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41
43
“튀길까요?”
“네아!”
“아니면 삶을까요?”
“네아, 제발요!”
리엘라는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팔을 걷어붙이는 네아를 말리느라 진땀을 흘렸다. 누가 들으면 요리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네아는 그녀의 앞에서 죽을죄를 지은 사람처럼 얼굴을 들지 못하고 서 있는 하운을 노려보고 있었다.
변호사들은 그런 네아의 흉흉함을 말리지 않은 채 뒤에서 거들었다.
“저희들은 굽는 쪽이 더 좋습니다.”
“변호사님들!”
리엘라가 울상이 되자 변호사들은 뻔뻔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저녁 메뉴의 고기를 구우면 좋겠다고 했을 뿐입니다.”
“칼집을 많이 내는 게 좋겠군요, 허허.”
“전 탈 때까지 굽는 것도 좋아요. 바짝 익어야 제맛이니까요.”
변호사들의 응원에 힘입은 네아는 돌아보지도 않고 맞장구를 쳤다.
손발이 착착 맞는 그들의 모습에 리엘라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거짓말! 지금 대공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는 거잖아!
폭우의 하우윈이 신나서 뿌렸던 비는 어둑해질 때가 되어서야 겨우 멈췄다. 그 탓에 원래 가려고 했던 저택에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미리 연락을 받고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두 사람이 예정된 시간에도 도착하지 않자 발칵 뒤집힌 모양이었다. 그들은 곧바로 공작저로 연락을 했고 당연히 공작저도 뒤집어졌다.
두 사람이 다쳤을 거라는 걱정은 아니었다. 애초에 하운이 있는데 누군가의 습격 따위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제일 걱정인 것은 하운, 그였다. 그래도 한동안 의심스러운 움직임도 없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떠본 것이었는데 이렇게 곧바로 홀랑 사라질 줄은 몰랐다.
그때 왕궁에서 ‘폭우의 하우윈이 움직였다는데 하운 님께서 쓰셨습니까?’라는 연락이 왔다. 지금은 휴식기에 들어간 보석이 움직였다는 말에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네아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어디론가 뛰어가더니 한참 후에 ‘꽃잎이 줄었어….’라며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네아는 곧바로 왕실에 자신이 나갈 수 있도록 허락을 구했고, 왕실은 이례적으로 빠르게 허가를 내렸다. 그 즉시 네아와 변호사들은 미친 듯이 달려 영지의 저택으로 향했다. 그리고 네아가 수색을 위해 저택을 나가려고 할 때 두 사람이 돌아온 것이다.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달려가던 네아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더니 곧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옷이 왜 이렇게 구겨졌나요?”
“아, 잠시 벗을 일이 있어서….”
리엘라의 대답에 네아는 끝까지 듣지도 않고 하운을 향해 외쳤다.
“야, 이 짐승 새끼야!”
그 한마디로 하운은 죽일 놈이 되었다.
***
“아니, 그러니까 오해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네아와 변호사들을 달래느라 지친 리엘라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침대 위로 누웠다. 변호사들에게는 꽃에 대한 일을 말할 수 없으니 폭우의 하우윈이 깨어나 비가 쏟아지게 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몰래 네아를 끌고 가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나서야 겨우 그녀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제가 변호사분들께는 적당히 둘러댔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데….”
“그런데…?”
“정말 아무 일 없었나요?”
“없었다니까요오….”
리엘라는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정말로 아무 일 없었는데 다들 왜 저러는지. 정말로 지쳤다는 듯 리엘라가 베개에 얼굴을 묻고 힘없이 파닥거리자 네아의 한숨이 들렸다. 곧 리엘라의 위로 이불이 덮어졌다.
“어쨌든 푹 주무세요. 많이 피곤하실 텐데.”
“알았어요…. 하암, 그런데 꽃잎들 어쩌죠….”
“…….”
“잎 하나가 그 정도였으니….”
“아가씨는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도움 되는 분께 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씻고 푹신한 침구 위에 누우니 빠르게 잠이 쏟아졌다. 잘 세탁된 천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허브의 향기에 리엘라는 점점 눈이 감겨 왔다. 그 탓에 대답이 느려졌지만 네아는 채근하지 않고 조용히 리엘라의 말을 기다렸다.
“도움 되는 분? 누구를 말하시는 거죠?”
“그러니까… 대공님…. 보석의 방 안정시켜야 하니까….”
중얼거리던 리엘라의 숨소리가 고르게 바뀌었다. 네아는 리엘라의 이불을 정리해 잘 덮어 준 뒤 조용히 문을 닫고 방을 나왔다.
“말씀하신 대로네요.”
이제는 모두가 잠들어 조용한 저택을 걸으며, 네아는 세상에 없는 사람에게 대답했다.
꽃잎 하나에 수면기에 들어갔던 폭우의 하우윈이 깨어났다. 앞으로 리엘라의 꽃이 얼마나 많은 보석들에게 힘을 줄까.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네아는 하녀복 아래 제 가슴을 눌렀다. 이 안에 맹약의 헬리오도르가 들어있다. 창세 시대의 보석 중 가장 강하며 호슨 공작이 그녀를 책임지는 조건으로 먹인 보석. 헬리오도르는 주인이 죽는 순간 맹약의 힘을 잃어야 했다. 그래야 했는데.
호슨 공작은 세상을 떠나기 전 네아에게 말했다.
“헬리오도르 따위가 왜 필요하겠니. 넌 이제 그런 것이 없어도 돼.”
네아는 그 손을 잡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호슨 공작이 그렇게 말해 주었는데도 스스로를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온실로 가서 리엘라가 기른 꽃의 꽃잎 하나를 먹었다. 제 안의 헬리오도르가 움직이는 것이 소름 끼치도록 잘 느껴졌다.
아직까지 리엘라는 꽃잎들이 사라진 것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알아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그 꽃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고 해도 보석술사가 아닌 그녀는 그 힘을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하운이 눈치채면….’
리엘라에게 감출 수는 있어도 하운에게는 무리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하운이 리엘라에게만 관심을 쏟는 바람에 꽃에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쓰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빛나는 꽃은 리엘라의 방으로 옮겨졌기에 하운이 살펴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리엘라가 그 꽃을 하운에게 주기로 마음먹는다면 그가 알아차리는 건 시간문제다.
꽃잎 하나만으로도 그 정도인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그는 수시로 그 꽃을 보길 원할 것이다. 그리고 잎이 없어진 걸 알면 당장에 자신에게 찾아올 게 분명했다. 그리고 왜 가져갔냐, 어디에 쓰고 있는 거냐고 추궁하겠지.
‘이제 어떻게 하지.’
지금은 괜찮다. 만약 다시 아프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떠나야지.’
원래 살았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리엘라가 걱정되긴 하지만 어차피 하운이 붙어 있을 테니 괜찮다.
“…….”
네아는 걸음을 옮겼다. 쓸데없는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었다. 이제 밤의 순찰을 하러 나가야 했다. 잠들지 않는 그녀가 가장 도움이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10. 각자의 시간
아침부터 브릭스 거리는 바쁘게 움직였다. 이제 매일 아침 리나의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리엘라와 하운의 모습은 그들에게 익숙해진 아침 풍경이었다. 거리의 주민들은 가끔 낯선 자들이 그 식당이 어디냐 물으면 사람들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거나 일부러 다른 식당을 말해 주기도 했다.
“식사 정도는 편하게 해야 할 것 아닌가.”
다들 그렇게 말하며 되도록 두 사람에게 귀찮은 일이 생기는 것을 막아 주었다.
“흐음….”
그리고 오늘, 리나의 식당에서 리엘라는 턱을 괴고 건너편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평소와 달리 오늘 하운은 그녀와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그가 말하길 오늘 봐야 할 것들이 많아서 테이블을 따로 쓰겠다 했다. 그의 말대로 테이블 위에는 알 수 없는 책과 종이가 놓여 있었다.
지금 하운의 모습을 보면 보석술사도 기사도 아닌 학자로 보일 것이다. 그는 얼굴 한 번 들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문서를 살피고 종이에 뭔가를 적었다. 옆에 리나가 가져다 둔 식사는 건드린 흔적도 없었다.
하운이 다른 테이블을 쓰자 네아는 오늘따라 입맛이 돈다며 리나에게 다른 스페셜 메뉴들을 더 추가해 신나게 먹었지만 리엘라는 평소와 달리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이상해.’
외출에서 돌아온 후로 하운의 행동이 이상했다. 얼핏 보면 평소랑 크게 다름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바쁘다’, ‘변호사들과 해야 할 것이 있다’ 말하며 같이 식사하는 것을 피하더니 이제는 아침마저 따로 먹었다.
한참 종이를 노려보던 하운이 고개를 들었다. 그 탓에 계속 바라보고 있던 리엘라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잠시 놀란 얼굴이 되더니 휙 고개를 돌려 버렸다.
“…….”
누가 봐도 자신을 피하고 있는 하운의 모습에 리엘라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 역시 휙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지?’
물론 하운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일이긴 했다. 그저 비를 피해서 저택에서 옷 좀 말리고 왔을 뿐인데 그날 세상 가장 파렴치한 놈이 된 것처럼 온갖 욕을 들어먹었으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대공님이 하우윈을 조절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었잖아?’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하우윈이 그렇게 폭주하도록 만든 것이 제가 준 꽃잎인 데다가 힘을 보여 달라 조른 사람은 저였다.
도대체 이것이 누구의 잘못인가 시작부터 리엘라가 고민하고 있을 때 하운은 다시 고개를 들더니 눈빛으로 네아를 불렀다. 물론 네아는 ‘돌았니?’라고 입으로 벙긋거리며 손가락을 관자놀이 옆에 대고 빙글빙글 돌렸다. 그러자 하운이 입 모양으로 ‘리엘라’라고 하자 네아는 곧바로 슬쩍 일어나 하운에게로 갔다
“쓸데없는 소리면 가만 안 둔다.”
“리엘라 양의 경호 문제다.”
“무슨 일인데?”
“이거 받아.”
하운은 작은 나무 상자를 네아의 앞으로 밀었다. 네아가 세상 제일 의심스럽고 수상한 것을 바라보는 표정으로 그것을 들고는 조심스럽게 열었다.
“…보석들?”
“전부 소유야. 왕궁에 네 사용 허가도 이미 받아 두었으니 사용에는 문제없어. 물론 사용하는 내역은 전부 보고되겠지만.”
네아는 더욱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하운을 바라보았다.
“무슨 꿍꿍이야? 내가 이거 사용하는 순간에 사살하라는 명령이라도 내리려고?”
“그럴 거면 그냥 지금 죽였지. 갖고 있으면서 익숙해지도록.”
“왜 이걸 주는 건데?”
“며칠간 자리를 비울 거다. 그사이에 무슨 일이 없도록 지키라는 뜻이야. 너야 육탄전이라면 문제없겠지만 만약 보석을 사용하는 놈이 오면 곤란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보석의 방에 들어갈 때도 사용해야 하고.”
“드디어 들어갈 생각이야?”
네아가 묻자 하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2주일 후, 첫 번째 방을 열 거다.”
그는 앞으로의 일이 예상된다는 얼굴로 말했다.
“무척이나 소란스러워지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