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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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리엘라는 울상을 한 채 제 주변을 빙빙 돌고 있는 에르첼라의 보석들을 보았다. 여섯 시가 되면 저택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이던 보석들은 리엘라에게 착 달라붙더니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리엘라가 나가려고 하면 그녀를 붙들고 늘어졌다.
소식을 들은 레티시아 왕비는 보석의 방으로 와 울 것 같은 얼굴의 리엘라와 여전히 말을 듣지 않는 에르첼라 컬렉션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에르첼라 컬렉션을 밖으로 보낼 수도 없으니… 계속 왕궁에 머물도록.”
물론 리엘라는 레티시아의 앞에서 ‘싫어요! 집에 갈래요!’라고 말할 용기는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보석들도 이상했지만 정원에 있다는 거대한 문스톤도 동시에 이상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창문 너머의 문스톤에 몰려 있는 보석술사들은 하나같이 어두운 표정이었다.
‘몬스터가 수도에 진입하면 반응을 나타낸다는 보석이라고 했는데….’
이에 왕실의 기사들과 보석술사들이 수도를 전부 훑었으나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리엘라는 자꾸만 불안해졌다.
“방이 좋긴 하지만….”
그녀는 제게 주어진 방을 보았다. 애초에 본궁은 국왕 부부가 아닌 자가 잠들 수 없는 공간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옛말이고, 지금은 가끔 긴 회의나 보석의 방의 문제로 오래 머무르게 된 대신들과 보석술사들을 위한 처소가 있었다. 리엘라가 받은 방은 그중에서 제일 큰 방이었다. 그녀를 안내한 시종은 이곳이 하운이 왕궁에 머물 때 쓰던 방이라는 사실도 함께 알려 주었다.
풀썩. 리엘라는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푹신한 이불은 옅은 향기 말고는 특별한 냄새가 없었다. 리엘라는 이제는 남아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하운의 흔적을 찾으려 노력했다.
‘항상 여기서 머물렀다고… 그래서 짐도 그것밖에 없었구나.’
좋은 방이긴 하지만 좁다. 대공씩이나 되는 사람이 삶의 터전으로 삼기에는 무척이나 좁은 곳. 리엘라는 하운이 쓰러졌을 때, 공작저에 도착했던 그의 짐을 떠올렸다. 트렁크 하나. 그것도 절반을 겨우 채운.
그때를 생각하던 리엘라의 머릿속에 파르멜 저택이 떠올랐다.
파르멜 저택은 물건이 많은 곳이다. 벽마다 멋진 그림이 걸려 있고, 복도 곳곳에는 조각상이 놓여 있다. 주방에는 사람들을 위한 식재료가 쌓여 있고, 욕실에는 수건과 좋은 향기가 나는 욕실용품이 가득했다. 무엇보다 리엘라가 가장 뿌듯했던 것은 슬쩍 보았던 하운의 옷장과 서재였다.
이제 하운은 파르멜 저택에 있을 때 보석술사의 정복을 더 이상 입지 않는다. 대신 그와 비슷한 나이대의 청년들이 입는 평범한 옷을 입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해 보였는데 저택에 오는 사람들의 옷을 유심히 보던 그는 이내 비슷하게 옷을 입기 시작했고, 저택 하인들의 조언을 대폭 수용하여 최대한 제게 어울리는 것들을 챙겨 입었다. 덕분에 이제 하운의 옷장에는 옷이 가득했다.
늘어난 것은 옷뿐만이 아니었다. 언젠가 한 번 농원을 둘러보고 오는 길에 두 사람은 수도에 있는 큰 서점에 들렀다. 리엘라가 새로운 요리책을 찾아보는 사이 하운은 보석과 관련된 책을 보았다.
하운은 맘에 드는 책을 들고 있다가도 흥미로워 보이는 다른 책을 보면 들고 있던 책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 놓았다.
“마음에 드는 책이 별로 없나 봐요?”
리엘라가 말하자 하운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많으면 짐만 되고 놔둘 곳이 없….”
하운을 이내 제가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았다. 이제 그는 제 짐을 들고 다닐 일이 없었다. 집이 있고, 자신의 물건을 가질 수 있게 되었는데 왜 고민하고 있었을까.
리엘라는 웃으면서 조금 전에 하운이 집었던 책을 꺼내 그의 손 위에 올렸다. 하운 역시 웃으면서 다시 책장을 훑었다. 두 사람이 서점을 나올 때는 빈손이었다. 하운이 워낙에 많이 산 덕분에 서점 주인이 따로 마차에 실어 보내 준다고 했으니까. 그때 산 책은 파르멜 저택의 서재에 전부 꽂혀 있다.
“하아….”
파르멜 저택을 생각하던 리엘라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북부의 피난민들에게 신경 쓰느라 요 며칠간 파르멜 저택을 가지 못했다. 이번에 왕궁에서 나가면 아무래도 그곳에 바로 찾아가야 할 것 같았다.
‘온실을 부탁해 놓긴 했지만….’
제가 돌보던 것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특히나 엘피안 꽃은 더더욱.
똑똑.
리엘라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레이디 리엘라 테니어, 공작저에서 보낸 짐을 가져왔습니다.”
“네!”
여기서도 레이디 소리는 피할 수 없구나, 생각하며 리엘라는 문을 열었다. 그녀에게 배정된 보석술사가 양손에 큰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거 저 주세요!”
“괜찮습니다. 여기에 둘까요?”
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온 보석술사는 웃으며 방의 구석에 가방을 놓았다. 왕실의 보석술사면 나름대로 손꼽히는 인재일텐데 제 가방 심부름이나 하고 있다니. 리엘라가 미안함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보석술사는 눈을 빛내며 리엘라에게 말했다.
“혹시 더 필요하신 건 없나요?”
“괜찮습니다! 완벽해요! 이렇게 직접 가져다주실 필요까진 없는데… 저 때문에 너무 수고가 많으신 것 같아요.”
리엘라의 말에 여자 보석술사는 격렬하게 고개를 흔들며 손을 내저었다.
“수고라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끼리 서로 레이디 리엘라를 담당하겠다고 얼마나 싸웠는데요!”
“…네?”
그저 시키면 하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서로 맡겠다고 싸웠다니? 리엘라가 의아해하자 보석술사는 리엘라의 뒤에 둥둥 떠 있는 에르첼라의 컬렉션을 가리켰다.
“일단 이렇게 말 잘 듣는 에르첼라의 컬렉션을 보는 것도 귀한 일이고… 무엇보다 호슨 공작님의 상속인이시잖습니까? 현재 소르디아를 제외한 개인으로는 가장 많은 보석을 소유하신 분이니 솔직히 저희 보석술사들에게는 제일 뵙고 싶은 분이지요. 이렇게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구요! 아차, 맞다. 제 이름은 실라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실라는 리엘라의 손을 잡고 반갑다는 듯 흔들었다. 두 사람은 이내 편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리엘라가 공작저에서 보내 준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 사이 실라는 따뜻한 차를 내왔고, 리엘라는 그녀로부터 네이판타가 나타난 이후의 왕궁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저는 본 적이 없지만 40년 전에도 비슷했대요. 그때도 호슨 공작님께서 최전선에서 싸우셨고, 카르디아뿐만 아니라 타국의 보석술사들까지 전부 몰려왔으니까요.”
“네이판타가 그렇게 강하나요?”
“사실 덩치로 보면 작은 편이에요.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드래곤 역시 클수록 강하긴 한데, 네이판타는 뭐랄까… 사람 같달까요? 이런 말 하면 사람으로서 부끄럽지만 네이판타는 무엇을 해야 상대가 더 괴로워하는지를 잘 아는 드래곤이에요. 부모의 앞에서 일부러 새끼를 찢고, 동료의 앞에서 일부러 고문을 한답니다. 게다가 정신 지배력이 강해서 몬스터뿐만 아니라 인간들도 네이판타의 지배하에 들어갈 때가 종종 있어요. 사실 그게 제일 심각한 문제지요.”
“그럼 지금도 위험한 것 아닌가요?”
“지금은 괜찮아요. 과거 호슨 공작님께서 네이판타를 상대하실 때 거의 모든 장면을 크리스털에 기록해 두셨거든요. 그것도 한 번에 수십 개씩 이용하시면서요. 덕분에 네이판타의 힘을 자세히 분석할 수 있었고, 지금은 북부 전선 전체에 네이판타의 정신 지배를 방해하는 보석들을 배치해 두었어요. 맞다, 크리스털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네요.”
감사 인사라니? 제가 크리스털과 관련해서 감사받을 일을 한 적이 있나 생각해 보았지만 리엘라의 머릿속에 딱히 떠오르는 기억은 없었다.
“카밀라를 기억하세요?”
카밀라라는 이름이 나오자 리엘라의 눈이 커졌다. 공작저에 처음 왔던 날 리엘라를 무시하며 호슨 공작을 만나게 해 달라 졸랐던 보석술사. 네아에게 당하고 나서도 공작의 크리스털을 노려 보석의 방을 멋대로 열어 큰 소란을 일으킨 장본인.
“저는 사실 카밀라와 같이 공부한 사이예요. 그것도 꽤 친한 편에 속했죠. 잘 아시겠지만 카밀라 성격이 보통이 아니긴 한데, 그러면서도 혼자 있는 걸 은근히 싫어해서 같이 공부하자고 하면 아무 말 없이 따라왔거든요. 그러면서 자기는 맛없는 건 못 먹는다면서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 것 까지 간식을 사서 솔직히 인기도 좋았어요.”
실라는 그때가 생각난다는 듯 아련한 표정이었다.
“카밀라는 무서울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보석술사였어요. 거의 대부분의 보석을 잘 다루긴 했는데 이상하게 다들 신경도 안 쓰는 크리스털에 매달렸지요. 나중에 일이 터지고 자초지종을 건너 듣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지만… 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쨌든 사건이 수습된 후에 카밀라가 구금에 들어갔다고 했을 때 솔직히 저희들은 그녀의 재능이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크리스털의 기억 복원에 카밀라만큼 능력 있는 보석술사는 없었으니까요. 어쨌든 리엘라 양의 선처 덕분에 카밀라는 보석을 빼앗기지 않았고, 덕분에…. 음, 이건 직접 보여 드리는 게 낫겠네요.”
거기까지 말한 실라는 리엘라의 손을 잡더니 그녀를 밖으로 이끌었다.
“어디 가는 건가요?”
“가 보면 알 수 있어요. 멀지 않아요.”
실라는 근처에 있는 방문을 두드리더니 그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을 본 순간 리엘라는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그곳에는 수십 개의 크리스털과 함께 크리스털이 불러낸 기억들이 벽 여기저기를 가득히 채우고 있었다. 수십 개의 장면이 동시에 움직이는 모습은 무척이나 신기했다.
“이건 모두 네이판타와의 전투를 기록한 크리스털이에요. 그중에서 몇 번이고 다시 봐서 기억이 희미해진 것들도 있었고, 시간이 오래되면서 다른 기억들과 섞인 것들도 있었죠.”
“설마… 이걸….”
“맞아요. 카밀라가 전부 복원해 냈어요. 정말로 미친 듯이 잠도 안 자고 했다더군요. 아마 지금도 하고 있을 거구요.”
거기까지 말한 실라는 리엘라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네이판타의 힘을 연구하는 것이 수월해졌고, 북부 전선의 사람들이 네이판타의 힘에 걸려들지 않고 버틸 수 있게 되었어요. 의도한 일이 아니라고 해도 정말 감사합니다.”
실라의 인사에 리엘라는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사실 그때 카밀라의 모습을 보고 남아 있는 크리스털마저 빼앗으면 정말 죽겠구나 싶어 더 이상의 처벌은 원하지 않는다고 슬쩍 탄원서를 냈었는데 그게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잘 지내고 있구나.’
이렇게 왕궁의 일까지 돕고 있을 정도라면 카밀라도 잘 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구구구구.
그때 왕궁 전체에 진동음이 들리며 건물이 흔들렸다. 놀란 리엘라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실라가 말했다.
“아, 괜찮아요. 이 시각에는 항상 이래요.”
“네? 어째서….”
“꽤 큰 힘을 쓰는 거라서요. 잘됐네요. 말 나온 김에 보러 가실래요?”
“무엇을요?”
실라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북부 전선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