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69
◈ 169화 가장 뜨거운 축제 (2)
허억! 허억!
어두운 물류 창고 안.
천장 높이 쌓여 있는 기자재들이 만드는 자연스러운 미로 사이를 필사적으로 달리던 크롤로 페비우스는 문득 회의감이 들었다.
‘난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는 지금 도망치고 있다.
무엇으로부터?
그 마녀로부터 말이다.
자연스럽게 하나의 의문이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언제까지 이대로 계속 도망만 치며 살 수 있을까.
당장에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마녀는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와서 그를 죽일 것이다.
도망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악몽 속의 그녀는 그를 절대로 놓아 주지 않을 테니까.
절망.
크롤로 페비우스가 느낀 감정이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지?
화려한 저택. 그의 명령을 따르는 병사들. 그리고 그를 경외하며 고개를 숙이는 사용인들까지.
그 모든 과거가 꿈처럼 느껴졌다.
‘내가, 내가 대체 왜.’
크롤로의 두 다리가 느려지더니 이윽고 자리에 멈춰 섰다.
“하아. 하아.”
이제 도망치는 것도 지쳤다.
그는 물류 창고의 어둠 너머에서 이쪽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에스메랄다를 보았다.
여유가 가득한 움직임으로 이쪽을 향해 오고 있는 모습.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악에 받치지도 않고 저주를 퍼붓지도 않는다.
하지만 저 모습이야말로 크롤로의 공포를 가장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자극하고 있었다.
“어라?”
에스메랄다는 자리에 멈춰선 크롤로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더 도망치지 않는 거야? 설마 이제 와서 포기라도 한 거야?”
크롤로는 입술을 씰룩였다.
에스메랄다는 그가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걸 직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보네? 그러면 한번 해 봐. 마지막일 텐데 못 들어 줄 이유는 없거든. 유언 정도는 남기게 해 줄게.”
노골적인 도발에 크롤로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이제 충분하잖아!”
“뭐?”
그건 에스메랄다도 예상하지 못한 외침이었다.
이제 충분하다고?
이 남자는 대체 뭐가 충분하다고 말하는 걸까.
“나를 대체 얼마나 망가뜨려야 만족하려는 거냐! 이제 됐잖아! 페비우스 가문은 이미 몰락해 버렸어! 너 때문에!”
다가오는 공포와 죽음의 스트레스 때문일까.
정신이 극한까지 몰린 크롤로 페비우스가 떠올린 감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슬픔이 아닌 분노였다.
‘내가 왜 이렇게 당해야 하지?’
과거 화려했던 자신의 모습과 비참한 지금의 차이를 보아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매일 악몽을 꾼다.
찬란하던 금발은 푸석푸석해지고, 총명하던 눈은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거뭇한 수염과 홀쭉해진 뺨. 움푹 꺼진 눈두덩까지.
그야말로 폐인과도 같은 몰골이다.
‘이게, 나라고? 이게 위대한 페비우스 가문의 가주인 나란 말인가?’
크롤로는 이를 악물었다.
‘왜? 내가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지?’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고작 평민들이지 않나.
그는 자신에게 대항하려는 자들에게 합당한 벌을 내렸을 뿐이다.
‘애초에 그년이 내 말을 제대로 듣기만 했으면, 그 빌어먹을 평민들이 내게 저항만 하지 않았으면. 애초에 이럴 일도 없었잖아.’
그렇게 생각하자 지금까지 겪어 온 모든 고통이 분노로 승화했다.
분노가 이성을 뒤덮었다.
“전부, 너 때문이야.”
크롤로는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깨닫지 못했다.
“너만 아니었어도, 나는 이렇게 되지 않았다고!”
그 외침에 에스메랄다의 표정이 굳었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크롤로 페비우스가 발악하듯 외친 그 말.
이성이라고 할 것도 없어서 귓등으로 넘겨도 상관없는 말이었지만, 에스메랄다는 그러지 못했다.
“네가 무슨 낯짝으로…….”
나에게 그런 말을 하냐고.
그렇게 반박하려는 순간이었다.
-너 때문이야.
귓가에 나지막하게 울리는 소리.
크롤로 페비우스가 하는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악몽 속에서 자주 들려온 말이었다.
-너 때문에!
-네가 있어서 모두가 죽은 거라고!
꿈속에서 몇 번이나 들었던 저주의 말.
피투성이가 된 마을 사람들이 그녀에게 원성을 퍼부었다.
그 말이 크롤로 페비우스의 외침과 오버랩 되며 그녀의 머리를 울렸다.
“아니야…….”
에스메랄다는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그런 게 아니라고.
에스메랄다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걸까.
크롤로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났다.
“아니야!!!”
───!!!
동시에 에스메랄다의 등 뒤에서 거대한 불길이 뿜어져 나와 일대를 집어삼켰다.
* * *
‘심각하군.’
사방이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루드거는 눈살을 찌푸렸다.
천장의 스프링클러에 의해서 꾸준히 물이 떨어지고 있지만, 퍼져 있는 불길은 쉽사리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이 더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인세에 강림한 불지옥이다.
루드거는 증기 골렘 DT-3000을 이끌고 창고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두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화상을 입은 채로 기절한 크롤로 페비우스와.
“……에스메랄다.”
자리에 주저앉아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에스메랄다의 모습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지닌 존재가 있었다.
휘오오오!
타오르는 불길이 소용돌이치듯 한곳에 모이더니, 이윽고 거대한 불의 거인의 형태를 이루었다.
살집이 가득하고 등이 굽어 추악하게 생긴 불의 정령.
“콰지모도.”
루드거의 부름에 응하듯 콰지모도 또한 시뻘건 마그마가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루드거를 응시했다.
단지 시선이 닿았을 뿐인데도 공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피부에 와 닿는 뜨거운 열기가 폐부까지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에스메랄다의 상태는 썩 좋아 보이지 않는군.’
크롤로를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그렇다.
루드거는 무언가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했다.
‘크롤로를 아직 죽이지 않았다. 복수의 대상을 눈앞에 두고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걸 보니, 심적으로 무언가 큰 충격을 겪었나 보군.’
타오르는 불길 속에 주저앉은 에스메랄다.
문득.
회화 마법으로 보았던 그녀의 과거가 눈앞의 상황과 겹쳐 보였다.
루드거의 머리 위로 단어 하나가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트라우마.
에스메랄다는 지금 트라우마에 빠져 있었다.
‘그렇다면.’
루드거는 증기 골렘에서 내려 조심히 다가갔다.
콰지모도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기 위해서 발걸음 하나하나 신경을 썼다.
‘불의 정령 콰지모도. 아니, 정령이 아닌 원령(怨靈)에 가까운 존재. 녀석은 단순한 소환수가 아니다.’
에스메랄다를 향해 다가가며 루드거는 생각했다.
주인이 저런 상태인데도 알아서 움직일 수 있는 원령, 심지어 본신의 자아가 증오로 가득한 녀석이다.
이미 평범한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어느덧 적당한 거리까지 좁히자 열기가 훨씬 더 강해졌다.
콰지모도가 접근을 금지한 것이다.
루드거는 조심히 입을 열었다.
“콰지모도. 나에 대해서 알고 있겠지?”
[인간…….]“그때는 미안하게 됐다. 상황이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어.”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설득이 먹힌다는 것.
루드거는 최대한 녀석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게 조심히 말을 이었다.
“나는 네 주인의 동료다. 싸울 생각은 없어.”
[…….]콰지모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히죽, 하고 얼굴에 미소를 머금을 뿐이었다.
납득해 준 건가.
‘더럽게 무서운 얼굴이로군.’
얼굴이 마그마와 불꽃으로 이루어진 녀석이라 그런가, 그 살벌함의 급이 달랐다.
외모가 흉악한 사람을 많이 마주한 루드거조차도 등골이 절로 서늘해지는 미소였다.
‘일단 반응만 보면 나에게 호의적이다.’
루드거는 자연스럽게 왼손에 낀 각반의 기계를 작동시켰다.
세리단이 만들어 준, 초소형 마취 침을 쏠 수 있는 장치.
끼리릭.
기계 태엽을 조심히 감아 장력을 최대한 머금는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에스메랄다에게 겨눈 뒤.
피슉!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쏘아 냈다.
아주 자그마한 침 하나가 에스메랄다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화륵!
거대한 불의 손이 나타나 그것을 막아냈다.
‘무슨…….’
루드거는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콰지모도를 올려다보았다.
이쪽이 기습을 가할 거라는 걸 눈치챘다?
‘대체 언제부터?’
콰지모도 여전히 웃는 얼굴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미소는 그야말로 이질감으로 가득했다.
루드거는 그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이 녀석. 처음부터 나를 믿지 않았다.’
그가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려 했던 말도, 알겠다며 웃는 얼굴을 지은 것도.
─전부 다 이쪽을 속이기 위한 연기.
심지어 주인의 명령도 없는데 자의적으로 저렇게 행동하다니.
원령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교활함이다.
화르륵!
콰지모도의 웃는 얼굴이 순식간에 분노로 일그러졌다.
‘위험……!’
루드거는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조금 전까지 그가 있던 자리에 콰지모도의 주먹이 망치처럼 떨어졌다.
퍼지는 충격파와 확산하는 불꽃.
뜨거운 열기가 후폭풍처럼 그의 몸을 삼키듯 지나쳤다.
뒤로 물러나 자세를 잡은 루드거는 겉옷에 묻은 불씨를 털어 냈다.
불에 대한 온갖 저항력과 방어, 내열 마법을 걸어 놨는데도 열기가 뚫고 들어온다.
‘그때도 느꼈지만,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녀석이로군.’
그때는 콰지모도를 소환한 매개체를 직접 없앰으로써 녀석을 역소환시켰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정령사 에스메랄다가 있는 이상 콰지모도는 함부로 역소환시킬 수 없었다.
녀석도 그 사실을 알기에 에스메랄다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걸…….’
좌표 설정.
루드거가 마력을 운용하자 콰지모도가 곧바로 반응했다.
쩌억.
콰지모도의 입이 크게 벌어지며 그 안에서 용광로 같은 불길이 꿈틀거렸다.
루드거는 자리를 박차 올랐다.
[아테르 녹터누스]그림자가 루드거의 몸을 두르더니 이윽고 등 뒤로 검은 날개를 활짝 펼쳤다.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루드거.
그의 발아래로 불길이 스쳐 지나갔다.
콰지모도가 루드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주위에 일렁이는 불길이 움직이며 콰지모도의 의지를 따라 루드거에게 들이닥쳤다.
꿈틀거리는 불꽃의 촉수가 사방에서 다가오자 루드거는 회피에 전념했다.
‘내가 마법을 쓸 시간 자체를 주려 하지 않는다.’
학습을 한 것이다.
이쪽에 공간을 뛰어넘는 마법이 있다는 걸. 그리고 그것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후우웅.
직후 거대한 주먹이 루드거의 정면으로 날아왔다.
아테르 녹터누스가 움직이며 커다란 방패처럼 변해 콰지모도의 주먹을 막았다.
치이이익!
그림자가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밀려났다.
그 반동으로 뒤로 물러난 루드거는 지면에 착지했다.
‘상성이 좋지 않아.’
아테르 녹터누스는 그림자를 이용한 마법수다.
그러다 보니 불과 빛 속성에는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였다.
꿈틀.
아테르 녹터누스가 루드거에게 칭얼거리듯 몸을 일렁였다.
“……알았다.”
루드거는 어쩔 수 없이 안주머니에서 알약 하나를 꺼내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러자 빠르게 소모되던 마력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이전에 먹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효과를 발휘하는 마력 회복약.
아테르 녹터누스는 언제 투정을 부렸냐는 듯 루드거의 마력을 마음껏 빨아먹었다.
“먹은 만큼 일해라.”
아테르 녹터누스가 거칠게 부풀어 올랐다.
에스메랄다를 지키듯 일어난 콰지모도처럼, 루드거의 등 뒤로 거대한 검은 그림자의 괴수가 일어나 콰지모도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둘이 동시에 충돌했다.
루드거는 그 틈을 노려 에스메랄다에게 재차 마취침을 날리려 했다.
콰지모도는 그걸 두고 보지 않았다.
화륵!
뜨겁게 일어나는 불길이 에스메랄다 주위를 휘감듯 회전했다.
뜨거운 열기에 공기가 왜곡되고 시야가 뒤틀린다.
‘눈으로 볼 수 없게 해서 좌표 자체를 지정하지 못하려는 속셈인가.’
교활하고 심지어 똑똑하다.
이게 고작 원령이라고? 에스메랄다가 부리는 존재가 이 정도일 줄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것이 검은 여명회의 퍼스트 오더가 지닌 힘.’
쾅! 쾅!
아테르 녹터누스와 콰지모도가 충돌할 때마다 충격파가 연달아 터진다.
그러면서도 실시간으로 창고에 번지는 화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추세였다.
이대로라면 이쪽이 먼저 불길에 타 죽게 생겼다.
‘또 신의 힘을 빌려야 하나?’
루드거는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 힘을 사용하려면 준비 단계도 길거니와, 한번 고삐가 풀린 힘은 주변 일대를 모조리 초토화해 버릴 것이다.
지금 같은 일분일초가 긴박한 상황에서는 어울리지도 않거니와, 무고한 희생자들을 만들지도 모른다.
‘에스메랄다를 기습하는 작전은 버린다.’
두 괴수의 싸움은 순식간에 판가름이 났다.
아무리 마력을 불어넣어도 상성의 힘을 이기지 못하는지, 아테르 녹터누스가 쪼그라든 채로 루드거에게 돌아왔다.
“고작 1분도 못 버티는 거냐?”
꿈틀.
아테르 녹터누스는 억울한지 몸을 한 차례 떨었다.
마나 회복약 하나를 몽땅 때려 박았는데도 1분도 버티지 못하다니.
루드거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섰다.
자신의 마법수에게 짜증을 낼 시간조차 없었다.
콰지모도는 루드거가 혹시라도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최대한 빠르게 그를 죽이고자 했으니까.
화륵!
콰지모도의 입에서 끈적이는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DT-3000 기동.”
루드거의 말 형태로 대기하던 증기 골렘이 그 명령을 받고 움직였다.
말이 투레질하더니 이윽고 인간 형태로 변했다.
쿵! 쿵!
성큼성큼 걸어와 루드거의 앞에 선 골렘은 우람한 양팔을 교차해 방어 자세를 취했다.
직후 뜨거운 불길이 골렘에 직격했다.
치이이익!
뜨거운 열기에 골렘의 표면이 빨갛게 달구어졌다.
그럼에도 불꽃은 멈추지 않았고, 골렘의 몸이 기우뚱 흔들리는 순간.
루드거가 골렘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댔다.
“내구도 보강. 내열 증가. 형상 복구. 재질 강화.”
발현계가 아닌 구현 계열의 과 마법.
흐물흐물 녹아내리며 무너지던 골렘의 모습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반쯤 무너지던 골렘이 다시 우뚝 섰다.
까득.
루드거는 알약 하나를 다시 입안에 털어 넣었다.
차오르는 마나를 다시 골렘에 쏟아 강화를 때려 박았다.
멈추지 않는 불꽃.
그리고 끝없이 무너지고 수복되는 걸 반복하는 골렘.
그렇게 끝없이 쏘아질 것 같았던 불의 숨결이 끝났다.
불씨가 퍼지고 창고 비품이 재가 되어 가루처럼 흩날렸다.
콰지모도 주변의 모든 것이 녹아내려 있었다.
철제 구조물까지 흐물흐물 녹아내려 조금 전보다 넓어진 창고의 중심.
콰지모도가 씩씩거리며 루드거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거 참.”
이쪽을 진심으로 죽이려는 콰지모도의 행동에 루드거는 한숨을 내쉬었다.
원거리에서 에스메랄다를 노리는 방법은 사실상 불가능.
그렇다고 콰지모도 자체를 쓰러뜨리는 것도 힘들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정면 돌파뿐인가.’
어떻게든 에스메랄다에게 특수 마취제만 투여하면 콰지모도를 제압할 수 있다.
‘남은 알약은…….’
루드거는 마력 회복약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려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간을 보면서 싸우는 것은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이쪽도 할 수 있는 최선으로 가 주마.”
그렇게 말하며 루드거는 가슴팍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콰지모도는 루드거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 줄 알고 경계심을 끌어 올렸다.
“당황하지 마라. 여유 정도는 부릴 수 있지 않느냐.”
루드거가 꺼낸 것은 흑색과 금색이 조화를 이루는 파이프 담배였다.
그리고 그 담배의 대통(Bowl) 안에는 마력초의 독기를 가득 머금은 독초가 잘게 부서져 담겨 있었다.
파이프 담배에 불을 지피려던 루드거는 주변 상황을 깨닫고는 피식 웃었다.
파이프 담배를 쥔 손을 옆으로 뻗었다.
“불 좀 빌리지.”
치이익.
허공에 떠다니는 불씨가 독초 위에 내려앉으며 불을 붙여 주었다.
쓰읍.
루드거는 하얀 연기가 나오는 파이프를 입에 물고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
눈까지 감고 있어서, 그 모습만 보면 마치 여유를 즐기는 나른한 사람의 모습 같았다.
번쩍!
그리고 그가 눈을 떴을 때.
그의 눈동자는 팽창하는 마력의 짙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