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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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운은 맹렬하게 복도를 달렸다. 달려가는 길에 조각상이 놓인 장식대에 발끝이 걸리고, 계단의 난간에 무릎을 찍기도 했지만 어쨌든 하운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그 쿵쿵거리는 소리는 복도를 타고 크게 울렸고, 근처 회의실에 있던 레이안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 어떤 얼간이가 감히 왕궁 내에서 저렇게 소란을 피우는지 알아 와.”
그러잖아도 심각한 상황인지라 신경이 날카로워진 레이안이었다. 옆에 앉아 있던 대신들은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오늘 왕창 깨지겠구나, 생각하며 속으로 혀를 찼다. 잠시 후, 명령을 받고 나갔던 시종이 돌아와 눈치를 보며 힘겹게 말했다.
“조금 전 소리는… 하운 대공이 뛰어가면서 난 소리라고 합니다.”
“…….”
시종의 대답에 레이안은 ‘뭐?’ 하는 표정으로 문을 한번 바라보더니 대신들에게 말했다.
“체력은 국력이지. 카르디아의 주 전력이 저리도 건강하니 마음이 놓이는군.”
“…….”
조금 전까지는 걸리면 가만 안 둘 기세더니 제 동생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다른 말을 하는 국왕의 모습에 대신들은 입을 다물었다.
***
“리엘라! 무슨 일이야!”
하운은 노크할 정신도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최근 일어난 일들 때문에 하운 역시 잔뜩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였다.
셀비아스의 일도 일이지만 벽 너머의 존재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꽤 늦은 시각이다. 어지간한 일이면 내일 아침에 연락을 했을 터인데 리엘라가 직접 왕궁까지 왔다는 것은 뭔가 큰일이 생겼음이 분명했다.
하운이 구르듯이 안으로 들어가자 앉아 있던 리엘라가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하운은 재빨리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어디가 다친 건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일이야? 공작저에 문제라도 생겼나? 혹시 벽 너머… 때문에? 그보다 네아는 왜 같이…아니다, 네아는 못 들어오지. 어쨌든 별일 없는 거야?”
“저, 전 괜찮아요. 네아도 괜찮고요. 공작저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진정하세요.”
리엘라는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하운을 진정시켰다. 하운이 한숨 돌리자 리엘라는 그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기… 방음 잘 되나요? 듣는 사람 없지요?”
“응?”
뜬금없는 질문에 하운은 리엘라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는 그녀가 다치진 않았는지에 신경이 쏠려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꽤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런 건 왜….”
“음, 새어 나가면 곤란한 일일 것 같아서요.”
“……?”
리엘라가 점점 더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을 때, 하운은 그녀의 주머니에서 무엇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건 뭐야?”
하운이 주머니를 가리키자 리엘라는 한숨을 푹 쉬며 주머니에 든 것을 꺼냈다. 꽁꽁 묶은 손수건 주머니 안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리엘라가 손수건을 풀자 답답했다는 듯 안에 있던 것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어?”
모습을 드러낸 것에 하운은 얼빠진 목소리를 내었다.
“이게 왜 여기에 있어?”
허공에 떠오른 에르첼라의 목걸이는 갑갑했다는 듯 주변을 빙빙 돌더니 다시 리엘라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순간 하운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리엘라에게서 떼어 내기 위해 달려들었다. 갑자기 달려온 하운의 기세에 놀란 리엘라는 뒷걸음질 치다 뒤에 있는 소파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하운 역시 멈춰 서려고 휘청거리다 리엘라의 위로 넘어졌고.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야, 하운! 큰일 났다! 에르첼라의 목걸이가….”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평소 습관대로 노크 없이 들어온 레이안이었다. 그는 소파에 누워 있는 리엘라와 그 위에 있는 하운을 보더니 그대로 굳어 버렸다. 잠시 세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리엘라는 진심으로 바랐다.
‘집에 가고 싶다….’
잠시 후, 리엘라는 손수건으로 에르첼라의 목걸이를 붙잡은 채 덜덜 떨며 소파에 앉았다.
최고급이 분명한 소파에 푹신푹신한 카펫, 여기저기 장식되어 있는 꽃 그리고 중후하고 우아한 내부의 장식까지. 무척이나 고상하고 품격 있는 방이었지만 리엘라는 목이 졸리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리엘라가 있는 곳은 국왕의 개인 집무실이었으니까.
리엘라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제 손에 들려 있는 에르첼라의 목걸이를 노려보았다. 가출한 보석을 데려다주는 일이 이렇게까지 숨 막힐 일인가? 돌려만 주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레이안은 어림도 없다는 듯 전후 사정을 들어야겠다며 리엘라를 자신의 집무실로 데려왔다. 원하던 대로 보안은 완벽한 곳 같은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지.
‘게다가 하필이면 그럴 때….’
자신과 하운이 계속해서 오해라고 필사적으로 말했지만, 레이안은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성인 간에 합의된 사항이면 내가 뭐라 할 일이 아니지.’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어마어마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갑자기 나타났다는 말이지?”
“네? 네! 그렇습니다!”
레이안의 말에 리엘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답했다. 레이안은 다시 앉으라는 듯한 손짓을 하며 계속해서 말했다.
“저번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군. 하지만 이번 일이 더 큰 문제인 건 에르첼라의 목걸이가 왕궁을 벗어났다는 것이야. 사실 오래전에도 이런 일이 한 번 있었는데….”
레이안은 혀를 차며 하운을 보았다. ‘너도 알고 있지?’라는 표정에 하운의 표정이 굳었다. 리엘라는 손에 들린 목걸이를 쏘아보았다. 가출 상습범이었어?
“일단 한 번만 더 확인하도록 하지.”
레이안의 말에 리엘라는 에르첼라의 목걸이가 나타났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레이안은 뭔가 적어 가며 리엘라의 말을 들은 다음 그녀의 손에서 목걸이를 받아 들었다.
“그럼 일단 보석의 방으로 갈까? 그런데….”
손에 들린 목걸이를 잠시 바라본 레이안이 중얼거렸다.
“이거 원래 이렇게 반짝거렸나?”
순간 리엘라는 튀어나오려는 비명을 필사적으로 눌러 막았다. 하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레이안은 들고 있던 목걸이를 다시 리엘라에게 넘겨주었다.
“이걸 왜 저에게….”
“응? 자네를 꽤나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내가 다시 집어넣으려 하면 보석의 방으로 가는 사이에 도망갈 것 같거든. 놓치지 말고 잘 데려와.”
“무, 물론입니다!”
리엘라의 힘찬 대답을 듣고 레이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리엘라는 격렬하게 집에 가고 싶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하운 역시 리엘라의 옆에서 목걸이를 노려보며 함께 걸었다, 모퉁이를 돌았을 때, 복도 저편에서 하르메아가 불쑥 나타났다.
“리엘라! 리엘라다!”
하르메아는 리엘라를 보자마자 우다다 달려왔다. 평소처럼 달려와 안기겠거니, 하며 리엘라는 하르메아를 안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달려온 하르메아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러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리엘라의 손을 매섭게 바라보았다.
“그거 뭐야?”
“이거요? 이건….”
리엘라는 대답하려다 하운과 레이안을 바라보았다. 하르메아에게 말해도 될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사이 하르메아는 리엘라의 주변을 빙빙 돌면서 손에 들린 목걸이를 노려보았다. 도대체 뭐가 맘에 안 드는 것일까. 잠시 후 하르메아의 눈동자가 갑자기 세로로 가늘어지더니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목걸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목걸이가 허공을 날았지만 바닥으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대신 갑작스러운 공격에 자신도 화가 났다는 듯 목걸이는 허공으로 떠올라 리엘라와 하르메아의 주변을 빙빙 돌았다.
“이거 싫어! 저리 가! 캬악! 캭!”
마치 고양이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다른 낯선 고양이를 만난 것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하르메아는 리엘라에게 매달렸다.
‘하르메아가 왜 이러는 거지?’
어쨌거나 남의 집 목걸이보다는 우리 집 드래곤이 좀 더 정이 가는 법이다. 리엘라는 저에게 매달리는 하르메아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목걸이는 마치 배신을 당한 것처럼 멈춰서 부르르 떨더니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레이안은 혀를 차면서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하르메아는 그런 목걸이를 향해 혀를 내밀며 고소하다는 듯이 말했다.
“쟤 운다.”
“…….”
드래곤에게는 보석의 감정이 조금 더 잘 들리는 걸까.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라며 타일러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레이안은 따라오라는 듯 리엘라에게 손짓했다. 리엘라는 하르메아의 손을 잡고 국왕의 뒤를 따랐다.
“여기가….”
리엘라는 보석이 가득한 방 안을 둘러보면서 감탄했다. 호슨 공작의 보석의 방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욱 많은 보석들로 가득한 방이었다. 대대로 보석술사의 피를 타고 태어나는 왕가이니만큼 오랜 세월 동안 왕족들은 보석을 모았다.
하르메아가 보석을 보며 맛있겠다고 중얼거리는 바람에 리엘라는 더욱 강하게 하르메아의 손을 붙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제일 깊숙한 방에 들어가자 먼저 와 있던 레티시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레티시아는 리엘라를 보고 한숨을 쉬더니 하르메아를 보고는 한 번 더 길게 한숨을 쉬었다.
“혹시나 했더니 에르첼라의 목걸이가 또 그대를 찾아간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이렇게 엎드려 빌고 싶은 기분인 걸까. 리엘라는 억울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때 리엘라의 손을 잡고 있던 하르메아가 레티시아의 앞에 있는 보석들을 보자마자 ‘캭!‘ 하는 소리와 함께 리엘라에게 매달렸다.
“하르메아? 왜 그래요?”
“나 저거 싫어!”
“네? 뭐가요?”
“저것들! 다 싫어!”
리엘라는 하르메아가 벌벌 떨며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목걸이가 원래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 보석함이 보였다. 그리고 목걸이와 비슷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져 있는 귀걸이와 팔찌들이 있었고.
‘없는 게 하나 더 있네?’
그곳을 눈으로 훑던 리엘라는 목걸이의 보관함뿐만 아니라 다른 보관함 하나도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 설마 저것도 목걸이처럼 가출을 즐기는 보석인 걸까.
그사이 레이안은 두려워하는 하르메아를 보며 리엘라에게 말했다.
“리엘라, 괜찮다면 잠시만 하르메아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기다려 줄 수 있겠나? 목걸이를 놔두고 곧 나갈 테니 말이야.”
“물론입니다!”
그러잖아도 부담스러웠는데 나가 있으라니. 리엘라는 냉큼 대답하고 허리를 꾸벅 숙인 다음, 하르메아의 손을 붙잡고 나왔다. 리엘라와 하르메아가 나가자 레이안은 목걸이를 제 손에 걸고 빙빙 돌렸다.
“안 그래도 하르메아를 데리고 한번 실험해 보려고 했는데 잘되었네. 방금 봤으니 알겠지만 에르첼라의 컬렉션은 아직도 드래곤에게 힘을 발휘하는 것 같아.”
“…그렇군요.”
레이안의 말대로였다. 애초에 에르첼라의 컬렉션은 대(對) 드래곤용으로 만들어진 무기에 가깝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잠든 보석도 많고, 사라진 보석도 있어서 그 힘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전 하르메아의 반응을 보니 아직도 그 힘이 남아 있긴 한 모양이었다.
그때 보석의 방 입구에서 보석술사 하나가 들어와 세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레티시아의 특수 부서 소속인 보석술사였다. 그는 레티시아에게 서류 하나를 건네고는 곧바로 방을 나갔다. “무슨 일이래?”
“소르디아 쪽의 정보원이 보낸 것 같은데….”
레티시아의 눈이 빠르게 서류를 훑었다. 그사이 하운은 에르첼라의 컬렉션이 놓여 있는 자리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다. 벽 너머의 호슨 공작, 수도로 온 하르메아,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 에르첼라의 보석들, 셀비아스의 소멸 그리고… 빛나는 꽃을 길러 내는 리엘라까지.
이 모든 일들이 그저 우연일까? 전부 다른 사건임에도 어쩐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때 레티시아가 서류를 마저 본 다음 하운에게 말했다.
“하운 대공, 해야 할 일이 생겼어요.”
“무엇입니까.”
레티시아는 에르첼라의 컬렉션 중 하나가 비어 있는 자리를 보며 말했다.
“그대와 리엘라 테니어가 소르디아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사라졌던 컬렉션이 소르디아에 들어왔다고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