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34
140
“네이판타, 너구나.”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네아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뒤이어 짐승의 울음 소리을 내며 벽을 검은 손톱으로 미친 듯이 긁었다.
“그 안에 있구나! 너! 너! 그 인간!”
네아의 입에서 끔찍한 분노가 담긴 울부짖음이 흘러나왔다. 한 번 죽어야만 했던 분노는 누군가가 들었다면 당장 귀를 막고 벌벌 떨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미친 듯이 벽을 긁던 움직임이 멈췄다. 벽에는 사람 키보다 더 큰 손톱 자국이 남아 있었다. 네아의 얼굴에 소름끼치는 미소가 떠올랐다.
“왜 그런 곳에 숨어 있니, 인간.”
조금 전까지의 노성을 내질렀던 입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기다란 손톱이 벽을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마치 이 벽의 두께가 어느 정도 되는지 가늠해 보려는 듯이.
“어서 나와라. 너는, 너는 나를 죽이지 않았더냐. 내가 이렇게 돌아왔으니 너도 다시 돌아와야지.”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네아의 몸이 빙글 돌더니 바닥에 엎드려 마치 네 발 짐승처럼 바닥을 기었다.
“나는 너희들을 잘 안다. 네가 나오지 않는다면 다른 인간들을 죽이면 된다.”
수많은 인간들을 씹으며 알게 된 사실이었다. 제가 다치는 것보다도 옆에 있는 다른 자가 다치는 것에 더욱 분노하는 이상한 것들.
특히나 벨라리아 아인델 호슨은 그 정도가 더욱 강했다. 제 팔이 너덜거릴 때는 웃으면서 “더 꿈틀거려봐 뱀 같은 새끼야.”라고 비아냥거리던 것이 그 옆에 있던 인간의 다리를 씹었을 때는 미쳐 날뛰며 공격해 왔었다.
문으로 다가가자 너머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인간들의 목소리, 발걸음 소리. 이 곳에 수십 명의 인간들이 있다. 죄다 잡아먹으면 호슨은 저 벽에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네아의 몸이 문에 부딪히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열려있는 창문으로 무엇인가가 날아와 네아의 몸 주변을 돌았다. 그 순간 벽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아, 네아야. 거기에 있느냐.”
호슨 공작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네아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다시 호슨 공작의 목소리가 외쳤다.
“입을 벌려라. 그리고 버텨야 해.”
그 목소리에 반응이라도 하듯 네아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네이판타는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피가 섞인 몸이다. 그러니 절대 복종을 해야 하는 잡종이 지금 제 의지를 무시하고 감히 인간 따위의 말을 들어?
다시금 강하게 정신 지배를 시도했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벽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이판타, 피는 네가 줬는지 몰라도….”
벽 너머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네아는 내 아이다.”
그 순간 벽 너머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마치 할 일을 다 했다는 듯한 후련함이 느껴지는 소리기도 했다.
그 사이 무언가 날아 들어와 곧바로 네아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꿀꺽. 네아의 입 안으로 삼켜지자 컥컥거리는 괴로운 소리와 함께 몸이 바닥을 뒹굴었다.
한참동안 바르작거리던 네아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검게 변했던 눈동자가 인간의 것으로 변하고 튀어나왔던 손톱 역시 어느새 사라져 인간의 손으로 돌아왔다. 벽 역시 마찬가지였다. 깊은 손톱 자국은 점점 옅어지다가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깨끗해졌다.
잠시 후, 네아가 눈을 떴다.
“어?”
네아는 제가 왜 이러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왜 여기 있지? 뭘 하고 있었더라?
“아, 맞다.”
벽 너머에 혼자 말을 걸고 있었다. 호슨 공작을 그리워하면서. 그랬는데 왜 바닥에 이렇게 엎드려 있었단 말인가. ‘설마…’ 하고 네아는 황급히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유리창에 비친 제 모습을 보았다.
“휴우….”
다행이었다. 혹시나 예전처럼 드래고니안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 것인가 했는데 다행히 몸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일단 좀 일어나… 어?”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던 네아의 손에 무엇인가가 잡혔다. 놀라 쳐다본 곳에는 진주 몇 알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뭐야, 무슨 진주가 여기에 굴러다니…. 아르펠트의 진주?”
바닥에 있던 진주를 붙잡은 네아의 눈이 커졌다. 분명 아르펠트의 진주였다. 문제라면 마치 수명이 다 해 버린 듯 분홍색의 광택은 사라지고 거칠해져 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왜! 게다가 왜 이런 꼴인데!”
보석이 대답을 할 리 없음에도 마치 사람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 듯이 네아는 아르펠트의 진주를 붙잡고 흔들었다. 리엘라에게 있어야 할 보석이었다. 위험으로부터 지키는 보석. 그래서 호슨 공작이 리엘라에게 남겨 줬을 보석.
네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혹시 리엘라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그녀는 아르펠트의 진주를 집어 들고 보석의 방을 나왔다. 그때 복도 저편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네아! 어디 있어요?”
***
리엘라는 서재에 앉아 도착한 편지를 보고 있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리나였다. 봉투를 열고 편지지를 열자마자 가득 그려진 하트의 개수에 리엘라는 리나가 얼마나 신이 난 상태인지 알 수 있었다.
원래 축제가 끝나고 나서 리나네 가게의 리모델링을 도울 생각이었다. 브릭스 거리에 오랜만에 가서 그 동안 비워 두었던 가게도 정리할 생각이었고. 하지만 하운이 쓰러지는 바람에 리나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공작저에 있게 되었다.
“정말 미안해! 대신에 공작저의 정원사님들이 도와 주신다니까 그걸로 어떻게 안 될까?”
식당의 공사가 이미 시작된 것을 알고 있었고 식당 앞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고 있었던 지라 리엘라는 결국 제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프로를 찾아가 ‘특별 수당을 드릴 테니 어떻게든 안 될까요?’라며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걱정과 달리 정원사들은 신난 얼굴로 말했다.
“아가씨도 아시다시피 저희 일은 이 정원의 유지, 보수지 않습니까. 워낙에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완벽하게 조성된 곳이라 새로이 꾸밀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 잘 됐네요.”
정원사들은 그런 일이라면 돈은 안 받아도 되니 꼭 맡겨 달라는 말이 그냥 겉치레로 한 말이 아님을 보여 주듯 리나의 가게에 재빨리 다녀갔다. 그러고는 리엘라에게 허가를 받아 공작저의 정원에서 가게를 꾸미는데 필요할 만한 여러 가지 나무와 꽃을 챙기기까지 했다.
갑자기 공작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된 리나는 리엘라에게 여긴 조금도 신경 쓰지 말고 네 일 하라며 손을 흔들었다. 그 후로 가게에 가 보질 못했는데 감탄사와 하트가 가득한 편지 안에는 공작저의 정원사들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가득한 것을 보니 일이 무척이나 리나의 마음에 들게 잘 끝난 모양이었다.
리엘라는 편지를 읽다 자신의 테이블 위를 바라보았다. 펜과 색연필 옆에 그림이 그려진 종이가 있었다. 리엘라가 구상한 하운의 집 정원의 조감도였다.
“대강 끝났으니… 정원사님들께 조언도 구하고 해 봐야겠다.”
정원의 수목에 대해서는 아직도 공부 중인 터라 분명 생각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공작저의 정원사들에게 조언과 도움을 얻어 문제되는 부분이 없도록 신중히 살펴 볼 생각이었다. 조감도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리엘라는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 문이 잘 잠겼나 확인하고는 방와 연결된 옷방으로 들어가 다시 옷 방 한쪽 벽에 있는 작은 문을 열었다.
그곳은 방이라고 하기에는 좁은 곳이었다. 문만 보면 창고라고 생각하기 쉬운 곳이었지만 들어가면 큰 창이 있고, 테이블 하나와 의자 하나, 책장 하나가 있는 단촐한 공간이었다.
예전에 호슨 공작이 조용히 책이 읽고 싶거나 할 때 사용했다는 비밀 서재. 이곳은 네아도 들어오지 않는, 정확히는 들어오지 못하는 장소였다.
“저택 주인의 비밀 공간이래요. 정확히는 안전 구역… 이라고 해야 하나요? 공작님이 말씀하시길 저택의 설계자도 보석술사였는데 그분이 사람이라면 남들이 모르는 비밀스러운 공간 하나는 갖고 싶은 거라며 만드셨다나 뭐라나. 어쨌든 거긴 저택 주인만 들어갈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못 들어가니 청소할 수 없답니다.”
그런 공간이 있는 것 보다 그곳을 청소하지 못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듯 말하는 네아가 기억났다.
‘처음에는 별로 쓸 일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잘 쓰게 될 줄이야.’
리엘라는 테이블 위에 있는 화둔 두 개와 몇 개의 보석을 바라보았다.
하르메아가 오고 나서 방에 화분을 두어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특히나 하르메아가 정원에서 꺾어온 꽃을 입에 오물거리며 달려와 “정원사들이 엘피안 꽃이라는거 있다고 했는데 그건 어디 있어?”라고 말했을 때는 정말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쩐지 하르메아도 빛나는 꽃을 알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방 안에 두었던 화분을 재빨리 이곳으로 옮겼다. 사실 그 방에는 화분보다 먼저 넣어두었던 것들이 있었다. 보석의 방에서 나왔던 보석들 중, 이건 공개되면 안 되겠다 싶은 것들.
리엘라는 테이블 가까이 다가갔다.
“오늘은 하나 떨어졌네.”
이제 호슨 공작에게 선물했던 노란색 꽃은 한 송이만 남아 있었다. 그 사이 떨어진 꽃잎들은 전부 주워 압화로 만들었다. 그 중에 빛이 남은 건 하운에게 줬었고.
오늘은 한 송이 남은 꽃잎에서 한 장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것도 압화로 만들까 하던 리엘라는 화분 옆에 놓여 있는 보석들을 보았다.
첫 번째 방에서 꺼냈던 균열의 아게이트를 비롯해서 그 옆에 놓여있는 보석들은 모두 빛을 잃은 상태였다.
“흐음….”
떨어진 꽃잎을 들고 리엘라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하운에게 다음에는 그가 준 엘피안 꽃을 선물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엘피안 꽃도 점점 더 빛이 강해지고 있었다. 아마 이대로라면 몇 주 이내로 완벽하게 빛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노란 꽃잎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무얼 해 볼까 고민하던 리엘라의 시선이 균열의 아게이트에 닿았다. 이미 죽은 보석이라고 했다. 하지만 만약 이게 살아난다면….
‘벽을 깨는데 쓸 수 있지 않을까?’
대평원에 협곡을 만들어 냈다는 보석이다. 그렇다면 저 벽은 깨트릴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안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고.’
정확히는 벽 너머에 있는 것이 정말로 호슨 공작인지가 궁금했다.
루시안이 호슨 공작이 살아있는 것 같다고 했을 때, 리엘라도 처음에는 공포를 느꼈다.
죽음은 인간이 넘을 수 없는 것이다. 부모님을 사랑했고, 조부모 또한 사랑했다. 하지만 그분들이 어느 날 자신의 침대 옆에 서 있다면 마냥 반가워하며 달려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포는 이내 사라졌다.
벽 너머에 있는 것이 호슨 공작이 아니더라도 자신들에게 해를 입히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도와주면 모를까.
리엘라가 꽃잎을 들고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어?”
갑자기 팔목에 떨림이 느껴졌다. 놀라 바라보자 아르펠트의 진주가 떨리는 것이 보였다.
“이거 왜 이러지?”
물려받은 이후, 힘을 쓴 것은 한 번뿐이었다. 그 후로는 살짝 광택을 잃은 채 조용했던 보석이었는데 갑자기 이것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알 수 없어 리엘라가 당황하고 있을 때 아르펠트의 진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를 묶고 있는 줄에서 벗어나려는 듯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곧 툭 소리와 함께 줄이 끊어지며 진주가 허공에 떠올랐다.
“왜 그래?”
자신은 위험하지 않다. 지금 이 방에는 자신뿐이며 다른 일도 없는데 왜 위험으로부터 지켜 준다는 진주가 이렇게 움직이는 걸까. 게다가….
진주가 리엘라의 손 주변을 빙빙 돌았다. 마지 그녀가 가진 꽃잎을 달라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리엘라는 들고 있던 꽃잎을 내밀었다. 그러자 진주는 기다렸다는 듯이 꽃잎에 저를 부딪혀왔다.
순간 밝은 빛이 폭발하듯 터졌다. 빛뿐만 아니라 빛과 함께 일렁이는 힘이 바람을 불러왔고 리엘라는 비틀거리다 책상을 붙잡았다. 그 사이 진주와 꽃잎은 빛에 휩싸였다. 잠시 후, 방을 가득 채웠던 빛이 사라졌고 리엘라는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강한 빛이 눈에 남긴 잔상 때문에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방금 뭐야? 무슨 일인데?”
손목을 바라보았지만 조금 전까지 있었던 아르펠트의 진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던 리엘라는 테이블 위를 본 순간 굳고 말았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