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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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슨 공작의 관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석술사의 묘지는 광활한 곳이었고 그 안에 묻힌 보석술사들의 수는 네 자리를 넘어갔다. 게다가 순서대로 묻히는 것이 아니라서 새로운 무덤과 오래된 무덤이 섞여 있었다. 그 때문에 묘지기의 안내 없이 밤에 무덤을 찾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크레이튼은 하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며 제 손에 들린 삽을 경악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관을 확인한다고 했다. 그 말은 무덤을 파 관을 꺼내 열어 보겠다는 소리다.
무덤을 옮기는 것이 아닌 이상 그것은 무척이나 모욕적인 행위다. 정확한 설명을 해 달라는 크레이튼에게 하운은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며 무덤을 찾아 나섰다.
그나마 네 사람이 호슨 공작의 무덤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리엘라가 호슨 공작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네이판타와의 전투에서 떠난 친구들이 그립더군.”이라는 말을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이곳이에요!”
묘지라고 해서 넓은 평원으로만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공원처럼 꾸며져 있는 곳이기에 어느 쪽은 울창한 숲처럼 꾸며져 있고 어느 쪽은 큰 연못이 있었다. 리엘라는 그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바닥에 쓰러진 드래곤과 그 위에서 보석을 머리 위로 들고 있는 보석술사들의 동상을 발견했다. 그 밑에는 ‘네이판타 소멸전’이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그 전투에서 세상을 떠난 보석술사들은 따로 모여 묻혀 있었다. 그곳을 돌아다니며 비석의 이름을 확인하던 리엘라는 이블린이라는 이튼 저택 마님의 이름을 찾아냈고 그 근처의 비석에서 ‘벨라리아 아인델 호슨’이라는 이름을 찾았다.
“…평범하네요.”
호슨 공작의 무덤 앞에서 리엘라가 말했다.
전설의 보석술사인 에르첼라에 비견되는 호슨 공작의 무덤이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무덤은 작았다. 비석 역시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돌로 만들어졌다. 이것이 정말 최강의 보석술사였던 사람의 안식처인가 싶을 정도로.
그런데 의외인 점이 있었다.
“관리가… 잘 되고 있는데요?”
묘지기가 도망갔을 때 모두들 그가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어 도망갔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묘지기가 잘못할 수 있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관리 소홀 이외에 딱히 다른 것을 생각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게 도망갈 정도까지인가 싶었지만 조금 전 흉흉한 기세였던 하운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닌 것 같았고.
그런데 지금 호슨 공작의 무덤은 누가 봐도 깔끔했다. 게다가 아침에 공작저에서 보낸 꽃도 꽃병에 예쁘게 꽂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며칠 전에 보냈던 꽃들 역시 주변에 예쁘게 정리된 채로 놓여 있었고 오래된 것들은 말린 다음에 다시 걸어 둔 듯 비석 위에 놓여 있었다. 한마디로 무척이나 잘 정리되어 있던 것이다.
“그런데 왜 도망갔지…?”
무덤을 보니 묘지기가 도망간 것이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운은 리엘라와 함께 무덤을 확인하고는 팔을 걷어 올렸다.
네아와 하르메아가 쫓아갔다. 드래고니안과 드래곤에게 쫓기는 일은 무척이나 드물 것이다. 지금쯤은 사냥감이 된 기분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겠지.
하운이 삽을 고쳐 쥐자 옆에 서 있던 크레이튼은 삽을 내려놓고 고개를 흔들었다
“대공님, 정말 공작님의 무덤을 파실 생각입니까? 저는 못 합니다. 이유도 모르고 이런 일에 동참할 수는 없습니다. 루시안 님, 대공님 좀 말려 주십시오.”
하지만 루시안은 어느새 하운보다 더 팔을 걷어붙인 채 삽을 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크레이튼은 이번에 리엘라를 보았다. 그러나 리엘라는 크레이튼이 던진 삽을 집어 들고 무덤 가까이 다가갔다.
“저도 도울게요!”
“아가씨까지 왜 이러십니까!”
그나마 리엘라라도 이들을 말려 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크레이튼은 허망한 얼굴로 세 사람을 보았다.
하운은 가까이 다가온 리엘라를 막아섰다.
“아니야.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가는 데다가 보석도 사용할 것 같으니 물러나 있어.”
“하지만….”
“…이 일은 당신에게 시키고 싶지 않아. 호슨 공작의 상속인이잖아? 나와 루시안은 괜찮지만 당신은 안 돼.”
“…….”
단호한 하운의 말에 리엘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공작의 상속인이 무덤을 파헤쳤다는 것이 알려지면 이건 수군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두고두고 카르디아의 부도덕자 목록에 이름을 남길 일이다. 그것도 혈연도 아니면서 이 엄청난 재산을 받은 상속인이 이랬다면 떠들기 좋아하는 자들이 사실에 얼마나 많은 살을 덧대어 거짓을 만들어 낼까.
리엘라는 조용히 삽을 내려놓았다.
“루시안, 이쪽으로.”
하운은 땅을 덮은 석판의 끝에 삽머리를 가져다 대었다. 두 사람이 힘을 주자 돌이 땅에 끌리는 소리가 나며 석판이 조금 옆으로 움직였다.
“이거… 꽤 힘듭니다?”
살면서 남의 무덤을 팔 일은 상상도 해 보지 못했던 루시안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숨을 골랐다. 조금 움직인 것뿐인데 벌써부터 손이 떨려 왔다. 이래서야 다 팔 수 있을는지.
“보석을 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내가 가진 보석들 중에는 이렇게 작은 힘을 쓰는 보석이 없어.”
“…아, 네.”
루시안은 한숨을 쉬며 품을 뒤졌다. 오늘 갖고 있는 보석이 뭐가 있더라…. 다행히 적당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보석이 하나 있었다. 강하지는 않아도 석판을 밀어내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었다.
루시안이 보석을 사용하고 두 사람은 보석의 힘이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게 삽의 각도를 조절했다. 그그극. 조금 전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며 석판이 옆으로 밀려났다.
“오, 신이시여. 부디 용서하소서.”
이제 더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안 크레이튼은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하늘을 향해 성호를 그으며 신에게 기도했다. 그의 마음이 이해되었기에 리엘라는 차마 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어느새 석판이 완전히 옆으로 밀려나고 흙이 드러났다. 이 밑에 관이 묻혀 있을 터였다. 하운과 루시안은 이제 삽으로 열심히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어디에 계세요!”
“여기예요!”
네아의 목소리에 리엘라는 반갑게 크게 소리쳤다. 그러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밤의 묘지라는 사실을 깨닫고 황급히 입을 다물었지만.
곧 보석의 빛 아래 네아와 하르메아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정확히는 네아가 기절한 묘지기의 다리를 어깨에 들쳐메고 하르메아가 제 꼬리로 팔을 휘감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정말로 사냥당한 짐승처럼 들려 오는 묘지기의 모습을 리엘라는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덤은 잘 관리해 주신 것 같은데 죄송해요….’
“리엘라, 잡아 왔어!”
신나 말하는 하르메아의 눈은 세로로 길게 갈라져 황금색으로 번쩍이고 있었고 꼬리 역시 입혀 놓은 치마 아래로 길게 빠져나와 있었다. 그 모습에 크레이튼이 한 걸음 물러났다. 하르메아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새삼 변한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네아는 조금 씁쓸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하운과 루시안이 판 것을 보고 혀를 찼다.
“뭐야, 아직도 이것뿐?”
그 말에 지쳐 삽에 몸을 기대고 있던 루시안이 네아에게 제 삽을 건넸다.
“네아, 잘 부탁해.”
“하. 비켜 보세요. 하운 너도 비켜.”
하운은 이번에는 두말없이 뒤로 물러섰다. 삽질은 보석으로 하기에는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좀 더 강한 보석을 이용해서 파내려고 하면 옆에 있는 다른 무덤이나 밑에 있는 관이 상할 수도 있었고. 그렇다면 물리력으로는 제일 강한 네아가 직접 파는 것이 최고다.
하운까지 뒤로 물러나자 네아는 삽을 들고 미친 듯이 땅을 파 내려가기 시작했다. 파낸 흙이 리엘라가 있는 자리만을 정확하게 피하며 나머지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퉤! 퉷!”
지금부터는 뭘 하면 되냐는 듯이 서 있던 하르메아가 입에 들어간 흙을 뱉어 내는 사이 리엘라는 바닥에 쓰러져 있던 묘지기에게 다가갔다. 크레이튼 역시 머리에 떨어진 흙을 털어내며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묘지기의 목에 손을 대 보더니 리엘라에게 말했다.
“별문제는 없어 보이는군요. 그냥 기절만 한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옆에 있던 하르메아가 가슴을 쾅쾅 지며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내가 몰고 네아가 때려서 잡았어! 진짜 재미있었어!”
“…….”
오랜만에 메아닌 산맥에 살고 있었을 때처럼 사냥을, 그것도 협공으로 잡은 하르메아가 흥분으로 들떠 있는 모습에 리엘라는 할 말을 잃었다.
“혹시 어디 물거나 한 건 아니죠?”
“하려고 했는데 네아가 그건 안 된다고 했어. 그러면 리엘라가 싫어할 거라고.”
“…다행이네요.”
그렇다면 네아가 알아서 잘 기절만 시켰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묘지기가 신음 소리를 내더니 몸을 움직였다. 그사이 네아는 더욱 빠르게 땅을 팠다. 순식간에 사람 키보다 깊은 구덩이가 만들어지나 싶더니.
쿵!
삽 끝에 무엇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관에 닿은 것이다. 그때부터 네아는 조심스럽게 관 주변을 파헤쳤다. 점차 관이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후…이제 열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
네아의 말에 아무도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이 안에 호슨 공작이 있을까?
있다면 벽 너머에 있는 존재는 뭘까. 없다면 호슨 공작은 어떻게 된 것일까. 어느 쪽이든 문제가 커진다.
“크레이튼 씨는 아가씨 데리고 조금만 떨어져 계실래요?”
네아가 눈짓하자 크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이며 리엘라를 잡아 이끌었다. 솔직히 차마 볼 자신이 없었기에 리엘라는 가만히 그를 따라 뒤로 물러섰다.
“하르메아 님도 따라가세요. 다른 쪽으로 걱정되니까.”
“쩝.”
침을 삼키고 있었음이 분명했던 하르메아는 들켰다는 듯 리엘라의 뒤를 따라갔다.
“그럼 연다.”
네아의 말에 하운과 루시안은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해 놓고 정작 관을 앞에 두니 망설여졌다. 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는 없었다. 삽이 단단히 못질이 된 관 뚜껑을 비틀어 여는 소리가 들렸다. 크레이튼과 리엘라는 차마 듣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텅!
네아가 강하게 힘을 주자 버티지 못한 관 뚜껑이 열리며 옆으로 떨어졌다. 네아와 하운, 루시안의 시선이 관의 안쪽을 향했다.
“하….”
가장 먼저 들린 것은 하운의 허탈한 목소리였다.
“맙소사, 이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어지는 것은 당황한 루시안의 목소리. 그리고 네아는 아무 말 없이 관 안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큰 돌이 몇 개 묶인 채 들어 있었다.
관 안에 호슨 공작은 없었다.
그때 슬슬 깨어나고 있던 묘지기가 눈을 떴다. 그는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더니 파헤쳐진 무덤과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넙죽 엎드리며 소리쳤다.
“잘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 하지만 호슨 공작님께서 몇 번이나 부탁하셨기에….”
“호슨 공작은 어디 있나!”
묘지기의 사죄를 듣던 하운이 벼락같은 노성을 내질렀다.
“어떻게!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여기는지 알면서 죽음을 가장해? 이게 무슨….”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머리끝까지 화난 하운의 모습에 다른 사람들은 차마 숨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때 다시 묘지기가 소리쳤다.
“아니, 아닙니다. 공작님은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말에 하운이 묘지기의 멱살을 잡았다.
“제대로 말해! 죽었는데 무덤에 없다고? 그럼 호슨 공작의 시체는 어디에 있는데!”
묘지기는 그의 기세에 하얗게 질린 채 겨우겨우 대답했다.
“그, 그분의 시체는… 공작저로 돌아… 갔습니다… 꼭 그래야 한다고…. 그래야 모든 것을 끝내고… 진짜 장례를 치를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