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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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아의 말에 하르메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되물었다.
“네가 하면 되잖아.”
“…무엇을요?”
자신이 하라니? 네아는 잠시 하르메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네아가 당황하자 하르메아 역시 당황스러운 듯 말했다.
“브레스. 넌 못 써?”
“음… 못 쓰는 것 같은데요.”
“흐응, 드래고니안은 브레스 못 쓰는구나.”
하르메아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르메아의 말을 듣고 네아는 고민에 빠졌다.
‘드래고니안도 브레스 쓸 수 있나?’
네아가 입을 벌려 뭔가 뱉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네아의 모습에 하르메아 역시 아이의 모습으로 벽을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하지만 하르메아가 내뱉은 것은 켁켁, 하는 소리와 숨뿐, 아이의 입에서 브레스는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안 되네?”
몇 번이고 시도하다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하르메아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인간의 모습으로는 브레스 못 쓰나 봐.”
“아하.”
하르메아의 말에 네아가 맞장구를 치자 하운이 이 바보들은 무엇인가,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모습으로 되겠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서 시도해 보든가.”
원래 모습이라는 말에 네아의 눈이 길게 찢어졌다. 순식간에 방 안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당장이라도 한 판 붙을 것 같은 분위기가 바뀐 것은 하르메아의 질문 때문이었다.
“드래고니안이어도 인간과 똑같이 생겼다고 했는데 이렇게 보니 다르긴 하구나. 신기하다. 또 다르게 변할 수도 있어? 원래의 모습은 어떻게 생겼니? 너는 뭐 먹고 살아? 인간들은 안 먹어? 보석은 좋아해?”
하르메아 역시 네아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는지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 냈다. 네아가 처음 보는 드래곤이 신기한 것처럼, 하르메아 역시 네아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둘은 서로의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하운은 그런 둘이 어쩐지 처음 만나는 강아지 두 마리가 서로의 냄새를 맡으며 살피는 것처럼 보였다.
‘드래곤은 드래고니안을 별로 꺼려하진 않는건가?’
인간이 드래고니안을 보는 시선에는 공포와 경멸이 가득하다. 하지만 지금 하르메아가 네아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호기심만 가득했다.
‘드래곤이야 드래고니안이 저보다 훨씬 약하니 관대할 수 있는 거겠지만….’
이러다 네아가 스스로의 존재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드래곤들에게 호감을 품는 것이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처음 만난 드래곤이 하르메아라서 다행이기도 하고.’
만약 네아가 하르메아가 아닌 다른 드래곤을 처음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운은 가장 먼저 얼마 전까지 자신과 싸우던 플레노트를 떠올렸다. 성질 급하고 오만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드래곤이었다. 아마 네아를 보자마자 자신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라고 간주하여 다짜고짜 브레스를 내뿜으며 공격을 했을 것이다.
‘멍청해서 대화도 잘 통하지 않을 것 같긴 해.’
힘은 강할지 몰라도 플레노트의 지능은 다른 드래곤에 비해 그다지 높지 못했다. 그래서 하운은 오래 산다고 해서 모두가 현명해지는 것은 아닌 거 같다고 말하며 플레노트의 속을 몇 번이고 뒤집었었다.
‘그럼 네이판타는?’
세상에 있는 드래곤 중 가장 사악하고 교활하며, 호기심이 강한 존재로 꼽히는 네이판타.
네아가 태어나 레어에서 제 아비와 있었을 때, 네이판타는 호슨 공작과 이블린에게 패배해 수면기가 아닌 소멸기라 불리는 기간에 들어갔다. 부활하는 존재이니 언젠가 분명 더욱 악독하게 되살아날 것이다.
만약 되살아난 네이판타가 네아의 존재를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제 호기심의 결과인 네아를 반가이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내칠 것인가. 만약 네이판타가 네아를 제 권속으로 두기로 했다면….
하운은 소름이 돋았다.
하르메아야 어려서 아직 드래곤의 특성이 강하지 않기에 모습을 바꾸면 이렇게 인간들의 세상에 섞여 들어와 있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네이판타는 불가능했다. 그것이 인간들에게 얼마나 다행인 일이던가. 덕분에 인간들은 네이판타가 자신들의 안에 섞여 들어오기 전에 막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네아가 네이판타와 함께해 지금처럼 사람들 사이에 들어왔다면 정체를 알아차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운이 생각에 잠긴 사이 하르메아와 네아는 상대를 바라보고, 자신을 바라보며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찾았다.
“전 고기 그렇게 많이 안 먹어요.”
“그럼 뭐 먹어? 인간들하고 똑같은 거 먹어? 나는 풀 싫어. 빵이라는 건 노란 거 바른 거만 맛있어.”
“저도 채소는 싫긴 하네요. 노란 것이라면 버터?”
“응. 그러니까 다음번엔 그것만 가져와.”
“고기를 바닥낸 것도 모자라서 버터까지 바닥낼 생각이세요?”
“계란도.”
“여기가 식당인 줄 알아욧? 주문해서 먹게!”
브레스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먹는 것으로 끝나고 있었다. 자신이 쓸데없는 생각을 한 것 같다며 속으로 혀를 차던 하운은 창밖을 보았다. 어젯밤부터 갑작스럽게 내린 비가 그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유난히 차가운 비다. 행사장에 아무리 천막이 쳐져 있다고 해도 비가 새는 것은 막을 수 없을 것이고, 이런 날씨면 일하는 리엘라도 분명 힘들어 할 것 같았다.
하운은 제가 갖고 있는 보석을 꺼내 보았다.
폭우의 하우윈은 하운이 자신을 꺼내자 신난다는 듯 그의 손바닥 위에서 부르르 떨었다. 비가 오니 더욱 신나는 모양이었다.
“너 쓸 생각 없어.”
그러자 진동이 거짓말처럼 딱 멈췄다. 마치 놀러 가기를 잔뜩 기대했다가 방에 들어가 공부하라는 말을 들은 어린아이처럼.
하운이 계속 밖을 보고 있을 때, 저택으로 다가오는 마차가 보였다. 쏟아지는 비 사이를 달려오는 마차에는 원탁회의의 문장이 붙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비가 엄청나군요.”
“무슨 일이야?”
하운은 물을 털어 내며 인사하는 루시안에게 퉁명스럽게 인사했다. 한동안 보이지 않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놈… 리엘라에게 청혼했었지? 하운은 도끼눈을 뜨고 털을 세운 고양이처럼 루시안을 노려보았다.
“급한 일로 왔습니다. 전할 일이 두 가지네요.”
“뭔데?”
“셀비아스가 수면기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깨어났습니다.”
“뭐!”
뜻밖의 이야기에 놀란 하운의 목소리가 현관에 쩌렁쩌렁 울렸다.
“어떻게 된 일이지?”
“그 연유는 아직 확실히는 모릅니다. 그곳의 보석술사들이 보낸 편지를 보니 다행히 깨어난 것은 일시적이었고, 다시 늪 속 깊이 들어가 잠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깨어난 직후에 미친 듯이 브레스를 내뿜고 몸부림친 탓에 칼레논 대교 가운데가 붕괴되었다고 하는군요. 그래도 복구하는 데 문제는 없을 거라고 합니다.”
“자네가 복구하러 가는 건가?”
“아니요. 건물 복구에 능숙한 보석술사들이 이미 출발했습니다. 어쨌거나 이 비는 얼어붙은 늪지대의 영향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기록 담당들도 보냈으니 그들이 자료를 갖고 돌아오면 나중에 보내겠습니다. 아마 왕궁에서도 보낼 것 같지만요.”
“…사람들의 피해는?
“다행히 없다고 합니다. 셀비아스가 일어나기 전날 밤에 늪지대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서 사람들이 다리를 지나지 않고 전부 근처 마을에 피신해 있는 상태였으니까요.”
“다행이군.”
하운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이지만 전쟁터에 있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몸이 잔뜩 긴장되며 신경이 곤두서고, 죽이고 쓰러트리기 위해 힘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으로.
꽉 쥐었던 손을 편 하운은 새삼 지금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을 편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살아온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던 전장으로 되돌아갈 것을 꺼려 하고 있다는 것도.
매일매일 온갖 일이 일어난다. 호슨 공작의 보석의 방은 물론 샤를로테의 일에 이제는 하르메아까지. 골치 아프다고 생각하면서도 하운은 자신이 계속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여기에 리엘라가 있으니까. 그렇기에 이 모든 일들은 추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뭐 하십니까? 준비 안 하고?”
“준비?”
“꽃 축제 개최국과 왕궁에서 협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칼레논 대교 복구 인력 외에 남은 인력은 모두 꽃 축제를 지원해 달라구요. 불과 관련되거나 온도를 높일 수 있는 힘이 있는 보석도 전부 동원될 겁니다.”
루시안이 설명하는 사이 마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곧 공작저의 마차가 멈추고, 낯이 익은 마부가 내렸다. 그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네아를 찾았다.
“네아, 리엘라 아가씨의 편지야! 최대한 빨리 너에게 전달하라고 하셨어!”
“이리 주세요!”
어느새 하운을 따라 나온 네아가 급히 편지를 받아 들었다. 그런 네아의 뒤에서 하르메아는 자기도 보겠다며 발을 깡충거리고 있었다.
빠르게 편지를 읽은 네아는 휙 고개를 돌렸다.
“하운. 하르메아도 혹시 이동의 제한이 걸려 있냐?”
갑작스러운 네아의 질문에 하운은 고개를 저었다.
“나와 동행하는 한, 이동은 가능하다. 그렇다고 번화가를 돌아다니라는 건 아니지만.”
“꽃 축제 행사장은?”
“가능할 것 같은데….”
하운의 대답을 들은 네아는 손가락으로 하운과 하르메아를 번갈아 가리키더니 말했다.
“밥벌레들아, 일할 시간이다.”
***
리엘라는 나르던 화분을 땅에 내려놓고 손에 입김을 불었다.
“추워….”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비는 낮이 되자 오히려 더욱 차가워지고 있었다. 초여름이 아닌 겨울이 시작되었나 싶을 정도로 기온이 내려가자 가장 먼저 변화를 보인 것은 더운 지역에서 온 식물들이었다. 활짝 피었던 꽃들이 다시 움츠러든 것은 물론이며, 비를 맞은 잎의 색이 연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냉해를 입기 시작한 것이다.
행사장은 난리가 났다. 화분들을 하나라도 살리기 위해 참가자들 모두가 제 일을 내팽개친 채 밖에 놔두었던 화분에 매달렸다. 작은 것은 직접 들어 안으로 옮기고, 큰 것은 여럿이 달려들어 마차에 실은 다음 온실로 보냈다.
하지만 행사 개장에 맞춰 준비된 식물의 양이 엄청났기에 밖에 둔 화분들의 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보석술사들은 바깥에 꾸며진 정원을 지키기 위해서 허공에 비를 막는 벽을 만들거나 불을 피워 냈지만 광활한 행사장 전체를 다 지켜 내기란 역부족이었다.
“어떡하지….”
이래로라면 행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모든 꽃이 다 질 판이다. 리엘라는 비 때문에 차갑게 굳어 버린 손을 주물렀다.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가장 환하게 피어나야 할 꽃들이 이렇게 시들어 버리다니.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제 어떻게 하지?
리엘라가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든 순간이었다.
“……!”
갑자기 행사장 천막 안에 환한 빛이 생겨났다. 빛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해가 다시 뜨기라도 한 것처럼 빛과 함께 포근한 온기가 느껴졌다. 리엘라를 비롯한 천막 안에 있는 사람들은 놀라 그 빛을 바라보았다.
천막 안에 사람 머리 크기만 한 빛의 구체가 떠올라 있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입김이 나올 정도로 서늘했던 천막 안이 순식간에 따뜻해졌다.
“이것도 보석…?”
왕궁이나 원탁회의에서 지원 인력이 온 것인가? 반가운 마음에 리엘라가 고개를 돌리려 한 순간, 그녀의 머리 위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그리고 동시에 따뜻한 손이 리엘라의 손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