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212
222
하운과 루시안은 피해자의 증언을 좀 더 들은 다음, 공격한 자가 네아임을 더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피 묻은 하녀 복을 입은 검은 단발머리의 여자라는 것도 그랬지만 한쪽 팔이 잘린 상태라는 말에는 네아 말고 다른 자를 생각할 수가 없었으니까.
피해자를 치료해 주고 다시 본부로 돌아오기 위해 마차에 올라타자 루시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아는 어떻게 된 걸까요? 수도에서의 일을 생각하면 전부 죽일 것 같은데, 이번에는 목격자인데도 살려 두다니.”
“글쎄. 헬리오도르는 호슨 공작이 사망함과 동시에 힘을 잃었을 테니 본성을 억제시키는 데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고 있을 터이고….”
“헬리오도르가 거기에 쓰였습니까!”
“…거기까진 왕실에서 말 안 해 준 모양이군. 이제 알았으면 조용히 입 다물게.”
루시안은 하운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그저 헬리오도르가 아까워 죽겠다는 듯 “아니, 그 귀한 걸 세상에….”라며 연신 중얼거렸다.
루시안의 중얼거림을 흘려들으면서 하운은 흔들리는 마차의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네아의 행동이 이상했다.
최근 북부 전선 근처의 민가에서 정체불명의 짐승에게 습격받아 죽은 사람들의 보고가 들어왔다. 동일한 짐승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피해는 점점 더 먼 곳에서 발견되었다. 사실 모두 피난을 가 비었어야 하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고향을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은 이미 떠난 척 군인들의 눈을 피했다. 그 탓에 시체의 발견이 무척 늦어지게 된 것이었다.
비어 있는 집들을 수색한 결과, 절대 피난길에 들고 가지 않았을 가구들까지 꽤 사라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또 이상한 점은 오늘 피해자가 발생한 곳이었다. 이번 피해자는 이 지역의 영주였다. 다들 땅을 버리고 떠났지만 한 명은 남아야 한다며 고집스럽게 버틴 자였다. 그리고 그가 입은 피해는 식량뿐만이 아니었다. 집 안에 있는 고급 식기부터 장식품들까지, 네아는 참으로 알차게도 털어 갔다.
‘그게 이상하단 말이지.’
네이판타의 정신 지배하에서 굳이 그런 것을 가져갈 이유는 없었다. 네이판타가 인간들에게 욕심내는 것은 오직 보석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오늘 챙겨 간 것들은 평소 네아가 좋아하는 것들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리엘라가 좋아할 것들에 가까웠다.
모두를 죽이고 리엘라를 납치할 정도로 정신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그녀를 따로 챙기고 있다는 사실이 하운은 의아했다. 그것은 네이판타의 명령일까 아니면 네아의 무의식일까. 어쨌거나 확실한 것은 분명 리엘라는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하운은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격무에 시달린 하운과 루시안이 각각 앉은 자리에서 깊이 잠든 지 몇 시간 후, 두 사람은 본부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반쯤 시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널려 있었다. 대부분 곯아떨어진 가운데 벽에 붙여 놓은 큰 그림이 하운의 눈에 들어왔다.
그 그림은 호슨 공작이 만들었던 보석진이었다. 네이판타의 방어 결계를 깨기 위해 그녀가 만들었던 것. 영상을 보고 복원을 하면서 하운은 왜 호슨 공작이 이것의 기록을 지웠는지 알 수 있었다. 다방면에 천재적이었던 호슨 공작이 동료들의 복수를 위해 이를 갈며 만든 것이다.
드래곤이 만든 방패를 뚫는 인간의 창.
강력한 보석 수백 개를 동원한 이 보석진은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그 어떤 보석보다도 강력한 무기였다. 위력을 계산해 본 하운 역시 이것을 다시 지워 버린 다음 다른 방법으로 네이판타의 결계를 뚫어야 할까 고민했을 정도로.
‘영상 기록을 공개하지 않았던 이유가 너무 강한 것이기 때문이라니….’
게다가 보석진에 대해 말을 하면 그 즉시 죽게 되는 묵언의 서약까지 왕실의 보석을 이용해 걸었다고 하니 외부에 알려지는 것이 어지간히 걱정되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다시 사용하게 되었지만.
‘형님도 내심 다시 복원되기를 은근히 바라신 거겠지.’
네이판타도 네이판타지만 카르디아 왕실 역시 힘겹게 만들어 냈던 최강의 무기를 되찾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왕실이 크리스털까지 쥐여 주면서 리엘라를 구해오라 카밀라를 풀어 주지 않았을 테니까.
벽에 가까이 간 하운은 보석들이 놓여 있던 진열장을 보았다. 대륙 각지에서 가져온 보석들은 보석진의 위치에 따라 진열장에 그 순서대로 놓였다. 그리고 보석진에 포함되지 않는 보석들은 가장 아래에 자리했다.
하운이 시선을 내리자 가장 밑 칸에 가지런히 정리된 에르첼라 컬렉션이 보였다. 네이판타를 상대한 다음 이것들은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다시 회복시키는 데 빛나는 꽃이나 리엘라가 필요할까 싶어 살펴보았더니 그 정도는 아니고 몇 주 후에는 다시 힘을 되찾을 것 같았다.
‘이것들이라도 좀 빨리 깨어났으면.’
하운은 이것들이 유난스러울 정도로 리엘라에게 달라붙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만약 깨어나면 리엘라가 어디에 있는지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어?”
한참 동안 에르첼라 컬렉션을 바라보던 하운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는 서둘러 진열장의 유리를 옆으로 밀고 에르첼라의 목걸이를 꺼냈다.
“금이 갔어…?”
얼핏 보면 멀쩡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목걸이 가운데에 있는 보석의 아래쪽에 아주 미세한 실금이 생겨 있었다.
“이런.”
피로가 누적되면 이렇게 금이 생기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이럴 줄이야. 하운은 제 방 안에 놓아둔 리엘라의 화분을 떠올렸다. 시간이 있다면 다시 왕궁으로 보내어 세공사들에게 복원을 맡겼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쪽으로 누군가를 데려와야 할 텐데….’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프레이였다. 그러잖아도 일람을 통해 헤마타이트의 복원 작업이 거의 끝나 간다는 소식을 전해 오지 않았던가.
하운은 방 안을 둘러보다 코를 골며 잠들어 있는 네멘테스를 깨웠다.
“네멘테스, 일어나.”
“살려 줘… 구할 수 있는 건 다 구했어….”
하운이 흔들자 네멘테스는 훌쩍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그 모습에 하운은 조금 가슴이 찔렸다. 보석 거래와 관련된 인맥이라면 네멘테스를 능가할 자가 없었다. 그 탓에 하운은 나머지 보석들도 구해 오라며 네멘테스를 닦달했고, 네멘테스는 “정말로 이러다 우리 가문 또 망하는 건가….”라고 중얼거리면서 흙빛이 된 얼굴로 소르디아에 연락해 나머지 보석들을 구해 왔다.
그 누구보다도 현시점에서 네멘테스의 공이 가장 크다는 것을 하운은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소르디아로 집결한 보석들이 빠르게 이곳으로 넘어올 수 있었다. 그의 방문이 외교상 엄청난 문제가 된다는 것은 특수한 전시 상황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하운이 제 권한으로 전부 처리해 주기도 했고.
조금은 미안한 마음에 네멘테스를 조금 더 있다 깨워야겠다고 하운이 결심한 순간.
“리엘라….”
네멘테스가 리엘라의 이름을 부르면서 훌쩍이자 하운은 망설임 없이 주먹으로 네멘테스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빡! 진심을 가득 담은 탓에 뭔가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고, 이어 네멘테스가 놀라 벌떡 일어났다.
“뭐, 뭐야!”
“일어났나. 자네가 할 일이 있어.”
“뭐? 아니, 뭐라구요?”
자신을 깨운 자가 하운임을 알아차린 네멘테스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카르디아의 대공은 부탁을 주먹으로 합니까?”
“됐고, 소르디아와 연락 좀 해야겠어.”
“카르디아도 공식적으로 연락할 방법이 있을 텐데 왜….”
억울한 마음에 큰 소리를 내려던 네멘테스가 입을 다물었다. 하운이 카르디아 왕실이 아닌 자신에게 부탁한다는 것은 왕실이 알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운은 네멘테스에게 따라오라 눈짓했다.
그리고 그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 네멘테스는 잠시 하운의 방을 쓱 살펴보았다. 여기서 정말로 사람이 지내나 싶을 정도로 생활감은 조금도 없는 방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꽃이 한 송이 피어 있는 화분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네멘테스의 눈에는 별 것 아닌 붉은 꽃이었다. 그는 한숨을 푹푹 쉬며 셔츠 주머니에 꽂힌 펜을 꺼냈다.
“그게 연락을 하는 방법인가?”
“저는 보석술사가 아니니 가문의 보석술사들이 술사로서의 능력이 없어도 보석의 힘을 쓸 수 있게 만들어 준 겁니다. 참고로 다섯 번밖에 쓸 수 없고, 이미 세 번 썼으니 남은 건 두 번뿐인데… 하아….”
네멘테스는 속으로 리엘라를 구하기 위한 일이니 참는다면서 되뇌고는 펜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네멘테스의 앞에 빛의 원이 생겨나더니 이내 소르디아 쪽이 비쳤다.
“가주님? 무슨 일이십니까?”
“그게… 카르디아의 하운 대공께서 부탁하실 일이 있는 모양이니 좀 부탁해.”
“네? 그게 무슨 말씀….”
하운은 네멘테스를 옆으로 밀어내며 소르디아 쪽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카르디아의 하운 아렐 펜드래건이다. 조용히 연락해 지금 바로 데려와 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있어.”
“네? 아, 네. 알겠습니다. 누구입니까?”
맞은편의 사람은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낮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보석 세공사 중에 프레이라고….”
“프레이 씨요? 마침 라자르 컷에 와 있습니다만… 지금 모셔 오겠습니다.”
잠시 후 건너편에 프레이의 모습이 보였다. 하운은 네멘테스를 돌아보았다. 나가 보라는 소리였다. 네멘테스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하운을 보았지만 그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강제로 끌려 나가기 전에 네멘테스가 순순히 밖으로 나가자 건너편에 있던 소르디아의 보석술사도 나가는 것이 보였다.
“잘 지내셨습니까.”
“오랜만이군, 프레이. 일람을 통해서 연락은 받았어.”
“그렇군요. 재촉하시기 위해서 연락을 하신 겁니까?”
하운이 일부러 헤마타이트라는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을 눈치챈 프레이 역시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작업은 끝났습니다.”
“다행이군. 그것 말고 따로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 에르첼라 컬렉션 중 목걸이에 금이 가서 복원을 맡기고 싶은데.”
에르첼라 컬렉션이라는 말에 건너편의 프레이가 눈을 깜빡이는 게 보였다. 예전에 소르디아에서 목걸이를 보긴 했지만, 그때 프레이는 그것을 만지지도 못했다. 그런데 복원을 맡기고 싶다고 하니 오지 말라고 해도 올 판이었다.
“제가 해도 됩니까? 그런 건 카르디아 왕실의 세공사들이….”
“거절하는 척하지 마. 입이 웃고 있군. 시간이 없어서 그래. 자네가 제일 빠르고 완벽할 테니까. 굳이 에르첼라 컬렉션에 금이 갔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도 않은 데다 그것도 가져왔으면 하고. 눈빛 보니 안 한다는 말은 안 할 것 같으니 이곳으로 올 준비를 하게.”
“…알겠습니다. 그럼 2주 후에나 뵐 수 있겠군요. 그쪽으로 진입 가능하게 미리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아니, 자네는 내일 밤에 여기 올 수 있을 거야.”
하운은 네멘테스가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네멘테스가 갖고 있는 보석을 아무래도 한 번 더 사용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네멘테스의 동의는 필요 없었다. 동의하게 만들 테니까.
***
‘오늘이야.’
리엘라는 마른침을 삼키며 화분을 보았다. 화분의 꽃에는 옅은 빛이 머물러 있었다. 하루 종일 옆에 두면서 꼭 빛이 생겨나야 한다고 빌었던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역시 하운에게 주었던 엘피안 꽃만큼 강한 빛은 없었다.
‘빛나게 하라고 했지만… 어느 정도인지 말하진 않았지.’
리엘라는 방 가운데 서 있는 네아를 보았다. 네아는 어딘가를 다녀오는 것 같다가 몇 분 전부터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더니 돌이 된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에 리엘라는 이제 곧 네이판타가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공기가 변하며 불쾌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방 안의 불이 꺼지며 어둠이 찾아들었다. 어둠 속에 서 있던 네아의 눈이 빛나기 시작하며 눈동자가 세로로 가늘어졌다.
네이판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