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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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목숨을 내던졌다고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르는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되진 않는다. 그저 다른 사람들보다 네아를 살리고 싶었기에 선택한 것이 아니었던가.
“하아….”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던 리엘라는 한숨을 쉬며 테이블에 엎드렸다. 그녀의 옆에는 네아가 두고 간 접시가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곧 곰팡이가 슬 것 같던 빵 한 덩이뿐이었는데 이제 접시에는 치즈도, 햄도 있다. 가끔은 어디서 가져오는지 모를 채소들을 들고 오기도 했다. 운이 좋은 날에는 잼이 들어 있는 병을 두고 가기도 했고.
‘하지만 여전히 나를 기억 못 해….’
네이판타가 좀 더 잘 돌보라고 명령을 한 걸까?
‘점점 더 멀리 나가는 것 같았어.’
이 안에서 음식을 만들지는 않을 테니 분명 네아는 땅 위의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이런 식량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처음보다 점점 더 이곳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졌다. 가끔 잠들었다 일어나 보면 가구나 책이 늘어 있기도 했다.
자신이 좀 더 이곳에 머물기 편하게 물건을 가져오는 네아를 보면서 리엘라는 더욱 두려워졌다. 네아가 무서운 것이 아니다. 자신을 이곳에 오래 가두려고 하는 네이판타의 태도가 두려운 것이다.
당장 죽이려 하는 것이 아닌 건 다행이지만 리엘라는 제가 빛나는 꽃을 피우면 땅 위의 누군가가 죽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리엘라는 손을 뻗어 빵과 치즈를 집은 다음 입에 물었다. 고소한 냄새가 났지만 정작 입 안에서는 모래를 씹는 것처럼 까끌거려 좀처럼 삼킬 수가 없었다.
‘그래도 먹어야 해.’
입맛이 없다며 먹지 않으면 결국 자신의 손해임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여기서 버티려면 무조건 잘 먹어 두는 것이 좋았다. 마치 고문을 받는 것처럼 리엘라는 힘겹게 식사를 끝마쳤다. 그다음 한참이나 화분의 꽃을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네아가 돌아오려면 시간이 남았을 거야.’
시계가 없으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식사를 놓고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언제나처럼 한참 후에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망설이던 리엘라는 다시 화분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동안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서 공을 들인 덕분일까. 꽃에는 옅은 빛이 깃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네이판타가 원하는 것은 이 정도가 아닐 것이다.
머뭇거리던 리엘라의 손이 아래쪽에 새로이 핀 봉오리를 잡아 뜯었다. 그리고는 손을 물어뜯어 일부러 피를 낸 다음 꽃의 꺾인 줄기에 대었다. 그러자 예상했던 대로 작은 꽃이 이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
혹시나 누가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리엘라는 꽃을 주머니 안에 넣은 다음 재빨리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두운 동굴로 연결되는 문을 열었다.
휘이이잉.
문을 열자마자 보인 것은 역시나 검은 공간이었다.
방 안에 붙어 있는 보석의 빛은 리엘라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가 길잡이로 쓰지 못하게 일부러 높은 곳에 둔 것 같았다.
‘내 생각이긴 하지만….’
네이판타는 매 순간 자신을 감시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일부러 네아를 붙여 놓았을 테고. 물론 네이판타가 직접 돌보았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 것 같으니 네아를 붙여 놓은 탓도 있으리라. 그렇다 해도….
‘너무 조용하잖아.’
그동안 들어 온 것이 있기에 드래곤의 습성에 대해서는 리엘라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수면기에 들어가면 수십 년간 조용히 있지만 한번 깨어나면 계속해서 잠들지 않고 움직인다고. 그중에서도 네이판타는 주변의 몬스터들을 정신 지배로 끌어들여 쉬지 않고 인간들과 맞선다고.
하지만 네이판타는 조용했다. 마치 다시 수면기에 들어간 듯이.
‘그때 입은 타격 때문인 게 분명해.’
리엘라는 왕궁에서 보았던 하운과 네이판타의 전투를 떠올렸다. 에르첼라의 보석들을 사용한 하운은 네이판타를 괴멸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아마 조금만 더 싸웠다면 분명 네이판타를 쓰러트렸으리라. 날개 한쪽이 완전히 날아갈 만큼의 타격이었으니….
‘회복하고 있겠지.’
그래서 몬스터들도 따로 조종하지 않은 채 빠른 회복을 위해 수면기가 아님에도 잠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리엘라는 심장이 거세게 쿵쿵거리는 것을 느끼며 주머니 안에 넣었던 꽃을 꺼내 보았다.
‘보인다.’
꽃에 어린 빛이 아주 희미하게 주변을 비추었다. 가까이 가져가야 겨우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빛 하나도 없던 때에 비하면 이 정도도 감지덕지다. 리엘라는 꽃을 손에 든 채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한참이나 가만히 서 있었다. 귓가에는 바람 소리뿐, 다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역시… 이렇게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네이판타도 네아도 모르는 거야.’
알면 당장에 반응했으리라. 그리고 손에 들려 있는 빛나는 꽃을 가져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만들어 냈는지 대답하라고 했겠지.
리엘라는 몇 걸음 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불어오는 바람에 피 냄새와 썩은 악취가 느껴졌다. 이것이 네이판타의 것인지 다른 생명들의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리엘라는 허리를 숙이고 몇 개의 돌멩이를 집었다. 그리고 바닥에 그것들을 놓았다.
얼핏 보면 처음부터 그 자리에 놓여 있던 돌멩이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정확히 삼각형을 그리고 있었다. 표시를 남긴 리엘라는 재빨리 자신이 머물던 공간으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미안해.”
그다음 손에 들려 있던 빛나는 작은 꽃을 손가락으로 눌러 비볐다. 짓이겨진 꽃잎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것에 머물렀던 빛은 이미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리엘라는 이제 꽃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것들을 근처에 있던 흙벽 아래를 판 다음 묻고는 땅을 발로 꾹꾹 밟았다.
그리고 욕실로 돌아가 몸을 씻고, 네아가 어디에서 가져왔을지 모르는 향수를 마구 뿌렸다. 몸뿐만이 아니라 방 여기저기에도 가득. 이러면 혹시나 몸에 배었을 동굴의 악취를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일을 끝낸 리엘라는 침대 위에 털썩 쓰러지듯 누웠다. 그러다 제 손목을 보았다. 연한 광택이 남아 있는 아르펠트의 진주였다.
‘네아가 예전에 진주가 아직 죽은 것은 아니니 갖고 있는 게 좋을 거라고 했었지.’
하지만 이번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을 보면 사실 이미 힘을 잃은 게 아닌가 싶었다. 리엘라는 손으로 목덜미를 더듬었다. 그러자 소르디아에서 하운과 함께 뽑았던 크리스털의 절반으로 만든 목걸이가 잡혔다.
“둘 다 크게 도움이 될 만한 건 아니네….”
이럴 줄 알았으면 뭔가 무기로 쓸 만한 것을 부탁해서 들고 다닐 것을. 리엘라는 새삼 자신이 수도에서 그런 것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평온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아….”
처음 침대에 있던 것보다 더 부드러운 새 이불을 덮으며 리엘라는 눈을 감았다. 내일은 오늘 가 본 곳보다 좀 더 멀리 가 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몇 시간 후, 네아가 돌아왔다. 네아의 손에는 멀리 떨어진 인간들의 마을에서 가져온 음식이 들려 있었다. 굳이 귀찮게 죽이고 싶진 않았으나 마주친 순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손을 들었다. 비명을 지르는 인간의 목을 손톱으로 그대로 날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넌 더 이상 인간들을 죽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단다.”
무척이나 다정한 목소리. 언젠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그 손의 목소리였다. 잠시 네아는 혼란에 빠졌다. 저를 키워 준 것은 네이판타인데, 그녀가 이런 말을 할 리가 없었다.
머뭇거린 탓이었을까. 네아의 손톱은 비명을 지르는 인간의 목을 날리는 대신 어깨를 꿰뚫었다. 조금만 더 힘을 주어 옆으로 그으면 비명을 지르는 인간의 몸을 조각낼 수 있었건만, 네아는 손톱을 다시 뺀 다음 고개를 돌려 테이블 위에 있는 음식을 쓸어 담았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왜?’
인간을 죽이는 것이 재미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죽이지 않고 돌아온 거지?
스스로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아 네아는 손톱을 꺼낸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면 지금 제 모습도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은 위대한 네이판타의 피를 받은 존재다. 그렇다면 언제나 그녀의 피가 더 강한 모습으로 있는 것이 당연한데 왜 인간의 모습으로 있는 것일까.
네아는 제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손등을 덮고 있던 검은 비늘이 순식간에 온몸을 덮었다. 눈동자가 세로로 길어지며 새카맣게 변했고, 긴 혀가 날름거렸다. 입고 있던 옷이 찢어지려는 순간, 네아는 지금의 제 모습이 잡혀 있는 인간에게 공포를 줄 것임을 떠올렸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네아의 모습은 다시 순식간에 인간의 것으로 돌아왔다.
‘왜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지?’
네아는 제 행동의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네이판타는 그 인간이 빛나는 꽃을 피워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니 소중히 기르라고 했다. 그렇다면 최대한 안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좋겠지. 그래서 멀리까지 일부러 인간의 마을을 찾아 먹을 것을 구하러 가지 않았던가. 게다가 불안한 상태로 있으면 꽃을 피워 내는 것이 느려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그 인간을 신경 쓰고 챙기는 것은 모두 네이판타의 명령 때문이었다. 그래야 했다.
네아는 좁은 동굴을 지나 아래로 뛰어내렸다. 네이판타가 만든 거대한 동굴을 제외하고 이곳으로 연결되는 유일한 길이었다. 인간이 도망치지 못하게 일부러 만들어 놓은 구조이기도 했다. 어차피 큰 동굴 쪽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이곳에 오기 전에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인간에게는 두려운 곳이니 그쪽으로 나갈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게다가 그곳은 네아도 잘 모르는 공간이었다.
“응?”
바닥으로 내려온 네아는 평소와 다른 점을 깨달았다. 코를 찌르는 진한 향기가 느껴진 것이다. 언젠가 제가 인간 마을에서 가져왔던 향수가 뿌려져 있음을 안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 리엘라를 찾았다.
“…….”
리엘라는 침대 위에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네이판타가 피우라고 명령했던 꽃이 담긴 화분은 침대 옆에 곱게 놓여 있었다. 네아는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아 화분을 보았다.
이것이 피어나지 않으면 자신의 남은 팔이 잘린다고 했다. 하지만 네이판타는 인간을 죽이겠다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피워 내기 위해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될 터인데 왜 이렇게 하루 종일 붙어 있는 것일까.
네아는 몸을 일으켜 가져온 것들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일부러 제일 맛있어 보이는 것들로 가져왔다. 목숨을 연명하는 데 굳이 필요 없을 것들까지. 이건 전부 네이판타의 명령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네아는 그것들이 조금이라도 맛있어 보이게 접시 위에 올려놓은 다음 침대 옆으로 돌아가 인간이 깨어나길 기다렸다. 일어나면 분명 또 맛있게 먹을 거라는 기대를 하며.
***
“네아가 맞는 것 같군.”
하운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남자의 상처를 살펴본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하운이 물러나자 루시안 역시 남자의 상처를 살피고 동의를 표했다.
“파르멜 저택의 시체들에게서 본 흔적과 동일… 아, 죄송합니다.”
파르멜 저택의 이야기가 나오자 굳은 하운의 얼굴에 루시안은 저도 모르게 미안하다 말하고 말았다. 하운을 잘 따르는 사람들이었고, 열심히 저택을 관리하던 자들이었다. 하운 역시 그들에게 꽤 마음을 열고 신뢰하지 않았던가. 그들이 죄다 죽었다는 이야기가 마음 편할 리 없었다.
하운은 짧은 한숨을 삼키고 대답했다.
“괜찮아. 그보다 네아가 여기까지 와서 한 일이라는 게… 음식을 가져간 거라고.”
하운의 시선이 부엌에 있는 식탁을 향했다. 그곳에는 음식이 사라진 접시들만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식탁 옆에 있었을 찬장 안 역시 텅텅 비어 있었다. 다친 집주인의 말을 들어 보니 잼과 치즈까지 남김없이 가져간 모양이었다. 게다가 집 뒤에 있는 텃밭과 과일나무의 열매 역시 모조리 가져갔다고 했다.
“네아라면 굳이 인간의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주변에서 짐승을 사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테니까요.”
이제야 네아의 정체를 알게 된 루시안이 나무 위로 날아가는 새를 보며 말했다.
“그렇지.”
“그런 네아가 굳이 북부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와서 사람들의 음식을 가져갔다는 것은….”
이어지는 루시안의 말에 하운은 눈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인간의 음식을 먹일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겠지.”
그 인간이 누구인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리엘라가 살아 있어.”
하운은 단호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