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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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조금 전 빛이 번쩍였던 자리에 무엇인가가 둥둥 떠 있었다. 처음에는 아르펠트의 진주인가 싶었지만 분명 전혀 다르게 생긴 것이다. 그런데 꽤 익숙하게 생겼다. 어디선가 한 번 본 적이 있는 것. 하지만 절대로 여기에 있을 리는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것. 리엘라는 그것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에르첼라의 목걸이?”
제 이름이 불리자 허공에 둥실 떠 있던 에르첼라의 목걸이가 반갑다는 듯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리엘라는 제 눈을 비볐다. 뭐야, 이게 왜 여기에 있어?
놀란 마음에 눈앞의 목걸이를 붙잡으려고 하다 온실에서 만났던 레티시아 왕비가 생각났다. 왕의 것을 감히 걸고 있느냐 말했던 그 서늘한 목소리와 무서운 표정이. 그래서 리엘라는 목걸이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왜 이런 귀한 곳에 누추한 분… 아, 아니. 왜 이런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오신 거죠?”
당황하다 보니 입이 헛소리까지 내뱉었다.
도대체 왜 에르첼라의 목걸이가 여기에 있지? 그보다 어떻게?
리엘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일단 왕궁에 신고부터 해야겠다 생각했다. 지난번에 레티시아 왕비가 목걸이를 잡아챈 다음 질질 끌고 가듯이 가져갔던 것이 생각났다. 아마도 이번에도 비슷하지 않을까.
왕궁에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리엘라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음을 생각해 냈다.
“아르펠트의 진주!”
갑자기 나타난 에르첼라의 목걸이 때문에 그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리엘라는 황급히 바닥에 엎드려 카펫 위를 더듬었다. 떨어졌으면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디 갔지?’
설마 열린 창문으로 다 튀어 나가버린 걸까?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닥을 더듬던 리엘라는 몸을 일으켰다. 휙 둘러봐도 바닥에 진주들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이럴 때, 제가 지금 저택 안에서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네아 한 명뿐이다. 어서 빨리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몸을 돌리려던 리엘라는 아직도 둥실둥실 떠 있는 에르첼라의 목걸이를 향해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사람이 아닌 것은 알지만 전에 보니 어쩐지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그러니 말을 하면 분명 알아들을….
찰싹.
“……?”
리엘라가 여기서 기다리라는 말을 한 순간, 에르첼라의 목걸이가 리엘라의 팔목에 찰싹 달라붙었다. 마치 저도 데리고 가라는 듯이. 리엘라는 목걸이를 빤히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팔찌였어요?”
리엘라의 말에 에르첼라의 목걸이는 잠시 떨림을 멈췄다. 그러다니 다시 둥실 떠올라 이번에는 리엘라의 목에 찰싹 달라붙었다.
잠시 움찔하긴 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금속의 차가움이 아닌 체온과 비슷한 온기가 있었던 데다가 어쩐지 목걸이의 이런 행동은 맨날 안아 달라 조르는 하르메아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호의가 가득한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고. 게다가 어쩐지 저번보다 보석의 빛이 더 강해진 것 같기도….
‘잠깐, 빛이 강해져?’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리엘라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테이블 위의 화분을 확인했다.
“으아아악!”
그다음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압화를 만들까 고민했던 빛나는 꽃이 전부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꽃잎 하나 남김없이 전부 다!
리엘라는 제 목에 걸려 있는 에르첼라의 목걸이를 거칠게 잡아챘다. 그리고 멱살을 잡고 흔들 듯이 그것을 잡고 짤짤 흔들며 소리쳐 물었다.
“먹었어요? 먹었어?”
그러자 손에 붙잡힌 목걸이가 작게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어쩐지 몰래 과자를 먹다 들키자 입가를 쓱쓱 훔치며 안 그랬다고 변명하는 아이처럼. 리엘라는 다시 화분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사라진 것은 노란 꽃뿐, 아직 완전하게 빛나지 않는 엘피안 꽃은 남아 있었다.
“다행이다….”
그 순간 리엘라의 손에 들려 있던 목걸이가 슬슬 엘피안 쪽으로 제 몸을 움직였다. 리엘라는 놀라 목걸이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안 돼! 먹지 마! 먹지 말라고! 그건 네 것이 아니야!”
일단 이 제멋대로인 목걸이를 당장 여기서 끌고 나가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사라진 아르펠트의 진주도 찾아야 했고.
‘다들 왕궁으로 돌아가서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루시안이나 다른 보석술사들이 이 상황을 알게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만약 에르첼라의 목걸이가 또 저를 찾아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레티시아 왕비가 정말로 무서운 표정으로 저를 노려볼 것 같았다. 그것만은 사양이었다.
리엘라는 급히 손수건을 꺼낸 다음 에르첼라의 목걸이를 감쌌다. 그러자 답답하다는 듯 목걸이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가만히 있어요!”
…….
참다못한 리엘라가 소리를 지르자 목걸이의 움직임이 멈췄다. 리엘라는 재빨리 손수건을 꽁꽁 묶은 다음 목걸이를 들고 복도로 나왔다.
“네아! 어디 있어요!”
이 상황에서 역시 제일 도움이 되는 사람은 네아였다. 네아를 부르며 복도를 뛰어다니자 잠시 후, 보석의 방과 연결된 복도에서 네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가씨!”
달려오는 네아를 보며 리엘라는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갔다. 그러다 네아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게다가 이 식은땀은 다 뭐예요.”
“어? 그런가요?”
리엘라가 말하자 네아는 자신의 상황을 모르는 듯 손으로 얼굴을 더듬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 네아의 목소리나 행동은 이상이 없어 보였다. 제 몸을 살피던 네아는 리엘라의 손에 들린 것을 보더니 그녀를 붙잡고 물어보았다.
“맞다, 아르펠트의 진주가 굴러다니던데. 아가씨, 무슨 일 생기셨어요? 괜찮으세요?”
“아르펠트의 진주를 봤어요? 갑자기 혼자 줄을 끓고 사라져 버려서 그러잖아도 찾아야 했는데.”
“네. 바닥에 흩어져… 이건 또 뭔가요?”
네아는 리엘라의 손에 들려 있는 손수건 주머니를 보았다. 정확히는 그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누가 보면 새라도 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움직임이었다.
“어, 그게….”
리엘라는 슬쩍 손수건을 풀어서 안에 있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거 에르첼라의….”
“알아요. 에르첼라의 목걸이….”
두 사람의 얼굴에 어둠이 깔렸다. 그리고 동시에 외쳤다.
“하운!”
당장 그에게 연락해야 했다.
***
크아아아악!
귀를 찢는 비명 소리가 산속에 울렸다. 멀리서 그 울음소리를 들은 산짐승들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의 반대쪽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울음소리에 실린 분노가 자신들에게 향하는 순간, 형체도 남김없이 찢길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저기 계곡에 버려진 인간의 시체처럼.
네이판타는 계곡을 정신없이 뒹굴고 있었다. 끔찍한 통증이 배 안을 갈기갈기 찢는 것 같았다.
끄르르륵.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는 그녀의 입가에 피거품이 맺혔다. 네이판타는 손톱으로 바위를 긁으며 몸을 떨었다. 고통 때문만이 아니었다. 제 피를 이어받은 것이 감히 인간의 말을 듣고 제 지배를 벗어났다는 것에 대한 분노도 네이판타를 미치게 만들었다.
네이판타는 배 위에 손을 올렸다. 다른 보석들보다 더욱 끔찍한 통증이 느껴졌다.
‘드래곤의 피다.’
네이판타는 계곡으로 기어가 제가 잡아 온 다른 인간 하나를 끌어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인간이었다. 네이판타는 인간의 눈을 노려보았다. 숨이 꺼져 가던 인간은 네이판타와 시선이 마주치더니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팔을 축 늘어트리며 얌전해졌다.
“진주. 드래곤의 피. 이것이 무엇이지.”
“아르펠트의 진주… 호슨 공작님이… 드래곤 로드의 피가 차오른 바다에서 가져온… 지키는 힘이 있는… 수명이 있는 보석….”
인간은 제 머릿속으로 전해지는 진주의 모습에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래서 더욱 괴로웠군.’
유난히 고통스럽다 했더니 같은 종족의 피로 만들어진 보석이었을 줄이야. 그러니 더욱 저에게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죽었다고 해서 시체를 삼키기 위해 갔는데 분명 목소리를 들었다. 덫이었던 건가? 아니면….
네이판타는 손에 잡힌 인간의 머리를 거칠게 씹었다. 뼈가 부서지고, 질척한 액체가 그녀의 손을 뒤덮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한참이나 분풀이를 하던 네이판타는 이미 원래의 형체를 잃어버린 인간을 계곡에 집어 던진 후 몸을 움직였다.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제가 움직인 흔적을 들킬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셀비아스가 사라졌다는 것을 슬슬 눈치챈 인간들이 움직일지도 모른다. 네이판타는 서둘러 팔다리를 움직였다.
‘다음번에는….’
제 피를 이어받은 드래고니안의 모습이 떠올랐다. 분명 그것을 한 번 더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오늘 같은 실수는 없어야 했다.
반드시, 저주받을 인간들에게 절망을 안겨 주리라.
무엇이 그들을 괴롭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네이판타는 북으로 향했다. 그곳에 한 마리 더 남아 있는 드래곤을 향해.
***
하운은 한숨을 쉬면서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었다. 그의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는 온갖 책과 문서가 가득 쌓여 있었다. 셀비아스와 드래곤의 소멸에 대한 과거 기록들이었다. 셀비아스의 소멸이 알려짐과 동시에 왕궁과 원탁회의의 보석술사들은 미친 듯이 과거의 기록을 찾았다. 그들이 찾아낸 기록은 루시안은 물론 하운에게도 전해졌다.
이제 재빨리 이것을 전부 읽고 나서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찾은 다음 국왕에게 보고해야 할 것이었다.
의자에 앉은 하운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제 겨우 다시 조용해졌나 싶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아무래도 곧 정찰대를 보내겠군.’
그리고 정찰대 다음은… 자신이 그곳으로 갈 확률이 높았다. 당장에 어떤 보석들을 준비할까 고민하는 사이, 옆에 마구잡이로 쌓여 있던 문서 더미가 스르륵 무너져 내렸다.
“이런.”
테이블 위가 종이로 엉망이 되자 하운은 한숨을 쉬며 그것들을 집었다. 어차피 봐야 할 것들이었기에 그는 하나씩 눈으로 훑어가며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던 하운의 손이 멈췄다. 문서에는 에르첼라의 컬렉션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 밑으로는 에르첼라의 컬렉션을 구성하는 보석의 그림도 함께였다.
컬렉션이라는 말이 붙을 만큼 그것은 여러 가지 장신구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목걸이, 귀걸이, 팔찌, 반지, 브로치, 발찌, 머리빗 등등.
그중에는 현재 왕궁에 남아 있지 않은 것도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 그 당시 왕실 보석의 방을 관리하던 보석술사들에게 책임을 물었지만, 그들은 정말 억울하다는 말과 함께 그것이 그냥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도대체 지금 상황에 왜 그 기록을 준 건가 의아해하던 하운은 밑에 적힌 내용을 읽으면서 혀를 찼다. 애초에 에르첼라의 컬렉션은 에르첼라 왕이 드래곤 로드를 상대하기 위해 구성한 보석들이었다. ‘어차피 준비해야 할 거, 화려하고 예쁘게 하자고!’라며 필요한 보석들을 전부 다 장신구로 만들어 걸치고 다닌 게 그녀답다면 그녀다운 일이었지만.
그가 마저 밑의 내용을 읽으려는 순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이 상황에 무슨 손님이란 말인가. 하운은 누군지 물어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돌려보내.”
“알겠습니다.”
시종의 걸음 소리가 멀어졌다. 다시 문서를 보던 하운은 생각에 잠겼다. 잠깐, 시종이라고 해서 지금이 비상 상황인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손님의 소식을 전하다니. 하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멀어져 가던 시종을 불렀다.
“생각해 보니 누군지 묻지를 않았더군. 누가 찾아온 거지?”
“레이디 리엘라 테니어… 대공님?”
시종은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를 제치고 튀어 나가버린 하운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