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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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에 무게라도 생긴 걸까. 분명 어두워지기만 한 것뿐인데 리엘라는 공간 전체가 자신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에는 꽃에 생긴 빛이 테이블 주변을 비추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네이판타가 불러낸 어둠은 일반적인 어둠과 다르게 안개와 비슷해 꽃의 빛이 퍼지는 것을 막고 있었다. 그래서 리엘라는 테이블 주변만 볼 수 있을 뿐, 네아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리엘라는 의아함을 느꼈다.
‘왜 나와 말을 할 때마다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거지?’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네이판타는 네아의 몸을 빌리고 있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치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 것처럼.
‘네아에게 깃들 때 뭔가 변화가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이유가 없다. 하지만 자신이야 어차피 여기에 갇혀 있으니 뭔가를 본다 한들 달라질 것은 없을 텐데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네이판타는 번쩍거리는 눈동자를 굴리더니 테이블 위에 있는 빛나는 꽃을 보았다.
[약해. 내가 본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한심해하는 것 같은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네아의 손톱이 번쩍이며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팔이 아닌 다른 것을 거는 것이 좋았을까?]모습이 보이지 않음에도 리엘라는 네아의 손톱이 대충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쌍의 번뜩이는 안광이 무언가에 가려졌다 드러났다를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세운 손톱이 네아의 눈을 당장이라도 찔러 파낼 것처럼 움직이자 리엘라는 다급하게 외쳤다.
“시간을 좀 더 주세요!”
[…….]“네아의 기억을 읽었으면 아, 알고 있잖아요. 빛나는 꽃은 그렇게 빨리 피워 내지 못해요. 그건… 내 감정하고도 관계가 있고….”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운에게 주었던 엘피안 꽃은 완벽하게 피워 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래전 호슨 공작에게 팔았던 백합들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자신의 기분이 관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과거 조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뒤나 호슨 공작이 떠난 직후에는 아무리 돌봐도 꽃에 빛이 깃들지 못했으니까.
“노력할게요. 그러니까 네아는 제발….”
리엘라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네이판타는 정말로 네아의 눈을 파낼 것이다. 두려움에 다시 턱이 떨리며 이가 부딪혔다. 온실에서 제 앞에 떨어지던 네아의 팔을 떠올리자 당장이라도 다시 토할 것 같았다. 게다가 눈이라니. 어둠 속에서 얼마 동안인지 모를 시간을 떨며 보냈던 자신이 생각났다. 네아도 그런 꼴이 되게 놔둘 순 없었다.
가만히 있던 네이판타가 움직였다. 툭. 또다시 무엇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리엘라는 두려움에 소리가 난 쪽을 차마 돌아볼 수 없었다. 어차피 어둠 때문에 보이지 않는데도.
[일주일 더 주마. 그때도 내가 만족하지 못하면 이번에는 네 손가락을 하나씩 자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하운 아렐 펜드레건에게 보내겠다.]“……!”
하운의 이름이 나오자 리엘라는 흠칫 몸을 떨었다.
[서두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어둠 속에서 번쩍이던 눈이 감겼다. 그리고 걸음 소리가 들렸다. 한참 후, 더 이상 아무 소리가 나지 않자 방에는 다시 빛이 돌아왔다. 리엘라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
그곳에는 사람의 귀가 떨어져 있었다. 저번에 보았던 광경이 너무도 충격이었던 것일까. 리엘라는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대신 네아가 챙겨 두었던 것들 중 가장 깨끗한 천을 가져와 그것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감촉에 리엘라는 필사적으로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노력했다.
‘네이판타가 왜 그런 걸까.’
네이판타는 자신에게 서두를 것을 명령했다.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사는 드래곤이다. 게다가 지금은 다쳐서 숨어 있는 드래곤이고. 그렇다면 무엇인가 일이 있지 않은 한 조급해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네이판타의 목소리에 깃들어 있는 짜증은 분명 초조함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네이판타는 시간에 쫓기고 있는 것이다. 일부러 시간을 들여 자신을 협박해야 할 정도로.
‘혹시 하운 님이 뭔가를 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고 해도 네이판타가 이렇게 서두를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
그러다 천을 덮으려던 리엘라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리엘라는 공포를 무릅쓰고 다시 천을 젖혔다. 네이판타가 지배할 때는 좀 더 드래곤의 특성을 띠는 것일까. 네아의 귀는 인간의 것과 같은 형태였지만 부분부분 드래곤의 비늘이 남아 있었다.
“색이….”
비늘은 검은색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미 네이판타가 셀비아스와 플레노트를 잡아먹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니 푸른색과 붉은색의 비늘이 있는 것은 놀라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누구의 비늘….”
또 다른 색의 비늘 한 개가 검은 비늘 사이에 묻혀 있었다.
***
하운이 말한 대로 다음 날, 프레이는 북부 전선의 하늘 아래 서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네멘테스가 왔을 때처럼 요란스러운 등장이 아니었다. 루시안을 끌고 와 다른 보석술사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결계를 치라고 한 다음에 아주 잠시 공간을 연결해 프레이만을 데려왔다.
“여기가 북부 전선이군요. 살면서 이렇게까지 멀리 와 본 건 처음입니다.”
프레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들고 온 큰 가방에서 두꺼운 옷을 꺼내 입었다. 하운은 이래서야 손이 굳는 거 아니냐며 투덜대는 그녀를 처소로 안내했다.
그리고 루시안과 네멘테스를 내보낸 다음 말했다.
“가져왔나.”
“그렇습니다. 확인하시지요.”
프레이는 제 가방 아래의 숨겨 둔 공간에서 검은색 상자를 꺼냈다. 하운은 그것을 열었다. 그 안에는 어둠을 잘라 조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짙은 검은색의 조각이 들어 있었다. 호슨 공작을 흉내 내던 헤마타이트였다.
“이게 원래 모습이었군.”
프레이가 복원을 했으니 그 힘 또한 그대로 돌아왔을 것이다. 이것은 그에게 도움이 되는 보석이었다.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위력을 낼 수 있는지도 알고 있었으니까. 하운은 헤마타이트를 제 주머니 안에 넣고 상자를 다시 닫았다.
“블랙 오팔은?”
“갑자기 조용해진 덕분에 무사히 꺼낼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지금 소르디아 의화는 뒤집어졌지요.”
“어째서?”
“일단 현재까지 발견된 블랙 오팔 중에서 가장 큰 데다가… 잠재된 힘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프레이의 말에 하운은 턱을 괴었다. 소르디아에서 아직도 그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보석이라니. 도대체 무슨 힘이며 얼마나 강하길래.
‘쓸 수 있는 보석이긴 한 것일까.’
보석은 보석술사가 있어야 그 힘을 완전히 드러낼 수 있다. 그런데 저 정도로 엄청난 보석의 힘을 버틸 만한 보석술사는….
‘지금으로서는 나밖에 없을 텐데.’
루시안이 들었으면 재수 없다고 툴툴댈 생각을 하면서 하운은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그것을 이쪽으로 가져오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소르디아에 두는 것이 나을까.
‘일단은… 조금이라도 힘이 파악될 때까지 고민해야겠군.’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이야기는 대강 전해 들었습니다만 네이판타의 방어막을 파괴하는 것은 언제입니까?”
“일주일 후.”
하운은 주머니 속의 헤마타이트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날 모두가 여기 모일 거야.”
***
‘네아가 오지 않아.’
리엘라는 화분을 끌어안은 채 생각했다. 네이판타가 나타났던 날 이후로 네아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네아 대신 이름도 알 수 없는 작은 몬스터들이 방으로 오더니 가만히 서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그중 한 마리가 피를 토하며 죽었다. 이윽고 또 다른 한 마리가 죽었다. 리엘라는 그 몬스터들이 네이판타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알려 주기 위해 보낸 것들임을 알았다.
리엘라는 끙끙대며 남은 몬스터들을 들어 가장 안쪽의 방에 옮겨 둔 다음 천으로 그것들을 덮었다. 그것들이 네아처럼 네이판타와 의식을 공유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부엌처럼 사용되는 곳을 뒤져 네아가 전에 가져다 놓은 음식을 챙겨 먹은 다음 화분에서 작은 꽃봉오리 하나를 뜯었다. 그리고 다시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칼이 없고 쓸 만한 종이도 없다 보니 이런 식으로 피를 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처음에는 코피라도 내 볼까 했지만 아프지 않은 대신에 피를 닦아 낸 천을 처리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리엘라는 계속해서 제 손끝을 괴롭힐 수밖에 없었다. 손톱과 손가락이 닿아 있는 여린 살 부분을 비틀듯이 물어 당기자 한 번 상처가 났던 곳이 다시 벌어지며 피가 맺혔다. 아무래도 덧난 것인지 손가락이 붓기 시작하며 욱신거렸지만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리엘라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피를 내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작은 꽃봉오리가 아주 환한 빛을 머금을 때까지.
등불로 써도 충분할 만큼 꽃이 빛을 내자 리엘라는 손끝을 누르며 주머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남은 손으로 꽃봉오리를 집어 들고 어두운 동굴로 향했다.
‘이제 남은 몬스터는 세 마리.’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사흘이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리엘라는 이틀 전부터 거의 하루 종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동굴을 걸어 다녔다.
그러는 동안 동굴 안에서 몬스터의 시체나 피가 고인 웅덩이를 보았다. 무서웠지만 리엘라는 계속해서 동굴을 살폈다.
‘바람이 불어오는 걸 보면 어딘가 밖으로 연결되는 곳이 있을 거야.’
무척이나 긴 동굴이었다.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한 곳 정도는 나가는 길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그렇게 돌아다니던 둘째 날, 리엘라는 드디어 동굴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몬스터의 소리인가 싶어서 숨을 죽였지만, 그것이 물이 떨어지는 소리임을 깨닫고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거대한 호수를 발견했다.
‘땅속에 있는 호수라니.’
호수를 살펴보니 동굴 밖의 물이 안으로 떨어지는 것인지 폭포처럼 보이는 곳이 있었다. 한쪽에서 물이 계속 흘러들어 오고 있지만, 호수의 높이는 변하지 않았다. 어디론가 흘러내려 가는 길이 있다는 뜻이었다.
리엘라는 방을 나오기 전에 챙겨 왔던 종이를 주머니에서 꺼내 그것을 접기 시작했다. 이내 리엘라의 손에서 작은 종이배가 만들어졌다. 리엘라는 호수 안으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가 물이 목에 차오르는 곳에서 그것을 물 위에 띄운 다음 다시 가장자리로 나왔다. 젖은 몸이 덜덜 떨려 왔지만 리엘라는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종이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보았다.
물을 따라 조금씩 움직이던 종이배는 점점 빠르게 움직이더니 어느 지점에 닿자 물속으로 사라졌다.
‘저기다.’
쏟아지는 물의 양을 보면 이 물이 빠져나가는 곳도 꽤 넓을 터였다.
‘문제라면….’
물이 빠져나가는 길이 얼마나 길지, 지하임이 분명한 이곳에서 더 깊은 곳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리엘라는 젖은 몸을 이끌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몸을 씻고 나서 피곤함에 지쳐 잠이 든 다음 일어났더니 안쪽에 옮겨 둔 몬스터 한 마리가 또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제 남은 시간은 이틀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