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53
56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지금 모리스 경이 뭐라고 했지? 왕실에서 일하지 않겠냐고? 그의 말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하운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보석을 노리고 온 줄 알았다. 그런데 노리고 있는 게 리엘라였다니?
“저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한 그대로입니다. 저와 함께 왕실의 플로리스트로 일할 생각 없습니까?”
모리스 경의 말에 리엘라는 더더욱 의아해졌다. 갑자기 찾아와서 자신과 함께 일할 생각이 없냐니. 말한 사람이 모리스 경이 아니었다면 사기꾼으로 의심해도 할 말이 없을 소리였다.
“갑자기 왜 저에게 그런 제안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경께서는 제자들도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리엘라는 모리스 경에 대한 기사는 자주 챙겨 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현재 수도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클로에 베넷이 그가 아끼는 수제자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와 자신에게 그런 제안을 하다니?
“무엇보다도 저는 그런 일을 할 만한 실력이 못 됩니다.”
다른 것들을 다 떠나서 그게 제일 문제였다. 일을 같이 한다? 그건 괜찮다. 사실 같이한다기보다는 제가 모리스 경의 제자 혹은 노예처럼 일을 해야 하는 것이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영광이고 배울 것이 많으니 상관없다.
하지만 일하는 곳이 왕궁? 그건 곤란하다.
“제가 꽃 가게를 운영하긴 하지만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제 가게 외에는 다른 곳에서 일해 본적도 없습니다.”
“실력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난 이미 레이디 리엘라의 실력을 확인하고 오는 길이니까.”
“네?”
“얼마 전에 레슬 지구에 있는 옷 가게에서 아이가 엉망으로 만든 꽃바구니를 새로 만들어 준 적이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걸….”
“처음 보자마자 시선이 가더군요. 가까이서 보고 더 감탄했습니다. 보나 마나 데이지가 또 꽃들을 엉망으로 만들었을 텐데 그걸 버리지 않고 최대한 손질해 다시 살려 냈더군요. 남들이 보기에는 그게 참 쉬워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요. 보통 한 번 꺾인 꽃은 그냥 버리는 게 원칙이기도 하고 얼마 버티지도 못하니까요. 하지만 꺾인 부분 위를 잘라 봉오리만 남은 꽃들과 주변에 있던 다른 꽃들과 소재를 엮어 마치 꽃이 폭포처럼 흘러 내려가는 모습으로 만들어 원래 상처가 있던 꽃인 걸 모르게 자연스럽게 연출했더군요. 보자마자 참 머리를 잘 썼다 싶었어요.”
제가 만든 것을 칭찬하는 말에 리엘라는 겸연쩍은 듯 붉어진 뺨을 쓸었다.
“가게에 물어보았더니 길 가던 사람이 도와주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찾는 건 포기하고 있었습니다만, 루시안이 가져온 꽃바구니들을 보자마자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겠더군요. 그래서 급하게 당신께 편지를 보낸 겁니다.”
“그걸 보고 알 수 있다고?”
듣고 있던 하운이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모리스 경이 하는 말은 처음부터 어이가 없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수도에 널린 게 꽃바구니인데 그걸 보자마자 동일 인물임을 알아차렸다고?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레이디 리엘라도 꽃 축제에서 알아보지 않습니까? 이름이 없이 작품만 놓여 있어도 이게 누가 만든 것이다 하는 것은.”
“그렇긴 하지만….”
그건 평소에 좋아하는 플로리스트들의 작품을 자주 구경하러 갔으며 몇 번이고 따라 해 보며 눈에 익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꽃을 쓰는지 그것들을 어떻게 배치하는지, 어느 정도의 크기를 선호하며 좋아하는 색감은 무엇인지. 그것들이 전부 어우러져 만드는 그 사람 고유의 특징이 생긴다. 마치 필체처럼.
하지만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봐야 겨우 ‘그 사람인가?’라고 생각하는 정도인데 그것을 단지 두 번만 보고 알아차렸다고? 모리스 경 정도 되면 그게 가능한가?
리엘라의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모리스 경이 말을 덧붙였다.
“물론 많이 본 것은 아닙니다만 당신에게는 바로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뭔가요?”
자신의 특징이라니. 하지만 모리스 경은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알려 드릴 수는 없지요. 적어도 제 제안에 대해서 한 번 더 고민해 보면….”
“저 할게요! 아니 제발 하게 해 주세요!”
“리엘라!”
리엘라가 손을 번쩍 들고 대답하자 하운이 놀라 그녀를 불렀다.
“무슨 짓이야?”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문제가 있냐고? 당연하지. 지금 공작저를 나가서 돌아다니겠다는 건가?”
“왕궁에서 일하는 거잖아요. 지금 설마 왕궁이 위험하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왕궁이 위험하냐는 말에 하운은 그렇다고 대답할 순 없었다. 공작저의 경비도 훌륭하지만 왕궁은 더욱 까다롭고 철통같다. 그런 왕궁의 경비가 허술하다 함부로 대답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곳은 낯선 사람들이 많아. 공작저처럼 완벽하게 오가는 사람을 통제할 수 없는 곳이라 그대에게 누군가 쉽게 접근할 수 있어. 그러다 위험해지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말을 하면서도 하운은 제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정도의 능력이면 이미 공작저로 쳐들어왔겠지. 그리고 유산을 상속받은 후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지금 굳이 리엘라를 해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이번 처리도 다들 쓸데없는 생각을 못 하도록 만들었지.’
보석의 대여 기간을 줄여 1년마다 협상권이 자신에게 돌아오도록 했다. 그러니 보석술사들은 리엘라를 질투 시기할망정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이익이라는 것을 매년마다 가슴에 새길 것이다. 고개만 숙일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잘 보이려 안달일 것이다.
“네아가 함께 가면 되잖아요?”
리엘라의 말에 하운은 그 말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대답했다.
“네아는 왕궁 안으로 못 들어가. 절대로. 그러니….”
“그럼 다른 보석술사나 경호할 분을 찾아봐야겠네요.”
“네아 정도가 아니면 나는 물론 변호사들의 허가도 받기 힘들걸.”
쉽게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겠냐는 뜻으로 한 소리였다. 물론 누구를 데려와도 능력 부족으로 인정 못 한다 할 생각이었지만.
“아, 그 문제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미 대공께 인정받은 사람이 한 명 있지 않습니까.”
모리스 경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의 말에 하운은 그가 누구의 아버지인지를 기억했다.
“설마, 루시안?”
그럴 리가. 그놈은 철저하게 보석을 위해 움직이는 놈이다. 공작저에서 사람 좋은 척을 하며 리엘라에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댔던 것도 다 보석 하나 얻어 보겠다고 그러던 것 아닌가. 두 번째 보석의 방이 언제 열릴지도 모르는 상황에 일단 원탁회의가 쓰던 보석을 대부분 다시 챙겨 간 놈이 이렇게 이득 없는 일에 움직일 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놈이 재미없는 일에는 오래 관심 갖는 놈도 아니고.’
명예욕도 강한 놈이니 한동안 손을 놨던 원탁회의로 돌아가 일하며 다시 보석술사들을 관리하는 데 신경을 쓰겠지.
“루시안이 이런 일에 동참할 리가 없어. 그는 바쁜 사람이야.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오기 전에 루시안과 이야기를 끝내 놓은 상태입니다. 흔쾌히 돕겠다 이야기하더군요.”
이 정도는 오기 전에 다 준비해 놨다는 듯 모리스 경은 여유로웠다. 그렇게 리엘라와 모리스 경의 손발이 착착 맞자 하운은 뒤에 물러서 있던 네아를 바라보았다.
별로 도움을 받고 싶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 리엘라를 막아설 수 있는 사람이라면 네아뿐이었다. 그는 네아에게 눈짓했다. 뭐 해? 말려.
네아가 리엘라에게 다가가자 리엘라가 조금 움츠러들며 중얼거렸다.
“어… 네아가 걱정할 건 아는데… 저도 네아랑 가고 싶은데….”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아가씨.”
응? 하운은 놀라 네아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리엘라의 곁에 있지 못해 안달인 네아다. 저택 안에서도 얼마나 리엘라를 감싸고 돌던가. 그러니 그녀를 붙잡고 가긴 어딜 혼자 가느냐. 내가 못 가면 아가씨도 못 간다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걱정 말라니?
“이번 일이 아가씨께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알겠어요. 이런 기회를 놓친다는 건 말도 안 되죠. 저는 걱정하지 마시고 잘 다녀오세요. 그게 아가씨의 행복이라면 저는… 흑….”
말리랬더니 손을 꼭 붙잡고 눈물을 짜내며 연극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걸 막는 놈은 리엘라를 위하지 않는 놈이라며 땅땅 못을 박는다. 그래서 하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리엘라는 훌쩍이는 네아의 손을 꼭 잡은 다음 고개를 돌렸다. 싸늘한 시선이 하운을 향했다.
“그럼 이제….”
귀찮은 파리를 내쫓는 듯한 시선으로 리엘라가 그에게 말했다.
“대공님께서는 이제 그만 보석의 방에 돌아가 보셔도 될 것 같아요. 당분간 제가 없을 터이니 더욱 조용히 문을 여는 데 집중하실 수 있겠네요.”
어쩐지 ‘꺼져, 이 자식아’를 다시 들은 기분이었다.
***
뭐라 말하려던 하운이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방을 나갔다. 네아에게도 차를 새로 부탁한다며 밖으로 내보낸 리엘라는 모리스 경을 보았다.
“그럼 이제 다른 사람도 없으니 정말로 왜 저를 원하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리엘라의 말에 모리스 경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냥 넘어가지 않는군요.”
“당연하지요. 제 실력을 부끄러울 정도로 칭찬해 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저를 찾으셨다는 건 말이 안 되죠. 그리고 몇 년간 손수 가르침을 사사한 클로에 베넷 양이 있는데 저를 찾아오셨다니….”
리엘라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수도에서 가장 뛰어난 세 명의 플로리스트를 손꼽으로면 첫 번째가 윌리엄 모리스 경이요, 두 번째가 그의 제자인 클로에 베넷이다. 세 번째는 다들 의견이 분분하지만 저번에 경매장에서 만났던 멜라니아 로헴을 꼽고.
어쨌거나 그런 제자가 있는데 생판 남인 자신을 찾아 같이 일하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혹시… 클로에 베넷 양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
같은 시각, 왕실의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방에서 클로에 베넷은 우아하게 앉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올 사람을 맞이하려면 정신을 집중해도 모자라거늘 왕궁에 들어오기 전에 들었던 소식에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리엘라 테니어를 찾아가셨다고.”
리엘라 테니어. 클로에도 잘 알고 있는 여자였다. 몇 개월 내내 수도에서 그 여자의 이야기만 떠드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리엘라가 공작의 재산을 상속받기 전 브릭스 거리에서 작은 꽃 가게를 운영했다는 것이 클로에의 흥미를 끌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한동안 조용하더니 다시 보석의 방이 열리고 그 안에 있는 보석들이 엄청나다는 기사가 나올 때쯤 클로에는 리엘라 테니어에게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
“무슨 꿍꿍이시지.”
클로에는 조소를 흘렸다. 제 스승이 무척이나 마음이 급한 모양이다. 일면식도 없는 그런 여자를 찾아가고 말이다. 그때 달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클로에는 급히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지금 들어온 사람은 노크를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으며 그녀가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었다.
시녀 둘을 이끌고 들어온 왕비 레티시아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클로에에게 말했다.
“그대가 레이디 클로에 베넷이군. 긴 시간을 내줄 수 없네. 알현을 청한 이유를 되도록 빨리 말해 주었으면 해.”
그 말에 클로에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왕비 전하, 왕실의 수석 플로리스트를 새로이 임명하시는 건에 대하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