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377
◈ 377화 책 고르기 (1)
전부 계산했다니.
아르파의 터무니없는 말에 일행들은 모두 말문을 잃고 말았다.
단순 허세라 보기엔 아르파의 대답부터 표정까지 모든 것이 진지했다.
터무니없는 말도 이렇게 순수하게 말하면 진실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어라?”
아르파는 분위기가 영 이상해진다 싶어 황급히 변명했다.
“아,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전부는 아니에요. 오면서 왔던 방들 있잖아요? 거기서 벌어지는 신비 현상들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다른 곳과 대조해서 조금 더 경우의 수를 착실히 줄여 나갔으니까요.”
“……지금까지 오면서 본 방의 개수만 몇 개인데?”
“132개요.”
“……그건 또 어떻게 아는 거니?”
“그야, 기억하니까요?”
“…….”
그러면 그게 더 대단한 거 아닌가?
일행은 결국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아르파의 진짜 능력은 그 어떤 마법사도 함부로 하지 못할 완전 기억 능력에 있다고.
기사에 맞먹는 신체 능력을 지녔으면서 머리까지 영민하다니.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놀랄 만도 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루드거는 저들의 반응이 이해가 갔다.
‘사소하게 넘길 만한 모든 것들을 다 기억하다니. 머리가 좋다는 마법사도 하지 못할 짓이지.’
인간은 망각의 생물이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주의 깊게 살피지 않는 이상, 조금 전에 본 것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이 때론 축복처럼 느껴지지만, 때론 저주일 때도 있는 법이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내고 기록한다 해도, 인간은 수백 개가 넘는 방이 바뀌는 패턴을 실시간으로 분석하지 못한다.
루드거도 비슷하게 해 보려고 했다가, 방의 개수가 50개를 넘어가면서 포기하고 아르파에게 전부 일임했다.
아르파는 전부 다 기억할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아르파가 보는 시선은 일반인들과 많이 달라.’
인간은 평범하게 시신경이 달린 안구로 사물을 분간한다.
훈련받은 정도에 따라 보는 수준이 달라질 수는 있어도, 생물학적인 한계는 뛰어넘지 못한다.
가령 자외선과 적외선 영역을 눈으로 인지하는 것 말이다.
아르파는 그것이 가능했다.
아르파는 철강국 델리카 왕국의 과학 기술의 집대성으로 완성된, 세계에 단 2개체밖에 존재하지 않는 특수 오토마톤.
남들에겐 구분이 가지 않는 사소함도.
아르파에게는 그 미묘한 차이가 훤히 보인다.
루드거가 신비의 밤에 아르파를 직접 데려온 것은 이런 이유가 컸다.
‘물론 이 사실을 모르는 입장에선, 아르파가 숫제 괴물처럼 보이겠지.’
아르파가 오토마톤인 것은 숨겨야 하는 진실.
겉으로 드러난 부분이 적으니, 아르파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 더욱 과대평가 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물론, 모든 비밀을 드러낸다 하더라도 아르파가 대단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리라.
정작 아르파 본인은 왜 주변에서 자신을 대단하게 추켜세우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이었다.
아르파에겐 자신이 본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능력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타입 알파’라는 개체로서 눈을 뜬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배움과 노력도 없이 자연스럽게 타고난 이 능력을 그렇게 대단히 여기는 것을, 아르파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대로 가면 시간이 지체될지도 몰라 루드거는 상황 정리에 나섰다.
“궁금하신 것이 많으실 테지만, 자중하시죠.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니까요.”
“……그래. 그건 그렇지.”
과연 머리 회전이 빠른 마법사들답게 세 사람은 재빠르게 현실을 직시했다.
그래. 중요한 건 아르파의 능력이 아니었다.
지금 눈앞에 활짝 열린 서재를 두고 괜한 일에 한눈을 팔 수는 없었다.
물론 아르파의 기억력이 지나칠 정도로 완벽해서, 어딘가 무기질적인 찝찝함은 남았지만.
그런 사소한 의문은 미지를 향한 지식에 대한 탐구열 앞에 녹아내렸다.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기 앞서, 루드거가 림레이를 향해 물었다.
“서재 안에서 따로 주의해야 할 점이라도 있습니까?”
“여기는 그런 것이 없다. 이곳의 물건을 바깥으로 들고 나가지 못하는 것. 그걸 제외하면 말이지. 사실상 물건을 가지고 나가지 못하는 것은 이 저택 전체에 국한된 규칙이기도 하고.”
여기서부터는 뭘 해도 상관없다.
림레이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각자 원하는 자료를 찾으면 되겠군요.”
“그러지.”
“그러면 이따 봐요!”
일행은 각기 찢어졌다.
물론 아르파는 루드거와 함께였다.
두 사람은 서고를 걸었다.
주기적으로 켜진 주홍빛 등이 주변을 은은하게 밝혀 준다.
그것이 어둑하고 을씨년스러운 서고의 분위기에 신비스러움을 가미했다.
‘사방에 신비 현상이 가득하던 저택과 달리 이곳은 유난히 고요하군.’
물론 저택의 모든 공간이 다 기이한 현상으로 가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마법사가 애타게 찾는 서고가 이렇게 고요한 건 조금 의외였다.
‘뭐, 조용하면 조용한 대로 이쪽 입장에서야 좋은 일이니까.’
루드거는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책장을 눈여겨보았다.
책은 오래되었지만, 그렇다고 낡아 헤지지는 않았다.
저택과 같다.
신비한 힘에 의해서 책 자체가 상하지 않고 안전하게 보관되는 것이다.
‘전부 고대어로군. 당연한 일인가.’
루드거는 눈에 보이는 책 한 권을 뽑아 내용물을 가볍게 훑었다.
안쪽에 적힌 글귀는 고대어였다.
그마저도 저자가 직접 손으로 써서 그런지 꽤 읽기 힘들었다.
‘이래서야 고대 언어학에 능통한 사람도 알아먹지 못하겠어.’
물론, 책을 직접 가져가서 긴 시간을 투자해 글자를 대조한다면 해석하는 것도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필요한 것이 ‘긴 시간’이라는 것이다.
시간제한이 걸린 이곳에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
‘1년에 단 3일. 심지어 그마저도 3일 꼬박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오전에 가서 해가 지기 전에 나와야 한다. 서재를 찾으려 해도 신비 현상 때문에 반드시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야.’
시간도 짧고, 운적인 부분도 많이 적용된다.
신비의 밤이 개최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까지 이렇다 할 발견이 없던 것은 이런 이유가 컸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처음 이곳에 왔으면서 곧바로 서재를 찾아 책을 살피는 루드거가 이상했다.
“리더. 책의 내용은 뭐라고 적혀 있나요?”
“별거 없다. 그냥 당시 지식인이 사회 상황을 일기처럼 나열한 것이니까.”
“그것도 대단한 거 아닌가요?”
“역사학자나 사회학자들은 눈을 뒤집고 반길 내용이지만, 내가 찾는 것은 이게 아니지.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니까.”
이 저택의 주인이 마법사라면, 필시 이곳의 어딘가에는 마법과 관련된 책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찾아내느냐는 것이다.
오래전 사람이 책의 표지에 친절하게 제목을 적어 놓았을 리가 없다.
결국 서재에 들어와서도, 원하는 걸 찾기 위해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아르파. 혹시 뭔가 수상해 보이는 책이 보이나?”
“수상해 보이는 거요? 제 눈에는 다 비슷한 거 같은데.”
“유난히 손때가 탔다거나, 혹은 미묘하게 규격이 다르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아무리 살펴봐도, 다 비슷해요.”
아르파의 눈으로도 구별이 되지 않는다는 건가.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봐야 하나.’
루드거는 서재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저택의 서재는 넓었다.
하지만 결국엔 그 공간의 한계를 드러내듯 끝을 맞이했다.
‘이거 참.’
책장들은 전부 같은 간격으로 일정하게 나열되어 있어, 어디에 어떤 책을 보관하고 있는지도 확인이 불가능하다.
이러면 결국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책들을 살펴보는 방법밖에 없는데.
루드거가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언제까지 저를 따라오실 겁니까?”
루드거의 말에 뒤에서 따라오던 일행들이 책장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림레이, 로이나, 셈파스.
세 사람은 안 들킬 줄 알았는지 꽤 머쓱한 표정이었다.
“각자 찾으려는 책들은 다 찾으셨습니까?”
“저기, 그게…….”
로이나가 대답을 망설였고 셈파스는 입을 다물었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림레이였다.
“에잉. 이놈아. 다 알면서 그렇게 묻는 게냐?”
“제가 뭘 다 안다는 겁니까.”
“애초에 이 저택에 있는 서적들은 전부 고대어로 적힌 것들이다. 그걸 우리가 대체 어떻게 알고 다 읽고 해석한다는 거냐?”
“못하십니까?”
루드거가 물었다.
그 말은 단순히 상대방을 조롱하려는 의미로 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 순수하게, 6위계 마법사가 둘이나 있는데, 그걸 왜 모르냐는 의문이었다.
“…….”
“…….”
림레이와 로이나는 말문이 막혔다.
루드거에게 이쪽을 비하할 의도가 전혀 없다곤 하지만, 저걸 진지하게 물어볼 줄이야.
“……내가 궁금하구나. 고대어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냐?”
“림레이 현자님은 렉서러 등급이지 않습니까. 심지어 이명도 현자시고.”
“현자면 다 알아야 하느냐?”
“아는 게 많아서 붙은 말 아니었습니까?”
입술을 씰룩이던 림레이가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러면 네가 현자해라!”
“왜 화를 내고 그러십니까?”
루드거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림레이는 그 표정을 보고 더욱 뒷골이 당겼지만, 이번에는 짜증을 내지 못했다.
누가 뭐래도 이 자리에서 절대적인 갑의 권한을 지닌 사람은 루드거였으니까.
애초에 루드거에게 다가간 것도, 그가 흥미로운 것도 있지만 고대어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였다.
다른 자존심 강한 마법사들은 루드거의 그런 소문을 들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림레이는 오래 살아온 관록으로, 소문이 괜히 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그래서 다들, 원하는 자료를 찾아도 해석이 안 되니 저에게 부탁하기 위해서 이렇게 따라온 거군요.”
림레이는 못마땅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셈파스 또한 면목이 없는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로이나만 쑥스럽다는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뭐,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유입니다만. 애석하게도 저에게도 여유는 없습니다. 저도 찾아야 할 자료가 있는데, 그러자니 이 서재를 다 뒤져 봐야 할 판이니까요.”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림레이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찾는 방법은 내가 알고 있으니까.”
“림레이 님이 말씀이십니까?”
“뭐냐 그 말투는. 내가 그렇게 못 미더운 거냐?”
림레이가 눈에 쌍심지를 켜며 물었다.
보통 마법사들은 렉서러 등급의 림레이가 이렇게 화를 내면, 곧바로 꼬리를 내리며 조심스러워진다.
하지만 루드거는 달랐다.
“예.”
“뭐야?!”
“애초에 혼자 힘으로 안 되니 저에게 도움을 구하러 오셨으면서, 제가 어떻게 믿습니까?”
“…….”
너무 정론이라 림레이는 할 말이 없었다.
로이나와 셈파스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크, 크흠. 그러니까 거래를 하는 느낌으로 서로를 돕자는 거 아니겠느냐.”
“책을 찾는 방법을 알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제가 무슨 책을 찾는지 어떻게 알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것도 썩 의심스럽습니다만.”
“옛끼! 애초에 우리 같은 마법사들이 여기 온 이유가 뭐겠느냐! 다 마법과 관련된 지식이 담긴 서적을 찾기 위함이 아니냐!”
“그건 그렇죠.”
“그거라면 내 마법으로 찾을 수 있다!”
“마법 말입니까?”
림레이의 말에 루드거가 처음으로 눈을 빛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림레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여전히 자신을 믿지 못하는 투였다.
“쯧. 직접 보여 주마.”
림레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손에 쥔 석장 형태의 지팡이를 수평으로 눕힌 뒤 마력을 일으켰다.
눈을 감으며 정신을 집중하던 림레이가 이윽고 지팡이를 수직으로 세우더니 바닥을 가볍게 쿵 찍었다.
동시에 석장에서 뿜어져 나온 새하얀 마력의 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치 고슴도치가 몸을 웅크리고 가시를 세운 것처럼 무수한 마력의 선들은 주변 서적과 연결됐다.
이윽고 서적과 연결된 마력의 선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투툭. 툭.
일부 마력의 선들은 힘없이 끊어져 허공에서 흩어졌고, 일부는 여전히 남았다.
아니, 그냥 남아 있지는 않고 그 색이 바뀌었다.
붉은색과 푸른색.
시야에 보이는 서적의 위로 적색과 청색의 신호가 켜졌다.
“이게 대체 뭡니까?”
“책 고르기다.”
감았던 눈을 뜬 림레이가 뻐근한 어깨를 한 바퀴 돌리며 말했다.
“책 고르기?”
“탐지 마법 비슷한 거다. 그걸 내가 조금 개조해서 따로 개발한 마법이지. 이름 그대로, 책에 작용해서 그 안에 적힌 특정 글자를 분석해, 내가 원하는 책을 찾는 것이다.”
과연. 마력의 실이 책에 연결이 된 것은 그런 이유였나.
동시에 루드거는 림레이의 마법에 큰 흥미가 돋았다.
그가 사용하는 [소스코드] 마법처럼, 림레이의 [책 고르기]는 어딘가 프로그래밍을 떠올리게 했다.
가령 무수한 글자 사이에서 특정 글자를 검색해서 찾을 수 있는 탐색 기능이라거나.
‘탐지 마법을 저렇게도 사용할 수 있었군.’
물론 넓은 범위의 공간 자체에 파장을 뿌려서 찾는 탐지 마법과는 다르게, 사물과 직접적인 접촉을 해야 했지만.
이렇게 많은 책 사이에서 원하는 걸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매우 유용했다.
“반응 자체는 고대어로 [마법]과 [신비]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모든 문장을 해석하지는 못해도, 특정 단어는 기억하고 있으니까.”
“불빛이 들어온 것들이 그 두 단어를 내포하고 있다는 겁니까.”
“실이 끊어진 것들은 볼 가치도 없는 것. 반대로 붉은색은 해당 단어가 들어가도 그 횟수가 적은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것은 푸른색으로 빛나는 책들이지. 어떠냐? 이제 조금은 존경스러운 마음이 드느냐?”
처음으로 자신이 멋진 모습을 보여 줬다 생각하는지 림레이가 으스대며 물었다.
루드거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푸른빛의 책을 펼쳐, 내용물을 눈으로 휙휙 확인하고는 답했다.
“뭐, 나쁘진 않군요.”
“뭐? 나쁘지 않아? 이 솔직하지 못한 놈! 부럽다고 하지 그러냐!”
“그렇다 해도 여전히 살펴야 할 책의 숫자는 많습니다.”
책 고르기 마법의 덕분에 100권 중에서 살펴야 할 책의 숫자가 10권 내외로 좁혀졌지만.
이 서고에는 적게 잡아도 수만 권이나 되는 책이 있다.
10분의 1로 줄인다 해도 여전히 천 단위인 것이다.
획기적으로 줄었다 해도, 여전히 살펴야 할 책들이 많은 것 또한 사실.
“그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지. 애초에 이렇게 줄인 것도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
“흠. 그렇군요.”
루드거는 조금 전 림레이가 보여 준 마법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더 줄이면 될 거 같습니다.”
“뭐? 누가?”
루드거가 림레이를 빤히 응시하며 답했다.
“제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