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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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을 생각하자 조금 전까지 즐거웠던 기분이 가라앉았다.
‘잘 지내고 있겠지?’
공작의 재산을 상속받은 다음 연락을 하긴 했었다. 지금도 돈을 빌려 달라, 한 번만 만나자 하는 정체 모를 친척들의 편지가 쏟아지는데 분명 누군가는 언니들의 거처까지 알아내 연락을 하려 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네아가 사실 호슨 공작이 세상을 떠나기 전 그 부분까지 고려해 언니들 쪽은 미리 손을 써 놨다고 했다.
‘어쩐지 언니들 이야기 자주 물어보시더라.’
기념일 선물도 보내고 싶다면서 언니들의 주소를 물어봤었는데 아마도 그 주소로 사람들을 보낸 모양이었다. 그래봤자 만날 수 있는 것은 큰언니뿐이었겠지만. 나중에 큰언니의 편지를 받아 보니 공작이 보낸 사람들이 언니의 주변을 잘 지키고 있으며 어차피 대륙과 무척이나 떨어진 섬이라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는 모양이었다.
‘둘째 언니는… 사서함이 꽉꽉 찼겠군.’
둘째 언니가 연락을 받는 방법은 지정한 마을의 우편 사서함이었다. 분명 그녀의 가게까지 찾아온 사람들은 언니의 사서함 주소도 알아내 편지를 보냈을 것이다. 그 마을의 우체국 사서함이 제발 커야 할 텐데….
리엘라가 언니들을 떠올리며 가만히 있을 때, 루시안과 이야기를 나누던 클로에가 기억났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맞다, 리엘라 양에게 할 말이 있었는데 스승님하고 싸우느라 잊어먹을 뻔했네.”
“저에게요?”
“네. 갑작스럽지만 혹시 주말에 시간 있어요? 모리스 부인께서 주말에 식사 초대를 하고 싶다고 하시네요. 모리스 부인의 취미가 저택의 후원에서 파티를 여는 거예요. 다 같이 바비큐를 해 먹으면서 와인도 함께하며 노는데 요리도 잘하시고 정원도 예쁘거든요. 미리 말하지만 왕궁에 없는 장미들이 꽤 있어요.”
“저기… 클로에 양도 오시나요?”
“당연하죠.”
“그럼 저 갈래요!”
어차피 주말에 특별한 일은 없다. 모리스 경의 정원에서 클로에 양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그 자리는 돈을 내고서라도 가야 하는 자리가 아닌가.
“루시안, 너도 올 거지?”
“응.”
“좋아, 그럼….”
클로에가 다시 리엘라에게 말했다.
“괜찮다면 하운 대공님께서도 참석해 주셨으면 하는데 리엘라 양이 대신 물어봐 줄 수 있나요?”
“하운 대공님도요?”
“네. 그분도 이번 일에 큰 도움을 주셨으니까요.”
큰 도움이라는 말에 리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하운의 입장에서는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조금 시간이 더 걸리긴 해도 루시안이 있으니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고. 하지만 하운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준 덕분에 빨리 마틴을 처리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가 덤벼들 때도 막아 주지 않았던가.
하운이 내지른 주먹 한 방에 몸이 붕 떠서 바닥을 구르던 마틴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런 걸 보면 마틴이 그를 기사라고 오해한 것도 이해가 갔다. 사실 기사보다 더 기사 같은 체격이니까. 물론 힘도 무지막지했고. 마틴이 구르고 나서 정원 관리부 직원들이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치는 게 보였다.
“맙소사, 역시 하운 대공님….”
“소문대로였어. 인정사정없다고 했었지.”
“무서워….”
그들이 수군거리는 것이 이해는 갔지만 어쩐지 속이 상했다. 대공님이 아무 때나 그렇게 주먹 휘두르시는 분이 아닌데…. 저 때문에 듣지 않아도 되는 말을 들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하운의 모습이 더욱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모리스 경과 클로에 베넷은 고맙다 생각한 모양이었다. 리엘라는 주먹으로 가슴을 콩콩 치며 자신 있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하운 대공님도 꼭 모셔 올게요!”
***
하운은 회의실 테이블의 끝에 있는 제 자리에 앉아서 생각했다. 내가 살면서 별꼴을 다 보는군.
그가 보고 있는 별꼴이란 왕실의 보석술사와 원탁회의의 보석술사가 서로의 멱살을 잡고서는 자신이 옳다며 싸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처음은 분명 무척이나 진지하게 시작했다. 대 회의실의 절반은 왕실의 보석술사들이, 나머지 절반은 원탁회의의 보석술사들이 앉았다. 하운은 이제 보석의 방을 열기 위해서는 혼자로는 무리라는 것을 깔끔하게 인정했다. 시간이 많으면 모를까 이제 겨우 3개월 정도 남았으니까.
그는 살면서 처음으로 호슨 공작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호슨 공작의 보석의 방, 그중에서도 두 번째 문을 열기 위해서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협조가 필요할 것 같아. 부디 그대들이 도움을 주길 바라네. 살아 있는 우리들이 세상을 떠난 호슨 공작에게 질 순 없지.”
모두의 의욕을 고취시키는 데 그 말이면 충분했다.
시작은 점잖았다. 그들은 하운이 알아 온 자료들을 나누어 보면서 한 명씩 제 생각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해야 문이 원하는 ‘조건’을 가장 빠르게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 모습에 하운은 안심했다.
하지만 몇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회의실은 난장판이 되었다. 회의실의 네 벽에 붙어있는 큼지막한 석판에는 다들 자신의 가설을 적으면서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야 더 빨라요!”
“속도가 전부는 아니죠! 이렇게 해야 더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어요”
처음은 왕실 보석술사들과 원탁회의의 보석술사들로 의견이 나뉘는 것 같더니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자기들 사이에서도 내분이 일어났다. 그러다 다시 시간이 흐르니 또 내분이 일어나고, 그러다 옆자리 사람과 섞이고.
그리고 지금은 왕실 소속이건 원탁회의 소속이건 신경 쓰지 않고 의견이 같은 자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 자신의 방법들이 좀 더 빨리 문의 조건을 파악할 수 있을 거라 우기는 중이다.
그냥 자기들끼리 언쟁을 벌이면 상관하지 않을 것을 그들은 무슨 결론을 내리려 할 때마다 하운에게 와서 ‘우리들 의견이 어떻습니까, 대공님! 어서 좋다 말해!’라는 뜻이 가득 담긴 시선을 던졌다.
‘이게 나이 여든 먹은 자들이 할 짓인가….’
서로에게 삿대질까지 해 가면서 제가 옳다 소리치는 보석술사들을 보고 있으려니 하운은 머리가 아파 왔다.
호슨 공작의 보석의 방은 사람들에게 보물 상자라고 불렸다. 어떤 귀한 것인지 모를 것들로 가득 찬 방. 그 사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가. 호슨 공작이 보물 상자만을 남겼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다시 수수께끼를 남겼다. 그리고 보석술사들은… 보물 상자를 좋아하지만 수수께끼는 더 좋아할 사람들이었다.
회의실이 여전히 서로의 의견을 말하는 분위기도 뜨거울 때 한 보석술사가 들어오더니 질렸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하운에게 다가갔다.
“하운 대공님. 대공님을 뵙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십니다.”
“바쁘니까 돌아가라고 해.”
하운은 돌아보지도 않고 파리를 내쫓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그가 왕궁에 자주 드나들기 시작한 이후로 접근해 오는 자가 늘었다.
‘아마도 형님께 신뢰를 얻지 못한 자들이겠지.’
레아안과 레티시아의 신임을 받지 못해 아무런 자리도 얻지 못하고 왕궁 내를 어슬렁거리는 자들. 그들은 지금까지 하운이 밖으로만 돌았기 때문에 비빌 구석을 찾지 못해 왕궁의 먼지처럼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하운이 왕궁에 자주 머물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희망을 품었다.
어차피 국왕파가 될 수 없다면 차라리 대공파를 만들어 권력을 노리자! 하운 대공이 왕궁에 자주 드나들기 시작한 것을 보면 그도 이제 슬슬 다른 마음을 품기 시작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멋대로 짐작하는 자들이 이렇게 자꾸만 귀찮게 만날 것을 요청했다.
하운은 그래도 그런 놈들에게 시간을 낭비할 바에는 시끄럽더라도 이곳에서 보석술사들과 논쟁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다들 갈라져서 제멋대로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들 수십 년을 보석들과 같이해 온 사람들이다.
다행히 이 난장판 속에서도 문을 열기 위한 새로운 방법들이 꾸준히 나왔다. 그래서 하운 역시 대화에 끼어들어 계속해서 의견을 나눴다. 그렇게 또 한참이나 시간이 지나자 밖이 어둑어둑해지는 것이 보였다.
‘돌아갔겠지?’
들어올 때는 리엘라와 함께 들어왔지만 오늘 꽤 늦을 것이라 미리 말해 두었다. 루시안은 보석의 방보다 다른 원탁회의의 일을 먼저 처리하기 위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보면서 루시안이 가는 길에 리엘라를 데려다주고 가겠거니 싶었다. 분명 정원 관리부 쪽으로 간다고 했으니까.
하운이 창문에서 시선을 돌리는 사이 찾아온 사람이 있다 말했던 보석술사가 다시 하운에게 와서 물었다.
“여전히 기다리시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내버려 둬.”
도대체 누구기에 아직까지 남아 기다리고 있다는 건지. 그 사람이 누구건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출세하긴 틀린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운은 깔끔하게 무시하며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아침에 시작한 회의는 밤이 되어서야 겨우 끝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내일 다시 이야기를 나누자는 협의가 이루어진 것이지만. 하운 역시 피곤한 얼굴로 일어섰다. 보석술사들은 여전히 그에게 몰려와 눈을 빛내며 이 방법은 어떠냐, 이 보석을 이렇게 사용해 보는 것은 어떠냐 쉴 새 없이 말했다.
‘아침부터 이야기했는데 다들 체력도 좋군.’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피곤할 법도 한데 나가는 보석술사들마다 집에 가서 더욱 연구해 보겠다는 의지로 불타올랐다. 겨우겨우 대답을 끝낸 하운은 미간 사이를 누르며 회의실을 나왔다. 오늘은 1년 치 말할 기력을 죄 다 써 버린 느낌이었다.
창밖을 바라보았더니 이제 하늘은 짙은 어둠이 깔렸고 한밤중의 별들만이 깜빡이며 지금이 늦은 시각임을 알려주었다. 하운은 서둘러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때 회의실 자신에게 누군가 찾아왔다고 말하던 보석술사가 나가는 것이 보였다. 하운은 그를 불러 세웠다.
“낮에 누가 날 찾아왔다고 했었지? 누구인지 이름 알고 있나?”
이름을 기억한 다음에 앞으로도 계속 피할 생각이었다.
하운의 질문에 보석술사는 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입니다. 호슨 공작의 상속인인 레이디 리엘라 테니어입니다.”
“뭐?”
하마터면 하운은 그 보석술사의 멱살을 쥘 뻔했다.
“어디에 있었나!”
큰 회의실 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하운의 목소리에 그 보석술사는 덜덜 떨면서 대답했다.
“저, 저기 옆에 빈 회의실에….”
거기까지 들은 하운은 챙겨 가야 할 것들도 내던진 채 밖으로 뛰어나갔다. 급히 뛰어가는 바람에 테이블에 다리가 부딪혔지만 통증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맙소사,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리엘라였다니. 그럼 리엘라는 자신이 잠깐의 만남도 거부했다고 생각하며 여태껏 기다렸다는 소리 아닌가.
‘돌아갔을까?’
그럴 것이다. 이런 시각까지 계속 기다릴 리는 없으니. 그는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구르듯 빈 회의실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있던 사람이 그가 들어오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대공님?”
앉아있던 사람은 리엘라였다. 책을 보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더니 반가운 얼굴을 하며 일어나 하운에게 다가왔다.
“아, 끝나셨어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기다리고 있었다. 낮부터 이렇게 밤이 될 때까지.
하운은 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하염없이 기다렸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 거지? 그는 그러면서도 손가락 끝이 간질거리는 이상한 감각에 자신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조금 전 리엘라가 한 말을 되새겼다.
“기다리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