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20
21
“드디어….”
크고 고풍스러운 문 앞에서 카밀라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안내가 순조롭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저택에 머물고 있는 변호사들이 먼저 카밀라를 막아섰다. 하지만 하운의 서명이 있다는 임명장에 그들도 결국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카밀라의 뒤를 따라온 네아는 계속해서 리엘라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누군가를 욕하고 있었다. 이름은 없었지만 누구에게 하는 욕인지는 뻔했다. 임명장에 도장을 찍어 준 하운이리라.
카밀라가 손잡이를 잡자 다시 네아가 그녀를 막아섰다.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카밀라 아가씨. 호슨 공작님의 보석들입니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 공작님께서는 분명 손을 써 두셨을 겁니다.”
“알 게 뭐야.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강한 보석이 아니….”
카밀라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모두 비켜. 여기에는 나 혼자 들어갈 테니까.”
“하지만 보석의 방에는 저도 들어가야 해요.”
네아의 말에 카밀라가 혀를 차며 대답했다.
“내가 보석을 훔쳐 가기라도 할 것 같아서 그래? 원하면 벗어서라도 보여 줄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카밀라는 그렇게 말하며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때 다시 네아가 말했다.
“혹시, 만약 위험한 벌어지면 저는 카밀라 아가씨의 안전은 고려하지 않고 그 즉시 문을 닫겠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리엘라 아가씨는 물론 저택의 그 누구도 책임이 없다는 것을 약속해 주십시오.”
“약속하지.”
“말로만은 안 됩니다. 서명하세요.”
“네아, 너 진짜.”
카밀라는 짜증 가득한 눈으로 네아를 노려보다 소리쳤다.
“뭣들 해요, 변호사들! 당장 준비해!”
네아가 일부러 시간을 끌려 한다는 것을 알고 카밀라가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에 점점 더 초조함이 묻어났다. 리엘라는 그런 그녀의 태도가 수상했다. 카밀라는 마치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초조한 듯 발을 구르는 카밀라에게 리엘라가 다가갔다.
“카밀라 영애, 죄송하지만 조금 전 그 임명장을 다시 볼 수 있을까요?”
“뭐? 그게 왜? 아까 다 확인했잖아?”
“한 번 더 확인해 보고 싶어서요.”
“됐어. 귀찮게 굴지 말고 저리 가.”
카밀라는 짜증난다는 듯 리엘라를 향해 손을 저었다. 그런 카밀라의 태도에 리엘라는 확신했다. 뭔가 있어.
“저만 봤잖아요. 변호사님들께도 다시 보여 드려야….”
“귀찮게 굴지 말랬지! 됐어! 지금 열 거니까 다들 물러서!”
카밀라는 리엘라를 밀어낸 다음 문손잡이를 잡았다.
“안 돼! 어서 물러서요, 모두!”
그런 카밀라의 행동에 네아가 소리쳤다. 변호사들은 그 말에 곧바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보석의 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드디어!”
그리고 기뻐하는 카밀라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세찬 바람이 안쪽에서 불어왔다. 리엘라는 놀라 그곳을 바라보았다.
열려진 문 사이로 새어 나온 거센 바람에 복도에 있던 장식품들이 바닥에 떨어져 박살 났다. 흔들리는 것은 물건뿐만이 아니었다. 리엘라 역시 휘청거리다가 복도에 있는 무거운 청동상을 붙잡았다.
‘도대체 안에 뭐가 있는 거야?’
리엘라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열린 문틈 사이를 바라보았다.
“……!”
리엘라는 순간 세상의 모든 색깔이 그곳에 모여 있다고 생각했다.
“보석들?”
이런 상황인 것조차 잊은 채 홀린 듯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눈이 부셔 제대로 바라보기도 힘들었지만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무척이나 아름답고 황홀한 빛들이었다. 그때 네아가 리엘라의 눈을 손으로 가리며 소리쳤다.
“아가씨! 어서 여기서 피하셔야 해요!”
“네아는요!”
“저는 문을 닫겠습니다! 이대로라면 저택이 전부 휘말릴 거예요!”
네아의 말대로였다. 이미 복도에는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한 하인들이 바람에 밀려 여기저기 굴러다녔고, 유리창들은 바람의 힘을 이기지 못해 터지듯 깨져 나갔다. 그때마다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카밀라 영애는요!”
리엘라는 다시 힘겹게 보석의 방을 바라보았다. 이 거센 바람에도 놀랍게 카밀라는 아직 문에 매달려 있었다. 게다가 한 걸음 폭풍이 몰아치는 방 안으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저 사람까지 책임질 순 없어요! 아가씨는 어서…!”
“앗!”
그 순간 청동상을 잡은 리엘라의 손이 미끄러졌다. 네아가 급히 잡으려고 했지만 놓치고 말았다. 누군가가 거세 미는 듯, 리엘라의 몸이 복도로 날아갔다.
‘부딪힌다!’
바닥에 뒹굴 것을 각오하고 리엘라는 몸을 웅크리며 눈을 감았다.
퍽!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고통은 없었다. 딱딱하면서도 부드러운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따뜻함. 눈을 뜨기도 전에 기억에 리엘라는 자신을 감싸는 향을 느꼈다. 기억에 있는 향이다. 이건 분명….
“하운 대공!”
눈을 뜨며 리엘라가 외쳤다. 그러자 하운의 얼굴이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의 품 안에 안겨 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카밀라 영애가! 보석의 방을 열어서!”
“알겠다. 수습하도록 하지.”
그렇게 말한 하운의 손이 리엘라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그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윽!”
짧은 하운의 신음 소리가 울렸다.
“대공님?”
하운은 제 손을 바라보았다. 날아다니던 장식품 중 하나가 부딪힌 것인지 손등이 찢어져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는 리엘라를 끌어안은 손을 놓지 않았다. 위험한 것들을 제가 대신 막겠다는 듯이.
하운이 리엘라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으며 말했다.
“나를 꼭 붙잡도록. 그리고 눈을 감아.”
하운의 말에 리엘라는 머뭇거리다 시키는 대로 눈을 꼭 감았다. 바람 소리 사이에 하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눈을 감았는데도 어지러울 정도로 정신없이 번쩍거리는 빛이 느껴졌다. 빛, 폭음, 폭풍 등 거친 바람을 느끼며 리엘라는 하운에게 매달렸다. 귀가 먹먹하고 몸에 충격이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다시 거센 바람과 함께 카밀라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안 돼! 닫지 마!”
그러나 카밀라의 비명 소리는 바람 소리와 그보다 더 큰 진동음에 순식간에 묻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곧 세상이 조용해졌다.
“이제 괜찮다.”
하운은 그렇게 말하며 리엘라를 놔주었다. 눈을 뜬 리엘라의 앞에는 처참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모든 것이 정신없이 날아가 엉망이 된 복도와 다 깨져 버린 유리창. 조금 전까지 고풍스럽고 우아했던 저택은 흡사 전쟁터가 된 것 같았다. 모두가 숨을 돌리는 사이 네아가 쓰러져 있던 카밀라를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카밀라의 품속에서 종이 하나가 떨어졌다. 하운은 그것을 집어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역시나.”
하운은 차가운 시선으로 카밀라를 보았다.
“서명 위조가 얼마나 중죄인지 알고 있나, 카밀라 레드버리?”
하지만 카밀라는 하운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마에서 흐르는 피도 닦지 않은 채 혼이 나간 사람처럼 카밀라는 닫힌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리엘라의 귀에 카밀라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어머니….”
***
수습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저택의 하인들은 빠르게 엉망이 된 복도를 치웠다. 망가진 물건들이 밖으로 옮겨지고 구석으로 밀려난 카펫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유리 조각 역시 조심스레 쓸어 담았다.
장식물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리엘라가 온실에서 기르던 화분들이 놓였다.
아직 깨져 있는 유리창을 제외하면 저택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평온한 모습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 시각, 리엘라는 하운의 옆에 앉아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운과 같은 소파에. 하지만 하운은 오른쪽 끝에, 리엘라는 왼쪽 끝에 앉아서 맞은편의 재무대신을 바라보았다.
카밀라의 아버지라 보기에는 생각보다 나이가 든 사람이었다. 오래전에 희끗해진 듯한 머리카락을 보면 카밀라의 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런 재무대신을 보던 하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대가 늦게 얻은 막내딸을 아끼는 것은 알고 있어. 하지만 오늘 일을 조용히 무마할 수는 없을 걸세.”
하운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무거웠다.
“왕족의 서명을 위조했다. 이게 얼마나 무거운 죄인지는 자네가 아주 잘 알고 있겠지.”
숨길 수 없는 노여움이 하운의 목소리에서 드러났다. 옆에 앉아 있던 리엘라는 그런 하운의 목소리에 움찔하며 조금 더 왼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듣는 것만으로도 목이 서걱서걱 썰리는 느낌이 들었다.
“서명도 문제이지만 리엘라 양이 다칠 뻔했네. 만약 그랬다면….”
조금 전보다 더욱 차가워진 목소리에 리엘라는 몸을 떨었다. 좀 더 왼쪽으로 가고 싶은데 왜 소파의 끝은 여기인 거지? 리엘라는 애꿎은 소파의 팔걸이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내가 다치면 하운 대공에게는 좋은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며 리엘라는 하운을 흘끔 바라보았다. 다리가 저렇게 긴데도 앉은키가 고개를 들어야 할 정도로 높았다. 키도 키였지만 조금 전에 붙잡았던 몸은 마치 돌처럼 단단했다.
‘보석술사라기보다는 역시 기사에 가까운 것 같아.’
짧은 머리카락, 단련된 몸, 지금도 느껴지는 박력까지. 기사가 되었어도 어울렸겠다 생각하던 리엘라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이 상황에 지금 무슨 한가로운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하운의 눈빛을 받아 내던 재무대신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알고 있습니다. 대공님에 대한 소문이 더욱 험악해지겠지요. 대공님께서 사람을 써서 일부러 리엘라 양을 해하려 했다고….”
재무대신의 말에 리엘라는 왜 그가 왕족 서명 위조보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더 날카로워졌는지를 알았다. 네아가 말하길 밖에서 하운이 자신을 겁박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이 이런 일로 다쳤다면? 아무리 위조다 뭐다 해도 카밀라가 하운의 사주를 받아서 움직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지켜 줬구나.’
어쩐지 끌어안을 때 절박해 보이더라니. 그가 자신을 지키려 했던 것은 진심이었다. 방향이 많이 다르긴 했지만.
리엘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하운은 재무대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운은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하인들에게 카밀라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위조한 것이 분명한 자신의 서명이 있다는 위임장을 들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카밀라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호슨 공작의 보석에 집착하는 거지?’
하운은 그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탐욕은 보석술사의 미덕이다. 그렇다고 해도 카밀라의 행동은 너무 맹목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