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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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뭐라고요?”
리엘라와 클로에는 물론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놀라 입구로 달려갔다. 행사가 연기되다니?
달려온 사람은 숨을 몰아쉬더니 힘겹게 말했다.
“폭우 때문에 서부 지방에서 오던 꽃들이 전부 발이 묶였어요. 칼레논 대교가 무너졌다고 합니다.”
“칼레논 대교가요? 폭우 때문에요?”
칼레논 대교는 이름 그대로 거대한 다리이다. 몇십 년 전, 건축가이자 보석술사인 칼레논 아르피오가 서부 지방과 수도를 편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왕실에 수없이 청원을 넣어 만들어진 다리. 말이 좋아 다리지 서부 지방과 수도 사이에 있는 넓은 늪지대 위를 편하게 건널 수 있는 유일한 길에 가까웠다.
원래 늪이 없는 지역이었지만 중앙 평원 근처에서 수면기에 들어갔던 블루 드래곤 셀비아스 때문에 늪지대가 되어 버린 곳이었다.
셀비아스는 물을 좋아하는 드래곤이었다. 그렇기에 중앙 평원에 있는 거대한 호수에서 몇 개월씩 조용히 잠수한 채로 가만히 있기도 했다.
드래곤들 중에는 조용한 편이라 전투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지만 셀비아스는 다른 점에서 골치 아픈 드래곤이었다. 바로 수면기에 들어가면 물을 끌어모으는 성질이 있어 주변을 죄다 늪지대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 탓에 셀비아스가 수도의 서쪽에 잠든 후 그곳에는 갑작스럽게 거대한 늪지대가 생겨났다. 칼레논 대교는 그 위를 지나다니는 다리이고.
“서쪽에 비가 그렇게 많이 왔어요? 그런데 평원이라서 그냥 물이 차오르는 정도일 텐데 무너졌다니요?”
리엘라가 의아해하며 물어보자 소식을 전한 사람이 한숨을 쉬었다.
“비로 무너질 다리가 아니지요. 셀비아스가 깨어났다고 합니다.”
“네? 셀비아스가?”
“그럴 리가? 셀비아스가 깨어나려면 거의 백 년 가까이 남지 않았나?”
“아, 잠시 일어난 거래요. 이유는 모르지만 일어나서 크게 몸부림치다 다시 늪 아래에 잠들었다고 하는데… 어쨌거나 그래서 칼레논 대교 가운데가 무너지고 셀비아스가 내뱉은 브레스와 체온 때문에 늪지대 전체가 초겨울처럼 추워졌다고 합니다. 이 비도 그 영향 때문이라고 하던데요.”
그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칼레논 대교가 무너진 것은 아마도 건축가들과 보석술사들이 다시 찾아가 금방 복구할 것이다. 하지만 차가워진 공기 때문에 생긴 이 폭우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리엘라는 셀비아스의 브레스를 생각해 보았다. 드래곤이 입에서 내뿜는 거대한 힘. 각각 드래곤들마다 그 힘이 다르지만 힘 자체만큼은 어느 종류건 엄청나다고 했다. 하운이 상대했던 플레노트는 화염을 내뿜는 것으로 유명했고 셀비아스의 브레스는 모든 것을 얼리는 힘이 있었다.
“어쩐지 비가 유난히 차갑더라니….”
누군가 천막 위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손으로 받으며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 빗방울이 여름비치고 유독 차가웠다.
‘하르메아도 그렇고 셀비아스도 그렇고….’
평생 자신과 관계없을 거라 생각했던 드래곤들이 이렇게 영향을 미칠 줄이야. 잠시 생각에 잠겼던 리엘라가 질문했다.
“취소가 아니라 연기지요? 며칠이나 뒤로 미뤄지게 되는 건가요?”
“칼레논 대교가 복구되는 데 3일 정도를 예상하기에 좀 더 여유를 두고 최종 4일 연기라고 합니다. 그사이에 비가 잦아들기도 기다리고요.”
그 말에 사람들은 이마를 짚었다.
“4일? 큰일 났네.”
모르는 사람들은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는 게 낫지 않느냐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꽃 축제는 살아 있는 생물을 전시해야 하는 축제다. 화분이나 정원을 꾸며 놓은 곳들은 괜찮지만 지금 리엘라와 정원 관리부가 만들고 있는 꽃 장식은 절화를 써야 하기에 4일이 지나면 시들시들해 지는 것이 많다.
게다가 계속해서 차가운 비가 이렇게 많이 내리면 줄기나 잎이 병들어 썩어 버리기 쉬웠다. 사람들이 어쩌나 당황해하고 있을 때, 모리스 경이 들어왔다.
“다들 왜 얼빠져 있어? 당장 움직여! 왕궁 보석술사들에게 연락해! 불을 피울 수 있거나 온도를 올릴 수 있는 보석을 전부 보내 달라고! 물론 보석술사들도 포함해서!”
“네, 넷!”
모리스 경의 외침에 다들 정신을 차린 듯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리스 경은 젖은 머리카락을 털며 리엘라에게 다가왔다.
“그렇지 않아도 오기 전에 소식을 듣고 루시안에게 연락을 한 참이오. 칼레논 다리를 복구하는데 동원될 보석술사들을 제외하고 원탁회의의 남은 보석술사들과 그 외 일반 보석술사들은 전부 꽃 축제에 동원될 겁니다. 그러니 리엘라 양에게 부탁이 하나 있는데….”
모리스 경은 리엘라의 눈치를 흘끔 보았다. 그가 무엇을 부탁하려는지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걱정 마세요. 호슨 공작님의 보석 중에 도움이 되는 보석이 있으면 전부 지원하겠습니다! 저도 지금 당장 공작저로 연락을 할게요!”
그 말에 뒤에 있던 사람들이 만세를 불렀다. 리엘라는 행사장 가운데 있는 테이블로 가서 저택에 보내는 편지를 썼다.
“닥치는 대로 다 가져오라 하고… 네아도 와 달라고 해야겠고….”
보석만 있으면 소용이 없다. 그 보석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보석술사도 있어야 한다.
“하운 님께 허가도 부탁해야겠네.”
네아는 여전히 허가된 보석 이외에 다른 보석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왕궁에 사용 허가 요청서를 보내야 했다. 그게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왕궁에서는 하운에게 임시로 허가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덕분에 네아는 예전보다 더 많은 보석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네아를 생각하며 편지를 쓰던 리엘라의 손이 잠시 멈췄다.
‘…하운 님은?’
하운은 현재 하르메아가 일반인과 접촉이 없도록 감시하라는 임무를 받은 상태이다.
‘그러니 칼레논 다리 복구를 위해 움직이시진 않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도 꽃 축제를 위해 움직이는 것은 힘들 것이다. 하운에게도 도와 달라는 말을 적던 리엘라는 그 위에 줄을 그었다.
편지를 다 쓴 다음 품에 안고 마차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 공작저의 마부에게 편지를 건넸다.
“이거 최대한 빨리 네아에게 전해 주세요! 꽃 축제가 걸린 중요한 일이라고 말씀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보기 드물게 비장한 얼굴로 신신당부하는 리엘라의 표정에 일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린 마부는 말들에게 재빨리 옷을 입힌 후 마차를 몰아 공작저로 달렸다. 행사장으로 다시 돌아온 리엘라는 완성되어 가고 있던, 꽃으로 만들어진 드래곤들을 보았다.
“큰일 났네….”
비가 쏟아지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일어날 줄이야. 행사장 곳곳에 급하게 불을 피운 화로가 놓이고 일찍 나온 보석술사들이 비가 새는 천막을 보수하면서 불을 피워주고 갔다.
“이건 또 이거대로 문제인데….”
불이 가까운 곳에 있는 꽃들은 다른 꽃들보다 더 빨리 개화한다. 그 탓에 한쪽에만 온기가 닿지 않도록 적당히 화로를 이리저리 옮겨야 한다. 썩지 않도록 하면서 동시에 빨리 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다니. 게다가 서부 지역에서 제때 도착하지 못하는 꽃과 나무, 이미 잘라 놓은 소재들이 시들거나 썩는 문제까지.
리엘라가 뒤를 돌아보았더니 클로에와 모리스 경은 이미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상태였다.
리엘라는 천막 밖을 바라보았다. 비는 잦아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굵어지고 있었다.
“꽃 축제… 할 수 있겠지?”
리엘라의 중얼거림이 빗소리에 섞여 사라졌다.
***
긴 복도에 드르륵거리는 손수레 소리가 울렸다. 평소보다 훨씬 무거운 소리는 칸칸이 채운 하르메아의 식사 때문이다. 익히지 않은 생고기를 좋아하는 하르메아 때문에 멜다 부인을 비롯한 주방의 요리사들은 새로 가져온 고기 중에서 가장 신선하고 좋은 부분을 토막 내어 접시 위에 가득 쌓았다.
하운의 식사와 하르메아의 식사를 번갈아 보면서 네아는 진심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밥벌레가… 둘이야….”
입은 둘인데 왜 먹는 것은 수십 명분인지. 물론 하르메아가 압도적으로 많이 먹긴 하지만 하운 역시 적게 먹는 것은 아니다. 하긴, 그러니 그 큰 키와 덩치를 유지하는 것이겠지.
‘몸 커서 어디에 써먹나 했는데.’
예전에는 하운의 키와 근육을 보고 드래곤에게 ‘나 여기 있소’라며 표적이 되기 딱 좋을 만큼 크다 짜증을 냈었다. 기사도 아닌 게 저걸 어디다 써먹냐 코웃음을 쳤는데 하운이 리엘라를 끌어안고 감싸는 모습을 보며 써먹을 곳이 있긴 있구나 싶었다. 리엘라보다 워낙에 큰 탓에 위험한 상황에도 다치면 하운만 다치니까.
‘그러니 먹여서 유지하게는 해 줘야지.’
그래야 위급 시에 다시 리엘라를 안전하게 지킬 것이 아닌가.
보석의 방으로 다가간 네아는 문을 두드린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
“…….”
오늘 아침에는 첫 번째 방 앞에 손수레를 두고 돌아갔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하르메아를 보고 싶어.’
마침 리엘라도 없고 안에는 하운뿐이다.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반대로 제 비밀을 다 알고 있기에 그 앞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나와도 상관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두 번째 방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카페트 위에 널려 있는 보석들과 그 옆에서 드러누워 있는 하르메아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 짜증을 꾹꾹 눌러 참고 있는 것 같은 하운도.
보석을 찾는게 힘든 것인가 짐작하고 있을 때, 하르메아가 누운 채로 팔다리를 흔들며 소리쳤다.
“리엘라 보고 싶어! 리엘라 데려와!”
“…….”
보석이 아니라 그쪽이었나. 네아가 이 새끼 드래곤이 왜 어미를 따라다니는 오리처럼 리엘라에게 들러붙는지 고민하고 있는 사이 하운은 일어나 하르메아에게 다가가 통통한 뺨을 주욱 잡아당겼다.
“작작하지 못하겠나? 빨리 보석이나 찾으란 말이다.”
“다 찾아봤는데 없잖아!”
하르메아 역시 하운에 비해 짧은 팔을 끙끙거리며 뻗은 다음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네아는 팔짱을 끼고 그 광경을 구경했다. 잘하는 짓들이다. 아주 정신 연령에 알맞게 놀고 있네.
투닥거리는 사람 한 명과 드래곤 한 마리를 혀를 차며 보고 있던 네아는 부서지지 않는 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르메아의 보석 외에도 아직 나타나지 않은 보석들이 있다. 그렇다면 그것들은 분명 저 안에 있을 것이다. 네아는 하르메아에게 다가갔다.
“이봐요, 하르메아.”
“어? 으애오이아이다. 애 차어?”
“‘드래고니안이다. 왜 찾어?’ …라고 말하려고 했던 거 같은데…. 하운, 너 이 자식 좀 놔 봐. 하르메아가 말을 못 하잖아.”
그 말에 하운은 하르메아의 볼을 잡아당기던 손을 놓았다. 하운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짜증이 가득했다.
갑자기 드래곤이 나타났을 때부터 예감이 좋지 않더라니. 차라리 플레노트 같은 드래곤이면 망설임 없이 두들겨 팼을 텐데 쓸데없이 인간에게 우호적인 드래곤이라 손님으로 맞아야 한다. 그것만이면 상관없었겠지만 이 새끼 드래곤은 기분 나쁠 정도로 리엘라에게 달라붙는다.
특히나 리엘라와 함께 씻고 자겠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눈이 돌아가는 줄 알았다.
‘누구 마음대로?’
저는 아직 손도 제대로 못 잡는데, 수백 년 산 이 능구렁이 같은 도마뱀은 어린 외모를 이용해서 이런 짓도, 저런 짓도 하려 한다.
‘그렇게 놔둘 순 없지.’
하운은 왕실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며 하르메아를 끌고 제 방으로 갔다. 그리고 하르메아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곧바로 일어나 어딜 가려 하느냐고 눈을 부릅떴다.
하르메아는 밤사이 하운의 방에서 한 걸음도 나갈 수 없었고 리엘라는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대신 하운은 밤새 하르메아가 언젠가 너 잡아먹을 거라며 칭얼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하르메아는 하운이 진심으로 잡아당긴 탓에 얼얼해진 볼을 문지르며 네아를 바라보았다. 왜 저를 찾느냐는 눈빛이었다. 네아는 손가락으로 벽을 가리켰다.
“저 벽에 브레스 한번 뿜어 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