘라도 마찬가지였다. 순간 상대가 드래곤이라는 것도 잊은 채 다가가서 달래 줄 뻔 했으니까. 하지만 그 안타까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내놔! 돌려줘! 하르메아거야아아!”
이제 바닥에 드러누운 하르메아가 버둥거리면서 날개를 퍼덕였다. 덕분에 하르메아가 뒹굴 때마다 정원의 화단은 무참하게 파였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하르메아는 제 꼬리를 빙빙 휘둘렀다. 그러다 하르메아의 꼬리가 분수대 가운데를 장식하던 조각상을 후려쳤다.
“으악!”
조각상이 부서질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조각상은 멀쩡한 채, 하르메아가 꼬리를 잡고 비명을 지르더니 정원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리엘라는 분수대 가운데에 있는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허리에 한 손을 올린 에르첼라의 조각상이 서 있었다. 정복 전쟁을 끝낸 후 자신의 업적을 가리키는 에르첼라의 당당함을 조각한 것이라고 설명을 들은 적 있었는데 어쩐지 지금은 바닥을 구르는 드래곤을 ‘이건 뭔데?’라는 듯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대리석이 저렇게 강했… 나?”
드래곤의 꼬리에 맞고서도 흠집 하나 나지 않다니.
“에르첼라의 손에 있는 보석 때문이야.”
리엘라의 의아함을 알아차린 하운이 설명했다.
“그녀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 보여? 저기에 있는 작은 보석에는 어떠한 충격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있거든.”
하운의 말을 듣고 바라보니 허리를 짚은 손에 조각된 반지가 보였다. 그 위에는 붉은색 작은 보석이 반짝이고 있었다.
“어? 저건….”
반지를 자세히 보던 리엘라는 어쩐지 익숙함을 느꼈다. 자세히 보니 익숙한 장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본 에르첼라의 목걸이와 닮았네요?”
“저것도 에르첼라의 컬렉션 중에 하나거든.”
하운은 반지를 보고 짧게 혀를 찼다.
에르첼라가 사용하던 보석들은 대부분 왕실 보석의 방 안에 보관되고 있지만 그 중에 몇 개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분실되기도 했고 또 몇 개는 저런 식으로 밖에 있기도 했다.
“에르첼라는 조각상이 완성되었을 때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오래오래 멀쩡히 있기를 바란다며 충격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도록 보석을 저곳에 두었어.”
그녀가 갖고 있던 보석 중에 능력으로만 따진다면 목걸이만큼이나 강했던 것이기도 하다. 수백 년간 저 보석은 조각상의 손 위에 머물면서 에르첼라의 조각상이 비와 바람, 이끼에 바스러지지 않도록 지켜 내고 있었다.
그 사이 하르메아는 퉁퉁 부은 제 꼬리를 끌어안고 호호 불다가 벌떡 일어났다. 보석을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꼬리까지 아프니 짜증이 가득 난 것 같았다.
“가만 두지 않을 거야!”
큰 소리로 외친 하르메아는 꼬리로 정원에 있던 나무를 휘감고 잡아당겼다. 하르메아의 힘에 어른 두 명이 팔을 벌리고 끌어안아야 할 만큼 굵은 나무 하나가 우드득 뿌리가 끊어지는 소리를 내며 뽑혔다.
“역시나 이렇게 되는군.”
갑작스러운 광경에 리엘라가 굳어 버린 것과 달리 하운은 이런 풍경에 익숙하다는 듯 담담하게 자신의 보석들을 꺼냈다.
“다 미워! 내거 돌려줘!”
하르메아는 발로 땅을 쾅쾅 치며 꼬리로 감고 있던 나무를 휘둘렀다. 그러자 정원의 다른 조각상들이 하르메아가 휘두른 나무에 부딪혀 터지듯이 박살났다. 그 조각상들 중 하나가 리엘라가 있는 쪽을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리엘라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운은 재빨리 리엘라를 제 품으로 끌어안고는 보석의 힘을 사용했다.
밝은 빛이 리엘라와 하운을 감쌌다. 그러자 날아오던 조각상이 빛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그중에서도 곧바로 날아오던 조각상의 머리는 누군가 되받아치기라도 하듯 날아오던 속도 그대로 다시 되돌아가 발버둥치는 하르메아의 머리에 부딪혔다.
퍽!
조각상에 얻어맞은 하르메아의 몸이 빙글 돌았다. 비틀거리던 하르메아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어?”
그 모습에 놀란 소리를 낸 사람은 리엘라가 아닌 하운이었다. 그는 놀라 자신과 리엘라를 감싼 빛을 살폈다. 자신이 사용한 힘이었다. 하지만 막아 낸다 정도였지 저렇게 튕겨 내는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지금 돌이 튕겨나간 모습은 마치 노리고 하르메아를 향해 던진 것 같았다.
‘그리고 빛에 섞인 붉은 색은….’
하운은 익숙함을 느꼈다. 분명 그가 예전에 본 것이다. 하운은 리엘라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그녀의 손목을. 손목을 덮고 있는 소매 사이로 은은한 광택을 내는 진주 팔찌가 보였다.
“아르펠트의 진주? 이게 왜 움직인 거지?”
하운의 말에 리엘라도 제 손목을 보았다.
호슨 공작이 남겨 준 것들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그중에서 이것은 매일 손목에 차고 다녔다. 물이나 땀이 묻어도 괜찮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이런 귀한 보석을 함부로 다룰 수 없다 말하자 네아는 잠시 풀어 두더라도 되도록 주머니에 넣어 두며 몸에서 떨어트리지 말라고 했었다. 중요한 순간에는 도와 줄 거라고 하면서.
하지만 아르펠트의 진주는 그동안 존재감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움직인 것이다.
‘정말로 위험했기 때문인가?’
그렇다 해도 아직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은 리엘라를 지켜 내다니.
‘무척이나 까다로운데.’
오래 전, 호슨 공작은 진주 중 하나를 하운이 전쟁터에 나가기 전, 넘겨주려 했었다. 하지만 아르펠트의 진주는 하운의 손에 있기 싫다는 듯 그가 쥐기도 전에 멋대로 손에서 떨어져 바닥을 데구루루 굴러 호슨 공작에게로 돌아가 버렸었다.
그 이후로도 아르펠트의 진주가 누군가의 손에 들린 적은 없었다. 그래서 유언장을 발표하던 날 리엘라의 손목에 걸린 진주를 보고 모두가 경악하지 않았던가. 진주가 가만히 있는 것도 신기했는데 이제는 리엘라를 위해 힘까지 사용할 줄이야.
‘이유가 뭐지?’
하운은 유독 리엘라를 마음에 들어 했던 에르첼라의 목걸이를 떠올렸다. 또 진주도 리엘라에게는 유독 약했다. 어쩌면 저와 네아가 그녀에게 약한 것과 같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 사이 난동을 부리던 하르메아가 앞발로 제 머리를 끌어안고 훌쩍거렸다.
리엘라는 조금 전 하르메아가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것을 보았음에도 다친 곳을 끌어안고 칭얼거리는 목소리를 듣자 하운을 붙잡았다.
“하르메아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요?”
“왜?”
“울잖아요.”
“응?”
하운은 그게 뭐가 중요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리엘라를 바라보았다.
“어린 드래곤이라면서요?”
“…그렇지.”
“그리고 호슨 공작님께서 하르메아를 속인 것은 사실인 것 같고요.”
“…그렇긴 한데.”
“그럼 일단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아요.”
리엘라는 엉엉 울고 있는 하르메아를 보았다. 무섭다. 무섭긴 한데… 동시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만약 하르메아의 말대로라면 자신의 보석도 잃어버린 데다가 낯선 곳에서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수백 년을 살았다고 하지만 아직 행동을 보면 영락없는 어린 아이다. 그렇다면 잘 달래서 천천히 이야기를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문제라면 드래곤을 달랠 수 있느냐는 것이지만.
‘아무리 보아도….’
하운은 하르메아를 달래기보다는 죽이는 일에 더 능숙할 것 같았다. 멀리서 잔뜩 경계를 하고 있는 보석술사들도 마찬가지고. 게다가 어느 새 왔는지 모르는 레티시아 왕비까지 심각한 표정으로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자 그들이 검과 활을 드는 것을 보면 그들 역시 하르메아와 대화를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고.
문제라면 다가가는 순간 하르메아가 너도 밉다며 꼬리로 후려쳐 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만.
‘그래도 하운 님과 진주가 있다면 괜찮을 것 같은데.’
무모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도전할 수 있다면 해 보고 싶었다. 하운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여차하면 하르메아를 강하게 공격할 수도 있어. 그때는 곧바로 보석술사들 사이로 돌아가도록 해.”
“알겠어요.”
리엘라가 대답하자 하운은 보석의 힘을 더욱 끌어냈다. 리엘라는 조심스럽게 하르메아에게 다가갔다.
“아파….”
바닥에 쓰러진 하르메아의 머리에 큰 혹이 올라왔다. 책에서 본 드래곤들은 몸이 무척이나 단단하다 했는데 아직 어린 탓인지 하르메아는 그만큼 강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많이 아파요?”
리엘라가 묻자 하르메아는 잠시 커다란 눈동자를 굴리며 리엘라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제 손바닥만 한 눈동자가 훑어보자 소름이 돋았지만 그래도 하운을 붙잡고는 물러서지 않았다.
“…응.”
다행히 하르메아는 공격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리엘라는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더 하르메아에게 다가갔다.
‘잡아먹을 것 같지는 않아.’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슬쩍 제 머리를 가까이 가져다 대더니 앞발의 발톱으로 머리 한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아파.”
“높아서 잘 안 보이는데….”
리엘라의 말에 하르메아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작아지면 잘 볼 수 있어?”
“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자 하르메아가 몸을 일으켰다. 하운이 곧바로 리엘라의 허리를 끌어안고 뒤로 물러나며 공격할 준비를 갖추었다. 하지만 하르메아는 날개를 쫙 펴더니 귀가 아닌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알 수 없는 언어를 내뱉었다. 그러자 하르메아가 눈부신 녹색의 빛에 감싸였다.
“읏!”
모두가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잠시 후, 빛은 사라졌지만 시야에 남은 빛의 흔적에 모두가 크게 눈을 깜박거렸다. 리엘라 역시 하운의 품 안에서 시린 눈을 깜빡이고 있던 순간이었다.
턱.
갑자기 누군가 리엘라의 손을 잡았다.
“누, 누구…!”
분명 자신들의 앞에는 하르메아 밖에 없었다. 하운은 분명히 뒤에 있고. 그럼 지금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이 손의 주인은 누구란 말인가? 리엘라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여기가 아파.”
리엘라의 눈에는 녹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어린 소년이 이마에 툭 튀어나온 혹을 가리킨 채 서 있었다.
“설마… 하르메아?”
리엘라가 믿을 수 없어 물어보자 소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
“어?”
저택 안을 걷던 네아는 이상한 기운에 저택의 정문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하루 종일 기분이 이상했다. 오후, 딱 차를 마시기 좋을 때쯤 거대한 힘이 다가오는 것이 느꼈었다.
인간이 아니었다. 네아는 그것이 드래곤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곧 하늘을 가로지는 녹색의 빛이 보였고 그것은 멀리 왕궁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하르메아다.’
멀리 살고 있는 어린 드래곤을 본 순간, 예전에 호슨 공작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어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빵이 생기는 법인데, 하르메아 그 녀석이 마지막까지 얼마나 의심이 심하던지. 그래서 설득하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단다. 아마 나 죽은 다음에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챌걸?”
그러면서 호슨 공작은 자신이 하르메아에게 ‘보석을 심으면 보석이 자라난단다!’라는 말로 커다란 에메랄드를 앗아 온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는 ‘어리다더니 멍청한 거였나?’라고 생각하며 넘어갔었는데 그 드래곤이 찾아오는 것이 오늘일 줄이야.
왕궁으로 가고 나서 잠잠하길래 어떻게 되나 궁금했었는데 지금 하르메아가 저택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느리네?’
드래곤이라면 곧장 이곳으로 날아올 텐데 이 속도는 분명….
“…마차?”
네아는 서둘러 아래로 내려갔다. 드래곤이 마차의 말을 먹으면 먹었지 마차를 타고 올리는 없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현관으로 가자 저택으로 달려오는 마차가 보였다. 멀리서 보아도 왕궁의 문장이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곧 마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안에서 먼저 내린 것은 하운이었다. 도대체 얘가 갑자기 왜 마차를 타고 왔나 싶어 바라보니 안에서 리엘라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리엘라의 품에는….
“…아이?”
긴 녹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어린 소년이 손가락을 입에 문 채 울어 퉁퉁 부은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