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376
◈ 376화 비밀의 저택 (3)
루드거가 액자를 보며 물었다.
“여기에 있는 사람이 죽는다는 말이 정말입니까?”
“그렇다니까. 내가 그런 거로 괜히 거짓말할 사람으로 보여?”
“아닐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의심만 많아서는. 그런 경우는 듣지 못했어. 말했잖아. 왜 이런 소문이 돌았겠어? 실제로 저 투명 액자의 초상화에 그려진 사람들이 모두 죽었으니까 하는 말이지.”
림레이는 눈을 가늘게 뜨며 루드거를 응시했다.
“아니면, 뭐.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떡 하니 찍혀 있나?”
“그건 아닙니다.”
루드거는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로이나는 전혀 안심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히익! 서, 설마 거기에 제가 있는 건가요?! 저죠?! 저 맞죠?!”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일부러 저 안심시키려고 거짓말하시는 걸 수도 있잖아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뭔가 친구 먹었다 하니까 점점 기어오르는 느낌인데.
아니라고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 같으니 루드거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보니 로이나 씨를 닮은 것 같기도 하군요.”
“으아앙! 난 망했어!”
“……농담이니까 일어나십시오. 다 큰 마법사가 여기서 무슨 추태입니까?”
림레이와 셈파스는 말릴 생각도 하지 않았기에 루드거가 주저앉은 로이나를 강제로 일으켰다.
‘하여간 6위계 이상 달성한 마법사 중에서 정상인이 하나 없다니까.’
루드거는 마법계에서 떠도는 속설을 새삼 실감하게 됐다.
원래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6위계 지인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이젠 맹신의 단계까지 치닫게 됐다.
“시간 지체하지 말고 움직이죠.”
일행은 계속 걸었다.
복도를 걸을 때마다 작지만 특이한 일들이 벌어졌다.
알 수 없는 곳에서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린다거나, 아무것도 없는 창밖에 사람의 손바닥이 찍힌다거나.
때로는 문과 창문의 위치가 휙휙 바뀌기도 했다.
마치 복도를 90도 정도 회전시킨 것 같았다.
바닥에 창문이 박힌 복도의 광경을 보며, 루드거는 이 저택의 기묘함에 미약한 감탄을 흘렸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얌전하군요.”
“뭐가 얌전하다는 거냐?”
“저택은 더한 마경이리라 생각했는데, 최소한 목숨을 위협하는 일은 없지 않습니까. 지금까지는.”
루드거의 말 대로였다.
저택에서 벌어지는 온갖 기현상은 꽤 신기하고 놀라운 것들이지만, 그것이 위기감을 느끼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림레이가 얼굴을 찌푸리더니 질책하듯 말했다.
“말했잖느냐. 이곳에서는 필수적인 룰만 지키면 된다고.”
“대체 그 룰이라는 것이 뭡니까?”
“뭐긴 뭐겠느냐. 이곳에서 지켜야 할 손님으로서의 도리인 거지.”
“5분 이상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같은 것 말입니까?”
“우리는 이러나저러나 저택의 손님이다. 그것도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지. 이 저택 자체에 특별한 의지가 깃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곳의 신비는 말썽을 부리는 자는 용납하지 않아.”
“정작 그런 것치고는 살인 사건이 일어났지만 말이죠.”
“저택은 저들끼리 죽고 죽이는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소리지.”
어떻게 들으면 아주 섬뜩한 말이다.
불청객들이 서로 죽이는 것을 방관하는 저택이라니.
“그래서 다른 룰은 또 무엇이 있습니까. 다른 곳에서도 5분 이상 머무를 수 없다면, 꽤 힘들 것 같은데.”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그 규칙이 적용되는 것은 복도뿐이니까. 각 방에는 또 새로운 규칙이 적용되지. 가령, 한번 들어가면 반드시 주어진 시간은 채우고 나와야 한다거나. 잘못 들어가면 그대로 사라진다거나.”
“그런 룰은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건지 신기하군요.”
“어떻게 알기는. 마법사라고 이런 신비 현상을 처음 보는 걸 다 알아차릴까. 사람들이 갈려 나가다 보면 알게 되는 거지.”
“…….”
저택에 존재하는 규칙을 하나씩 알기 위해 대체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신비 현상에 휩쓸리게 된 걸까.
“그래도 어지간한 것들은 다 알려졌으니, 안일하게만 행동하지 않으면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다른 규칙들은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다가 림레이가 불현듯 떠올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한 손에 쥔 석장을 닮은 지팡이의 고리가 차르르 떨렸다.
“아. 그게 하나 있었군.”
“뭐가 있는 겁니까?”
“주의해야 할 점. 어차피 해가 지면 알아서 이 저택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왜 그런지는 알아 두는 게 좋겠지. 이 저택에서 자정이 넘어가기 전까지 나가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죽습니까?”
“잘 아네. 그러니까 여기서 밤새우려고 할 생각 마. 죽고 싶지 않다면.”
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아르파가 물었다.
“왜요? 뭐가 나오나요?”
아르파의 질문에 림레이의 딱딱한 표정이 삽시간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어이구. 우리 아르파가 궁금한 것도 많구나. 이 할애비가 가르쳐 주랴?”
“네!”
“이 저택에 오래 머무르면 안 되는 이유는 말이다, 자정이 넘으면 무서운 괴물이 나와서 그런단다.”
“무서운 괴물이요?”
“그러엄. 우리 아르파 같은 아이는 한입에 집어삼키는 아주 무시무시한 괴물이지.”
마치 손주에게 동화책 이야기를 해 주는 것 같은 태도였지만, 그 말이 내포하는 의미는 전혀 가볍지 않았다.
“괴물을 목격한 자가 있는 겁니까?”
“있지. 그리고 유일한 생존자이기도 하고. 저택에 용감하게 머물렀던 수십 명의 사람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었지.”
“지금은 뭘 한답니까?”
“죽었어.”
“…….”
“극도의 신경성 스트레스와 공포, 정신병 때문에 자살했지. 신비의 밤이 끝나고 곧바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3일 후에 목을 매단 채로 발견됐어.”
오히려 그 행동 때문에 생존자가 남긴 이야기는 경각심을 심어 주기 충분했다.
자정이 되면, 저택에는 괴물이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그 괴물은 어떤 마법으로도 쓰러뜨릴 수 없다.
“신비가 가득한 저택. 규칙이 존재하며, 밤이 되면 괴물이 출몰한다라. 그야말로 인세에 존재하는 악몽이나 다름없군요.”
“일단은 신비 현상으로 인해 탄생한 크립티드로 보고 있는데, 그놈이 진짜 위험한지 아닌지는 확실히 증명됐어.”
“겁도 없이 도전했다가, 또 여럿 죽어 나갔군요.”
“그렇지.”
생존자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사람은 당연히 존재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경고를 신중히 받아들였다면 사건 사고는 벌어지지도 않을 테니까.
일부 마법사들은 괴물 같은 건 사냥하면 그만이라며, 저택에 오래 머무르려고 했다.
오래 머무를수록 다른 마법사보다 저택을 연구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그만큼 얻어 가는 것이 더 생길 테니까.
다만, 다음 날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리라 예상하지 못했겠지.
그 이후에는 저택에 남겠다는 용감한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게 됐다.
루드거는 고개를 저었다.
‘간단하게 서재에서 원하는 자료만 찾을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제약이 많아.’
게다가 사건도 많이 터지고 있었다.
시작부터 숲에서 짐승들에게 습격당해 희생자가 나오질 않나, 저택 내부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질 않나.
게다가 일행 중 하나인 림레이는 죽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어떠한 이유로 죽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그게 사실이라면 함께 움직이는 우리도 거기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신비의 밤에서는 매년 여러 사건이 일어나지만, 저택에서의 살인은 너무 규격 외다.
심지어 델리카 왕국에서 온 종군 마법사까지 죽지 않았던가.
‘검은 여명회가 이 일을 꾸몄다는 것은 확실해.’
레슬리는 이번 신비의 밤에서 참석한 마법사들 대부분을 쓸어버릴 계획을 꾸미고 있다.
그걸 위해서 사전작업으로 저택 내부의 사람들을 죽이는 거야 충분히 가능한 일.
혹은 알아서는 안 될 비밀을 알아서 입막음했다거나.
‘문제는 대체 어떤 방식으로 일을 벌이냐는 건데.’
카사르 분지는 워낙 이상한 공간이라 마땅한 추측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가장 확실한 건, 레슬리 휘하 오더들을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 보는 건데.
이 저택 내부에서는 그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그렇게 오래 돌아다닌 것 같은데도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았다.
무언가 있는 것이다.
루드거는 일단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기로 했다.
‘서재를 먼저 찾아 자료를 확인하고, 저녁에 전초 기지로 돌아와서 놈들이 접촉하기를 기다린다. 지금 당장에 레슬리 휘하 여명회를 찾으려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커.’
그렇다면 해가 지기까지 남은 시간 동안, 이 저택에 존재하는 서고를 찾아야 하는데.
“혹시 서고의 위치를 아는 사람 있습니까?”
루드거의 물음에 누구도 답하지 못했다.
꽤 오랫동안 걸으며 여러 곳을 살폈지만, 서고로 추정되는 곳은 보이지도 않았다.
최소 방 10개는 넘게 열어 본 것 같은데, 전부 허탕이었다.
“이래서야 오늘 안에 찾을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군요.”
“괜히 다른 마법사들이 이른 아침부터 호들갑을 떨면서 여기 오는 줄 아느냐? 이 저택에 들어온다고 해도 곧바로 서고를 찾을 수는 없으니까 그러지.”
“그렇다면 지금까지 서고를 방문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
“계속 돌아다닌 끝에 우연히 찾은 거지. 이 미로 같은 저택에서는 뭐든 우연에 기댈 수밖에 없다.”
“우연 말입니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다들 비슷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멀쩡하던 사람도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장소다.
물건의 위치가 바뀌고, 조금 전 지나갔던 길을 뒤돌아보면 전혀 다른 길이 펼쳐져 있다.
이렇게 두 다리로 걷고 있는데도 꿈속을 거니는 기분.
마치 정신이 고양돼 환각을 보기라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루드거는 이런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을 운과 우연에 기댈 생각은 없었다.
“아르파. 데이터는 충분히 쌓였나?”
“네.”
“길은 확인됐나?”
“네. 전부 확인됐어요.”
“좋아. 그러면 안내를 부탁하지.”
지금까지 앞장서서 걷던 루드거가 뜬금없이 아르파에게 선두를 양보하자, 일행은 이게 대체 뭐냐는 시선으로 루드거를 쳐다봤다.
“지켜보십시오.”
루드거는 지켜보라는 말과 함께 선두로 나아가는 아르파의 뒤를 따랐다.
아르파는 거침없이 걸었다.
마치 이 저택의 복잡하고 어지러운 길을 손바닥 위에 훤히 놓고 보는 것처럼 그 발걸음은 자못 당당하기까지 했다.
“어. 이 길이 맞아요? 처음 오는 곳 같은데.”
로이나는 걱정이 돼서 그렇게 물었고, 셈파스도 비슷한 생각인지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림레이도 입술을 씰룩이며 당장에 뭐라고 소리치고 싶어 했는데, 상대가 아르파라서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신 대답을 한 것은 루드거였다.
“두고 보면 알 겁니다.”
그 말을 꺼내고 5분이 지났을까.
아르파는 커다란 목조 문 앞에 우뚝 멈춰 섰다.
“여기예요.”
너무나도 당당한 말.
다른 일행들이 의아해할 때, 루드거는 고개를 끄덕이며 거침없이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잠깐만요!”
함부로 방문을 열면 좋지 않다.
일부 방의 경우에는 여는 순간 트랩 같은 것이 발동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을 열기 전에는 항상 여러 단계의 조사 과정을 거친 뒤에 열어야 했다.
그러나 다급하게 제지하려던 로이나는, 문이 열리며 보인 풍경에 입술을 꾹 다물었다.
놀란 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문이 열리며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온갖 책들이 가득 꽂힌 책장의 방.
이 저택에서, 많은 마법사들이 그토록 찾고자 열을 올린 비밀의 서고였다.
“진짜, 서고라고?”
림레이는 믿기지 않는 시선으로 아르파를 응시했다.
“대체 어떻게……?”
“패턴을 분석했어요.”
“분석했다고?”
“네!”
말도 안 되는 대답을 해맑은 얼굴로 대답하는 아르파.
림레이는 그 말을 들어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저택의 방이 바뀌는 것에 패턴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있어. 같은 문을 열어도, 안쪽에 존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장소라고. 이 저택은 살아 있는 것처럼 유기적으로 방의 위치가 바뀐다고.’
당연히 그것을 어떻게든 분석하려던 사람들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패턴을 익히기도 힘들거니와, 애초에 고려해야 할 변수가 워낙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이 아이가 계산했다고?’
우연이라고 보기엔 당당하게 앞장서서 걷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아른 밟힌다.
그 과감한 행동은 정말로 서재의 위치를 알고 있지 않은 이상 보일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녀석은, 그런 아르파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림레이가 루드거를 응시했다.
애초에 아르파를 데려온 것도 루드거였고, 아르파에게 이 일을 맡긴 것도 그였다.
그냥 적당히 옆에서 수발을 드는 아이를 데려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건가.
그런 림레이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루드거가 말했다.
“아르파. 다들 궁금해하는 것 같으니 네가 본 것을 설명해 줘라.”
“네. 우선 제가 서고의 위치를 파악한 것은 방금 말했다시피 패턴의 분석에 있어요. 이 저택은 장소가 계속 뒤죽박죽 바뀌잖아요? 저는 거기서 가능성을 봤어요.”
“가능성을, 봤다고요? 무슨 가능성이요?”
로이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아르파가 순수한 목소리로 답했다.
“방이 전부 무작위로 바뀌지 않을 건 아니에요? 그리고 문을 연다고 해서 다른 이상한 장소와 연결돼 있는 것도 아니고요. 결국엔 문마다 저택에 존재하는 방과 연결이 될 수밖에 없죠.”
“이 저택에는 단순한 방만 300개가 넘어요. 그 모든 방을 동시에 열지 않는 이상, 그걸 구분할 수 있진 않을 거 아니에요.”
게다가 문 앞에 명패가 달린 것도 아니고, 문의 디자인이 서로 다른 것도 아니다.
전부 똑같은 모양, 똑같은 규격의 문.
하지만 열면 어떤 것이 나올지 모른다.
“음. 그 경우에는 주변 현상을 신경 썼어요.”
“주변 현상?”
“그러니까, 조금 특이한 방이 근처인 경우에는 특이한 일들이 벌어지더라고요. 어떤 소리가 들린다거나, 혹은 복도의 모양이 이상하다거나. 이 모든 일이 마력으로 벌어지는 거니까, 무언가 있다고 생각했죠.”
특별한 방 근처에서는 특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만약 모든 방마다 온갖 기현상이 벌어졌다면, 저택은 더 개판이 됐을 테니까.
곰곰이 고민하던 림레이가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닌 경우는 과감하게 제외했다는 거로구나. 그런데 그걸 감안해도 경우의 수는 많은데…….”
“네. 아마 단순히 확률에 의거한 경우의 수만 해도 수십만 가지가 넘어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추궁하듯 묻는 림레이의 말에, 아르파는 곤란하다는 듯 뺨을 긁적였다.
“어…… 그야 전부 계산했으니까요?”